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6

혜민, 혹은 종교인의 (너)무소유에 대하여

젊고 세련되고 교양 있고 세속의 인간들과 잘 어울리는 승려. 조계종 뿐 아니라 사실 전 세계의 불교계가 원하는 아이콘의 모습이긴 했다. '무'소유가 아닌 '너무'소유를 보여주고 있는 혜민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문제는 그 소유가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종교 단체가 많은 부를 쌓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온갖 자선사업, 기부, 교육사업, 약자 돌봄 같은 가치를, 심지어 겉치례로도 동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

혜민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되는 논리 중 '무소유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도 참 이상하게 악용되고 있다. 그런 건 지나친 고행을 하거나, 굶어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학대하고 밥을 안 먹거나, 차 타고 와도 될걸 굳이 걸어와서 보는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극단적 행위자들에게나 할 소리다.

조계종에도 나름의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가진 종단인만큼, 승려의 재산 소유에 대해 이미 분명한 답을 내려놓았다. 당연히, 중은, 제 몫의 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

"조계종은 종단 법령인 ‘승려법’으로 소속 승려가 종단 공익이나 중생 구제 목적 외에 개인 명의로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서유근, "남산뷰·뉴욕뷰 ‘건물주 논란’ 혜민 스님 “크게 반성…중다운 삶 살겠다”", 조선일보, 2020년 12월 3일.

중이라고 해서 돈 벌면 안 되냐, 정당하게 책 써서 판 돈이면 괜찮지 않냐, 이런 소리를 하는 분들을 퍽 많이 접해서 요즘 놀라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중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은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후세계의 위안을 약속하며 현세의 재물과 지위를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공포를 이용하여,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종교다. 따라서 종교를 이용한 돈벌이를 정당하다고 해버리면 세상은 온갖 사이비 잡종교인으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정당하게 번 돈'을 인정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가, 잘못된 영역에서 엉뚱한 사람을 옹호하는 논리로 오용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검찰 문제 단상

나는 대깨문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진보, 심지어 윤석열에게 원한 품은 몇몇 보수 분들까지도 '검찰주의자'라는 말을 욕처럼 쓰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검사가 검찰주의자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떤 법조인을 검사로 만드는 건 그가 검찰에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있다면 당연히 검찰로서의 직업 윤리, 가치, 금기, 도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걸 늘 새기고 지키는 게 왜 욕먹을 일인가?

아,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수사하고 잡아넣어서? 그래서 '검찰주의자'가 나쁜 건가? 검찰총장이 우리편은 봐주고 저쪽편은 조져야 하는데 안 그래서 속상하다 이건가?

한국에서 원리원칙적인 자유주의자 해먹기 정말 힘들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도깨비방망이처럼 쓰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쪽수로 찍어누르는 게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다수가 의사결정권의 많은 부분을 갖되 그럼에도 소수를 존중해야 민주주의다.

게다가 법이란 근본적으로 '다수의 지배'가 성립하지 않고, 성립해서도 안 되는 분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해서 결백한 사람이 범인이 되지는 않는다. 증거와 법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사법 기관이다. 국가를 대신하여 범죄자를 소추하고 기소하여 감옥에 넣는 것이 검사의 일이다. 따라서 검사 역시 '다수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직종이다. 온 국민이 사랑하고 죄 없다고 박박 우겨도, 증거가 있고 해당하는 형법 규정이 있다면, 검사는 최대의 형량을 구형해야 한다.

이 난장판의 큰 부분은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교양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법조인들은 아예 그런 대중 교양 함양에 관심이 없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약간의 재주가 있는 법조인들은 그럴싸한 포우즈 취하고 깨시민 상대로 인기 끌 궁리 뿐이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무식해서 망할 것이다. 기층 민중이 아니라, 상위 중산층 레벨에 속하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악다구니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말이나 갖다붙이면서 더 무식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망할 것이다.

세월호가 국정원에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이유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인용한다. 밑줄 강조는 내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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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12월 4일 오전 10:33 

적당히들 하시면 좋겠습니다.



 왼쪽은 어제 사참위가 배포한 보도자료 가운데 일부입니다. "세월호가... 유일하게 해양사고 발생시 국정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라고 되어 있네요.

 

오른쪽은 세월호와 쌍둥이 배라고 불리던 청해진해운 소속의 오하마나호 내부에 붙어 있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입니다. 1기 특조위가 2015년 3월 26일 현장조사를 나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국정원 인천지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사가 동행 취재를 했고 이걸 촬영하지 않은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뉴스타파도 촬영했고요.

일단 사참위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세월호만이 유일하게 국정원에 보고하는 체계였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정원과 세월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증폭시키려고 한 것이죠.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의혹 제기도 팩트에 기초해야 합니다. 일개 언론인이 이런 원칙을 갖고 있을진대 국가조사기구라면 말할 것도 없죠.

그렇다면, 왜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라는 단 2척에 대해서만 국정원이 보고 계통에 들어 있느냐, 적어도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실 수는 있겠습니다. 근데 이 내용은 참사 초기에 저도 취재했고 1기 특조위도 조사했던 내용입니다. 결론도 같았습니다.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는 제주와 인천을 논스톱으로 운항하는 '유이한' 여객선이었습니다. 국정원은, 2010년대 들어 탈북자들의 국내 유입 경로가 이른바 '동남아 루트'(북한 --> 중국 --> 인도차이나 반도 등 동남아 --(밀항)--> 제주도)로 바뀜에 따라 이 두 척의 선박에 대한 특별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제주도로 밀항해 들어온 탈북자(물론 국정원의 목적은 '탈북 위장 간첩 검거'였죠)들이 수도권으로 한방에 올라올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세월호와 오하마나호에는 탈북자 관련 사전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승선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 타고 가면 식당 아주머니들이 밤참이며 술안주를 만들어 바치기도 했죠.

앞서 말씀드렸듯 이런 내용은 1기 특조위의 조사에서도 수집된 정보입니다. 1기 특조위 자료를 모두 이관받은 사참위도 모르고 있을 리 없는 내용이고요. 

사참위 여러분, 제발 팩트에 충실한 발표만 하시고, 본인들 시나리오에 불리한 정보라고 모른 척 넘어가는 식으로 일하지는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학자금 대출 탕감은 공정한 정책인가

 미국 진보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 학자금 대출 때문에 젊은이들이 빚더미 위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국가가 나서서 탕감해줘야 한다!'

별 고민 없이 미국 진보의 레파토리를 수입하곤 하는 국내 진보 계열에서도 많이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정의로운 소리냐, 이런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밖에 안 되는데, 대체로 상류층과 어퍼 미들이죠. 그걸 국가가 세금으로 갚아준다? 좀 그렇죠?

앞장서서 '브라만 좌파'라는 용어를 만든 피케티가 그런 소리 하는 것도 웃기다는 지적. 학자금 대출 탕감은 '브라만 구제금융'(brahman bailout)이라는 신랄한 표현을 적어둘만 합니다.

 Zaid Jilani, Canceling Student Debt Would Be a ‘Brahmin Bailout’, Wall Street Journal, 2020년 11월 29일.

조선 후기, 정조 시대의 수학 실력

정조를 '계몽군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 진실.

  1. 임금에게 토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2. 나라가 무식해져서 수학을 못해서 측량을 못했다.
오히려 조선 전기보다 국가 수준과 국력이 떨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계몽군주 정조' 판타지는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정조실록>이나 <일성록>, <홍재전서>를 보면 정조는 토지 문제를 환히 다 알고 있어요. 그 역시 깊은 고민을 했는데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려면 현재 토지소유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지 않겠어요. 문제는 그 저항을 압도할 권력적 강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고려가 전혀 보이지 않지요. 또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지요. 토지 제도에 손을 대려면 현재 토지 보유 상황을 측량해야 하잖아요. 조선 전기에는 그걸 했어요. 세종 때는 전국적으로 다 했어요. 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니까 할 수가 없어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비용 문제입니다. 나가서 토지를 측정하는 관리를 중앙에서 파견하려면 돈이 드는데 재정이 부족하니까 지방에 비용을 물려야 하는데 이것 때문에 파산이 속출한다는 거예요. 관리 말먹이며 점심 값이며. 그래서 토지 측량 하지 말라는 상소가 쏟아지니까 못 한 거예요.

둘째는 수학을 몰랐어요. 토지제도를 바꾸려면 토지를 정확히 측량해야 하고 그걸 하려면 수학을 알아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정조가 결국 하지 말라고 해요.

"[미니북] 나는 왜 조선의 여성을 파고들었던가", 북클럽 오리진, 2017년 1월 25일. https://1boon.kakao.com/bookclub/minibook2017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