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8

용산을 위해 노회찬을 지지한다

5월 27일,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의 트위터에 실망스러운 속보가 떴다. 5월 28일로 예정된 선관위 주최 서울시장 후보 TV 토론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발목을 잡았다. 직전 전국선거 득표율 10% '이상', 또는 5석 이상 원내정당의 후보, 그도 아니면 언론사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5% '이상'이어야 선관위 주최 TV 토론에 초대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규정 때문에 노회찬은 다른 후보들의 동의가 있어야 TV 토론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 자유선진당의 지상욱 후보가 모두 동의하였지만, 오세훈 현 시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TV 토론이라는 것이 생긴 후 가장 많이 초대받은 정치인인 노회찬이, 정작 본인의 선거를 위한 TV 토론에는 참석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다. 대체 왜 오세훈은 노회찬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것일까? 노회찬의 지지율은 앞서 말했듯 현재 5%가 되지 않는다. 노회찬의 지자자 분포는 오세훈의 지지자 분포와 거의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지지율, 당선 가능성, 지지자 분포 등 모든 요소를 다 따져봐도 노회찬은 오세훈의 당선을 방해할만한 요인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공정한 토론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오세훈은 노회찬의 마이크를 빼앗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5월 18일 백분토론에 출연한 노회찬은 늘 하던대로 능숙한 화술과 현란한 비유를 구사하며 오세훈을 몰아붙였다. 복지 예산 증가율이 도로 건설비 증가율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사실, 무상급식이 비현실적이라고 오세훈이 말하지만 이미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드문드문 폭소가 터졌고, 오세훈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노회찬이 다섯 사람, 아니 여섯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그들을 기억하냐고 물었을 때, 그리고 오세훈에게 "서울 시장으로서 서울 시민들에게 사과할 용의는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오세훈은 대답했다. "용산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오세훈이 노회찬과의 TV 토론을 회피하는 정확한 이유를 우리가 알아낼 수는 없다. 소수 정당의 후보자를 괄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TV 앞에서 자신의 정책과 공약의 허점이 드러나지 않는 편을 택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토론에 약한 한명숙 후보와 1:1로 대결하는 구도가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노회찬이 TV 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는 작년 1월 20일 우리의 양심을 뒤흔들었던 한 사건에 대해, 서울 시장의 공식적인 입장을 다시 한 번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회찬이 없는 서울시장 후보 TV 토론에는 용산 참사도 없다. 그는 용산 참사를 기억하고 현직 시장에게 사과를 요구한 유일한 야당 후보인 것이다.

나는 선거가 이기고 지는 것을 판가름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거는 누군가를 투표로 심판하고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파악해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오세훈을 이기기 위해 노회찬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이 선거를 전략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지만, 서울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용산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나는 실존적 차원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대할 수밖에 없다.

오직 노회찬만이 용산 참사를 기억하고 TV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런 노회찬이 아닌 다른 그 누구를 찍는다면, 우리는 용산 참사를 흘러가는 세월 속에 흐려져가는 기억 속에 묻어버리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삶보다 건설 자본의 이익이 중요하다고 대놓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자본의 힘에 짓눌려 뜨거운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은 후 차가운 시신보관소에서 영겁처럼 긴 시간 갇혀있었던 약자들의 눈물을 기억하고 그것이 서울 시장으로 대표되는 이 도시 자체의 문제임을 굳이 상기시키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노회찬을 지지하는 것은, 그래서 적어도 내게는, 실존의 문제다. 나 역시 용산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용산 참사의 유가족, 제2의 제3의 새로운 용산 참사의 현장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철거민들과 연대하는 방법은, 용산 참사를 기억하는 누군가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언 기회를 빼앗은 오세훈의 정치적 행위를 비판하며, 한 사람의 서울 시민으로서 노회찬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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