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30

합법의 탈 쓰고 국가를 파괴하는 사람들… 대한민국에 ‘헌법수호자’는 없다


[아무튼, 주말-노정태의 시사哲]
넷플릭스 드라마 ‘지정생존자’
‘검수완박’과 졸렬한 정치인들

도시환경공학을 전공한 교수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은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가 기획한 공영주택 사업을 대통령이 마음에 들어 해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 되었지만 정치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매년 초 치러지는 ‘연두교서’ 발표를 앞두고 ‘지정생존자’로 선정되어 워싱턴 DC의 안전가옥에 틀어박혀 있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내각 구성원, 상하원 의원, 대법원 판사들까지 모두 모여 있는 미 연방의사당을 커크먼은 TV로 지켜보고 있다.

연두교서 발표는 그런 자리다. 미국을 이끄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그런데 만약 그곳에서 큰 사고나 테러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나라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지정생존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커크먼처럼 내각의 누군가는 일부러 연두교서 발표에 참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생존자’가 되도록 ‘지정’하여, 국회가 폭파되고 대통령이 죽고 내각이 허물어지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연두교서 발표 중계방송이 끊긴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자 일명 ‘캐피탈 힐’에서 폭발과 함께 불꽃이 솟구친다. 미 연방의사당은 문자 그대로 무너졌다. 그 속에 있던 이들 중 생존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청바지에 후드티 차림으로 맥주를 마시던 톰 커크먼은 그 모습 그대로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게 되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헌법을 지켜야 하는 자, ‘헌법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정생존자>의 설정은 퍽 과격하다. 아무리 현실에 존재하는 제도라고 해도 그렇지, 입법·사법·행정 3부를 모두 폭탄으로 날려버린 후 시작하는 이야기니 말이다. 하지만 픽션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법. 어떤 나라가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지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존속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역시 그랬다. 1920년대 내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도탄에 빠졌다. 이원집정부제를 택하고 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정치적 구심점 없이 오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헌법의 가치를 누가,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1931년, 두 사람의 헌법학자가 지면을 통해 논쟁을 벌였다. 카를 슈미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현 체제를 공격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비상사태의 권력을 일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을 통해 꾸려진 연방의회와 총리는 독일 국민 전체의 선택을 받지 않고 간접적으로 뽑힌 이들이므로, 헌법의 수호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논리였다.

반면 또 다른 헌법학자 한스 켈젠은 현 체제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켈젠이 볼 때 슈미트의 주장은 옳지 않았다. 헌법 수호는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입법·사법·행정부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헌법을 지키고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이었다. 특히 켈젠은 헌법재판소에 주목했다.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구다. 반면 국회가 ‘입법 폭주’를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도입한 헌법재판소가 그 공백까지 채워넣을 수 있다고 켈젠은 주장했다.

이 충돌은 ‘헌법의 수호자 논쟁’이라 불린다. 헌법과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카를 슈미트가 볼 때 헌법이란 국가 공동체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일 뿐이었다. 형식적인 법 논리나 기존의 제도 같은 것은 그저 자의적인 규칙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흔히 ‘결단주의’라 불린다. 반면 한스 켈젠은 ‘법실증주의’를 택했다. 법은 법의 영역 바깥에서, 정치나 기타 요소에 의해 형성되지만, 법학은 법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훗날 카를 슈미트는 나치에 협력하면서 ‘히틀러의 법학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덕분에 결단주의 대 법실증주의의 대립은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의 대립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그러나 이 논쟁을 그런 식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은 수많은 철학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주권은 어떻게 형성되고 또 행사되어야 하는가? 국회, 법원, 심지어 대통령 같은 헌법 기관이 합법성의 탈을 쓰고 국가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들을 막아설 힘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적 관점을 따르자면 제도권 내에서 해결할 일이다. 국회 내에서 정치 세력 간 견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명백한 위헌 요소로 가득한 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헌법의 수호자’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언론인 출신으로 법 전문가조차 아닌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하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 하루 만에 그것을 덥석 받아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검수완박에 대해 사실상 지지의 뜻을 밝혔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 기대할 근거도 희박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현행 형사소송법 역시 마찬가지로 졸속 처리되었는데, 헌재는 이미 그 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으니 말이다.

국회와 헌재를 벗어나더라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윤석열 현 대통령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검찰총장직을 내던지고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던 사람이다. 국민들은 그런 그에게 0.74%p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승리를 안겨주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헌법의 수호자’로서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수완박 타협, 아니 야합 국면에서 윤석열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지정생존자>는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응축된 작품이다. 국회의사당에 정치인들을 몰아넣고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답답함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검수완박 야합을 보는 우리 국민들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분노가 픽션보다 무서운 현실을 불러오기 전에 국회가, 헌재가, 대통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2-04-29

자기 투사: 미국은 러시아가 제대로 군사 개혁을 했다고 전제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현재까지 드러낸 온갖 난맥상의 원인이야 분명. 부패했고, 사기가 낮고, 실전 경험도 부족하고 등등.

그런데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대가 이지경일 줄은 몰랐음. 왜 러시아의 군사적 역량을 실제보다 높게 보고 있었을까?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aka 그루지아) 침공 당시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꼴을 못 보여줌. 군사적 치욕을 경험. 그 후로 국방 예산도 엄청 늘림.

미국은 그걸 이렇게 해석했음. 러시아 군대가 진짜 강해졌겠다.

그런 판단의 기저에는 '사람은 남을 평가하면서 결국 스스로를 바라본다'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했음.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굴욕을 맛본 후 철저한 분석과 개혁을 단행. 그래서 1차 걸프전에서는 한 해중 가장 짧은 2월 한 달이 다 지나기도 전에 나라 하나를 쓰러뜨리는 괴력을 과시.

미국은, 자기들이 그러니까, 러시아도 제대로 군사 개혁을 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는 소리.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음. 

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교훈'이 있음. 

문재인 정권이 5년 내내 했던 반일 선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일본을 상대로 했던 손가락질, 결국 문재인과 민주당의 멘탈리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던 것임. 

같은 비판을 스스로에게도 해볼 수 있어야 성숙한 어른이겠지요. 길지만 재미있는 기사입니다. 

"This belief wa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Russia had undertaken the same sort of root-and-branch military reform that America underwent in the 18-year period between its defeat in Vietnam and its victory in the first Gulf war. In 2008 a war with Georgia, a country of fewer than 4m people, though successful in the end, had exposed the Russian army’s shortcomings. Russia fielded obsolete equipment, struggled to find Georgian artillery and botched its command and control. At one stage, Russia’s general staff allegedly could not reach the defence minister for ten hours. “It is impossible to not notice a certain gap between theory and practice,” acknowledged Russia’s army chief at the time. To close that gap, the armed forces were slashed in size and spruced up."

https://www.economist.com/briefing/how-deep-does-the-rot-in-the-russian-army-go/21808989

2022-04-23

尹 정호영 옹호는 정치인 아닌 ‘검사’ 발언

[노정태의 뷰파인더] 도덕과 관습 우롱한 어떤 ‘합법’

● 퍽 놀랍고 충격적인 尹의 말
● ‘불법 아니니 괜찮다’고만 하면…
● 민주당發 가짜 법치주의의 결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제기된 자녀 관련 의혹 등을 설명하기 위해 4월 1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의대 편입학 논란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말이다.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어떤 ‘팩트’가 있어야 당선인이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본인이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 아니라 배현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통해 전달된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퍽 놀랍고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잠시 기억을 되돌려 조국 사태를 떠올려 보자.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된 후 본격적으로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함구하거나 사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일축해왔다. 여론 악화의 결정타가 된 것은 2019년 9월, 자청해서 열었던 기자간담회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딸의 논문과 의학전문대학원 편입 등에 관한 의혹을 두고 이렇게 못 박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불공정 의혹 제기, 너무나도 당연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월 21일 서울 국회 법사위원장실 앞에서 검수완박 입법을 위한 안건조정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건조정위 무력화를 위해 민형배 의원이 탈당하는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박 위원장은 “국회법에 따라 안건조정위원을 지정하겠다”고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의 ‘부정의 팩트’ 발언을 보며 충격에 빠진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이유 역시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아직 새 정부가 출범하지도 않았는데 조국 사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정권교체를 통한 한국 사회의 정상화를 꿈꾸었던 이들이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일단 몇 가지 분명히 해둘 일이 있다. 적어도 4월 현재 조국 사태와 정호영 논란의 내용이 완전히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조국과 그 딸인 조민 씨의 경우처럼 명백히 위조된 서류가 확인된 것도 아니고, 일각에서는 정호영의 자녀가 논문에 참여해 이름을 올린 것에 그 나름의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항변도 있다. ‘부정의 팩트’가 100% 확실히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안을 두고 제기되는 우려가 과도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의대 편입은 ‘차라리 수능을 다시 봐서 의대에 가는 게 더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런데 정호영의 두 자녀는 동시에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스펙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가 재직하는 의대에 편입했다. 불공정 의혹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윤석열이 이 사안을 '정치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느냐다.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불법이 아니면 합법이고, 합법이면 문제가 없다는 식인데, 이것은 ‘법 기술자’의 말일 뿐이다. 법은 대체 무엇인가. 불법이 아니면 합법이고, 그러니 모든 일이 허용되는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불법이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말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 법치국가의 원리를 잘 반영한 표현이다. 법과 도덕을 분리하는 것, 동시에 법의 규제 영역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다.

가령 노골적 성적 묘사가 담긴 창작물, 즉 성인물과 법의 관계를 떠올려 보자. 성인물을 만들거나 즐기는 이들은 성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는 성인들을 법이 막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성인물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는 이들은 그런 성인물이 미성년자들의 건전한 성 관념을 해칠 수 있을 뿐더러, 성인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 심지어 미성년자들이 유입돼 성적 착취를 당할 가능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규제 및 법적 감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에 일리가 있다. 법이 도덕의 모든 영역을 관할하려 해서는 안 되지만, ‘최소한의 도덕’으로서 작동해야 한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심지어는 전 국민에게 도덕적 지탄을 받고 있는 사안이나 행위가 반드시 법에 의해 규제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Georg Jelinek)의 명언처럼,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강제력이 개입되는 법적 절차는, 도덕적 당위를 따질 수 있는 영역 중에서도 최소한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옳다.

형사소송법 전공 교수 조국의 태도
이 원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아니다. 가령 여성들이 입는 짧은 치마, 미니스커트를 생각해 보자. ‘미니스커트 단속’이라는 말을 들으면 한국인들은 흔히 박정희 정권 시절에나 있던 일이고 ‘서구 선진국’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1968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68혁명’ 이전에는, 서구에서도 경찰이 여성들의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을 나무라고 단속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도덕이 법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옥죄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는 소리다.
이런 맥락을 놓고 볼 때, ‘불법이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질문은 사회의 근본 질서를 파괴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법’과 ‘도덕’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법을 통해 도덕을 강요하는 근본주의적, 전체주의적 질서에 저항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그렇게 이뤄져 왔다. 법과 도덕의 구분을 최대한 명료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영역에 법이 개입하지 않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도덕의 영역, 가치관의 영역, 취향의 영역에 불과한 것을 법으로 옥죄지 말라. 이는 특히 진보적 성향을 지니는 법조인 사이에서 두루 통용되는 법철학적 시각이다. 심지어 누군가 법을 어겼다 해도 그럴만한 이유, 참작할 만한 사유, 혹은 그 위법 행위를 한 사람이 위법 행위를 하게끔 한 사회 구조 등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 참여연대의 초기 멤버 중 하나인 형사소송법을 전공한 교수 조국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불법이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취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법이 아니니 괜찮다’는 태도를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민간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직종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과 가치관을 제시하고 구현하는 공직자들이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역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불법이 아니니 괜찮다’는 태도로 일관해 법에 걸리지 않는 한 무슨 짓이건 하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사람은 우리 사회가 통상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의 영역을 건드리거나, 넘어서거나,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합법과 불법,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오가는 행위가 사회 전체에 만연하다보면, 법의 존재 근거 자체가 흔들린다. 왜냐하면 법은 도덕의 기반 위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싼 정치적 지형이 모두 그렇다. 일단 21대 국회의 출발부터가 문제적이었다. 선거법은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법이다. 참여자 모두가 합의하고 동의하지 않는 한 함부로 바꿀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20대 국회의 막바지, 바로 그 기본적 상식 혹은 정치적 도덕이 망가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상식 바깥의 수를 뒀다. 비례 의석을 노리는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이 흔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당시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한 선거법 개정이 이뤄지고 말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국회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제1야당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법사위는 모든 법안의 자구를 검토하고 수정 보완할 수 있는, 국회의 ‘입법권’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소위원회다. 그 법사위원장을 야당에서 가져가면 여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수 있다. 국회법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으나, 21대 국회 이전까지는 모든 정치 세력이 동의해온 일종의 ‘관습법’이다.

21대 국회의 민주당은 그 또한 파괴했다. 자유한국당이 ‘모든 상임위원장 거부’라는 초강수를 두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법’ 바깥에 있는 ‘도덕’과 ‘관습’을 무시한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야당이 꼼꼼히 읽고 평가하고 되돌려 보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오기를 부린 끝에 내놓은 법 중 대표적인 게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이다.

우리는 그 덕분에 이전까지 겪어본 적 없는 엄청난 부동산 가격 상승과 그로 인한 계층 분리를 경험하고 있다. ‘불법은 아니지 않느냐’, ‘법사위원장을 야당 주라고 국회법에 쓰였느냐’며 도덕을 무시한 가짜 법치주의 탓에, 집 없는 국민은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돼버렸다.

민주당의 도덕 무시를 통한 법치 질서 파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법사위에 속한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자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것이다. 이를 두고는 민 의원이 양 의원을 대신해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비교섭단체 의원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해석이 곧장 나왔다. 국회법상 안건조정위는 여당 의원 3명, 야당 의원 3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즉 여당을 ‘꼼수 탈당’해 야당 몫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미다.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성향의 무소속 의원을 법사위에 배치해 야당 몫의 투표를 빼앗아오는 것 자체가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행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더 심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상식과 도덕을 우롱하면서 만들어진 법을 대체 그 어떤 국민이 존중할 수 있단 말인가.

오만한 사고방식을 심판받다
‘불법이 아니면 합법이고 정당하다’는 태도는 ‘법으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기에, 사회 전체의 인식과 도덕을 파괴하는 식의 입법은 수월하게 이뤄지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만들어진다 한들 긍정적 효과를 낳기 어렵다. 법을 법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법 그 자체가 아니라 법을 감싸고 있는 도덕이다. 국회법은 국회의 관습과 도덕이 없다면 법으로서 유명무실해진다. 다른 모든 법도 마찬가지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법을 법으로 온전히 작동하게 해주는 도덕과 관습까지 존중하며, 문제가 있다면 공적으로 논의하고 수정해나가는 겸허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 ‘불법이 아니니 괜찮다’는 인식으로 똘똘 뭉친 거대 정당 민주당은, 바로 그 오만한 사고방식을 국민에게 심판받아 5년 만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는 정호영 논란에 대해 ‘불법이 아니니 괜찮다’는 투로 언급한 윤석열의 발언을 문제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한, 조국 사태나 검수완박으로 인해 솟구친 국민적 분노가 언제라도 다시 국민의힘의 머리에 죽비처럼 내리꽂힐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2-04-21

'스펙 도핑' 적발된 조민…의사면허 박탈 결코 가혹하지 않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스펙 도핑' 적발된 조민…의사면허 박탈 결코 가혹하지 않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지난 1월 전공의 선발 면접을 보기 위해 경상대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조민씨. 배경은 숙명여고 쌍둥이 성적 비리 관련 시위 장면. 그래픽=김은교 기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두 명의 자녀를 본인이 재직 중이던 경북대 의대에 편입시키는 데에 그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의혹 탓이다. 정 후보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억울하다"고 호소했으나 논란은 오히려 계속 번지고 있다.

논의가 격해지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녀 사례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다. 한편에서는 "조국 가족과 같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명백한 서류 위조 등 불법이 드러난) 조국 사태와는 다르다"는 항변이 들려온다.
자녀의 의대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연 조국 사태를, 특히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의 부정입학 사건을 과연 제대로 처리했을까, 아니 올바로 이해하기나 했을까? 이를 답하기 위해선 몇 가지 질문을 우선 던져야 한다.
조민에게 가혹? 그 반대 아닌가?
첫째, 조민씨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입시 부정으로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됨에 따라 그의 의사면허도 조만간 박탈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의전원을 나와 이미 인턴 수련까지 한 마당에 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가혹하다고 비판한다.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자식이 대신 처벌받는다는 투다.

하지만 조민씨의 의사 자격 상실은 결코 '처벌'이 아니다. '자격 상실'이다. 대학 입시를 비롯해 모든 시험은 수험자에게 특정한 자격과 행동 방침을 요구한다. 가령 수능 시험장에는 지정된 필기구와 아날로그 시계 외에는 그 무엇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만약 누군가 전자시계를 차고 있다가 발견되거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걸리면, 설령 그 기기가 시험에 전혀 쓰이지 않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할지라도 해당 시험은 무효 처리가 된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 상식이 왜 조민씨의 입시에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그 어떤 입시든 허위 서류를 제출하면 안 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설령 조 전 장관이 SNS를 통해 밝힌 변호인들 입장처럼, 제출된 부정 서류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해도 부정행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정행위를 했으면 실격 처리를 당하는 게 상식적인 경쟁의 룰이다. 도핑을 한 운동선수가 그 약물이 실제 경기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무관하게 실격 처리당하는 것과 같다. 쉽게 말해 조민씨와 그의 부모는 '스펙 도핑'을 한 것이고, 그게 적발돼 실격당한 것이다.

지난 2018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에서 두 명의 학생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고 항변한들, 아버지인 숙명여고 교사의 시험지 유출 의혹이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받은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는 걸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조민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중앙포토]
진짜 희생자는 조민 때문에 낙방한 응시자
둘째, 조민씨는 단순히 부모 욕심이 빚어낸 희생자일 뿐인가? 여기에선 희생자라는 단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지금 외견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가정을 한번 해보자. 만약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면 딸은 희생자가 될 일도 없었다. 오히려 의사라는 선망의 직업을 가진 '엄친딸'로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었을 거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현재 겪고 있을 내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고통을 겪는다고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가해자다. 조 전 장관과 그의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시피 그는 입시 부정의 직접적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본인의 입학 전후 사정을 잘 알고 가담한 정황이 있다.

이 사건의 진정한 희생자는 따로 있다. 조민씨 때문에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하지 못한 미지의 수험생이 바로 그 희생자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으나, 알 수 없는 그 응시자를 향해 때늦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조민은 '아이'가 아니다
셋째, 조민씨에 대한 비판은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행위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하지만 여기엔 긴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그가 공적 영역의 인물이 아니라서 그렇다. 게다가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 그를 향한 대중적 손가락질에 부당한 정념이 실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많은 조국 지지자들이 하듯이 이미 30대에 접어든 지 오래인 조민씨를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인격적으로 낮춰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을 어른 취급하지 않는 것만큼 심한 인격 모독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민씨가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한 건 2015년도다. 만 24세로, 어떤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미성년자가 아닌 어엿한 성인이었다. 그를 독립된 인격체로, 성인으로 대해야 한다. 이는 그가 연루된 범죄에 대해 성인으로서 응당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다. 칸트 '법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을 지닌 존재다. 자신이 행한 일이 있다면, 그 결과가 좋건 나쁘건 자신의 어깨에 짊어질 때 온전한 인격체가 된다. 조민이라는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에 얼마나 연루되어 있는지 명백히 밝히고 정확한 죄책을 묻는 것이다.
'숙명여고 시험 정답 유출' 사건으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지난해 10월에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특정인을 향한 눈먼 비난으로 여겨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 문제와 관련해 조민씨를 그저 '희생자'로 간주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당시 미성년자였던 '숙명여고 쌍둥이'들도 끝내 혐의를 부인하자 재판 과정에서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되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거짓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조민씨 사례가 다른 식으로 취급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입시는 공정과 상식의 잣대
우리는 부산대 의전원 입시 문제를 철저하게 밝히고 지나가야 한다. 조 전 장관 부부를 비롯해 당사자인 조민의 책임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법적인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호영 후보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입시 의혹, 스펙 품앗이, 기타 등등 우리 사회의 공정을 의심케 하는 여러 사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세울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져 나온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윤석열 당선인만 모르고 있다뿐이지, 상식적인 국민 대다수는 그런 방향을 원하고 있다.

2022-04-16

문재인 대통령, 세월호 결자해지하라

문재인 대통령, 세월호 결자해지하라

[노정태의 뷰파인더] 단식 농성했던 文의 마지막 임무

● 아직 밝혀야 할 ‘진실’ 있다면…
●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이고 잔인한
● 해경은 할 수 있는 구조를 했다
● 김어준 등이 만든 온갖 음모론
● 과학적으로 명백한 결론 부정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이틀 앞둔 4월 14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찾은 추모객들이 노란 리본을 걸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11일 오후 2시, 대전시청 북문 앞. 대전지역 79개 종교·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국민주권실현 적폐청산 대전운동본부 ‘4‧16특별위원회’의 집회가 열렸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요구했다. “희생자와 국민 앞에 철저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하라.”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참사의 책임이 있는 정권이 촛불혁명으로 탄핵되고, 그 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새 정부가 들어서서 벌써 5년의 임기를 마감하는 순간이 왔지만 진상규명은 제자리”였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당론으로 약속했던 정당이 180석에 달하는 국회의석을 가지고 있어도,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왜곡했는지’ 등에 대한 진상규명은 단 한걸음도 진척되지 못한 채 속절 없이 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는 대전에서 벌어진 행사의 스케치이지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매년 4월 중순 무렵이면 반복되는 모습이다. 특히 올해는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든다. 대체 ‘세월호 진상규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14년 사고 발생 후 벌써 8년이 흘렀다. 타국의 유사 사고 사례와 비교해볼 때 원인규명에 이례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였다. 심지어 선체를 인양하기까지 했다. 마치 부검하듯 선체를 부품 단위로 떼어내 분석해 과학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침몰 원인까지 확인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야 할 ‘진실’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런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
분명한 사실 몇 개를 확인해 보자. 첫째,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는 분명하다. 둘째, 해경은 피해자를 구조했다. 셋째, 세월호 참사의 발생 및 구조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개입이나 기상천외한 음모는 없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과 과정에는 그 어떤 미스터리도 없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 실린 여러 화물들은 제대로 고박돼 있지 않았다. 단단하게 묶여 고정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해류가 빠르게 휘몰아치는 수역으로 들어갈 때, 세월호의 키는 3등 항해사가 잡고 있었다. 3등 항해사는 상대적으로 조작이 미숙했기 때문에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는데, 그러다가 단단히 묶여 있지 않은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위로 더 나쁜 상황이 닥쳤다. 배의 키를 조종하는 장치인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장이 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계 부품이 그렇듯 솔레노이드 밸브는 주기적으로 꺼내어 닦고 조이고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는 그렇게 잘 관리돼 있지 않았다. 조타기를 한껏 틀었을 때 솔레노이드 밸브는 한쪽으로 완전히 쏠린 채 굳어버렸다. 선실에서 아무리 조타기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한들 키가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최악의 경우가 연이어 닥쳐왔다고 해도, 세월호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오래 써서 낡은 배였다. 중고선을 수입한 후 화물을 잔뜩 실을 수 있도록 무리하게 증축하고 개조했다. 배가 쓰러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바닥에 주입하는 평형수 용량 자체가 애초 설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며, 반대로 배의 높이를 올려버린 탓에 무게중심은 더욱 높아졌다. 내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린, 낡고 무게중심이 높은 배, 세월호는 기울어지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이 모든 사고 과정은 선박 사고의 전문가들이 사고 발생 직후부터 진단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터질만한 사고가 터질만한 방식으로 터졌다는 소리다. 8년간의 기나긴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중요 사실은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착이라는 요소를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선체를 인양해 부품을 해체하고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이 지면의 다른 칼럼(‘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 역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에 속하는 사건이었다.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통제 가능한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중첩되면서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세월호에는 이준석 선장이 타고 있었다. 잘못된 사람이 총책임자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를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단지 무책임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식이었으며, 무신경하게 잔인했다. ‘가만히 있으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 참사는 그렇게 벌어졌다.

해경은 정말로 방관했나?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엿새 앞둔 4월 10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이 열린 가운데 유가족들이 사고 해역을 알리는 노란부표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해경을 향해 쏟아졌던 비난은 어떨까. 해경이 피해자 구조에 나서지 않았거나, 심지어 방관했다는 것은 사실일까. 그렇지 않다. 해경은 당시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 및 여건에 따라 구조 활동을 했다. 다만 그 결과가 안타까울 뿐인데, 그렇다고 ‘구조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난이 가해지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당시 상황이다. 세월호 사고 신고가 접수된 후, 해경 구조 헬기는 약 30분, 구조정은 약 40분 뒤에 현장에 도착했다. 각 운송수단을 동원해 가장 빠른 속도로 직선으로 움직이면 그 속도가 된다. 해경이 무슨 히어로물의 영웅처럼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늑장 구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해경 경비정은 24노트의 전속력으로 달렸다. 신고 접수에서 도착까지 40분이 걸린 건 사고위치가 그만큼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해경 탓이 아니다.

해경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으니 잘못했다는 주장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선체는 이미 60도 이상 기울어져 있었다. 게다가 현장은 바다다. 물에 젖은 갑판은 평평한 상태여도 미끄러진다. 해경은 해상 구조의 전문성을 지닌 집단이지만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걷기는커녕 매달려 있기도 힘들 만큼 기울어진 배 안으로 들어가, 어디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 전원을 찾아내 구조했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해경이 세월호 선내에 갇힌 사람은 전혀 구조하지 않았을까? 바다에 스스로 뛰어든 사람들만 건져냈을까? 그렇지 않다. 해경은 배에 갇힌 승객이 보일 때마다 배에 올라 망치와 파이프로 유리창을 깨며 구조했다. 연합뉴스에 2014년 8월 19일 보도된 ‘세월호 승무원 2명, 승객 구조 참여 정황 확인’이라는 기사를 읽어보자. “김씨는 123정이 세월호에 두 번째로 맞대어 객실 유리창을 깨고 5~6명을 구조한 것과 관련, ‘누가 유리창을 깼느냐’는 검사의 질문을 받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직원(해경) 두 명이랑 승객 두 명이 있었다’고 답했다.” 여기서 말하는 김씨는 당시 22세였던 목포해경 소속 의경 김모 씨. 해경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구조 활동을 했다.

바다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게 무슨 구조 활동이냐는 식으로 빈정거리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4월의 먼 바다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배가 좌초된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해상에는 온갖 부유물이 빠른 속도로 떠돌아다니며 타박상, 찰과상, 골절 등을 유발한다. 조난자는 구명조끼를 입었다 해도 찬 물과 스트레스로 인해 탈진하고 의식을 잃다가 죽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피해자를 엄청나게 늘린 건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제때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도 ‘전원구조’는 불가능했다. 현장에서 바다에 뛰어내리고도 사망한 사례가 있다.

한여름 해수욕장에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몸이 덜덜 떨린다.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4월의 바닷물은 더욱 가혹하다. 몸이 바닷물에 닿는 한 하루 이상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고래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실구조’를 이유로 목포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내인설’과 ‘열린 주장’
세월호 침몰 직후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김어준을 비롯해 여러 ‘독립 언론인’들이 달려들어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한 온갖 음모론을 만들어 뿌려대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 잠수함이 들이받았다는 둥, 국가정보원이 관여돼 있다는 둥,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종의 이유로 인신공양을 하려 했다는 둥, 입에 담기도 역겨운 소리들을 지어냈다.

그리하여, 세월호 참사를 어떤 음모론적 관점으로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런 주장을 가진 이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의사결정기구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총 6인으로 구성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의 경우, 4명은 앞서 설명한 세월호 자체의 결함 문제를 인정했다. 즉 ‘내인설’을 취했다. 반면 나머지 2명은 2018년까지 세월호가 다른 이유로 침몰했다는 ‘열린 주장’을 고수하며 선조위를 마무리 지었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역시 난항에 부딪혔다.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부터 ‘CCTV 조작설’까지 온갖 음모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과학적으로 명백한 결론을 부정하며 세월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 한 사람만을 탓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로 벌어진 사고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는 그 어떤 미스터리도 없다. 세계 해상 사고의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오랜 기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구체적인 내역을 밝혀놓았다. 그럼에도 ‘진실규명’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더 밝혀야 할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범죄’가 아닌 ‘사고’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약 3주 후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 이제 그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으나, 단 한 가지 남은 과제가 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수습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마저 달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세월호 단식 농성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도 바로 그것 아닐까.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애꿎은 희생자들과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이 이제는 편히 쉴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