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전공의 선발 면접을 보기 위해 경상대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조민씨. 배경은 숙명여고 쌍둥이 성적 비리 관련 시위 장면. 그래픽=김은교 기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두 명의 자녀를 본인이 재직 중이던 경북대 의대에 편입시키는
데에 그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의혹 탓이다. 정 후보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억울하다"고 호소했으나 논란은 오히려 계속 번지고
있다.
논의가 격해지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녀 사례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다. 한편에서는 "조국 가족과 같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명백한 서류 위조 등 불법이 드러난) 조국 사태와는 다르다"는 항변이 들려온다.
자녀의 의대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연 조국 사태를, 특히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의 부정입학 사건을 과연
제대로 처리했을까, 아니 올바로 이해하기나 했을까? 이를 답하기 위해선 몇 가지 질문을 우선 던져야 한다.
첫째, 조민씨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입시 부정으로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됨에
따라 그의 의사면허도 조만간 박탈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의전원을 나와 이미 인턴 수련까지 한 마당에 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가혹하다고 비판한다.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자식이 대신 처벌받는다는 투다.
하지만 조민씨의 의사
자격 상실은 결코 '처벌'이 아니다. '자격 상실'이다. 대학 입시를 비롯해 모든 시험은 수험자에게 특정한 자격과 행동 방침을
요구한다. 가령 수능 시험장에는 지정된 필기구와 아날로그 시계 외에는 그 무엇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만약 누군가 전자시계를
차고 있다가 발견되거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걸리면, 설령 그 기기가 시험에 전혀 쓰이지 않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할지라도
해당 시험은 무효 처리가 된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 상식이 왜 조민씨의 입시에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그 어떤 입시든 허위 서류를 제출하면 안 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설령 조 전 장관이
SNS를
통해 밝힌 변호인들 입장처럼, 제출된 부정 서류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해도 부정행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정행위를 했으면 실격 처리를 당하는 게 상식적인 경쟁의 룰이다. 도핑을 한 운동선수가 그 약물이 실제 경기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무관하게 실격 처리당하는 것과 같다. 쉽게 말해 조민씨와 그의 부모는 '스펙 도핑'을 한 것이고, 그게 적발돼 실격당한
것이다.
지난
2018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에서 두 명의 학생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고 항변한들,
아버지인 숙명여고 교사의 시험지 유출 의혹이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받은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는 걸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조민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중앙포토]
둘째, 조민씨는 단순히 부모 욕심이 빚어낸 희생자일 뿐인가? 여기에선 희생자라는 단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지금 외견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가정을 한번 해보자. 만약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면 딸은 희생자가 될 일도 없었다. 오히려 의사라는 선망의 직업을 가진 '엄친딸'로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었을 거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현재 겪고 있을 내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고통을 겪는다고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가해자다. 조 전 장관과 그의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시피
그는 입시 부정의 직접적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본인의 입학 전후 사정을 잘 알고 가담한 정황이 있다.
이 사건의 진정한 희생자는 따로 있다. 조민씨 때문에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하지 못한 미지의 수험생이 바로 그 희생자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으나, 알 수 없는 그 응시자를 향해 때늦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셋째, 조민씨에 대한 비판은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행위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하지만 여기엔 긴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그가 공적 영역의 인물이 아니라서 그렇다. 게다가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 그를 향한 대중적 손가락질에 부당한 정념이 실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많은 조국 지지자들이 하듯이 이미
30대에 접어든 지 오래인 조민씨를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인격적으로 낮춰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을 어른 취급하지 않는 것만큼 심한 인격 모독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민씨가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한 건
2015년도다. 만
24세로,
어떤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미성년자가 아닌 어엿한 성인이었다. 그를 독립된 인격체로, 성인으로 대해야 한다. 이는 그가 연루된
범죄에 대해 성인으로서 응당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다. 칸트 '법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을 지닌 존재다. 자신이 행한 일이 있다면, 그 결과가 좋건 나쁘건 자신의 어깨에 짊어질 때 온전한 인격체가
된다. 조민이라는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에 얼마나 연루되어 있는지 명백히 밝히고
정확한 죄책을 묻는 것이다.
'숙명여고 시험 정답 유출' 사건으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지난해 10월에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특정인을 향한 눈먼 비난으로 여겨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 문제와 관련해 조민씨를 그저 '희생자'로 간주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당시 미성년자였던
'숙명여고 쌍둥이'들도 끝내 혐의를 부인하자 재판 과정에서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되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거짓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조민씨 사례가 다른 식으로 취급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부산대 의전원 입시 문제를 철저하게 밝히고 지나가야 한다. 조 전 장관 부부를 비롯해 당사자인 조민의 책임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법적인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호영 후보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입시 의혹, 스펙 품앗이, 기타 등등
우리 사회의 공정을 의심케 하는 여러 사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세울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져 나온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윤석열 당선인만 모르고
있다뿐이지, 상식적인 국민 대다수는 그런 방향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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