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빨갱이 노동운동가들 중 그 누구도 검찰에 의해 기소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4월 28일 현재가지 소니, 캐터필러, 3M, 미쉐린 등의 경영진들이 보스내핑당한 바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 결과 3M은 인원 감축안을 재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소니 측도 실업수당에 대해 재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사장을 납치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 유럽 전체를 강타한 경제 위기와 그에 따른 구조조정은 해묵은 전략을 부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AP의 그렉 켈러(Greg Keller)는 보도하고 있다. 물론 직원들이 사장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납치되어 있었던 3M의 매니저 뤽 루슬리(Luc Rousselet)는 기자들에게 "다 괜찮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잘 먹고 잘 쉬고 있었다.
"납치?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보스내핑당했던 3M의 매니저 뤽 루슬리의 실제 감금 상황, Getty)
이러한 비상식적이며 반사회적인 노동쟁의에 대해, 프랑스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시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스내핑을 포함한 반사회적 노동쟁의에 대해 응답자 중 55%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보스내핑에 대해 단 한 건의 기소도 없었다.
'법의 원칙'만을 놓고 보자면, 아무리 서로 원만하게 감금하고 있다 해도, 납치는 납치고 감금은 감금이다. 형법학 교과서에서는 누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방문을 걸어잠궜다가 열어줬더라도 감금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학설을 가르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명백한 범법행위도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협상력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4월 14일 고려대는, 2006년 출교 조치를 당했다가 2년 만에 법원의 판결을 통해 복학했던 고려대학교 학생 7명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출교와 퇴학 조치로 인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기간을 무기정학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 고려대의 입장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졸업한 학생들에게도 그 처분을 소급해서 적용한다는 것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도로 뺏어서 끝내 찢어야 속이 후련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학생들이 2006년 출교 처분을 당했던 이유도 넓은 의미에서 '보스내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고려대 병설 보건대학생회의 총학생회 투표권 인정 등을 요구하다가 보직교수 9명을 가로막고 17시간동안 농성을 벌인 것이다. 교수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강제로 박탈당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느냐를 놓고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들이니만큼 '보스'로서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닌다고 볼 수도 있고, 학교측은 이 행위를 통해 교수들이 이동할 수 없게 된 현상을 '감금'이라고 해석했으니, 이 사건을 일종의 보스내핑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대는 경찰에 그들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교칙상 존재하지도 않는 처분인 '출교'를 선포했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이 출교생 7명중 6명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에 대해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출교 처분은 바로 그에 대한 보복 징계로서의 성격이 짙다는 논란이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학생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가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려대 자체의 '위신'을 위해 보복을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길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유야 어찌 됐건, 지금까지도 고려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복성 징계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득권층의 논리가 이렇다. 끝까지 분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대학생들이 이러할진대, 노동자들이 농담으로라도 '보스내핑'을 운운하는 것은 상상할수조차 없는 일이다.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있지도 않거니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이건희 전 회장을 납치한다면 이후 그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초를 겪게 될 터이다. 삼성 직원들이 이건희를 납치한다면,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어 그 노동조합 직원들을 전부 사살한다 해도, 놀랍지 않다.
'발랄한 시위', '상큼한 투쟁' 등을 약 5초 정도 고민해본 후에 '어때, 이 아이디어 죽이지?'라고 ㅋㅋㅋ거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가난뱅이의 역습』의 출간과 성공에 고무받은 사람들이 소수 존재한다. 그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해프닝'에 관대하지 않은 나라라는 것 말이다. 대통령 자리에 올라 있는 누군가를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권위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이가 어쩌고 저쩌고 씹는 것은 일종의 '국민 레포츠'로 통용되고 있지만, 과연 누군가가 이런 짓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슬란드의 한 술집. 2009년 4월 25일. 전직 은행장들의 사진이 남성용 소변기에 붙어 있다.)
AFP PHOTO OLIVIER MORIN.
신자유주의적 금융정책을 밀어붙였다가 망한 나라 아이슬란드의 한 술집 풍경이다. 남성용 소변기에 경제 위기 주범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 얼굴에 소변을 조준하면 변기 밖으로 튀지 않을 테니, 청결한 화장실 유지와 국민들의 분풀이를 동시에 행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광경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가? 1398일 뒤에 어딘가 술집 화장실에 그분의 얼굴이 붙어있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줄까, 아니면 '큰 물의'를 빚게 될까?
보스내핑을 저지르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프랑스 사회가 그정도 '해프닝'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부러 가두려고 한 것도 아니고, 문 걸어잠그고 밖에서 난리치다 보니까 감금이 되어버린 경우에 대해, 대학 당국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7명의 학생들을 쫓아다니며 일일이 복수를 하고 있다. '투쟁'의 여건이 완전히 다르다. 록뽄기를 불바다로 만들자고 외치며 전골을 끓여먹고 있으면, 경찰은 차량 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전경들을 끌고와서 냄비를 뒤엎고 '가난뱅이'들을 방패로 밀어내고 찍어낼 것이다.
삼성 직원들이 이건희를 납치해서 서로 열 시간 정도 푹 쉬어준 다음, 원만한 합의에 도달하는 광경 따위 상상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한국에서 '해프닝'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종종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최근 발생한 사건을 통해 반추해보자면, '운동권'들은 자신들이 기획하고 고려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수수방관하는 전략을 택하곤 한다. 의외의 사건을 통해 사태가 진전될 수 있을 원초적인 가능성은 이로써 더욱 줄어들었다. 그런 이들이 떠올리는 '엉뚱한 상상'은 십중팔구 중국산 기념품처럼 뻔하고 조잡하다.)
이명박 대 전체 국민의 구도를 상정하고, 그것을 몰상식 대 상식으로 놓는 것이 위험할 수 있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 상식이 누구의 상식인가?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에서 '상식'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는, 그들 외의 사람들이 '몰상식'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더구나 '우리는 상식을 위해 싸운다'라는 구호는, 일견 몰상식해보일 수도 있는, 하지만 투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거나 발생해야 하는 일탈 행위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명박산성에 스티로폼을 쌓고 올라가려고 할 때 '비폭력'을 외치던 얼간이들로 인해 그토록 많은 시간을 빼앗긴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이미 우리가 상식의 덫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 선진국'에서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몰상식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유럽의 강소국 금융허브에서도, 경제 위기 후 내각의 성전환이 일어났고 변기에는 경제 개혁 전도사들의 사진이 나붙었다. 프랑스가 부럽다고만 하지 말고, 비상식과 일탈에 대한 그들의 똘레랑스를 진지하게 관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상식'을 붙들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전략이 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