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5

민주당에 묻는다…코미디언은 대통령 되면 안 되는가?

민주당에 묻는다…코미디언은 대통령 되면 안 되는가?

[노정태의 뷰파인더] 젤렌스키 조롱은 反민주적이다

● ‘젤렌스키 무능론’은 與 당론?
● 민주주의, ‘부적격자에 자격주는’ 역사
● 프랑스 마크롱도 ‘초보 정치인’이었다
● 나라 리셋 하고 싶다는 대중적 열망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 뉴시스]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나토(NATO)가 가입을 해주려 하지 않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월 25TV토론에서 한 말이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2월 28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여러 미숙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재명을 두둔하고 나섰다.

러시아를 탓하는 척하면서 우크라이나에도 슬쩍 책임을 돌리고, 젤렌스키에게 ‘정치 경력 없는 초보 무능 대통령’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박용진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2월 25일 광주방송에 출연해 이재명과 동일한 내용의 발언을 한 바 있으니 말이다. “잠깐 인기 있고, 잠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고 나라의 운영을 맡길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마치 당론처럼 밀어붙이는 ‘젤렌스키 무능론’은 왜 등장한 것일까? 속내는 박용진의 인터뷰를 통해 의문의 여지없이 해소된다.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외적의 도발을 불러일으키는 무능한 초보 정치인’ 딱지를 붙이기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견강부회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 최근 방송 토론 보시면 건성건성 대답해요. (중략) 이 중요한 국가 경제 문제와 안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맡길 수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호렌카에서 3월 2일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일부 뼈대만 남은 집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남부 헤르손을 장악한 러시아는 인근 마리우폴, 키이우, 동부 하르키우 등에 전방위적 공격을 퍼부었다. [AP 뉴시스]
‘인민의 일꾼’에서 대통령직까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젤렌스키는 ‘인민의 일꾼’이라는 정치 풍자 시트콤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같은 이름의 정당을 창당해 단번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라는 말이 틀린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젤렌스키에 빗대 윤석열을 폄하하려 하는 이재명과 민주당의 공격은 퍽 부당하다. 타국민이 겪는 전쟁과 고통을 국내 정쟁에 활용하는 비윤리적 면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다. 국가,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리더십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철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노예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고대 그리스를 제외하고 나면, 민주주의의 역사란 곧 ‘부적격자에게 자격을 주는’ 역사다. 참정권과 투표권이 지속적으로 확대돼온 궤적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소리다.

민주주의가 ‘외래 문물’로 수입된 한국에서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소위 ‘민주주의 선진국’일수록 소수자들은 정치적 참정권을 뒤늦게, 순차적으로 획득했다. 처음에는 유산계급 남자에게만 참정권이 있었다. 그러다 유색인종 유산계급 남자, 무산계급 남자, 유산계급 여자, 무산계급 여자 순서로 참정권을 획득하고 온전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됐다.

선거에 나온 다른 이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와, 그 선거에 출마해서 다른 이의 표를 받아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권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러니 ‘아니, 코미디언 출신이 대통령이 된다고? 저 나라 사람들은 제정신인가?’ 따위 반응을 하는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를 구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일종의 사농공상 내지는 카스트 제도를 내면에 품고 있다고 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범죄를 저질러서 참정권이 제한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선거에 나오면 안 될 사람’은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누군가 선거에 나왔다면 그 사람을 지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런 선택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며 그 또한 정치적 자유의 일부다.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정치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미리 구분 짓고 웃음거리로 삼아 정쟁의 도구로 쓰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

트럼프, 오바마 그리고 마크롱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자격’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권력을 잡는 일은 드물지 않게 벌어져 왔다. 21세기의 인상적인 선거를 놓고 보자면 오히려 최근의 역사는 ‘자격 있어 보이는’ 정치인들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트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대통령직을 역임한 도널드 트럼프만 해도 그렇다. 한국인 중 상당수는 트럼프라는 이름을 영화 ‘나홀로 집에 2’에 깜짝 출연한 부동산 사업가 정도로만 기억했다. 그래서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이변이라고 보도하는 해외 언론들을 보면서, 그게 어느 정도의 이변인지 제대로 실감하는 이를 찾아보기 쉽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서 트럼프는 ‘나홀로 집에 2’가 아니라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인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13년이나 꾸준히 방영된 인기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이렇다.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회사 중 하나의 경영자가 되기 위해 16에서 18명의 지원자가 접수한다. 트럼프는 그들을 어르고 달래다가도 골탕 먹이고, 속이고, 혼내고, 해고한다. “유 아 파이어드!”(You are fired: 당신은 해고야!)가 ‘어프렌티스’를 상징하는 명대사인 것은 그래서다. 백만장자 트럼프가 ‘노답’, ‘고구마’인 지원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고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어프렌티스’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가 만들어낸 진정한 이변은 대선이 아니라 공화당 경선이다. 조직도 경험도 없는 트럼프가 쟁쟁한, ‘자격’ 있는 정치인들을 제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트럼프 본인도 과연 그 정도 성공을 예상했을 지에 대해 정치 전문가와 기자마다 의견이 갈릴 정도다.

그러나 중요한 건 대중의 마음이다. 미국인,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은 워싱턴 DC에 모여 있는 기성 정치인들, ‘자격’이 충분한 그들을 싸잡아서 싫어했다. 그 모든 이들을 향해 ‘유 아 파이어드!’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 열망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분노의 열풍은 트럼프만의 독창적인 산물이 아니다. 그의 선임자인 버락 오바마 역시 ‘기득권 대 정치 신인’의 구도를 타고 순식간에 권력을 잡은 케이스다. 물론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고, 그 후 시카고에서 인권변호사 겸 헌법학 교수로 일해 왔다.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이력은 ‘중앙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다지 존중받을만한 것이 아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뿐 아니라, 경선 과정에서 나가떨어진 수많은 후보 중 그 누구도 오바마에 비해 경험과 ‘자격’ 면에서 부족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경험도 조직도 없는 오바마를 택했다. 그가 잘 생긴 젊은 남자인 점도 영향을 미쳤겠으나, 근본적인 동력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그것과 동일했다. ‘기성 정치권’의 때가 묻지 않은 누군가를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앉혀, 나라 전체를 리셋하고 싶다는 대중적 열망 말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역시 비슷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국립행정원(ENA) 졸업 후 경제부처 공무원으로 일하다,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경력을 쌓고, 프랑수와 올랑드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부실장과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 모든 이력을 통틀어 마크롱은 자기 이름을 걸고 선거에 나간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16년 8월 장관직을 내던지고 ‘전진하는 공화국’이라는 정당을 만들더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이 그가 경험한 최초의 선거다. 마크롱은 젤렌스키와 다를 바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능력 있는 자’가 아닌 열망을 조직하는 자
이렇듯 민주국가의 선거는 ‘자격 있는 자’, ‘능력 있는 자’만을 선호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특정 시점에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열망을 잘 조직하고 반영하는 이가 승리를 거두게 돼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사회 안정을 추구하며 계층과 계급의 격차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편을 선호하는 정치 세력, 즉 보수 진영일수록 선거에 부정적인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은 진보 진영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선거 회의론자 중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몇 명의 후보를 선거로 뽑은 후, 최종 결과는 추첨에 의해 결정하는 추첨제 민주주의를 제안한 바 있다. 어차피 최종 후보에 속할 정도면 ‘자격’은 충분한 사람일 테니 극한의 대립과 정쟁을 벌이지 말고 최종 승자의 결정은 운에 맡기자는 내용이다. ‘일본 정신의 기원’에서 고진은 추첨제를 제안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성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실현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권력욕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나 제3장 투표와 제비뽑기에서도 썼지만, 인간성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한 인간성이 나올 여지가 없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176쪽)

퍽 나이브한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추첨제 민주주의를 진지한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는 정치력, 경제력, 기타 여러 요소에 의해 참여자를 제한하기에 완벽하게 민주적일 수 없다는 취지다.

과연 그런 비판이 옳은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추첨제가 선거보다 나은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선거마저도 필요 없다’, ‘적당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추첨하면 된다’ 이런 주장까지 해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선거는 유권자의 열망을 조직하여 국가적 분위기와 정책의 큰 방향을 결정짓는 행사다. 민주주의 선거에 '부적격자'는 없다. 젤렌스키 같은 배우 겸 TV 프로그램 제작자건, 가라타니 고진 같은 문학평론가건, 누구라도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젤렌스키를 조롱거리로 삼아 국내 정치에 끼워 맞추려 들었던 이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아무튼, 주말] 젤렌스키가 초보 대통령? 한국 정치는 분통만 터지는 저질 삼류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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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시사哲]

영화 ‘킹스스피치’의 청중 효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청중 비용’

일러스트=유현호
 

1925년, 영국. 조지 5세의 둘째 아들 버티(콜린 퍼스)는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다. 아내 엘리자베스(헬레나 보넘 카터)는 남편을 위해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러그(제프리 러시)를 찾아냈다. 라이오넬은 공인 자격 없는 아마추어 치료사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것은 몸이 아닌 마음 문제인 것이다.

버티는 네 살 무렵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기대만 크고 강압적인 아버지 조지 5세와, 왕족의 책임 따위 무시한 채 자유분방하게 살면서 동생을 쪼아대는 형 데이비드에게 억눌리면서 생긴 심인성 말더듬증이다. 조지 5세는 장성하여 두 딸까지 두고도 여전히 말을 더듬는 작은아들을 보며 탄식한다. “과거의 왕은 옷만 잘 입고 말만 잘 타면 그만이었어. 지금은 집에 있는 대중의 환심을 끌어내야만 해. 이제 우리 왕족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우리는 배우가 된 거야.”

바다 건너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아가는 가운데 조지 5세는 세상을 뜬다. 그 뒤를 이어 에드워드 8세로 왕위에 오른 형 데이비드는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여성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해버린다. 버티는 형의 자리를 이어받아 조지 6세가 되어 마이크 앞에 서야 한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내용이다.

버티의 문제는 무엇일까? 라이오넬과 버티의 첫 수업. 라이오넬은 버티가 헤드폰을 쓰게 한 후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주면서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대목을 낭독하게 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축음기에 녹음된 버티의 목소리는 유창했던 것이다. 단 한마디도 더듬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청중 효과(audience effect)가 부정적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중 효과란 말 그대로 청중의 존재 때문에 발생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어떤 운동선수들은 관객의 환호성이 울려 퍼질 때 최고 기량을 발휘하는 반면, 어떤 선수는 연습할 때는 펄펄 날지만 관객이 들어오는 실제 시합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버티는 누군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을 느껴 말을 더듬는다.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심리 현상이다.

이 개념을 국제정치학 영역으로 확장해보면 어떨까? 국제정치학의 거대 담론 중 하나인 ‘민주 평화론’을 떠올려 보자.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 여론에 따라 움직이므로, 적어도 잘 발전한 민주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고전적 이론이다. 1994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제임스 피어론 교수는 이마누엘 칸트로 거슬러 올라가는 민주 평화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청중 효과를 연상케 하는 ‘청중 비용(audience cost)’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전쟁을 일으켜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 국민에게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민주국가가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민이 정치권의 청중이 되어 부정적 피드백을 제공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국가가 절대 전쟁을 하지 않거나 전쟁을 무조건 피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들 스스로가 외국의 침략에 맞서거나, 최악의 경우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한다면, 설령 지도자가 평화를 원한다 해도 전쟁 여론을 억누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압력 때문이다.

요컨대 민주국가는 독재국가에 비해 청중 혹은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바가 많고,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정치인이 국민 여론을 거스르고자 한다면 정치적으로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대신 국민이 원하는 방향의 정책이나 전쟁이라면 독재국가보다 더 전폭적인 지지와 희생을 얻어낼 수 있다.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지불해야 하는 높은 청중 비용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따라서 민주국가는 독재국가처럼 적국을 기만하여 기습 전쟁을 벌이기 어렵지만, 공개적으로 전쟁에 나서면 독재국가보다 더 강한 힘을 보여줄 수도 있다.

<킹스 스피치>로 돌아가 보자. 조지 6세가 왕위에 오른 후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다. 조지 6세는 라이오넬의 도움을 받아 더듬거리면서도 성공적으로 전쟁 연설을 해낸다. 입헌군주정의 군주가 치러야 할 높은 청중 비용이다. 그와 함께 전쟁을 이끈 처칠 총리도 마찬가지다. 처칠은 영국인들에게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식의 달콤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라며 국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는 정직해야 한다. 높은 청중 비용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하나로 모아 국난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2월 러시아는 기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것이라고 보았다. 단, 젤렌스키 대통령만은 예외였다. 그는 소셜미디어(SNS)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수도 키이우(키예프) 사수 의지를 드높였다. 미국에서 항공편을 제시하자 ‘탈출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단호히 거절하는 모습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전의가 불타올랐다. 작은 승전보가 쌓이면서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푸틴과 러시아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점점 커지는 전쟁의 청중 비용이 우크라이나를 북돋고 러시아를 억누르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이고도 감동적인 장면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지난 2월 25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TV 토론에서 ‘초보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벌어졌다’는 상식 이하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자 민주당 측 인사들은 마치 당론으로 정하기라도 한듯 젤렌스키를 ‘코미디언 대통령’이라고 조롱하며 러시아를 두둔하거나 양비론적으로 발을 빼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외국인들 보기에 너무도 부끄럽다. 우크라이나는 코미디언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우리는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코미디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 정치는 웃기지도 않고 분통만 터지는 저질 삼류 코미디다. 거짓말로 호객하고 자리에 앉으면 정체불명 약을 파는 약장수 광대들을 대체 어찌해야 할까. 3월 4일과 5일,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일이다. 9일에는 본투표가 있다. ‘청중’인 국민이 ‘주인’ 대접을 받을 몇 안 되는 기회,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

2022-03-04

바가바드 기타(1)

얼마 전 반야심경의 현대어 번역 어쩌구 하는 글을 썼는데, 그 주제가 머릿속에 남아서, 이것저것 틈틈이 좀 더 찾아보다가, 며칠 전 거리에서 '샨티'라는 이름의 인도 식당을 보았고, 엘리엇의 '황무지'의 마지막 줄인 '샨티 샨티 샨티'를 중얼거리다가, 최초의 핵실험이 터져나올 때 오펜하이머가 주절거렸던 '나는 이제 세계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도다'라는 바가바드 기타의 대목을 연상했으며, 그리하여 바가바드 기타를 읽었다.

바가바드 기타를 읽으면 니체를 굳이 읽을 필요조차 없다. 니체 철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문학적으로도 더 탁월하기 때문이다.

바가바드 기타 및 여타 인도 철학을 애호하고 옹호하는 이들은, 그토록 아름답고 강렬한 텍스트가 결국 카스트 제도를 옹호하고,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며, '너희 크샤트리아들은 우리 브라만이 시키는대로 가서 쌈박질이나 해라'는 취지로 전락하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을 도외시한다. 이것은 니체 철학을 애호하는 자들과도 마찬가지다(니체 철학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애매하고 또 우스꽝스러워지는지에 대해서는 러셀이 <서양철학사>에서 신랄하게 비웃은 바 있다).

하지만 실로 강렬한 텍스트인 관계로, 머리에서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 내지는 '보다 나은 계급'의 일원이라는 점을 당연하게 여기는 서구의 리버럴 계층에게 바가바드 기타는 더욱,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을 테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필립 글래스의 사티야그라하 무대 영상을 세 번째 돌려보다가, 이제 한 번쯤 글로 털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타자를 쳤다.


 

2022-02-27

우크라이나 전쟁: 젊깨문과 늙깨문

목수정을 비롯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발언. 이들은 러시아 선전선동을 거의 그대로 주워섬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 더 나아가 미국이 유인, 조장, 방조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군사행위'를 하는 건 맞지만 '적대행위'는 미국과 젤렌스키 내지는 우크라이나의 친 서방 세력이 먼저 했다는 논리다.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듣고 많은 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특히, 유시민이 쓴 이러저러한 책들을 무슨 대단한 지혜의 교과서인 양 달달 외우고 큰, 더불어민주당 코어 지지층 중 상대적으로 젊은 30대 말-40대 초반 세대가 그렇다.

편의상 그 세대를 '젊깨문', 그보다 나이 많은 40대 중반-50대까지를 '늙깨문'이라고 해보자. 젊깨문들은 나름 서구적 가치에 친숙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개방성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젊고 쿨하지만 저들은 늙고 촌스럽다'는 전제를 깔고,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세력을 비토한다.

젊깨문들은 늙깨문(목수정을 비롯 대놓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나토 욕하는 바로 그 세대)들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들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지는 않다. 후진국 세대인 늙깨문과 달리 나름 중진국 세대이기도 하고, 그들이 금과옥조로 섬기는 정치적 올바름과 글로벌한 가치 등을 놓고 볼 때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깨문들은 현재 자아분열에 빠진 상태다. 늙깨문들이 속속들이 친러주의, 친푸틴, 침략전쟁 옹호 발언을 이 시점에, 어떻게든 자신의 세계관과 기존의 인식을 통합해야 하는 난관에 처해 있다.

과연 그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젊깨문들 역시 깨문버스 특유의 '선한 우리편과 악한 저들의 대결' 같은 원시적 대립 구도를 세계관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을 벌여도, 젊깨문들은 그 러시아를 옹호하는 늙깨문을 '우리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젊깨문들은 늙깨문들의 온갖 망언을 못 본 척 하고 지나가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바로 그 젊깨문 세대의 일원으로서 깊은 탄식을 담아서 하는 소리다.

젊깨문은 '머리'로는 늙깨문에게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가슴'으로는 그들을 따라가고 만다. 최근 돋보이는 한 사람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자. 2019년 2월, 나는 이런 글을 썼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에 낯익은 얼굴이 한 분 보인다. 안희정의 부인 민주원 씨가 '내 남편은 미투가 아니다 불륜이다'라고 하자 그것을 열심히 SNS로 옹호하시던 최민희 전 의원. 현재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현). http://pcpp.go.kr/info/informati

저 최민희가 바로 우리가 아는 그 최민희다. <황금빛 똥을 싸는 아이>의 저자인, 말하자면 출세한 안아키. '극문 똥파리' 빼면 다 뭉치는 분위기라고 말한 이재명 선대위 미디어특보단장.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구한말 무능부패한 왕과 조정이 일제침략을 못막았듯 준비안된 우크라이나대통령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이 희생되고 있다"고 말한 바로 그 최민희.

젊깨문들은 이럴 때 혼란에 빠진다. 최민희가 입으로 황금빛 똥을 싸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최민희는 이재명 캠프에 있고, 이재명은 젊깨문들의 머릿속에 '절대 타도해야 할 악'으로 설정된 국민의힘과 그 후보인 윤석열과 맞서고 있다. 일종의 시스템 오류다.

그래서 젊깨문들은 어떻게 할까? 몇 가지 현실도피 기제가 있다. 갑자기 뭐 먹는 사진이나 음악 감상문 같은 걸 올린다거나, 다짜고자 맥락없이 #PrayForUkraina 같은 해시태그를 띡 붙인다거나, 김어준 따위가 생산해 퍼뜨리는 윤석열 관련 흑색선전들을 열심히 퍼다나르며 '그래도 민주당은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고 자기세뇌를 강화한다거나...

그들이 좋아하고 지지하며 따른다는 가치를 민주당이 모두 배신하고 있지만, 젊깨문들은 늙깨문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못한다. 가스라이팅의 희생자여서일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젊깨문들은 늙깨문들에게 가치 판단의 기준을 위탁하고, 알량한 소비 문화에 안주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세대의 일원이며,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2022-02-26

원화가 기축통화? 이재명은 뭘 희생할 텐가

원화가 기축통화? 이재명은 뭘 희생할 텐가

[노정태의 뷰파인더] 美 달러 패권은 ‘공짜’가 아니다

● “내가 얘기한 게 아니라 전경련이…”
1976년 시작된 ‘페트로달러’ 시스템
● 중동 산유국 보호 美 군사력이 기반
● 결국 제국, 패권국의 화폐이거늘


2월 21TV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언하며 ‘기축통화 논쟁’이 불거졌다. [채널A 화면 캡처]
“한국이 기축통화국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월 21일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한 말이다. 국가 채무를 더 높이지 말아야 한다는 다른 후보들의 견해에 맞서는 본인의 논거로서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발언의 파장은 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경제학자이기도 한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역대급 똥볼”이라고 질타한 것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비판과 조롱이 쏟아졌다. 상황이 우호적으로 돌아가지 않자 이재명은 2월 23일 “내가 얘기한 게 아니라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얼마 전 전경련은 보도자료에서 ‘원화가 IMF 특별인출권(SDR)에 편입될 근거’를 언급했고 본인은 그것을 인용했을 뿐이라는 소리다. 애석하게도 이재명의 인용은 전경련의 본의와는 차이가 있다.

‘기축통화국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발언을 옹호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탓도 없지 않다. 이재명의 지지자 사이에서는 ‘기축통화는 아니지만 한국 돈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보인다. 해외여행을 갔을 때 한국 돈을 냈다, 호텔에서 팁으로 한국 돈을 주고 나왔는데 좋아하더라, 같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우리 돈의 힘이 세진 것이 맞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도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취지다.

대한민국은 2022년 현재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메모리 반도체와 LNG선으로 대표되는 몇 개의 독보적 수출 품목이 있고, 자동차, 유조선, 기타 공업생산품 역시 준수한 대외경쟁력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확장된 경제력과 인터넷의 힘을 타고 한국의 문화 상품이 해외에서 널리 사랑받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앞으로도 될 가능성은 없다. 왜일까?

국제 거래에서 원화의 위상
현실 속에서 기축통화란 결국 패권국가의 돈을 의미한다. 로마 제국의 디나르, 오늘날의 미국 달러가 이에 해당한다. [동아DB]
기축통화란 무엇인가. 사전적 개념에 따르면, 외환 시장에서 B라는 나라의 화폐와 C라는 나라의 화폐를 거래할 때 기준이 되는 A라는 화폐, 그것이 기축통화다. 우리가 한국의 원화를 일본의 엔화로 교환한다고 해보자. 우리의 눈에 보이는 환율표에는 한국 돈 얼마로 일본 돈 얼마를 살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실제로는 원화 대 달러, 엔화 대 달러의 교환비율이 먼저 존재한다. 달러를 매개로 원화의 가치, 엔화의 가치를 평가한 후, 비로소 원화 대 엔화의 환율이 나온다. 이 기준에 따를 때 한국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일상적으로는 ‘국제 거래에서 많이 쓰이는 화폐’라는 뜻으로 기축통화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개념 정의를 따르더라도 원화는 기축통화로 인정될 수 없다. 국제 거래에서 원화의 위상은 우리의 수출이나 GDP(국내총생산) 규모보다 작기 때문이다. 전 세계 외환거래액 비중을 보면 그렇다. 1월 현재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미국의 달러가 39.92%로 1위, 유로가 36.56%로 2위다. 1위와 2위 이후로는 격차가 한없이 벌어진다. 영국의 파운드는 3위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고작 6.3%에 지나지 않는다. 원화는 이 순위표에서 2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우리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며 앞으로도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경제학’의 눈으로 바라본 설명에 불과하다. 노골적인 힘의 정치가 지배하는 국제 사회에서, 경제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현실 속에서 기축통화란 결국 패권국가의 돈을 의미한다. 어떤 시대를 지배하는 국가 혹은 제국의 화폐는 그 영향권 속에서 보편적인 가치 저장 및 교환의 수단으로 인정받는다. 로마 제국의 디나르부터 오늘날의 미국 달러까지 변치 않는 냉정한 현실이다.

게다가 달러는 다른 제국의 기축통화와는 다른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 가치를 귀금속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로마의 디나르는 기본적으로 은화였다. 로마가 강력하던 시절에는 디나르의 은 함량이 높고 정품성을 보장받기 쉬웠기 때문에 로마 제국 바깥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로마의 힘이 기울어지면서 점점 은 함유도가 떨어지고 로마의 해외 구매력 역시 꺾이는 악순환이 펼쳐졌다. 달러 역시 연방준비제도와 포트 녹스에 쌓여 있는 금괴를 통해 가치를 최종적으로 담보했으나 베트남 전쟁 비용 및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로 인해 1971년 금태환을 중단했다.

석유를 확보하고 지킬 군사력
그렇다면 대체 외국인들은 무엇을 믿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1970년대, 세상에는 금보다 더 소중한 재화가 하나 있었다. 플라스틱의 원료이며, 자동차, 배, 비행기 등 거의 모든 교통수단의 연료인데다가, 심지어 비료를 생산할 때도 필요한 ‘검은 황금’. 석유가 바로 그것이다. 석유를 갖지 못한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은 석유를 확보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반면 미국은 자국 영토 내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다. 그 위에 중동,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석유의 지배력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1976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사우디 왕가와 협약을 맺는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전을 보장하며 무기를 제공하고, 대신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오직 달러로만 거래하기로 약조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뒤를 이어 석유 수출국 기구(OPEC)에 속한 나라들도 달러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달러는 금이 아니라 원유로 태환되는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랐다. 이른바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전 세계의 원유 거래는 오직 달러로만 이루어진다.

몇몇 나라들은 페트로달러 시스템으로부터 이탈을 꾀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런 나라들의 말로는 썩 좋지 않았다. 2000년 9월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산 원유 결제 수단을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겠다고 했는데,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 정권은 몰락하고 말았다. 리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디나르 금화’라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원유를 거래하자고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뒤집히고 카다피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국이 그런 이유로 전쟁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지나친 음모론적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미국의 기축통화국 지위는 페트로달러 시스템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또한 미국의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중동 산유국을 군사적으로 보호하거나 묶어놓을 수 있는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이 갖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힘이란 미국 달러로만 살 수 있는 석유의 힘, 석유를 확보하고 지킬 수 있는 미국의 군사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을 대가로 유지하다
이재명의 ‘기축통화국’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그래서다. 재정 적자를 늘려 당장 복지 예산으로 뿌리자는 취지로 기축통화국 발언을 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이재명과 그가 주창했던 기본소득 등에 동의하는 이들은 기축통화를 그저 ‘맘 놓고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돈’, 일종의 ‘재정 화수분’으로 여기는 듯하다. 이재명에게 기축통화국이란 ‘공짜로 돈 찍어내는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살펴보았듯 기축통화란 결국 제국, 패권국의 화폐다. 패권국이 패권국의 지위에 오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에서 벌어진 두 개의 전쟁을 모두 수행하며 승리를 거뒀고, 자연스럽게 패권국의 지위에 올랐다. 미국이 패권국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결국 무승부로 끝나버린 6‧25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베트남에서는 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폭탄을 퍼부으면서도 굴욕적 퇴각을 맛보아야 했다.

지금도 미국은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평화 유지’를 위해 군대를 보내고, 여러 비밀스러운 작전을 통해 타국의 정치에 개입하며, 대내외적인 비판과 비난을 받는다. 미국의 달러 패권은 그런 면에서 결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미군, 군대에서 젊음을 바치며 때로는 부상당하고 목숨을 잃는 군인들의 희생과 헌신, 그것을 대가로 얻어냈고 지금껏 유지하는 것이다.

기축통화국이 되면 한국 돈의 대외적 신뢰도가 높아지니 마치 ‘공짜 돈’이 생긴 것처럼 재정 부채 비율을 100%까지 높일 수 있다는 식으로 들리는 이재명의 주장은 너무도 가벼운 소리다. 패권국의 화폐, 기축통화는 그런 게 아니다. 패권을 잡고 지키기 위해서는 자국민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적대국 혹은 제3국의 피해 역시 불가피하게 수반된다.

입만 열면 반미 자주를 외치며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너무도 철부지 같은 소리다. 달러에 대한 세계의 신뢰는 결국 달러로만 구입할 수 있는 석유에 대한 신뢰다. 석유를 틀어쥔 패권에 도전하지 않는 한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질서 안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암묵적 협의의 산물이다.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된다는 건, 미국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갖고, 미국의 패권을 빼앗아온 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특히 진보적 가치관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썩 달가운 미래도 아닐 것이다.

상업적으로 번영하는 국제 체제
이 글의 목적은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질서와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치 않게 패권국이 된 미국은 전 세계의 바다를 점령했으면서도 ‘사용료’를 받는 대신 각국이 자유롭게 무역하고 상업적으로 번영하는 국제 체제를 만들었다. 그 시스템 속에서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이것은 우리가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패권과 질서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도덕적으로 결백하다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같은 나라였지만 소련의 영향 하에 공산권으로 편입된 북한의 엇갈린 운명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듯, 그 시점에 주어진 다른 선택지에 비하면 분명히 낫다. 우리는 그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