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4

번역 한 권, 저술 두 권, 그리고 석사논문

작년부터 큼지막한 일거리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총 네 개. 그 중 하나는 이미 거의 다 끝냈고, 세 개가 남았다. 번역할 책이 한 권, 써야할 책이 두 권 있다.

처음 번역한 책은 《아웃라이어》인데, 곧 인쇄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말 잘 썼다. 저자가 워낙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터라, 여러 가지 일과 겹쳐서 진행하는 가운데 힘들긴 했어도 지루하거나 고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두 번째 번역은 훨씬 어려운 책이다. 내용 파악이 힘든 것은 아니지만, 복문이 많고 어려운 단어가 줄곧 사용되고 있다. 제목을 공개하기엔 다소 이르다.

번역을 하고 있다 보면 자기 책을 쓰고 싶어진다. 번역자는 한국어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기왕 책임을 질 거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의 정확성이나 매끄러움이 아니라 내용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20대와 문화에 대한 책 한 권이 계약되어 있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단행본 작업을 논의중이다. 전자의 경우 가제까지 붙여놓은 상태지만, 역시 공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철 들면서부터 나는 산문가, 영어로 말하자면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은 내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단정지어버린 다음이었다. 몇 편의 시를 써 보았지만, 다들 좋다는 기형도를 읽으며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로부터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도 종종 해방 이후의 시들을 읽곤 한다. 이 평가의 정확한 의미를 나도 설명해줄 수 없지만, 십중팔구 한국어로 쓰여진 시들은 '너무 작다'.

글을 읽고 쓰는 것과 관련하여 올해 해야 할 일은 크게 네 가지 정도이다. 한 권의 번역과 두 권의 저술, 그리고 석사논문. 그리고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내년 1학기와 2학기에도 휴학 없이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짧은 분량의 원고 청탁이 정기적으로 있고, 비정기적으로도 들어온다. 오늘도 주말이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다.

일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지 말자, 8할만 하자'는 생활 신조로 살아왔고, 그래서 시험 전날에도 밤을 새는 일 따위 전혀 없었지만, 올해는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달아올랐을 때 두들겨서 꼴을 잡아놓아야 한다. 책꽂이에는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아무 일 없이 그저 책을 읽는 행복'은 불완전한 이상에 불과하다. 그렇게 살고 있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써먹을 수 없는 지식을 잔뜩 축적해나가는 것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파악해내기 위해서는 구성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매주 쓰는 칼럼은 폴 크루그먼의 정신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몇 편 쓰지도 않고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지만, 그것은 그들이 팔을 휘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를 건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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