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기본적인 질문. 계급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사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1950년대부터 1990년대 무렵의 대한민국처럼
사회 내 계층 이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사회가 과연 얼마나 될까? 20세기 중반 이후 대한민국이 겪은 급격한 경제 발전은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며(경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바로 그 '비정상적' 상황에 기반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질문. 대학 교수 자식들이 대학 교수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들은 노동자가 되는 나라. 필리핀과 동남아시아만 그럴까? 영국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자의
아들 테리 이글턴이 영문학 교수가 되었을 때 그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와 계층이 전부 파괴된 채 혼돈 속에서 출발한 대한민국같은 나라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계층이 어느 정도 분화되어 있고 그것이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식의 계층 이동과
신분 변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한국도 이제 필리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계층에 따라 주거지가 나누어져 있고 입는 옷이 다르고 생활하는 문화가 다른 것은 필리핀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물론 '현재'의 한국인들은 그런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계급의 차이가 생긴다고 해서
사회가 바로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로 치닫는다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이 글(에서 퍼온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고 있다. 한국이 그런 식으로 망하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묵시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 대답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계층간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결국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출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의 글은 '경제'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치'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 없는 정치' 말이다. 지금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조직적으로 '기존 정치권'이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를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한심스럽게 진행되어오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덧말) 여담인데, '사회를 지배하는
1%'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 않나 싶다. 현재 인구를 5천만으로 잡으면, 그것의 1%는 50만이다. 수능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수능 1%로는 SKY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기도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SKY 나와도 대한민국 1% 안에 못 낀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한 해 SKY 졸업생들의 숫자는 같은 연령대에 속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보다 당연히 더 적다.
사소한 레토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대한민국 1%'라는 헐거운 표현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네티즌과 대중들의
진지하지 못한 시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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