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2

아름다운 작별은 없다… 죽음의 존엄마저 농락한 K방역

아름다운 작별은 없다… 죽음의 존엄마저 농락한 K방역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대선 직전 방역 고삐 푼 文정권
장례대란으로 고통받는 유족들

첼리스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악단 해산으로 갑자기 실업자가 됐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집이 있으니, 생활비가 저렴한 시골에서 어찌어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향인 야마가타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자리를 구하던 다이고의 눈에 구인 광고 하나가 들어왔다. 연령 제한 없음, 고수익 보장, 실질 노동 시간 짧음. 게다가 정규직이다. 평생 음악만 하고 살았던 그는 이렇게 좋은 말만 쓰여 있는 일자리가 무슨 뜻인지 모른 채 ‘NK 에이전트’의 문을 두드린다. ‘여행의 도우미’라던 그 회사의 일은 납관, 고인의 몸을 닦고 잘 단장하는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장례는 매우 다르다. 한 사람이 생을 마치고 떠나는 자리에 다들 모여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마시며 고인을 추억하는 것이 한국의 장례 문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장례식을 ‘축제’로 여겨온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장례를 치르는 전문 인력을 사회적으로 천시하지 않았다. 오늘날은 국가에서 공인하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로 존중받는다.

일러스트=유현호

반면 일본은 고인을 잘 씻기고 곱게 단장하여 유족과 대면하는 절차를 갖는다. 슬픔과 엄숙이 지배하는 장례식의 분위기 때문인지, 고인을 염하고 화장하는 이들을 천시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내(히로스에 료코)가 질겁하고 사장인 이쿠에이(야마자키 쓰토무)에게 매일 혼나지만, 다이고는 얼결에 갖게 된 직업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배워나간다. 한 차례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던 영화 <굿’바이: Good&Bye>의 내용이다.

우리는 삶의 존엄과 죽음의 존엄을 함께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죽음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존엄사와 안락사로 나누어진다. 존엄사는 지난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9대4로 첫 허용 판결이 나온 후, 10여 년의 논의를 거쳐 2018년부터 법에 따라 시행 중이다. 본인과 가족의 의사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약하면 심폐소생술, 항암제, 수혈 등 몇 종의 제한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소극적인 개념이다.

반면 안락사(Euthanasia)는 보다 적극적이다. 환자의 소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긴 하나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생을 마감할 권리, 그 또한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이라는 철학적 논의를 바닥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프랑스의 배우 알랭 들롱은 안락사 결정을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후 투병 중일 뿐이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본인의 결정하에 세상을 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존엄사와 안락사의 논의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존엄사는 현대 의학의 연명 치료가 고도로 발달한 탓에 생긴 부수적 현상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효와 가족을 중시하던 한국에서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적극적 안락사는 다르다. ‘생명’이 지속되면서 내가 생각하는 아름답고 행복하며 바람직한 ‘삶’을 망가뜨릴 때, ‘삶’을 위해 ‘생명’을 포기할 권리가 개인에게 있다는 발상의 산물이다. 자유와 선택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에 둔다.

안락사 옹호론은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 등 많은 이성주의자들이 소극적인 존엄사를 넘어 적극적 안락사를 옹호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의 허용은 결국 의사의 도움을 받아 고통 없이 자살할 권리를 주는 셈이다. 의사에게 죽음의 서비스를 제공할 권리를 허락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수천 년 넘게 유지해온 가장 기본적인 도덕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다. 나의 존엄한 삶을 위해 내 생명을 스스로 빼앗는 것은 정당한가? 자살을 할 때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한다면, 사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 충만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 그 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좋은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추로서 우리는 ‘좋은 죽음’을 열망한다는 것. 모든 철학과 윤리의 고민이 결국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로 향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문재인 정권은 공교롭게도 대선을 앞두고 방역의 고삐를 풀어버렸다. 고작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와도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그들이, 이제는 수십만의 확진자와 함께 매일 수백 명씩 사망자가 쏟아져도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4월 2일부로 현행 거리 두기를 중단할 예정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K방역 홍보 대신 백신 확보부터 했어야 한다. 치료제를 충분히 구비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은 최대한 아름답게 유족과 작별할 수 있도록 대비했어야 마땅하다. 현실은 정반대다. 코로나 사망자를 화장 대신 매장해도 된다고 규칙을 바꿔놓고 2개월간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이는 3일장이 6일장, 7일장으로 늘어나 고통받은 유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망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도 원통하다. 자녀들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는 작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 사망자의 대부분은 고령층이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었거나 잿더미가 된 조국에서 맨주먹으로 태어난 이들이다. 황무지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이루어낸 주역들이, 생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작별을 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대체 무슨 권리로 이러는가. 왜 마지막까지 국민의 삶의 존엄을, 심지어 죽음의 존엄까지 농락하는가.

<굿바이>로 돌아와 보자. 익숙지 않은 일을 배우며 힘들어하던 다이고는 어느 날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를 보고 말한다. “죽기 위해 강을 거스르다니 서글프네요. 어차피 죽을 거면 편하게 죽지.” 어리석은 질문에 이쿠에이가 던지는 현명한 답. “돌아가고 싶겠지, 고향으로!” 다이고의 인생도 마찬가지. 고향으로 돌아와 납관이라는 일본 사회가 천시하는 일을 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되찾았다. 태어난 곳에서 미래의 씨앗을 뿌리고 숨을 거두는 삶과 죽음의 존엄을 회복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22-03-26

<러시아 아방가르드>전: 정신이 물질을 이기지 못할 때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은 슬픈 전시다. 푸틴이 전쟁을 시작한 후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 4월 중순으로 예정된 전시를 앞당겨 종료하네 마네 하는 맥락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차원이 아닌 내부 맥락만 놓고 보더라도,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은 서글퍼지는 전시다. 물질적 영역, 다시 말해 현실에서의 공허와 빈곤을 정신으로 승화시켜 극복하고자 하던 이들의 발버둥은, 결국 초라한 물질적 형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 유명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보자. 도판이나 화면상의 이미지로 접할 때와 달리, 실물을 보면 인상이 완전히 다르다. 보존 상태가 너무 나쁘기도 하고, 이전에 '물질'적 측면에서 너무 작품이 약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미술 작품은 실물을 볼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좋은 의미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유화가 그렇다.

그러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그 역사적 의의나 화면상의 이미지에 익숙한 채로 들어가 실물을 보면 실망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물감, 캔버스, 기타 여러 측면에서, 작품을 통해 '초라함'을 느끼고야 말았던 것이다.

물질적 에너지와 풍요의 과잉이 낳은 정신주의가 아니라, 물질의 세계가 빈곤하고 빈약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살 수밖에 없는 변방인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택하지만 본인은 내가 정말 이걸 원해서 택하고 있다고 자기 기만을 거듭하는, 그런 정신주의랄까.

우리 현대 한국인, 특히 20세기 출생자들은 그 변방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변방인이 어떤 성취를 이루거나 개인적인 행복을 달성하고자 할 때, 변방적 특질과 줄타기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그래서 최근 1960-1970년대생들이 '눈떠보니 선진국 이얏호' 꼴값을 떠는 게 우려스러웠으나, 그들 대부분은 민주당 지지자이며, 정권을 뺏겼으니 이제 그들은 다시 헬조선 타령을 할 것이다. 이런 정치 과몰입 또한 변방성의 특징 중 하나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변방의 인간들이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제대로 설명을 못 하겠는데,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라는 것은 러시아 문학과 마찬가지인, 그런 맥락을 놓고 보면 잘 이해된다는 뜻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은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아방가르드'가 아니라 '러시아'에 방점을 찍고 보면 분명히 그렇다. 세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법칙 중 가장 슬픈 법칙인 '원판 불변의 법칙'을 뼈저리게 가르쳐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왜 사회주의라는 서구 사상의 뉘앙스 대신 뭔가 토속적이고 구린 느낌 일색인가? <러시아 아방가르드>전 1부에 등장하는 여러 그림들을 보던 나는 왠지 그 뿌리가 결국은 러시아적 향토성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걸 떨쳐내고 좀 어케어케 해보려던 머리 좋고 예민한 자들은 소련이 된 러시아에서 살지 못해 망명하거나(칸딘스키), 소련에서 두 번이나 간첩죄로 체포되는 등 고초를 겪다가 일찍 죽었다(말레비치).


이 전시에서 가장 큰 감명을 준 작품은 따로 있다. 알렉산드르 티실레르가 그린 <장애인들의 시위>다. 야만적인 나라에 사는 이가 그 야만성을 직시할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각별하게 느껴진 건, 물론 어제 오늘 내가 경험한 어떤 맥락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4월 17일까지 예정되어 있으나 언제 휙 돌아가버릴지 모르는 전시.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입장료 2만원, 전시기간중 휴무.

노무현의 라면, 윤석열의 김치찌개는 경호 대상인가

노무현의 라면, 윤석열의 김치찌개는 경호 대상인가

[노정태의 뷰파인더] 대통령 위에 있는 경호처

● 尹 스텐팬 계란말이의 운명
● 구중궁궐에서 외로웠던 盧
● 무소불위 차지철이 빚은 실패史
● 민주화 이후에도 ‘밀착권력’
● 뻔한 무속 공세나 펴는 민주당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 앞에 설치된 프레스다방을 찾아 취재진과 즉석 차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의 스텐팬 계란말이.’ 대선 과정에서 방송을 통해 공개된 후 많은 이를 놀라게 한 ‘사건’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미 겸 특기는 다름 아닌 요리. 오랜 세월 독신으로 살면서 술을 즐겨온 중년 남자답지 않게, 그는 본인과 배우자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식사를 직접 준비해왔다. 깊은 맛이 나도록 끓인 김치찌개에 각 잡힌 계란말이. 누가 봐도 소주 안주 같지만 공깃밥을 놓으니 그럴듯한 가정식 정찬이 됐다. 윤석열을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도 감탄한 ‘윤식당’이다.

3월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윤석열은 임시로 마련된 기자실에서 잠깐 티타임을 가졌다. 요즘도 ‘혼밥’ 안 하느냐는 질문에 “아침은 혼자 먹지만 개들이 먹던 걸 달라고 해서 나눠준다”고 답한 윤석열은, 서울 용산에 대통령실이 열리면 구내식당을 이용해 김치찌개를 대량 조리해 기자들에게 대접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물론 그 많은 양을 손수 할 수는 없을 테고, 말하자면 본인이 조리장이 돼 감독한다는 뜻이겠지만, ‘윤식당’을 재개장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후보 시절에도 직접 만든 음식을 시민에게 대접하는 콘셉트의 유튜브 콘텐츠 ‘석열이형네 밥집’을 공개한 바 있다.

만약 윤석열이 통상적인 경로를 밟아 청와대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윤식당’ 재개장은 불가능하다. 아니, 당분간 폐업이다. 윤석열의 스텐팬은 5년간 계란말이뿐 아니라 그 어떤 요리도 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업무가 과중하고 바빠서가 아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은 취사를 위해 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요리는 고사하고 라면조차 끓이지 못한다.

어째서일까. 법으로 금지돼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단, 대통령경호처의 경호 규칙에 위반된다. 경호처는 대통령과 가족이 불을 쓰지 못하게 한다. 이유는 늘 그렇다시피 ‘대통령 경호 목적’이다. 대체로 열 살 정도면 자기 손으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하는 것이 한국인의 인생이지만, 국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오른 사람과 그 가족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냄비에 물 붓고 불 켜는 단순한 행동조차 하면 안 된다. 오늘은 바로 이 문제, 경호와 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경호실에 사정했지요, 한번만 봐달라고…”
20031119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관저를 나서고 있다. [동아DB]
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대통령 경호 규칙.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 같지만, 이는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심지어 군인 출신 대통령 전두환도 그랬다. ‘신동아’ 2007년 5월호에 실린 ‘전직 경호원들이 털어놓은 대통령 경호 비화’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관사는 호텔 객실처럼 취사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대통령 가족은 검식관이 마치 조선시대 기미상궁처럼 검식을 마친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요리사와 검식관이 퇴근하고 난 후에는 무엇도 먹을 수 없어서, 전두환의 자녀들은 하교하자마자 청와대로 와야 했지만 밤에는 라면조차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서민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 그는 라면 마니아였다. 출출해도 라면, 심심해도 라면, 해외에 나가서도 라면을 먹었다. 200610월도 그랬다. 경북 김천에 갔다가 대통령 전용 KTX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는 수행참모들에게 ‘특별 메뉴’가 준비돼 있다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라면. 실망하는 이들에게 대통령은 이런 설명을 들려줬다.

​​“달리는 열차에서 먹는 라면 맛이 어떻습니까? 맛있지요? 대통령 빽 아니면 이런 맛 볼 수 없어요! 오늘따라 라면이 먹고 싶어서…. 서울 올라올 때에는 열차에서 저녁식사로 라면 먹을 수 없냐고 물었더니, 경호실에서 안 된대요. 그래서 사정했지요. 한번만 봐달라고….”

경호실에 따르면 달리는 열차에서 컵라면 정도는 괜찮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냄비에 면을 넣고 삶는 라면은 안 된다. 안전 문제 상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독자 여러분은 이 설명이 납득이 되시는가. 물론 열차에서 부탄가스 등 직접 불을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식사를 하는 공간은 조리를 하는 공간과 떨어져 있다. 불꽃이 발생하지 않는 전열 조리기구를 사용해 라면을 끓인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설마, 누군가 대통령에게 뜨거운 라면을 끼얹는 테러를 저지를까봐 안 된다는 걸까.

실제로 경호처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요리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노무현 스스로가 그러한 처사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내 손으로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불만을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들은 바 있다.

물론 최근 한 전직 청와대 요리사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무현이 주말이나 일과 시간 후 자기 손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임기 말에 이르러 경호처가 다소 느슨한 태도를 취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자기 손으로 편하게 라면 하나 끓여먹지 못했던 노무현은 큰 불만을 느꼈고, 이는 분명한 사실로 남아 있다. 마치 구중궁궐에 갇혀 있던 ‘마지막 황제’의 푸이처럼,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비서 노릇까지 겸하는 경호원?
대통령을 쥐락펴락하는 대통령경호처의 힘. 이 권력의 기원은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다.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통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전 이후에도 북한과 지속적으로 대치했고, 북한은 여러 방향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목숨을 노렸다.

육영수 여사의 시해로 마무리된 문세광의 1974년 광복절 저격을 놓고는 그 배후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하지만 김신조 일당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산을 타고 넘어왔던 사건이라거나, 전두환을 노리고 벌어졌던 아웅산 테러 사건 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한이 일종의 비정규전투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을 살해하려 든 것이다.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자신의 심복을 경호실에 앉히고 일종의 호위부대 격으로 굴리면서 경호실이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다. 북한으로부터의 직접적 위협이 크게 줄어든 후에도 경호실의 권한과 역할은 줄어들지 않았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의 차지철 경호실장처럼 대놓고 권력을 휘두르는 경호실장이 나오는 세상이 끝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라면 끓이기’의 사례처럼,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을 경호한다는 명목 하에 대통령의 동선과 행동을 미시적으로 통제하는 일종의 ‘밀착권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신동아’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자. 한 전직 경호원은 한국과 미국의 경호 시스템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 경호원은 오로지 경호만 합니다. 우리나라 경호원은 비서(의전) 노릇을 겸하거든요. 가령 대통령이 악수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악수를 하려 하면 경호원이 대통령의 손을 터치할 수 있어요. 하지만 미국은 절대 안 됩니다. 말 그대로 경호만 하는 거죠.”

이 말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2007년 당시, 한국의 대통령 경호원은 ‘대통령이 악수해야 할 사람’과 ‘악수하면 안 될 사람’을 판단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둘째, 대통령이 ‘악수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악수하려 할 경우, 경호원은 그 엉뚱한 사람 대신 대통령을 제재할 수도 있었다. 셋째, 전 세계 모든 민주국가가 표준으로 삼고 있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경호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 측면이 특히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지금까지 총 46명의 대통령을 선출했는데 그 중 4명이 암살당한 나라다. 누군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일하다가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8.69%나 된다. 최전방 전선에 투입된 군인이 아닌 다음에야 경험하기 힘든 사망률이다. 그런 미국에서조차 경호원이 대통령의 손을 터치 못 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가능한가.

경호 목적으로 대통령과 가족이 요리를 못 하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다.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자기 손으로 식칼도 못 잡고 가스레인지도 못 켠다. 대통령경호처가 ‘대통령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먹는 음식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대통령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하에, 대통령 가족을 과잉보호하며 ‘가스라이팅’하는 것 같은 인상마저 주지 않는가.

지난해 1229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직접 만든 음식을 시민에게 대접하는 콘셉트의 유튜브 콘텐츠 ‘석열이형네 밥집’을 공개한 바 있다. [국민의힘]
용산 시대의 ‘윤식당’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말해두자. 나는 한국인이다. 우리의 대통령이 안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경호 시스템이 과연 대통령에게 유익한지 의문을 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경호실장 차지철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가운데 대통령 박정희는 현실감각을 잃어갔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총을 뽑아 쏠 때 차지철은 박정희뿐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지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악의 경호 실패 사례는, 대통령 경호실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 벌어진 것이다.

단 하루도 청와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윤석열을 두고 뻔한 무속 공세나 펴는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층의 태도를 보면 더욱 한심하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도사가 청와대에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가는 것 아니냐’는 식상한 흑색선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최순실 사건을 보면 분명하다. 소중하게 끌어안아야 할 무속인 혹은 비선실세가 있다면 청와대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대통령경호처를 설득해서 그 비선 실세가 원할 때 ‘프리패스’로 청와대에 들락거리게 해주면 아무도 모른다. 지난 정권 시기에 벌어졌던 대통령경호처의 방만한 행태는 결국 박근혜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말았으니, 이 또한 대통령 경호 실패 사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정희 시절과 마찬가지로 경호실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 문고리 권력의 일부로 작동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가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대통령 됐다고 가스레인지에 불도 못 켜게 하는 식으로 ‘탈인간화’하는 경호 체제는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대통령은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대통령이 야근하다 1층 매점으로 내려와 직원들과 함께 전자레인지에 삼각김밥 돌려서 컵라면을 곁들여 먹으며 일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용산 시대의 개막과 함께 ‘윤식당’이 성공리에 재개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2-03-22

인수위에 여성가족부 포함시켜야

2017년 대선 당시의 일. 홍준표 후보의 자서전에서 '돼지발정제' 운운했던 대목의 논란이 커지자, 다른 후보들이 일제히 비난했다.

그 중 가장 수위가 셌던 사람은 안철수. '나는 홍준표 후보와 대화하지 않겠소'라고 TV 토론에서 선언했다.

수세에 몰려 있던 홍준표는 안철수의 그런 대응에서 활로를 찾았다. '안 후보님? 정말 나랑 이야기 안 할 거에요? 응?' 이러면서 어린아이 놀리듯 가지고 놀았고, 오히려 안철수가 외통수에 몰렸다.

여성가족부를 대하는 인수위의 모습을 보며 문득 그 무렵 생각이 든다.

여성가족부는 신뢰를 잃었다. '피해호소인' 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등을 돌린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진행하던 사업 중에는 여성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많다. '여성부'가 아닌 '가족부'로서 집행하던 예산도 상당하다.

그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 재편성해야 한다. 또 어제 오늘 거론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예산 등 석연찮은 대목을 확인하고 교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인수위 테이블에는 여성가족부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성가족부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가족부를 불러야 하지 않나?

'여성가족부 해체'라고 썼으니 인수위 단계에서 아예 포함도 안 시킨다! 이런 태도가, '나는 홍준표 너님과는 토론 안해!' 해버리던 2017년 안철수의 미숙한 태도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난번에도 말했듯 이런 태도를 취하면 대외적으로 '안티페미 행정부'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게 될까? '석유 대신 반도체가 나오는 사우디' 정도로 취급당할 것이다. 나라망신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그 외 관계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22-03-21

'광화문 시대'와 작별을 고하고 싶다

"결국 미 대사관은 이 논란이 본격화되기 전에 마련해 뒸던 정동 옛 경기여고 자리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미국은 90년 을지로에 있던 미 문화원과 1만5117㎡에 이르는 경기여고 땅을 맞바꾸기로 서울시와 합의한 상태였다. 이 부지는 미 대사관저와 바로 맞닿아 있어 대사관과 함께 직원 숙소까지 지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 유명한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의뢰해 지하 2층, 지상 15층짜리 대사관 설계까지 마친다.

하지만 만사 쉬운 일은 없는 법.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조로워 보였던 대사관 이전 계획은 돌연 암초를 만났다. 대사관을 지으려던 경기여고 자리가 역사적 유적지로 밝혀진 까닭이다. 조사 결과 문제의 땅에는 1933년까지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을 모셨던 선원전(璿源殿)과 왕과 왕비의 혼백을 모신 흥덕전(興德殿) 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조선시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 위에 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미 대사관은 “한국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경기여고 이전 계획을 포기한다”고 2003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741863

경기여고는 순종이 어명으로 만든 학교임. 조선 왕실에서 '야 너네 이 땅 써라'해서 그 땅 위에 지었음. (사진 속 빨간 동그라미)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경기여고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또 유의미한 '조선시대의 유산'이었는데, 경기여고는 그 땅 버리고 강남으로 훌훌 갔음.

그런데 그 자리에 미국이 대사관 좀 지으려고 하니까 뭔 일이 벌어지냐? 위에 인용된 칼럼에서 잘 이야기하고 있죠.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바 아니었던 유물 나왔다고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남.

결국 미국 대사관은 대사관저와 딱 붙여서 멋들어지게 지어보려던 건물 계획 다 포기하고, 용산 미군기지 옆으로 가려고 했는데, 미군기지 이전에 차질이 생기면서 광화문 한복판에 뒈지게 낡은 건물에서 영원히 살고 있음.

그래서 그 경기여고 땅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그냥 허허벌판임(2030년대까지 '선원전터 복원'을 한다는데 그게 문화재로서 유의미함? 그렇게 믿을 사람은 유홍준 말고 아무도 없음).

이게 뭐야? 뭐하는 짓이야? 아무도 모름. 문화재를 지키자! 하면서 그 땅 기꺼이 쓸 유일한 소비자를 쫓아내놓고, 그냥 비워두고 있음. 이런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이 싫어서. 혹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 청와대에서 벗어나 용산으로 간다는 결정의 문화사적 의의를 짚어보기 위함.

대통령이 청와대를 버린다? 이건 청와대만의 문제가 아님. '광화문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의미도 됨.

'광화문 시대'란 무엇인가? 김영삼이 중앙청을 박살내면서 시작된 시대. 민족주의적 감성이 모든 합리와 이성과 계획의 상위 개념으로 날뛰고, 그 누구도 그것을 감히 말리지 못했던 시대. 문화재청 같은 일개 '청'이 민족의 제사장 행세를 하며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시대.

일본과 전쟁을 해서 독립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명목 하에 역사 왜곡을 하는 게 옳은 일처럼 여겨졌던 시대.

'민족정기'를 세우고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억지 부리고 악다구니 쓰는 게 뭐 좋은 일처럼 여겨졌던 시대.

이제 좀 새로운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는 소리. 그 뭐 광화문의 함성이니 종로의 정취니 피맛골의 그리운 풍경이니, 다 그냥 '즐기는 문화'의 범위로 넘기고, 우리는 갑시다 미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