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파이프라인이 막혀서 나무를 떼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의 사진 중 하나를 골라봤다. 크로아티아, 2009년 1월 중순. 이미지 소유권은 Getty에 있고, 원본 주소는 여기.
그 래서 예상 외로 중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수단 같은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 망가뜨려가며 석유를 독점 수입하고자 하는 것과 별개로, 에너지 문제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치는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2.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카』(생각의 나무, 2008)를 다 읽었다. 좋은 책이다. 특히 3장, 「자동차의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착착 와닿는다. 마르크시즘 이론에 대해 논하는 2장은 별로 재미가 없는데, 이건 내가 그런 '이론'적 토론에 큰 흥미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3장은 정말 최고다.
자동차의 역설은 이렇다. 겉보기에 자동차는 그 주인에게 무한한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자동차 덕분에 차 주인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기차와 같거나 더 빠른 속력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자율성의 이면에는 근본적인 의존이 도사리고 있다. 말이나 수레나 자전거를 탄 사람과 달리 자동차를 탄 사람은 에너지 공급을 위해, 그리고 조금만 파손이 되어도 수리를 위해 카뷰레터(기화기), 윤활장치, 조명, 표준 부속품의 교환, 이런 분야들의 전문가와 상인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의 옛날 주인들과는 달리 자동차 주인은 형식상으로는 자기 소유인 차에 대해 소유자 즉 주인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오직 제3자만이 공급할 수 있는 수많은 유료 서비스와 산업제품들을 소비하고 사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차 주인의 자율성은 실상 이렇게 근본적인 의존을 내포하는 것이다. (80쪽)
문명 속에서가 아니라, 문명의 요소가 '없음'을 실감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그 '산업문명'의 본질이 떠오른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설명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 책은 3장만으로도 구입할만한 가치가 있다.
3. 생태주의자들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둔감하고, 특히 실물경제에 어둡다는 식의 비판이 있어 왔다. 나는 생태주의자를 자처할만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하지만 프랑스 생태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드레 고르는, 오랜 세월 다양한 매체의 국제면과 경제면을 담당해온 전문 저널리스트로, 대단히 명민한 현실 인식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는 2005년에 세계가 부동산 거품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 거품이 다른 거품으로 채워지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올 것임을 예상했다.
로버트 브레너의 「새로운 붐인가, 새로운 거품인가」에서 인용된 로베르트 쿠르츠의 말이다. 쿠르츠는 자본주의의 변모와 자본주의의 현재 위기에 대한 최고의 비판이론가로서, 최근 저서 『세계자본』의 상당부분을 금융거품이 자본주의 존속을 위해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바치고 있다. 금융거품은 금융자산을 부풀려 형성된다. 쿠르츠의 표현을 따르자면, 금융거품은 "신기한 화폐제조기"이다. 새로운, 보다 커다란 거품이 형성되지 않는 한, 거품은 가라앉으면서 종국에는 연쇄파산을 불러오고야 만다. 이리하여 주식시장의 거품을 인터넷 거품이 이어갔다. 인터넷 거품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역사상 최대의 거품"인 부동산 거품이 이어가고 있다. 3년 동안, 이러한 거품으로 부동산 주가는 20조에서 60조 달러가 상승했다. 그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거품이 클수록, 거품이 가라앉을 경우 발생할 금융시스템과 화폐시스템의 붕괴가 더욱 무시무시해질 것이다. 각주 43. 157-158쪽.
이 내용은 에콜로지카 5장에 수록되어 있다. 2007년 아내와 함께 자살한 그가, 살아서 오늘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반드시 환경 문제나 생태주의가 아니어도,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다면 『에콜로지카』를 권하고 싶다.
에콜로지카 Ecologica -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정혜용 옮김/생각의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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