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6

문재인 대통령, 세월호 결자해지하라

문재인 대통령, 세월호 결자해지하라

[노정태의 뷰파인더] 단식 농성했던 文의 마지막 임무

● 아직 밝혀야 할 ‘진실’ 있다면…
●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이고 잔인한
● 해경은 할 수 있는 구조를 했다
● 김어준 등이 만든 온갖 음모론
● 과학적으로 명백한 결론 부정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이틀 앞둔 4월 14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찾은 추모객들이 노란 리본을 걸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11일 오후 2시, 대전시청 북문 앞. 대전지역 79개 종교·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국민주권실현 적폐청산 대전운동본부 ‘4‧16특별위원회’의 집회가 열렸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요구했다. “희생자와 국민 앞에 철저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하라.”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참사의 책임이 있는 정권이 촛불혁명으로 탄핵되고, 그 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새 정부가 들어서서 벌써 5년의 임기를 마감하는 순간이 왔지만 진상규명은 제자리”였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당론으로 약속했던 정당이 180석에 달하는 국회의석을 가지고 있어도,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왜곡했는지’ 등에 대한 진상규명은 단 한걸음도 진척되지 못한 채 속절 없이 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는 대전에서 벌어진 행사의 스케치이지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매년 4월 중순 무렵이면 반복되는 모습이다. 특히 올해는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든다. 대체 ‘세월호 진상규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14년 사고 발생 후 벌써 8년이 흘렀다. 타국의 유사 사고 사례와 비교해볼 때 원인규명에 이례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였다. 심지어 선체를 인양하기까지 했다. 마치 부검하듯 선체를 부품 단위로 떼어내 분석해 과학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침몰 원인까지 확인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야 할 ‘진실’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런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
분명한 사실 몇 개를 확인해 보자. 첫째,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는 분명하다. 둘째, 해경은 피해자를 구조했다. 셋째, 세월호 참사의 발생 및 구조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개입이나 기상천외한 음모는 없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과 과정에는 그 어떤 미스터리도 없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 실린 여러 화물들은 제대로 고박돼 있지 않았다. 단단하게 묶여 고정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해류가 빠르게 휘몰아치는 수역으로 들어갈 때, 세월호의 키는 3등 항해사가 잡고 있었다. 3등 항해사는 상대적으로 조작이 미숙했기 때문에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는데, 그러다가 단단히 묶여 있지 않은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위로 더 나쁜 상황이 닥쳤다. 배의 키를 조종하는 장치인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장이 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계 부품이 그렇듯 솔레노이드 밸브는 주기적으로 꺼내어 닦고 조이고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는 그렇게 잘 관리돼 있지 않았다. 조타기를 한껏 틀었을 때 솔레노이드 밸브는 한쪽으로 완전히 쏠린 채 굳어버렸다. 선실에서 아무리 조타기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한들 키가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최악의 경우가 연이어 닥쳐왔다고 해도, 세월호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오래 써서 낡은 배였다. 중고선을 수입한 후 화물을 잔뜩 실을 수 있도록 무리하게 증축하고 개조했다. 배가 쓰러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바닥에 주입하는 평형수 용량 자체가 애초 설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며, 반대로 배의 높이를 올려버린 탓에 무게중심은 더욱 높아졌다. 내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린, 낡고 무게중심이 높은 배, 세월호는 기울어지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이 모든 사고 과정은 선박 사고의 전문가들이 사고 발생 직후부터 진단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터질만한 사고가 터질만한 방식으로 터졌다는 소리다. 8년간의 기나긴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중요 사실은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착이라는 요소를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선체를 인양해 부품을 해체하고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이 지면의 다른 칼럼(‘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 역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에 속하는 사건이었다.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통제 가능한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중첩되면서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세월호에는 이준석 선장이 타고 있었다. 잘못된 사람이 총책임자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를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단지 무책임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식이었으며, 무신경하게 잔인했다. ‘가만히 있으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 참사는 그렇게 벌어졌다.

해경은 정말로 방관했나?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엿새 앞둔 4월 10일 오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이 열린 가운데 유가족들이 사고 해역을 알리는 노란부표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해경을 향해 쏟아졌던 비난은 어떨까. 해경이 피해자 구조에 나서지 않았거나, 심지어 방관했다는 것은 사실일까. 그렇지 않다. 해경은 당시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 및 여건에 따라 구조 활동을 했다. 다만 그 결과가 안타까울 뿐인데, 그렇다고 ‘구조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난이 가해지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당시 상황이다. 세월호 사고 신고가 접수된 후, 해경 구조 헬기는 약 30분, 구조정은 약 40분 뒤에 현장에 도착했다. 각 운송수단을 동원해 가장 빠른 속도로 직선으로 움직이면 그 속도가 된다. 해경이 무슨 히어로물의 영웅처럼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늑장 구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해경 경비정은 24노트의 전속력으로 달렸다. 신고 접수에서 도착까지 40분이 걸린 건 사고위치가 그만큼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해경 탓이 아니다.

해경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으니 잘못했다는 주장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선체는 이미 60도 이상 기울어져 있었다. 게다가 현장은 바다다. 물에 젖은 갑판은 평평한 상태여도 미끄러진다. 해경은 해상 구조의 전문성을 지닌 집단이지만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걷기는커녕 매달려 있기도 힘들 만큼 기울어진 배 안으로 들어가, 어디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 전원을 찾아내 구조했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해경이 세월호 선내에 갇힌 사람은 전혀 구조하지 않았을까? 바다에 스스로 뛰어든 사람들만 건져냈을까? 그렇지 않다. 해경은 배에 갇힌 승객이 보일 때마다 배에 올라 망치와 파이프로 유리창을 깨며 구조했다. 연합뉴스에 2014년 8월 19일 보도된 ‘세월호 승무원 2명, 승객 구조 참여 정황 확인’이라는 기사를 읽어보자. “김씨는 123정이 세월호에 두 번째로 맞대어 객실 유리창을 깨고 5~6명을 구조한 것과 관련, ‘누가 유리창을 깼느냐’는 검사의 질문을 받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직원(해경) 두 명이랑 승객 두 명이 있었다’고 답했다.” 여기서 말하는 김씨는 당시 22세였던 목포해경 소속 의경 김모 씨. 해경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구조 활동을 했다.

바다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게 무슨 구조 활동이냐는 식으로 빈정거리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4월의 먼 바다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배가 좌초된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해상에는 온갖 부유물이 빠른 속도로 떠돌아다니며 타박상, 찰과상, 골절 등을 유발한다. 조난자는 구명조끼를 입었다 해도 찬 물과 스트레스로 인해 탈진하고 의식을 잃다가 죽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피해자를 엄청나게 늘린 건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제때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도 ‘전원구조’는 불가능했다. 현장에서 바다에 뛰어내리고도 사망한 사례가 있다.

한여름 해수욕장에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몸이 덜덜 떨린다.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4월의 바닷물은 더욱 가혹하다. 몸이 바닷물에 닿는 한 하루 이상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고래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실구조’를 이유로 목포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내인설’과 ‘열린 주장’
세월호 침몰 직후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김어준을 비롯해 여러 ‘독립 언론인’들이 달려들어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한 온갖 음모론을 만들어 뿌려대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 잠수함이 들이받았다는 둥, 국가정보원이 관여돼 있다는 둥,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종의 이유로 인신공양을 하려 했다는 둥, 입에 담기도 역겨운 소리들을 지어냈다.

그리하여, 세월호 참사를 어떤 음모론적 관점으로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런 주장을 가진 이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의사결정기구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총 6인으로 구성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의 경우, 4명은 앞서 설명한 세월호 자체의 결함 문제를 인정했다. 즉 ‘내인설’을 취했다. 반면 나머지 2명은 2018년까지 세월호가 다른 이유로 침몰했다는 ‘열린 주장’을 고수하며 선조위를 마무리 지었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역시 난항에 부딪혔다.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부터 ‘CCTV 조작설’까지 온갖 음모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과학적으로 명백한 결론을 부정하며 세월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 한 사람만을 탓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로 벌어진 사고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는 그 어떤 미스터리도 없다. 세계 해상 사고의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오랜 기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구체적인 내역을 밝혀놓았다. 그럼에도 ‘진실규명’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더 밝혀야 할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범죄’가 아닌 ‘사고’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약 3주 후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 이제 그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으나, 단 한 가지 남은 과제가 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수습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마저 달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세월호 단식 농성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도 바로 그것 아닐까.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애꿎은 희생자들과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이 이제는 편히 쉴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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