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30

I Have Forgiven Jesus



I was a good kid, I wouldn't do you no harm,
I was a nice kid, With a nice paper round.
Forgive me any pain, I may have brung to you.
With God's help I know,
I'll always be near to you

But Jesus hurt me, When he deserted me, but,
I have forgiven you Jesus
For all the desire,
You placed in me when there's nothing I can do with this desire

I was a good kid, Through hail and snow, I'd go just to moon you,
I carried my heart in my hand
Do you understand, Do you understand

But Jesus hurt me, When he deserted me, but,
I have forgiven you Jesus
For all of the love,
You placed in me when there's no one I can turn to with this love

Monday - humiliation,
Tuesday - suffocation,
Wednesday - condescension,
Thursday - is pathetic
By Friday life has killed me, By Friday life has killed me.

Oh pretty one, Oh pretty one...

Why did you give me so much desire,
when there is nowhere I can go to offload this desire?
And why did you give me so much love in a loveless world,
when there's no one I can turn to to unlock all this love?
And why did you stick me in self deprecating bones and skin?
Jesus, do you hate me?
Why did you stick me in self deprecating bones and skin?
Do you hate me? Do you hate me? Do you hate me? Do you hate me? Do you hate me?

2007-07-26

두손을



이 드라마 OST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측면이 있다.

2007-07-25

2007-07-24

음반 시장과 매체로서의 CD

예전에는 3000원짜리 테이프를 사면 됐다. 점심을 한 끼만 굶으면 고등학생도 음반을 소유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카세트 테이프가 거의 쇠락하고, 모든 음원이 CD로만 유통되던 중간기, 내 주변인들의 음악 소비량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 막 싹을 틔우기 시작했던 넵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음반 판매가 기록적으로 줄어든 이유는 MP3에만 있지 않다. CD는 휴대하고 다니기 좋은 매체가 아니다. 사이즈가 미묘하게 커서 한 손에 집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CD의 기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MD를 포함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며(소니 안습), 마침 그때 MP3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음반 시장이 된서리를 맞은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CD는 음질이 좋지만 가지고 다니기엔 불편하면서도, 테이프에 비해 적어도 세 배 정도는 비쌌다. 음반 판매가 안 떨어지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싱글 음반을 포함한 몇몇 시도들이 음악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 같지만 때늦은 대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음악은 물리적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유통되고 있으며, 바로 그 방식을 통해 구성되는 시장은 계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테이프는 언젠가 늘어나게 마련이니 소리를 저장하는 매체로서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CD의 애매한 사이즈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것이 DVD까지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조금 불만스럽다(CD의 사이즈가 불편하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5.25인치 디스켓이 3.5인치 디스켓에 완전히 쓸려버린 이유를 4.375초 정도만 생각해보자).

필립스가 처음 CD를 개발할 때 표준을 그런 식으로 정해버린 덕택에, 결국 지금은 나같은 구닥다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CDP를 들고 다니지 않고, 그리하여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갓 산 음반의 비닐을 벗기고 첫 소리를 감상하는 두근거림마저도 함께 잃어버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게 음악을 듣는 진짜 즐거움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2007-07-23

가톨릭 교회에 대한 오해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과 행동의 양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한14,6)그분 안에서 사람들이 종교 생활의 풍족함을 발견하고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과 화해시키셨음을(2고린5,18-19)교회는 선포하고 있으며 또 반드시 선포해야 한다."(비 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많은 사람들이 2차 바티칸공의회의 의미를 과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위에서 인용한 문구를 꼼꼼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가톨릭 교회는 타 종교의 윤리적 가치를 인정할 뿐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라는 기본 교리까지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진리를 반영하는 것과 진리 그 자체인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건에서는 가톨릭의 기본적인 교리를 굳이 말로 재확인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개신교회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도 그러한 오해는 마찬가지이다. 역사 이래 단 한번도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회와 그 다양한 분파들을 온전한 교회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이런 단체들 속에서 지금 태어나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을 분열의 죄과로 몰아세울 수는 없으므로, 가톨릭 교회는 그들을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바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합법적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은, 비록 완전치는 못하나, 가톨릭 교회와 어느 정도 결합되어 있는 것"(제1장,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이라고 그 유명한 2차 바티칸공의회는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세 때에 믿음으로 의화된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되었으므로, 크리스챤이란 이름이 당연하며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은 그들을 주님 안의 형제로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개신교회에 결함이 있다는 견해를 철회한 적은 없다.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선언된 내용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대신, 그 문헌에 대한 달콤한 풍문만을 전해들은 다음 그것을 토대로 멋대로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상상하면, 당연히 교회이면서도 교회로서의 기본 가치마저도 포기한 듯한 그 어떤 단체가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가톨릭 교회겠거니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2차 공의회를 요한 바오로 2세가 개최한 것도 아니거니와, 이미 그부터가 공의회의 정신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을 수도 없이 들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스위스의 신학자 한스 큉은 교황청과 바로 그런 이유로 싸우다가 급기야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교 교수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가톨릭 교회가 '진보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한국 사회가 가톨릭 교회의 보편적 가치에 조금도 부합하지 못할 만큼 야만적이었던 시절, 자신의 윤리적 관점을 철저히 견지하던 교회가 유독 사회적으로 도드라지는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 뿐이다. 바로 그 굳건함이 가톨릭 교회의 본질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가톨릭 교회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