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소명출판, 1만8천원
역사적 사실부터 알아보자. "내외 조선인 전문·대학생 4,395명이 일제히 입영한 것은 1944년 1월 20일이었다."(11쪽) 당시 조선인 전문·대학생의 총 숫자는 7천여 명이었으나, 일부는 이공계거나 사범계이기에, 또 일부는 일부러 징집을 피해 도망갔기에, 4,395명이 징집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부족한 병역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일본 군부는 일본과 조선의 대학생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을 '학병'이라 부른다.
이러한 학병들은 다양한 출신지와 개인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출신 가문이란, 다양하겠으나 분명한 것 하나는, 자식을 대학에 다니게 할 만큼 상류층에 속했음을 가리킴이 아닐 수 없다."(15쪽) 이들은 모두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가 '일본인으로서 전쟁에 참전했던 그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특히 4.19 세대가 그랬다. "순종 한글세대인 이른바 4.19세대는, 그들의 순수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제로상태에서 출발했다고 자부"(67쪽)하면서, 이전 세대의 업적 뿐 아니라 문제의식까지도 단숨에 밀어내버렸다. 작가 및 비평가의 숫적으로, 그들이 생산해내는 원고의 양적으로, 4.19 세대는 압도적이었다. 이승만 정권을 몰아내고 한일협정에 반대하던 새로운 세대는, 책에 인용된 김현의 말마따나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69쪽)은 채 오늘까지 한국의 문학 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은 크게 세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씌여진 책이다. 첫째, 이병주와 선우휘라는 두 명의 작가밖에 보유하지 못한 학병세대의 존재를 되새기며 그들이 한국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야 마땅한지 검토한다. 둘째, 학병세대에 속하는 가상의, 현실의 인물들을 통해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과제를 두고 평생을 싸워온 김윤식 본인의 학문적 궤적을 반추한다. 셋째, '일본 전후 지성계의 천황'인 마루야마 마사오를 학병세대에 속하는 한 사람의 일본 지식인으로 정의한 후, 그의 영향력 하에 전개되어온 일본 및 한국 지성사의 전복을 도모한다.
이 책은 세 번째 주제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 번째 주제는 김윤식의 다른 책인 『내가 읽고 만난 일본』에서 확장된 형태로 존재한다. 문제는 첫 번째 화두다. 일본인으로서 전쟁터에 끌려간 후 학병세대는 각자 나름의 각성을 했고, 해방된 조국에서 또 한 차례의 전쟁을 경험한 후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이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친일파냐 독립군이냐'같은 너무도 단순한 구도에만 매몰되어, 어떤 세대는 그런 고민을 동남아시아나 만주의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군복을 입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함성을 외치면서, 정작 그 역사 속 회색의 시공간을 관통해온 이들의 존재는 지워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망각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만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학병세대는 그 존재 자체가 껄끄러웠기에 이후 세대들에게 문학적으로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었다. 그러한 선택적 망각은 정당한가. '순수한 민족의식'은 얼마나 순수한가. 김윤식은 우리에게 묻는다. "학병세대의 글쓰기를 건너뛰고도 한국문학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