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6

'진보신당은 정치할 생각 없나?'라는 비판에 대하여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모순된 요구를 할 경우, 우리는 그 요구를 하는 사람이야말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가령 '100원 줄테니까 곰보빵이랑 우유 사오고 500원 거슬러와' 같은 소리를 학생 A가 학생 B에게 하고 있다고 해보자. A는 B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삥을 뜯고 있다.

진보정당의 '정치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사태가 관찰된다. 인터넷에서 진보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이래라 저래라 시리즈를 연재하는 사람들은 곧잘 '너희들은 너무 유연하지 못해, 너희들은 정치적인 행동을 할 줄 몰라'라고 훈수를 두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유연성이란 한미 FTA를 토론다운 토론 없이 통과시키거나, 이라크에 파병을 하거나 하는 그런 것이다. 지난 정부의 그러한 행동들, 말하자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행동을 놓고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이 비판할 때, 지난 정부의 옹호자들은 말한다. '너희들은 정치를 몰라. 유연함을 배워야 해.'

그리고 노회찬이 조선일보 9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아예 안 갔다면 모르겠으되, 초청받아서 갔다면 덕담 한 마디 안 해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는 '정치적 유연함'을 요구하던 자들이, 갑자기 노회찬에게 안티조선의 불굴의 투사가 되라고 요구한다. 노회찬이 조선일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에 대해서 나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매우 반대한다.) 다만 그의 '정치적 행동'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들의 모순된 태도에 대해서는 지적해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대체 그들은 왜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실책에 대해서만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한 사람의 정치인이 있고, 그가 진정 정치적인 (혹은 현실정치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하고자 한다면, 죽은 노무현의 과오를 억지로 옹호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선일보 90주년 행사에 참석해서 덕담 한 마디를 해주는 편이 낫다. 앞서 말했듯 나는 노회찬의 저 결정에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정치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며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문제삼지 말라고 말해왔던 자들이, 진짜 '정치적'인 행동 앞에서 비아냥거리는 것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의 판단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조중동과 말로 다투던 노무현은 결국 조중동이 바라던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노회찬은 참여정부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던 삼성과 전면전을 펼쳤고, 그 싸움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정치인이 겉으로는 웃되 속으로는 싸우는 것이 나는 더 옳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대립각을 펼치고 안티조선하면서, 결국 조중동이 바라던 세상을 만들어버린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 않을까? 남에게 일관성이 없다고 욕하지 말고, 그 말을 하는 스스로가 과연 일관된 기준을 견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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