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2

[아무튼, 주말] 코로나 패닉에 던져진 확률 퀴즈… “백신 접종, 살아남는 데 정말 유리할까?”

[아무튼, 주말] 코로나 패닉에 던져진 확률 퀴즈… “백신 접종, 살아남는 데 정말 유리할까?”

[노정태의 시사哲]
몬티 홀의 ‘세 개의 문’과
백신 효과의 상관관계

퀴즈. 세 개의 문이 있다. 그중 하나를 열면 최신형 자동차가 있지만, 나머지 두 문 뒤에는 염소가 있다. 3분의 1의 확률로 당첨, 나머지 3분의 2는 꽝인 셈이다. 여러분은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러스트=유현호

가상의 수학 문제가 아니다. 1963년부터 40여 년간 방송된 미국의 TV 쇼 ‘거래를 합시다’(Let’s Make A Deal)에서 수없이 반복된 상황이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몬티 홀은 퀴즈를 맞힌 참가자에게 상품을 뽑으라며 질문을 던졌다. “1번 문을 원하십니까, 2번 문 아니면 3번 문?” 참가자가 문 하나를 고르면 정답을 아는 몬티 홀은 능청스럽게 참가자가 고르지 않은 문을 하나 택해서 보여준다. ‘꽝’이다. 몬티 홀은 다시 묻는다. “지금 선택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바꾸시겠습니까?”

얼핏 생각해보면 굳이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듯하다. 꽝 하나가 제거되었지만, 아무튼 내가 원래 택한 문은 정답이거나 오답일 것이고, 그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처음 선택을 바꿨다가 꽝을 뽑게 되면 얼마나 후회막심이겠는가. 그래서 수많은 출연자들은 처음 고른 선택지를 바꾸지 않았다.

미국 최고의 IQ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던 칼럼니스트 메릴린 사반트가 볼 때, 선택지를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몬티 홀이 세 개의 문 중 하나가 오답이라는 걸 보여줬다면 참가자는 선택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어째서일까? 몬티 홀의 개입으로 인해 단순한 확률 문제가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건부 확률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제하에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뜻한다. 몬티 홀은 오답을 하나 제거하면서 참가자에게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건은 확률의 조건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차분하게 따져보자. 참가자가 처음에 오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2, 정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1이었다. 그런데 몬티 홀이 등장하여 오답을 ‘골라서’ 제거해줬다. 그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3분의 1의 오답 가능성을 몬티 홀이 대신 가져가준 것과도 같다. 따라서 참가자가 새로운 선택을 하면 오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1이다. 세 개의 문 중에서 하나가 오답이라는 것을 미리 아는 상태에서 나머지 오답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답을 택할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3분의 2로 늘어난다.

곧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거래를 합시다’ 시청자 중 메릴린 사반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1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 1000명가량이 수학이나 공학 등을 전공한 ‘이과인’들이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확률, 특히 조건부 확률은 많은 경우 우리의 직관과 상식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티 홀 문제는 수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전제 조건이 달라졌다면 확률도 달라진다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백신 맞아도 코로나 걸리잖아, 그럼 대체 백신을 뭐 하러 맞는 거야?” 요즘 많은 곳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완전히 틀리는 말은 아니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위험성은 전혀 달라진다. 편의상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에 걸려 죽을 확률을 50%라고 해보자. 반면 백신을 맞을 경우 10%만이 죽는다. 이 경우, 50명이 백신을 맞았지만 10명은 백신을 맞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코로나 사망자는 총 10명이 나오는데, 그중 5명은 백신 미접종자, 5명은 백신 접종자가 된다.

그렇다고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백신 미접종자의 사망률은 여전히 접종자보다 다섯 배나 높으니 말이다. 다만 백신 접종자의 전체 숫자, 즉 모수(母數)가 다섯 배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망자 수가 같게 보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백신을 맞아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 사망에 대한 전제 조건이 달라지고, 조건부 확률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은 오답의 가능성을 미리 줄여주는 몬티 홀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백신을 맞는다 해도 운이 나쁘면 돌파 감염되어 ‘꽝’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확률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뀐다.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돌아다니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대신, 종이와 펜을 놓고 찬찬히 숫자를 따져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수학적이면서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 백신 회의론과 백신 거부 움직임이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도 벌써 2년째에 접어들고 있으니 다들 상당히 지쳤을 법도 하다. 방역패스의 필요성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더라도 합리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자영업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 또한 지우기 어렵다. 방역패스에 대한 법원 판결로 인해 혼란은 더욱 가중될 듯하다.

코로나 백신은 급하게 만들어낸 최신작이다. 다른 백신에 비해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백신의 효과는 조건부 확률 같은 직관적이지 않은 개념을 통해 바라봐야 온전히 이해 가능하다. 국민 정서와 눈높이를 감안한 과학적 설득을 꾸준히 해나가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을 못 본 체하며,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라 자화자찬하더니, 해외 순방을 빙자한 외유를 즐기고 있다.

일부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다 못 해 백신을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지난 18일 발표된 조선일보·TV조선 여론조사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정부의 방역 관리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사 대상자 중 절반이 넘는 54.1%가 ‘아니요’라고 대답한 것 또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3월 9일 수요일, 우리는 새로운 몬티 홀 문제를 풀게 될 예정이다. 선택지를 둘로 줄이면 조건부 확률에 따라 정답을 맞힐 가능성이 높아질까? 몬티 홀 문제처럼 선택지를 바꿔야 하나? 정치는 수학이 아니라 생물이니,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금물. 다시 한번 ‘꽝’을 뽑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다.

2022-01-17

미군 부대에서 눈 치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미군은 눈 안 치운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미군도 눈 치운다. 내가 해봐서 안다. 여차하면 소대장 중대장도 삽 들고 나와서, 커다란 제설차가 다니지 못하는 구석구석 다 치운다.

나는 '미군은 사람 고용해서 치우는데~' 같은 소리에 담겨 있는 발상이 싫다.

'내가 군대에 가서 눈이나 치울 사람이 아닌데 개고생했다'는 식의 억울한 자의식이 싫다.

미군이건 한국군이건 중공군이건, 아니 군인이 아니어도, 눈이 오면 치워야 한다. 눈을 치워야 길이 뚫리고, 길이 뚫려야 전쟁을 하건 일을 하러 가건 할 거 아닌가.

'나는 군대에서 눈을 치워서 억울했다'는 소리,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못난 소리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남자들에게 조용히 속으로 -1점을 부여한다.

나는 뒷짐지고 에헴 할테니 너희가 다 해라, 이런 식의 종놈 부리고픈 양반 근성이 드러나는 못난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군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내가 하거나, 명확한 보상을 제공하며 남에게 정확하게 지시해야 한다. 떼떼거리는 못난 소리 그만들 하자.

2022-01-15

이재명 ‘탈모 밈’ 윤석열 ‘멸콩 밈’은 흥겨운 헛발질

 [노정태의 뷰파인더] 그들은 아이젠하워가 아니거늘

● 李 ‘심는다’, 尹 ‘멸치와 콩’
● 새로운 유형의 자기 복제자
● 지지층만 즉각 반응한 ‘챌린지’
● “성향이 원래 그런 사람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8일 서울 동작구 이마트 이수점에서 멸치와 콩을 사고 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 제공]
선거는 일종의 흥행 사업과 유사하다. 유행어를 만들고 히트시키는 쪽이 재미를 보게 마련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고사하고 TV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기 전부터 그랬다. 미국의 전직 장군 아이젠하워는 ‘아이 러브 아이크(I Love Ike)’라는 입에 착 붙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밈’에 힘입어 그는 정치 경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이겨내고 1952년 대선에서 이겼다.

입에 착 붙는 구호가 선거를 좌우하는 모습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반복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는 거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돌파하더니 미국 대통령직을 꿰찼다. 바야흐로 ‘밈 정치’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4일 공개한 유튜브 영상에서 한 말이다. 탈모인들의 수요를 노린 ‘소확행’ 공약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인터넷에서 탈모는 신체 현상이기에 앞서 하나의 밈이다. 즉 ‘이재명은 심는다’는 말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것을 의도하고 내놓은 공약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월 8일 인스타그램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과 함께 “장보기에 진심인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문제는 그 밑에 달린 해시태그다.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 #윤석열”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듯하지만, 네티즌 반응은 달랐다. ‘멸치’와 ‘콩’의 앞 글자를 따면 ‘멸콩’, 즉 ‘멸공’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윤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운영하는 ‘AI 윤석열’은 그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다. ‘달파멸콩’, 가족과 함께 하는 좋은 주말 보내세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내 ‘멸공 밈’에 정국이 휩쓸려 들어갔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 밈의 흥행이 과연 정치적 성공에 도움이 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직접 출연해 화제가 된 15초 분량의 ‘탈모 공약 동영상’. [유튜브 캡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밈’의 개념부터 파악해보자. 독자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그 책,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된 신조어다.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생명체란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증식을 위해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기계’라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볼 때 자기 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것은 유전자(gene)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문화 속에도 유전자와 유사한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누군가가 창발적으로 떠올린 후 다른 이들이 따라함으로써 살아남고 전파되는 새로운 유형의 자기 복제자. 그것이 바로 ‘밈(meme)’이다. 그리스어에서 모방을 뜻하는 어근인 미멤(mimeme)을 적당히 편집해 gene과 운율을 맞춰 만들어낸 신조어다. 즉, ‘밈’ 자체가 일종의 밈인 셈이다. 도킨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어떤 밈은 그리 널리 퍼지지 못하고 금세 잊힌다. 설령 널리 퍼졌다 해도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가요 차트를 점령한 수많은 유행가가 그렇다. 어떤 노래는 사람, 때로는 국가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애국가라던가, 혹은 대한민국 건국 전부터 사람들에게 불렸던 아리랑 같은 노래를 떠올려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밈은 ‘생각의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명 활동을 하지 못한다. 허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숙주가 될 생명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퍼뜨린다. 밈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두뇌와 그로 인한 문화가 없다면 밈은 존속할 수 없다. 어떤 밈은 다른 밈보다 전파력이 크고 때로는 수백 수천 년을 살아남는다. 신이나 종교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만들고 퍼뜨리는 밈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자가 서로 경쟁하듯 밈 또한 경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두뇌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밈의 성공은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가정하자. 그 밈을 전달하려는 것 이외에 사용된 모든 시간은 그 밈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하여 같은 날 공개되는 수많은 노래, 개봉하는 영화, 방영하는 드라마 등이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집중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멸공 챌린지’의 이면
오늘날 밈의 작동 방식은 한층 더 바이러스와 가까워졌다. 제도권 언론이 중심이던 시대에는 소수의 밈이 대량으로 복제됐다. 지금은 다량의 밈이 상대적으로 적게 복제된다. 대신 그 과정에서 복제자들, 즉 밈을 퍼다 나르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밈을 복사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면서, 한 두 마디 코멘트를 붙이거나 때로는 밈 자체를 변형시킨다. 네티즌들이 각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멸치와 콩을 보여주며 ‘멸공 챌린지’에 참여했던 것 또한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후보와 극적인 재결합을 이룬 후, 국민의힘은 ‘밈 정치’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이준석 스스로가 ‘멸공 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긴 했지만, 그 외의 메시지를 볼 때 그러한 방향성은 뚜렷해 보인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메시지를 내놓았던 것도 그렇고, 그 후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단문을 제시한 것도 그러하다. 구체적인 내용과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전파할 수 있도록, 아주 짧은 밈으로 승부하는 전략이다.

온라인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열렬하게 ‘멸공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딱 한 줄에는 40분 만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한 줄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등장할 만큼 윤석열의 밈이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수세에 몰려 있던 윤석열의 선거 운동이 공세로 돌아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1월 10일까지의 조사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지지율 역시 반등했거나 하락세를 멈춘 듯하다. 윤석열과 손잡은 이준석의 ‘밈 정치’, 과연 대성공일까.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했듯 밈은 바이러스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강할수록 치명도가 약해진다. 독성이 강해 숙주를 빨리 죽이는 바이러스는 널리 퍼질 수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독한 바이러스라고 해도 여러 차례 변이를 거치며 전파되다보면 치명률은 줄어들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떠올려보자. 초기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았지만 오미크론은 그렇지 않다. 전파력은 매우 빠르지만 초기 변이에 비해 치명률과 사망률이 많이 약화됐다. 숙주를 타고 옮기는 자기 복제자의 숙명이다.

밈 또한 마찬가지다. 밈은 정신에 퍼져나가는 바이러스다. 원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질적 집단 내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밈은, 그 외의 집단에 잘 전파되지 않는다. 때로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육체에 전파되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다.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그 치명률 혹은 독성을 줄여야 한다.

이준석이 멸공 밈의 확산에 제동을 건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같은 지지자들 내에서 보면 흥겨운 놀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국민의힘 기존 지지층을 넘어서는 유권자들에게는 그 설득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멸공 챌린지 참여자들을 두고 “성향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인 코멘트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를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해야지 특정 계층만 갖고 선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진행된 2022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이 러브 아이크’가 전부는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아이 러브 아이크’는 아이젠하워의 승리에 도움이 됐지만 공화당이 밈 하나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하워에게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라는 아우라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20년간 이어진 민주당의 통치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우월한 구도와 인물의 힘이었다. 트럼프의 경우도 다른 방향에서 짚어봐야 한다. 트럼프가 다양한 밈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건 맞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유권자로부터 230만여 표를 더 얻었다. 승자독식제에 기반한 선거인단제라는 미국 특유의 대통령 선거 제도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탈모 밈’으로 반전을 꾀했던 이재명의 선거운동 역시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일각에서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 지닌 재정 문제를 지적하자 밈의 정치가 급속히 약화됐다. 윤석열의 밈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멸공 논란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도 표심을 멀어지게 한다. “원래 그런 사람들”끼리 열광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면 ‘굴러온 돌’들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밈의 정치학이 가지는 한계다. 일종의 ‘인사이더 조크’로 작동하기에 ‘우리 편’과 ‘남의 편’의 경계선을 그어버린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특히 남자 유저들이 많은 커뮤니티의 분위기만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인터넷 밈은 선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편’끼리 서로 기를 살리는 데 적격이다. 그러나 인터넷 밈에만 의존해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국민 전체에 소구력을 지니는 대안과 구호를 끌어내고,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득해 나가는, 그런 선거를 보고 싶다.

2022-01-14

왜 한국인들은 군인을 싫어할까

한국 사회 전반의 군인 멸시는 굉장히 뿌리 깊은 것이고 여자들 탓만 하는 게 이상하거든요. 제가 카투사 있을 때 미군 중에도 저한테 물어본 놈이 있었습니다. 왜 너희 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 군인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고.
 
일단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던 나라라서 실은 군대를 업신여기는 게 아니라 겁내는 거다. 그리고 온 남자들이 다 군대에 갔다 오면서 각자의 나쁜 기억을 갖고 오고 그걸 다 떠들다보니 전반적 인식이 더욱 안 좋다, 뭐 이정도 설명을 했는데 그래도 잘 납득하지는 못하더군요.

사실 우리가 미국식 군인 땡큐 문화를 당연한 표준처럼 여기는 게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뭐가 됐건 겉으로는 예쁜말 고운말로 포장하는 문화적 풍토가 있죠.
 
반면 우리는 뭐든 일단 까고 냉소하는 게 디폴트. 군필자들이 군대에 대해 좋은 이야기 안 하는데 군대 안 갔고 갈 일도 없는 사람들이 군인을 존중하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미국인들처럼 땡큐 해피 원더풀 알러뷰 같은 소리 입에 달고 살지도 않는 한국인들이 군인에게만 땡큐 할 리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다가...
 
저도 한 사람의 군필자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천은 '나의 군 생활을 욕하지 않기', '내가 군대에서 배웠던 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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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에서 어떤 분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2022-01-08

YTN '나이트포커스' 1월 7일 출연했습니다.


제가 한 말 중 몇몇 중요 대목을 적어둡니다.

 

1. 윤석열의 음주운전 공약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딱 붙어 있잖아요. 그리고 말도 똑같은 말을, 거의 비슷한 말을 쓰고 그런데.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사망자 발생률이 벨기에가 네덜란드의 2배예요, 교통사고 사망률이. 

그런데 공교롭게도 국제투명성기구의 반부패지수 CPI를 보면 네덜란드는 2006년 현재 세계 9위 청렴한 나라인데 벨기에는 세계 20위란 말이죠. 이게 뭐냐. 교통사고에 너그러운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교통질서를 안 지키고 교통사고에 너그럽고. 음주운전 해도 되지, 이런 나라일수록 부패한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과관계라고 얘기하기에는 좀 어려워요. 하지만 명백한 통계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음주운전, 사소하다면 사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좋은 나라가 되는 거죠.  


2. 이재명의 모(毛)퓰리즘

저는 약간 동의하기 어려운 게 모퓰리즘. 포퓰리즘과 머리 모 자를 합쳐서 모퓰리즘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이 있습니다. 난치병이 있는데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바로 확인을 해서 스크리닝을 해서 우리가 모더나, 화이자 백신같이 mRNA, 치료제를 맞으면 낫습니다. 한 번 맞으면 되는데 그 한 번의 약값이 25억 원이에요. 

그런데 척수성근위축증은 통계적으로 1만 명에 1명씩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신생아가 현재 20만 명 정도 태어나니까 우리나라에서 매년 20명 정도의 환자가 생기는 거고 그 환자들한테 그 약을 투여한다고 하면 500억 정도를 잡을 수 있겠죠. 

이재명 후보가 1000억이면 되는데 뭘 그러냐, 우리 재정, 돈 많다 이러는데 일단 돈을 그렇게 함부로 있다고 펑펑 쓰는 건 현명하지 못할뿐더러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 그러니까 소확행. 아이들, 그 아이들을 낳은 부모의 가장 작지만 가장 큰 행복 아니겠습니까? 아이의 건강이라는 건. 그걸 해결해 주는 게 국가의 소확행이지. 

물론 탈모인들의 고통과 이런 건 다 이해를 합니다마는 우리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소확행을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대선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런 얘기를 하겠으며 사회적 의제를 언제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까? 

 

3.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하여

헌법 32조에 보면 32조 4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써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헌법은 처음부터, 그러니까 87년에 제정됐을 때부터 여성 인권을 보호해야겠다, 보호한다라는 취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그런 헌법입니다. 

그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여성정책 관련한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지금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마치 윤석열 후보가 여성부를 다 폐지하고 모든 여성정책을 없애버리는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하려고 지금 일곱 글자만 올린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이번 대선이 전반적으로 다 일단은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이재명 후보 같은 경우는 평등가족부 내지는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겠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타 부서에 통합하겠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성평등부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어쨌건 중요한 건 여성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있단 말이죠. 

이게 사회가 좋아져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빠져서 그러는 건지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우리의 헌법정신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이렇게 강조를 드리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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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대선 정국. 누구 편을 드네 마네 하는 차원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제대로 전달하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