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6

내 글이 처음으로 신문에 실린 날

은 2002년 7월 3일이며, 7월 4일자 신문에 실렸다.

경향신문에서 소위 '인터넷 논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자 'e메일 옴부즈만'이라는 코너를 신설했었는데, 거기에 글을 써서 보냈던 것이다. 1983년생인 나는 당시 만으로 19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적자금문제 심층분석 아쉬워-

공적자금 운용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중간에서 이른바 횡령을 했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공적자금이 회수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공적자금이란 무엇인가. 금융사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입된 돈이다. 댐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르는 시멘트와 같다. 독일에선 4위 은행이 위험했을 뿐인데도 금융공황이라고 했지만 한국에선 1위 은행이 부도 위기에 처했었다. 어찌어찌 하여 구원되긴 했지만 몹시 위험한 순간을 통과했다.

댐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고 급한 김에 성금을 모아 시멘트를 사서 발랐다. 그래서 살아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가 내 시멘트 값 내놓으라고 소리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공적자금의 회수는 내 주머니에 돈이 고스란히 돌아와서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왜 좀 더 폼나게 팔을 저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느냐는 비판과 다를 게 무엇인가.

최근 경향은 서해교전의 비극은 비극이지만 햇볕정책의 기본 논조는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햇볕정책의 기본 정신은 비록 당장 이익을 볼 수는 없더라도 북한 정권이 급속히 붕괴된다면 남한에 더 큰 부담이 되므로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을 돕자는 논리일 터이다. 이를 지지하는 경향신문이라면 공적자금에 대해서도 좀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더욱 깊이있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다.

〈노정태/대학생 bard-of-wind@hanmail.net〉

"[e메일 옴부즈만]서해교전 냉철한 시각 돋보여". 경향신문. 2002년 7월 3일. https://www.khan.co.kr/article/200207211834161

편집부에서 편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내가 쓰는 수법들이 여럿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주제의식 역시, 이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청년 진보 인터넷 논객'이었는데도, 시스템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관점도, 확실히 '진보 진영' 일반과는 결이 다르고.

사람은 달라지고 나아지는 존재이며 그럴 수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딱히 엄청나게 바뀌는 건 또 아닌 듯하다.

나는 'e메일 옴부즈만'에 세 번 독자 투고를 실었고, 이후 잡지사에 취직해 GQ와 VOGUE 같은 훌륭한 잡지에 칼럼을 보내다가, 2008년 경향신문에서 '블로그 속으로'라는 코너를 만들면서 신문 칼럼니스트가 됐다. 만 25세의 일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과거에 썼던 글을 뒤적이다가 접하게 된 최초의 기록을 갈무리하여 공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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