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09

어떤 탈권위주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꺼내는 최후의 카드가 있다. 그래도 노무현은 스스로 권위를 내팽개침으로써 검찰을 독립시키고 국정원을 본연의 업무로 되돌리지 않았느냐 하는 볼멘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탈권위주의'는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집권 초기에 행해졌던 '평검사와의 대화'라는 이벤트를 돌이켜보자.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는 이상, 그 자리에 앉아있던 평검사들의 궁극적인 인사권자는 결국 대통령 본인이었다. 아직은 '개혁 대통령'의 때깔이 바래지 않았던 시점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담임 선생이 학급에서 가장 폭력적인 학생을 불러앉혀놓은 다음 '툭 터놓고'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뿐이다. 결국 그 이벤트는 검찰 조직 내에서 대통령에 대한 반발심만 가득 키워놓은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권위를 벗어던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한 행위가 아니다. 권위의 무겁고 뻣뻣한 장옷은, 그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는 이가 폭주하는 것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경거망동하거나 아랫사람에게 업수이 보일 행동을 하면 권위는 상실되고 말빨은 힘을 잃어버린다. 나는 지금 권위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기능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제도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가부장적, 제왕적 존재에게 최소한의 행동 제약을 가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개인의 수치심에 의존하는 윤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 탈권위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권위의 옷을 벗어버리기에 앞서, 개인에게 독점되어 있던 권력을 사람이 아닌 제도화된 체계에 이양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벌거숭이 임금님이 자신의 나체를 폭로한 아이의 목을 치지 못한 것은, 그러한 식으로 대응할 경우 그의 마지막 권위마저도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해법은 국왕에게 국민에 대한 생사여탈권, 초사법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대신 정해진 법과 규칙에 따라 사람을 체포하고 벌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내가 다 벗고 있으니 너도 웃장 까고 덤비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법절차에 의해 구속 수감되어 있는 수인들을 마음대로 사면 복권시킬 수 있는 한국의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진정 제왕적인 존재이다. 그가 진정 탈권위주의를 원했다면 검사들과 '맞짱'을 뜨기에 앞서 사면법부터 개정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정치인을 포함한 약 400여명의 수인들을 임의로 사면시켰다. 그는 벌거벗고 있고, 자신의 적들도 벌거벗고 덤비기를 원하지만, 임금의 홀만큼은 오른손에 꾹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탈권위주의란 이렇게 희극적이다.

2007-02-04

네르프네 셋째딸

Belle and Sebastian - The Wrong Girl

설명하겠습니다

방명록에 붙은 첫 리플이 '어째서!!!!!!' 인 것을 보니, 블로그 이사에 대해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전에 이상한 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했었습니다만 좀 더 자세히 써보기로 하죠.

당시 저는 스팸 트랙백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방 컴퓨터 앞에 거의 앉아있지 않고, 설령 웹에 접속한다 해도 학교에서 공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그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죠. FTP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설치형 블로그를 관리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단 말입니다.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일러도 밤 11시 30분이 넘는데, 그 시각에 PC를 켜면 아차하는 순간 아침 해를 보게 됩니다. 그건 정말 치명적이죠. 더 이상 설치형 블로거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왜 이글루스도 아니고 요즘 대세인 티스토리도 아닌, 비밀 덧글도 트랙백도 없는 블로거냐, 이런 질문이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구글 계정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으니,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지 말고 그냥 있는 걸로 쭉 가자는 발상이었어요. 거기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구글에서 운영하는 블로거를 이용하고 있는 한, '싸이글루' 같은 사태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는 일종의 신뢰도 선택의 이유로 작용했고요. 기왕 가입형 블로그를 이용하기로 한 이상, 다시 말해 블로그 관리와 안전성 확보에 대해 신경을 끄기로 한 이상, 가장 크고 안정적인 업체를 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입니다. 저는 티스토리가 언제까지 운영될 수 있을지 솔직히 좀 걱정이 앞서거든요.

게다가 저는 구글 특유의 미니멀리즘과, 특히 키보드에서 손을 뗄 필요가 없도록 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구성을 좋아합니다. 테터를 사용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요. 사나흘 주기로 약 1000개에서 많으면 3000여개의 스팸 트랙백을 지우는데, 지우기 버튼을 클릭하기 위해선 반드시 마우스를 집고 휠을 돌려서 가장 아래에 있는(전체선택 버튼 옆에 두면 얼마나 좋아? 기왕이면 탭으로 옮길 수 있게 하면 더 좋고!) 삭제 버튼을 클릭해야만 하는 그 불편함이란. 333번쯤 그런 짓을 반복하고 있다보니 저는 뭐랄까, 약간 신물이 났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수준의 사용자 편의를 제공하는 업체는 결국 구글이거든요.

트리 형식의 게시물 분류를 할 필요가 없다는, 아예 그런 기능을 제공하지도 않는다는 점마저 제 마음에 듭니다. 사실 그런 분류 기능은 작성자가 아닌 방문자를 위한 거에요. 처음 블로그에 온 사람이라면 모든 글을 시간 역순으로 읽으려 하지 않죠. 아마 그는 '영화'라던가 '서평' 같은 카테고리를 먼저 클릭해볼 겁니다. 그러한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려면 분류는 가능한 한 포괄적이면서도 빠지는 구석이 없도록 설정되어야 해요.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제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의 인적 구성은 늘 비슷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렇게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하지만 테터 기반의 스킨들은 거의 모두 분류 트리를 한 구석에 배치하고 있고, 그건 제게 일종의 강요와도 같은 것이어서, 참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 지난 블로그의 마지막 스킨이 대체 왜 그 모양이었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분류 보기를 제공하지 않는 스킨을 찾다보니 그게 걸렸던 겁니다. 하지만 너무도 단순하게 만들어진 탓에, 파이어폭스나 그 외 브라우저에서는 검은색과 회색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지저분한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익스플로러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았습니다만 가독성이 좋지 않다는 점은 마찬가지였고요. 저의 이 모든 발악은 결국 '분류'를 하기 싫다는 것으로 귀결되느니만큼, 그 기능을 필수 요소로 제공하고 있는 이글루스나 티스토리는 모두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건 일종의 결벽일 수도 있는데, 저는 제 분류가 주어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포괄하지 못하면,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거든요. 빌어먹을, 블로그 포스트 하나 쓰면서 왜 그런 거창한 압박감에 시달려야 하는 겁니까? 앓느니 죽고 말지.

뭐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환경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한윤형과 이상한 모자가 알콩달콩 트랙백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약간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기능의 결여는 수작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니 그렇게까지 서운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 새로운 주소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치기 쉽고 발음하기에도 어렵지 않고 뭐 그렇잖아요. 그 계정에서 그대로 주소를 바꾸면 기존의 링크들은 다 깨지게 됩니다. 그건 제 가슴속에 별처럼 빛나는 웹 윤리에 위배되더군요. 그래서 팔콘에게 부탁을 하고 그냥 이렇게 슬그머니 빠져나온 거에요. 링크를 클릭했을 때, 혹은 검색을 해서 나온 페이지를 열었을 때, Page not Found가 튀어나오는 불쾌감을 다른 사람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미디어몹 블로그를 지웠을 때 바로 그런 후회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팔콘넷을 떠나 블로거로 이사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이상하게도 컴퓨터 앞에서 직접 자판을 두드리면, 특히 개인적인 글을 쓰면, 시간이 참 빨리도 가네요. 글이 잘 풀리게 하려고 일부러 대화체를 선택했는데도 이렇습니다. 이 블로그가 자주 업데이트되지 않을 거라는 말은 바로 이 현상을 두고 한 소리였어요. 저는 웹에 많은 양의 글을 빨리 써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에, 이쯤에서 끝내는 게 현명하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