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01

샤워실의 얼간이

통화주의자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거시경제적 효과를 노리는 정부의 경기부양 긴축 정책이 실제 효과를 거두려면 어느 정도의 시차를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샤워실에서 물을 틀면 처음에는 아무튼 찬 물이 나온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온도의 뜨거운 물이 나올때까지 한 발 물러서서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샤워실의 얼간이, 즉 정부는, 그 순간 '앗 차가워!' 라며 황급히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필요 이상으로 확 틀어버린다. 다음 순간 그 얼간이는 '으악 뜨거워!' 라며 뜨거운 물 벨브를 꽉 잠그고 얼른 찬물을 튼다. 정책이 실행되는 순간과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까지는 어느 정도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 효과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선거 기간을 맞추자는, 이른바 '4+4년제 원포인트' 개헌론은, 국민을 '샤워실의 얼간이'로 만들어버릴 공산이 크다. 혹자는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다. 오히려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해지니 정책을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 반박의 문제점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주기를 맞춰버리는 것이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많은 경우 선거는 일종의 분위기를 타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 논의되는 '원포인트 개헌'이 이루어질 경우, 대체로 여당은 원내 제1당이 되고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내키는 대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면, 여당이 정권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원내 제1당도 같은 해에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된다. 그러면 기존의 여당의 정책에 반대하던, 대립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강력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정 반대되는 정책을 입안하던 야당이 여당이 되고, 또 원내 제1당이 된다. 그렇게 집권하게 된 정당은 스스로의 입지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성과를 거둠으로써 4년 후 선거에서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을만한 정책에 자신들의 자원을 주로 할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4년제 원포인트 개헌을 하면, 그 순간부터 모든 정책은 4년 후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입안될 수밖에 없다. 극도로 근시안적이고 불안정한 정국이 반복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개헌론은 철저하게 정치 중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선거 한 방에 나라가 뒤흔들리고, 그런 일이 4년 주기로 반복된다고 해보자. 당신이 선거의 맛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이 제안을 매력적인 것으로 느낄 것이다. 4년에 한번씩 국가의 운명을 건 큰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즉,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말하는 식의 '참여'를 적어도 4년에 한번씩은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참여의 개념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방식 등은 모두 전혀 건강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주기가 짧아진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에 부합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겠지만, 국민의 정치 참여가 선거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질수록, 선거 기간이 아닐 경우 국민들의 정치적 기본권은 백안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원포인트' 개헌론에 찬성하는 사람은, 자신이 선거철만 되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빨리 대선 시기가 왔으면 하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극도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 뒤집어써가며 스스로를 대상으로 하는 가학적인, 또 피학적인 쾌감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보자는 말이다.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독 치료의 시작이자 절반이다.

댓글 2개:

  1. '샤워실의 마빡이'라고 했다면 더 전복적인 글이 되었을 텐데...(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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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몇 번 힐끗 본 바에 따르면 마빡이는 뭔가 분명한 호오 의식 내지는 부조리에 대한 완강한 거부 의식을 표명하는 캐릭터 같던데?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이마를 찰싹찰싹 때리며 '이건 아니잖아!'라고 절규할 리가... 그것은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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