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통수권자가 될 수 있는 자격 여부와 군필 여부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은
모병제 국가지만 베이비붐 세대는 베트남전과 관련해 징집 영장을 받은 경험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국이어서 옳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군대를 갔다 왔냐 아니냐로만 따지는 것은 유치한 소리라는 것이다.
요점은 누군가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느냐, 그 책임 의식이 적절한 실천으로 뒷받침되고 있느냐 여부이다.
군대에 갈 수 있는 사람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 회피를 나타내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물론 고의적인
병역 회피는 나쁘다. 그러나 오직 그것만을 놓고 이명박을 비판한다면, 이명박 비판자들의 논리는 금새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에 갔다 왔냐 아니냐 같은 말초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한, 여성 대통령도 장애인 대통령도 있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를 놓고 한 사람의 공적 인생을 평가해야 하며, 오직 하나의
징표인 '군필 여부'만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현명한 담론 전략이 되지 못한다.
이명박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혐오로
문제를 끌고 들어갈 경우, 적지 않은 수의 고연령층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비아냥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이 그리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겪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이명박의 추한 외모와 그 위에
뒤덮인 명품들은, 언벨런스가 아니라 차라리 '가능성'이며 '희망'이다. 이명박을 비판하는 당신보다는 차라리 이명박에게 더
'인간적'으로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명박이 경례를 AM으로 한다'며 비판하는 것과, '이명박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굳이 어떤 가치를 표방하고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저 새끼는
미필'이라고 말하면 그만인데, 그렇게 말하는 군필자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대한민국의 군대 혹은 그 군대에서 보낸 자신의 지난 몇
년을 긍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을 인권의 이름으로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의 여러
행태는 반인권적이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재수 없는 인권단체 나부랭이'의 일부로 내가 되려 비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무릅써야 한다. 하지만 군대 문제에 있어서 적지 않은 수의 남성은, 자신이 대한민국의 군대를 사랑하고 긍정하지도 않으면서 군대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욕한다. 그것은 자가당착이며, 듣는 이를 설득시키기 어려운 화법이다.
이명박을 미워하고 싶다면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라.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명박이 그렇게 온갖 부정적인 가치를 현현하고 있는
존재라면,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사랑하고 있는 한 당신은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런 미움은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비판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명박을 미워하기 위해 이명박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와 지향을 지니고
사는 삶, 그러한 가치 하에 이루어지는 비판, 나는 그런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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