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5

취향을 위한 투쟁 - 단상들

* 자유라는 것이 결국은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부권으로 응축될 수 있다면, 취향은 전적으로 자유의 문제이며 그것은 투쟁을 통해 얻어내야 하는 그 무언가가 된다. 왜냐하면 취향은 수묵화의 달처럼,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통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내 취향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대중적인 취향'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취향은 그러므로 투쟁을 통해 지켜져야 할 그 무언가가 된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입고 먹을 수 있는지를 강제함으로써 자신이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몰취향한 자들로부터, 그들이 '당신과 나는 같은 것을 좋아하고 있군요'라고 선뜻 내미는 미소에 대하여.

* 아퀴나스의 체계 속에서 진리는 곧 선한 것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진리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집착을 보인 자들은 당대에 의해 선의 배신자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으며, 아름다움을 위해 벌여지는 온갖 시도들은 오늘날까지도 마녀사냥을 당한다.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을 취향으로 유지해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나는 동성애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자들을 혐오한다. 이것도 취향이라면, 내가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가장 저질스러운 교만에 속할 것이다. 당연한 취향은 취향이 아니다. 당연한 것을 취향으로 포장하여 자신의 어깨 위에 여우목도리처럼 걸치는 자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인터넷의 군중들이 느끼는 생래적인 반감은, 옳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어떤 심리 테스트가 있다고 해보자. 일본풍의 일러스트를 클릭하고, 심리학적으로 볼 때 다수의 여성에게 포위되는 공포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를 선택하며, 정서적으로 고등학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남성인 피시험자에게 '당신이 좋아할만한 게임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결과가 나왔다. 두근두근 메모리얼, 동급생, 투하트.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취향을 존중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습관화된 자들이 과연 이 조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해봤고 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취향을 추출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 취향은 대체 무슨 취향인가? 대체 어떻게 존중해줘야 하는가?

* '나 취향 좀 괜찮아요, 나쁘지 않아요'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들의 뻔한 취향. 미국 대중문화의 몇몇 코드, 심슨, 스타워즈, 뱀파이어(드라큘라가 아니다), etc. 특히 영국식 블랙 유모어가 좋아요. 미쉘 공드리는 좀 아닌 것 같지만, 영상은 훌륭하죠.

*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그래픽 노블이 훌륭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출판도 비즈니스고, 팔릴만 한 것을 떼와서 파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작품들이 만들어낸 풍성한 대중문화적 결실을 바라보면서 원작을 음미한다. 그런 것들을 보는 스스로의 취향적 우월함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7년근 인삼은 몸에 좋다는 말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 알랭 드 보통과 보르헤스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딱 하나다. 읽으면서 타인의 시선을 상상하기 좋다는 것. 지금 내가 지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고 남들이 생각할 것이라는 가상의 서사 속에 스스로를 배치할 수 있게 해주는 작가라는 것. 움베르토 에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소수자 취향이라고 생각하건 말건,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심지어 이탈리아보다 먼저, 에코 전집이 출간되었다. 전집을 사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출판계의 소수자들. 그들의 지름에 영광 있을지어다.

* 나는 내게 어떤 취향다운 취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가질 수 있을만큼 나는 충분히 무언가를 음미하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와 서로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취향을 가진 우리'에 속하는 일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당신은 나의 취향을 위해 투쟁할 수 없고, 나도 당신의 취향을 위해 대신 싸워줄 수 없다. 취향을 갖는다는 것은 취향에 어긋나는 것을 거부할 때에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취향은 자유의 문제다.

2010-01-07

인터넷과 짤방

인터넷 공간에서 논의와 논증이 사라지고, 대신 '짤방'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짤방이 들어선 자리에는 진지한 사고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생적인 유머와 농담이 설 자리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그를 어떻게 조롱할지 생각하는 대신, '내 그림' 폴더를 뒤져 앵그리 비디오 게임 너드가 욕하는 사진 따위를 찾아내어 블로그에 붙여놓고는 자신이 그 상대를 조롱하는데 성공하였노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상대를 풍자하고 조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짤방은 그렇지 않다.

그 짤방들 중 상당수는 TV에서 나온다. 인터넷은 결코 TV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영상 중 일부만을 캡쳐하여 공허한 분노를 뿜어내는, 철저히 종속적인 공간이다. 짤방 문화와 함께 만화 또한 같은 운명에 처했다. 맥락으로부터 납치당한 캐릭터들은 '절망이다'라고 외치고 '죽어버려'라고 눈을 부라리지만, 정말 절망스러운 것은 언어의 자리를 짤방이 대체하고 있는 바로 이 현상 자체인 것이다.

2010-01-06

법은 최소한의 도덕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은 합법적이다'라는 명제가 참이 아님을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은 불법적이다'라는 것을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어떤 동성애 혐오 발언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라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양화사가 들어가는 논리적 계산인데, 너무 간단해서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잠깐 짬을 내어 보겠다.

'내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내가 내 취향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라면서 동성애에 대해 이런 저런 혐오 발언을 마구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모든 동성애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에 의해(왜냐하면 취향이니까) 보호받는다'라는 명제는, '어떤 동성애 혐오 발언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라는 것을 보여주면 참이 아니게 된다.

정 이해가 안 가면 벤다이어그램을 그려보면 된다. 동성애 혐오 발언의 집합을 H라고 하고,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 표현의 자유를 F라고 해보자.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라는 명제는 H가 F의 부분집합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이렇게 그려질 수 있다.

{ 집합 F {집합 H} }


따라서 F에 속하지 않는 H의 원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찍찍 싸대건 한국 사회의 법이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헛된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지난 포스트인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말할 권리?"에서, 인종적인 이유로 모욕죄의 성립을 인정한 최근 판례를 근거로, 동성애에 대해서도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말은 당연히,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이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이 집합 F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일 뿐이며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위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 보호받을 수도 있다. 내 블로그에서 리플을 달았다 지웠다 하던 어떤 사람은 위키피디아를 뒤져가며 그것을 내게 굳이 강변하려 들었는데, KKK단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고 인종혐오 발언도 어느 정도까지는 미국의 법 내에서 허용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정당하다는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가령 당신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방귀를 뀌고 싶다고 해보자. 그런 행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당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예의와 도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률 외적인 사회적 규제와 기준은 법을 통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

블로그 공간에서 '나는 동성애가 싫습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정도의 미약한,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혐오 발언까지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까지 개인의 표현을 국가가 법으로 억압하려 들 경우 그 칼날은 내게 먼저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누군가가 다른 '개인'의 그러한 발언 혹은 행동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그런 비판은 더욱 활발하게 벌어져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기 때문에, 국가가 법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지 못하도록, 개인들끼리 활발하게 도덕을 만들고 지켜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덕적 기준이나 상식적 당위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토론과 담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저 잉여들이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무제한의 헛소리의 자유를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다.

나도 지겹지만,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상식과 윤리의 기준을 좀먹는 반인권적 발언들을 방치하면, 법으로 보장된 인권마저도 축소시키려는 정치적 움직임이 결국 도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같은 권위주의 선호 집단은 도덕의 공백을 법으로 해결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악플로 최진실이 자살했다며 '최진실법'을 만들겠다고 설치는 것 따위가 대표적이다. 그러한 논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역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명제에 기대야 한다. 인터넷 악플은 도덕적 기준의 문제이지 법으로 다스릴 게 아니다. 그 기준은 결코 점잔 빼는 사람들의 고상한 촌평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따라서 '저들이 불법을 저지를 때까지는 무시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그렇게 도덕의 영역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그 공백을 타고 법의 지배가 스며들어온다. 그것은 권력 위에 군림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만약 누가 진정으로 범죄적인 혐오 발언을 한다면, 왜 그따위 인간과 '토론'을 한단 말인가?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을 먹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가 시끄럽게 토론하고 싸우는 것은 누군가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서가 아니라,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없더라도 옳지 않은 발언과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시끄럽게 싸워야 하고, 서로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참된 평화는 결코 강요된 침묵과 같지 않다.

2010-01-04

단순하고 점잖은 혐오의 표현이 낳는 결과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면,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이 탄생하게 된다. 2007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값을 올려줄 정치세력'을 국민들이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듯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혐오 감정이 단지 dislike에만 머물 뿐 심각하게 범죄적인 hate까지는 도달하지 않으므로 괜찮다는 식의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 반대의 진실이다.

나치가 세력을 확장하던 당시, 사민당은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었고 당내 소수파들을 '급진주의자'들로 몰아붙이며 급격한 중도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많은 경우 대중의 정서를 거스르지 않기를 원했고,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집권을 한 다음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식의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지적 및 정확한 기술을 환영합니다). 나치 뿐 아니라 사민당도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대중 일반의 편견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그에 동참하는 일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인 다수가 인정한 대표적인 나치 테러가 동성애자라는 소수에 대한 테러였다. 나치 지도부 몇 명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두고, [339쪽] 동성애에 대한 나치의 원칙적인 적대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돌격대 대장 에른스트 룀이 동성애자라며 치욕적인 공격을 가한 것은 하필 사민당 신문이었다. 그때 사민당은 선거를 위해 "인민의 건강한 정서"에 호소한답시고 독일 사회주의의 자유주의적인 전통을 더럽힌 것이었는데, 1934년 소위 룀 쿠데타 이후 나치는 그 문제를 재론하면서 그때의 학살을 정당화했다.(338-339쪽)


이런 식으로 테러는 정치의 "일탈"적 수단이 되어갔다. 나치는 특유의 선동으로 '일반 대중'들이 '싫어하는' 자들을 하나씩 공격해 들어갔다. 가령 동성애자를 싫어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았던 일반 대중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나는 동성애가 싫다, 하지만 그들이 저렇게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라는 식의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치가 직접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자 대중들은 스스로의 입장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나치의 테러에 동조하거나, 그들의 테러에 공포를 느끼며 입을 다물거나.

나치는 '일반 시민'들이 고깝게 여기는 자들을 순차적으로 대상으로 삼았다. 테러의 화살이 돌고 돌아 사회주의자들에게까지 돌아왔을 때, 나치의 테러를 우려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직접적·조직적으로 항거하지는 못했다. 왜일까? 데틀레프 포이게르트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놀라운 것은, 적어도 1933년에는 신문들이 공산주의자, 사민당원, 노조 조합원에 대한 억압 조치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는 나치의 정치적 테러에 대한 의사 표명이 드물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좌파에 대한 테러에 침묵한 것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과거에 중도 정당이나 우파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나치가 "빨갱이"를 해치운 것을 환영했고, 따라서 테러로의 "일탈"을 기꺼이 감수했다. 둘째, 좌파 정당에 대한 테러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그 자체의 정치성으로 인해 생필품 공급의 부족에 대해 불평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행위였다. 따라서 좌파에 대한 테러에 동의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박해가 두려워 침묵했다. (79쪽)


'나는 공산주의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나치의 폭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그 폭력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올까봐 두려워서 반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내의 불만 세력, 특히 조직적으로 산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고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분쇄해버린 히틀러는 급격하게 군국주의로 향하는 가속 패달을 밟는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회라면, 누군가가 동성애자들에게 테러를 가할 때, 어떤 이들은 후련해하고 어떤 이들은 그 폭력에 내가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움추려든다. 결국 남는 것은 피묻은 몽둥이를 든 깡패 집단이다. 당신들의 고상한 혐오가 반드시 고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사민당 신문은 에른스트 룀을 아웃팅하면서 히틀러에게 그들을 학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죽어갔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동성애에 대한 대중적 혐오를 부추긴 자들이, 바로 그 혐오를 타고 폭력을 휘두르며 정권을 잡은 집단에 의해 숙청당하게 된 것이다. 그 노란 카나리아를 죽인 것은 결국 '선량한 시민들'의 '평범한 혐오감'이었다. 그 모든 폭력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 그대로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참고문헌

나치 시대의 일상사 - 10점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개마고원

2009-12-31

2009년 독서 목록

  1. 20090105 - 움베르토 에코, 김운찬 옮김,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1)
  2. 20090110 - 강영안,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서울: 소나무, 2000)
  3. 20090114 - 앙드레 고르, 임희근, 정혜용 옮김, 『에콜로지카』(서울: 생각의나무, 2008)
  4. 20090114 - 장 폴 사르트르, 조영훈 옮김, 『지식인을 위한 변명』(서울: 한마당, 1999)
  5. 20090120 - 존 에이거, 이정 옮김, 『수학 천재 튜링과 컴퓨터 혁명』(서울: 몸과마음, 2003)
  6. 20090122 - 게르트 기거랜처, 안의정 옮김, 『생각이 직관에 묻다』(서울: 추수밭, 2008)
  7. 20090127 - 페터 제발트, 이희숙 옮김, 최현식 감수, 『가톨릭에 관한 상식사전』(서울: 보누스, 2008)
  8. 20090203 - 한국18세기학회, 『위대한 백년 18세기 - 동서 문화 비교 살롱토크』(서울: 태학사, 2007)
  9. 20090204 - 요하임 슐테, 김현정 옮김, 『비트겐슈타인』(서울: 인물과사상사, 2007)
  10. 20090205 - 에드워드 사이드, 장호연 옮김,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서울: 마티, 2008)
  11. 20090207 - 에드워드 사이드, 김정하 옮김, 『저항의 인문학 -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서울: 마티, 2008)
  12. 20090326 - 조지프 히스, 앤드류 포터, 윤미경 옮김, 『혁명을 팝니다』(서울: 마티, 2006)
  13. 20090327 - 데를레프 포이케르트, 김학이 옮김, 『나치 시대의 일상사』(서울: 개마고원, 2003)
  14. 20090328 - 리처드 예이츠, 유정화 옮김, 『레볼루셔너리 로드』(서울: 노블마인, 2009)
  15. 20090329 - 오트프리트 회페, 박종대 옮김, 『정의-인류의 가장 소중한 유산』(서울: 이제이북스, 2004)
  16. 20090330 - 이영록, 『우리 헌법의 역사』(서울: 서해문집, 2006)
  17. 20090330 - 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문학이란 무엇인가』(서울: 민음사, 1998)
  18. 20090402 - 테오도르 아도르노, 김유동 옮김, 『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얻은 성찰』(경기도 파주: 길, 2005)
  19. 20090403 - 강영안,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서울: 소나무, 2002)
  20. 20090407 - 박해천, 『인터페이스 연대기』(서울: 디자인플럭스, 2009)
  21. 20090411 - 노베르트 엘리아스, 박미애 옮김, 『모차르트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1999)
  22. 20090416 - 얀 크노프, 이원양 옮김, 『베르톨트 브레히트』(서울: 인물과사상사, 2007)
  23. 20090416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순수이성비판 1』(서울: 아카넷, 2006)
  24. 20090418 - 고종석, 『경계긋기의 어려움』(서울: 개마고원, 2009)
  25. 20090421 - 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옮김, 『게공선』(서울: 문파랑, 2008)
  26. 20090421 - 베르톨트 브레히트, 임한순 옮김, 『브레히트 희곡선집 1 - 서푼짜리 오페라 외』(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27. 20090424 - 토르스타인 베블런, 김성균 옮김, 『유한계급론』(서울: 우물이 있는 집, 2005)
  28. 20090428 - 아마미야 카린, 송태욱 옮김, 『성난 서울』(서울: 꾸리에, 2009)
  29. 20090428 - 마스모토 하지메, 김경원 옮김, 『가난뱅이의 역습』(서울: 이루, 2009)
  30. 20090503 - 게리 윌스, 권혁 옮김,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서울: 돋을새김, 2006)
  31. 20090505 - 게리 윌스, 김창락 옮김,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서울: 돋을새김, 2007)
  32. 20090509 - 마루야마 마사오 외, 고재석 옮김, 『사상사의 방법과 대상』(서울: 소화, 1997)
  33. 20090510 - 이매뉴얼 더만, 권루시안 옮김, 『퀀트, 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서울: 승산, 2007)
  34. 20090517 - 도글라스 호프스태터, 데니얼 데닛, 김동광 옮김, 『이런 이게 바로 나야 (1)』(서울: 사이언스북스, 2001)
  35. 20090521 - 게리 윌스, 안인희 옮김, 『성 아우구스티누스』(서울: 푸른숲, 2005)
  36. 20090524 - 김욱, 『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서울: 개마고원, 2009)
  37. 20090525 - 플라톤, 강철중, 김우일, 이정호 옮김, 『편지들』(서울: 이제이북스, 2009)
  38. 20090605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순수이성비판 2』(서울: 아카넷, 2006)
  39. 20090612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윤리형이상학 정초』(서울: 아카넷, 2005)
  40. 20090615 - 조지프 히스, 노시내 옮김,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제학』(서울: 마티, 2009)
  41. 20090620 - 강준만, 『대한민국 소통법』(서울: 개마고원, 2009)
  42. 20090717 - 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경기도 파주: 창비, 2009)
  43. 20090721 - 데이비드 퍼피뉴, 신상규 옮김, 『의식』(서울: 김영사, 2007)
  44. 20090721 - 리누스 토발즈, 팀 오라일리 외, 이만용 외 옮김, 『오픈 소스』(서울: 한빛미디어, 2000)
  45. 20090721 - 죠지 레이코프, 로크리지연구소, 나익주 옮김, 『프레임 전쟁 -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경기도 파주: 창비, 2007)
  46. 20090806 - 나오미 울프, 김민웅 옮김, 『미국의 종말』(서울: 프레시안북, 2008)
  47. 20090806 - 김국현, 『웹 이후의 세계』(서울: 성안당, 2009)
  48. 20090812 - 딜런 에번스, 이충호 옮김, 『진화심리학』(서울: 김영사, 2001)
  49. 20090828 - 앨런 와이즈먼, 이한증 옮김, 『인간 없는 세상』(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50. 20090831 - 슈테판 람슈토르프, 한스 요하임 셸른후버, 한윤진 옮김, 오재호 감수, 『미친 기후를 이해하는 짧지만 충분한 보고서』(서울: 도솔, 2007)
  51. 20090901 - 제임스 듀이 왓슨, 김명남 옮김,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서울: 이레, 2009)
  52. 20090902 - 딜런 에반스, 안소연 옮김, 『진화론』(서울: 김영사, 2007)
  53. 20090906 - A. L. 바라바시, 강병남 김기훈 옮김,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서울: 동아시아, 2002)
  54. 20090908 - E. E. 샤츠슈나이더, 현재호 박수형 옮김, 『절반의 인민주권』(서울: 후마니타스, 2008)
  55. 20090911 - F. 코플스톤, 김보현 옮김, 『그리스 로마 철학사』(서울: 철학과현실사, 1998)
  56. 20090921 - F. 코플스톤, 박영도 옮김, 『중세철학사』(서울: 서광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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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20090929 - F. 코플스톤, 김성호 옮김, 『합리론』(서울: 서광사, 1998)
  61. 20091003 - 스티그 라르손, 임호경 옮김, 『밀레니엄 I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상)』(서울: 아르테, 2008)
  62. 20091004 - 스티그 라르손, 임호경 옮김, 『밀레니엄 I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하)』(서울: 아르테, 2008)
  63. 20091006 - 질 들뢰즈, 박찬국 옮김, 『들뢰즈의 니체』(서울: 철학과현실사, 2007)
  64. 20091006 - 스티그 라르손, 임호경 옮김, 『밀레니엄 II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상)』(서울: 아르테, 2008)
  65. 20091007 - 스티그 라르손, 임호경 옮김, 『밀레니엄 II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하)』(서울: 아르테, 2008)
  66. 20091008 -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 세대 새판짜기』(서울: 레디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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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20091010 - 제레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문명의 붕괴』(서울: 김영사, 2005)
  69. 20091014 - 존 히든, 이두 글방 옮김, 『비트겐슈타인』(서울: 이두, 2001)
  70. 20091015 - 피터 퓨, 정회석 옮김, 『케인즈』(서울: 이두, 1999)
  71. 20091015 - 우석훈, 『생태요괴전』(서울: 개마고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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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20091015 - 임마누엘 칸트, 이한구 옮김, 『영구평화론 - 하나의 철학적 기획』(서울: 서광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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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20091018 - 임철규, 『귀환』(경기도 파주: 한길사, 2009)
  76. 20091019 -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김경희 옮김, 『군주론』(서울: 까치글방, 2008)
  77. 20091022 - 가와노 히로시, 진중권 편역, 『컴퓨터 예술의 탄생』(서울: 휴머니스트, 2008)
  78. 20091027 - 토머스 홉스, 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1)』(서울: 나남,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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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20091029 - 조지 레이코프, 나익주 옮김, 『자유 전쟁 - '자유' 개념을 두고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대격돌』(서울: 프레시안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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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20091101 - 닐 게이먼, 이수현 옮김, 『샌드맨(3)』(서울: 시공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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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20091103 - 닐 게이먼, 이수현 옮김, 『샌드맨(6)』(서울: 시공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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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20091104 - 닐 게이먼, 이수현 옮김, 『샌드맨(7)』(서울: 시공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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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20091105 - 닐 게이먼, 이수현 옮김, 『샌드맨(9)』(서울: 시공사, 2009)
  91. 20091105 - 닐 게이먼, 이수현 옮김, 『샌드맨(10)』(서울: 시공사, 2009)
  92. 20091108 - 에드문드 후설, 이종훈 옮김,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서울: 지만지, 2008)
  93. 20091110 - 진중권 엮음, 『미디어아트 - 예술의 최전선』(서울: 휴머니스트, 2009)
  94. 20091117 - 노르베리트 힌스케, 이엽, 김수배 옮김, 『현대에 도전하는 칸트』(서울: 이학사, 2004)
  95. 20091119 - 무함마드 유누스, 김태훈 옮김,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서울: 물푸레, 2008)
  96. 20091123 - 제프리 영, 윌리엄 사이먼, 임재서 옮김, 『iCon: 스티브 잡스』(서울: 민음사, 2005)
  97. 20091123 - 김기창,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서울: 디지털미디어리서치, 2009)
  98. 20091125 - 밥 우드워드, 김창영 옮김, 『부시는 전쟁중』(서울: 따뜻한손, 2003)
  99. 20091201 - 아우구스트 몬테로소, 김창민 옮김, 『검은 양과 또 다른 우화들』(서울: 지만지, 2008)
  100. 20091204 - 김태권, 우석훈 해제, 『어린왕자의 귀환』(경기도 파주: 돌베게, 2009)
  101. 20091206 - 밥 우드워드, 김창영 옮김, 『공격 시나리오』(서울: 따뜻한손, 2004)
  102. 20091208 - 조지 몬비오, 정주연 옮김, 『CO2와의 위험한 동거』(서울: 홍익출판사, 2008)
  103. 20091212 - 김학원, 『편집자란 무엇인가』(서울: 휴머니트스, 2009)
  104. 20091218 - 폴 크루그먼, 예상한 외 옮김,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서울: 한국경제연구원Books, 2009)
  105. 20091221 - E. 캇시러, 유철 옮김, 『루소, 칸트, 괴테』(서울: 서광사, 1996)
  106. 20091223 - 임석재, 『계단, 문명을 오르다: 고대 ~ 르네상스』(서울: 휴머니스트, 2009)
  107. 20091224 - 움베르토 에코, 김광현 옮김, 『기호: 개념과 역사』(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