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다산초당, 1만5천원
오래 전에 구입해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었던 이 책을 꺼내든 것은 한 칼럼 때문이었다. <경향신문> 8월 2일자에 실린 "넥슨 여성운동 탄압사태, 눈치들 보지 마라"를 통해, <진실유포죄>의 저자 박경신은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던 논의의 방향을 바꿨던 것이다. 영어의 표현을 빌자면 "Game changer"였던 셈이다. 그 칼럼을 읽고, 내가 놓쳤던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이 책을 펼쳤다.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일베가 여성혐오를 즐기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메갈리아 역시 일베를 '미러링'하는 과정에서 '남성혐오'를 조장하고 퍼뜨린다는 식으로 항변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일베를 배척하듯 메갈리아 역시 배척해야 하며, 메갈리아에 대한 자신들의 증오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혐오 그 자체는 인간의 감정 중 일부일 뿐이다. 게다가 원론적으로 따져보자면 혐오를 드러낼 자유 역시 자유이기는 하다. 그 중에서도 굉장히 소중하고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 각별히 보호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따라서 논점은 언제 어떻게 '혐오 표현'을 통제해야 하느냐로 넘어간다. 그 질문에 대해 박경신은 이미 넥슨 여성운동 탄압사태 이전에 답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모욕적 표현들이 혐오죄에 해당할 것인가? 결국 그 기준은 "혐오표현이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 대한 물리적인 폭력과 실체적인 차별로 이어질 위험이 얼마나 명백하고 임박한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76쪽)
법학의 용어를 빌자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발생시킬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해야 한다. 혐오 그 자체는 그저 감정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를 향하는 혐오가 폭력과 차별로 이어진다.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넘쳐나지만, '남혐범죄'는 실체가 없다.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 통제해야 할 대상은 전자이지 후자가 아닌 것이다.
비록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법학과를 졸업한 사람이다. 이와 같은 논리 전개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독자들은 법원의 판결에 분노할지언정 그 판결의 논리에 대해 따지는 글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법치국가인데,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법치주의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는 매우 드물다. 박경신의 <진실유포죄>는 바로 그 어두운 영역에서 빛나는 결과물이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그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 블로그에 쓴 게시물, 이후의 사태 진행에 대해 덧붙인 뒷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실유포죄>는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 시기와 고스란히 포개지는 책이다. 민주정권 10년을 거친 후 권력을 되찾은 보수는 법치주의를 내걸고 '검치주의'(檢治主義)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무기는 바로 명예훼손과 모욕죄 등. 심지어 아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따라서 거짓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검찰은 허위사실공표죄를 휘두르며 반대자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 <진실유포죄>는 그 시기를 겪어낸 한 법학자의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개별적인 글 꼭지의 출처는 표시되어 있지만 정작 글이 다루는 판결의 사건번호가 빠져 있다. 적극적으로 이 책을 찾아볼 정도의 열의를 지닌 독자의 지적 수준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닐까. 권력이 법을 무기삼아 휘두르는 '검치주의' 시대다. 우리는 더 공부해야 한다. <진실유포죄>는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2016.08.30ㅣ주간경향 11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