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3

한편 안희정과 이광재는

김두관과 달리 좌희정 우광재는 이번 선거를 통해 '부활'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 '정통 친노'들은 정작 선거 과정에서 그리고 그 뒷풀이 과정에서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일을 상당히 꺼리는 편이다. 대신 그들은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세대론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려고 시도한다.

- 친노 세력의 부활이란 분석도 있는데요.

이번 선거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을 맺었던 분들만이 아니라 (반대로) 오세훈 시장도 당선됐습니다. 저는 (선거 결과를) 세대 에너지의 표출로 봅니다. 1971년에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지 꼭 40년 만에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 40대가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죠.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8·15와 6·25를 겪었습니다. 시련이 잠재력을 만듭니다. 대학 시절 광주항쟁과 군부독재의 탄압을 겪으면서 치열한 삶을 산 386세대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광역단체장에 듣는다]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경향신문, 2010년 6월 19일)


안희정의 경우는 좀 더 감성적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대론을 강조한다. 그가 썼던 강렬한 어휘인 '폐족'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온 후 다음과 같이 이번 선거의 의의를 정리한다.

-젊은 광역단체장들이 당선되면서 40대 기수론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와 전쟁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켰던 세대, 보릿고개를 넘겼던 세대가 바로 우리 부모님 세대입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리더십이 ‘박정희식 리더십’이었습니다. 이제 40대 중후반, 50대 초반에 진입한 산업화 세대의 후예들이 대한민국 전면에 나서서 새로운 21세기 대한민국 리더십을 형성해야 하고, 그게 바로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국민들께서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신 것으로 봅니다.”

-40대 지도자들의 특징이 이른바 ‘박정희 리더십’과 다르다면.

“부 끄러움을 아는 세대라고 할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산업화와 전쟁을 겪으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세대였잖아요. 총알이 빗발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겪은 그런 세대에게 예의염치와 시민의식을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들은 그런 부모님 세대가 형성시켜준 물질적인 기반 위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입니다. 자기가 한 말을 뒤집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세대라는 말입니다. 그런 바탕 위에 룰을 만들고 그 룰을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광역단체장에 듣는다]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경향신문, 2010년 6월 10일)


지난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안희정은 그 주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가 이번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민주정치 10년 동안 해왔던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세종시 건설, 지방재정의 확충,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한 수도권 규제정책 추진, 양극화 시대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복지재정 확충 등 민주정부의 정책이 이명박 대통령 들어서는 모두 다 거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민주정부 10년에 대해, 민주정부 10년을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그들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비교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같은 인터뷰


노무현 김대중 시대를 묶어서 '민주정부 10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유의할 것. 게다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심판을 받았으되, 이명박과 비교해서 조금씩 용서를 받았다는 식의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유독 인터넷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친노 장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친노 장사'라고 불릴만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던 정치인과 정치세력은 단 하나다. 나머지 민주당 계열은 그 세력이 불러일으키는 노풍의 이익을 보고 싶었지만, 동시에 역풍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지는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그렇다. 내가 굳이 '친노 장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이유는 실제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오른팔과 왼팔조차도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 검찰에 의한 정치 타살, 민주주의 압살' 같은 극단적인 수사를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좌희정과 우광재는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큰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지난 정부의 과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정치자금법 관련하여 전과가 있거나 당장 도지사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정치인들이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인터넷에서 난리치는 '유빠+노빠'들보다 이 정치인들의 태도가 훨씬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미련을 못 버린 당신들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들고 저주와 분노의 정치를 계속하고자 할 때, 그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두 보좌관은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좀 하자는 말이다.

2010-06-18

친노 장사와 보수 결집

내가 지난번에 쓴 칼럼인 "이제 그를 보내드리자"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정치적 상징'으로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계속 논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내 블로그에 리플을 다는 어떤 분은 계속 그 주장을 "노무현이 지역구도의 버팀목이 되니 이제 노무현은 금칙어"라고 요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노무현 그 자체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무현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세력과 전략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의견을 펴는 '개혁적 네티즌'들의 독해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편협하며,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을 단순한 감정 싸움으로 몰고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정치 세력들이 노무현 타령을 하면 할수록 정치 구도는 노무현이 바라고 있던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가? 이것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 입증의 문제이므로, 6·2 지방선거 이후 여권 혹은 보수층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친박의 좌장 노릇을 하다가 박근혜를 버리고 이명박에게 붙어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및 원내대표 자리를 꿰찼지만, 정작 선거가 망해버려서 난감한 처지에 이르게 된 김무성의 말을 들어보자.


패인은 뭐라고 보시나요.

“제일 큰 건 야권은 후보 단일화를 했고 여권은 정체성을 같이하고 당을 같이하면서도 분열됐다는 겁니다. 공천 잘못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요. 친이·친박의 당내 갈등 양상에 대해 국민이 큰 실망도 했고….”

6·2 이후 정치를 말한다 ② 김무성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중앙일보, 2010년 6월 14일)


한나라당과 범 보수진영의 내부 분열이 지방 선거 패인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결을 회복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가령 '범 보수'에 속하지만 한나라당에 투항하지 않고 독자 세력을 견지하고 있는 이회창 같은 경우, 이런 '분열에 따른 패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회창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며 앞으로 어떤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


져선 안 될 선거에서 졌다고 하셨는데요.

“저나 당이 ‘지지는 않겠지’란 안이한 태도를 가졌던 게 제일 잘못이죠. 근본적으론 현 정권에 대한 응징 심리가 친노 세력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중략)…

수도권에선 보수도 진보 진영처럼 선거 연대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보수 쪽은 그런 필요를 덜 느꼈죠. (진보 진영의) 정당 간 연합이나 연대가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좀 예상 밖이었다고 인정합니다.”

6·2 이후 정치를 말한다 ③ 당무 복귀하는 이회창 선진당 대표(중앙일보, 2010년 6월 17일)


이회창의 선거 이해는 간단하다. 이쪽도 저쪽도 분열되어 있으므로 선거 연합이 안 될 줄 알았고, 그래서 더 힘이 강한 쪽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쪽은 뭉쳤고 이쪽은 안 뭉쳐서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회창은 그 키워드로 '친노'를 꼽고 있다.

정치세력이 표상하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권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순수한 이익 연합의 결성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18로군이 각자 노리는 이익은 달랐어도 '동탁을 잡고 한나라를 지키자'라는 대의명분을 세워서 모일 수 있었듯, 각기 다른 이익집단을 포괄시킬 수 있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패배 원인을 '친노의 결집'으로 보고 있는 이회창 같은 보수세력에게, 자신의 진영도 결집해야 한다는 당위가 주어질 때, 그가 택할 수 있는 레토릭은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친노'의 깃발을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세력은 사실 많지 않다. 유시민과 국참당의 선거 전략이 그것이었고, 다른 '범 개혁 진영'에서는 그런 대립구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교조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으로 교육감 선거를 치르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친노'가 한나라당과 범 보수가 아닌 다른 모든 세력을 포괄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딱지를 붙여서 상대방을 하나의 괴물로 등장시키고 아군의 결집을 도모할 수 있다면 이회창이나 다른 파란색 진영에게는 그러한 사실 관계가 문제될 리 없다. 따라서 '친노'라는 레토릭은 현재로서는 정치적 이익을 전혀 가져다주지 못하며, 다만 갈라진 범 여권에 필요한 접착제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나는 '정치에 저도 관심 많고요, 그러니까 한나라당은 없어져야 하는 거고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노동의 정치까지 포함하는 '넓은 정치'에 대해 무지한 것은 넘어가더라도, 의회에 진출한 보수정치 세력들 사이에서의 움직임과 갈등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친노 세력'이라는 말은 당연히 '반노 세력'에게 결집해야 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왜 이것을 설명까지 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치에 관심은 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인터넷 세상에서 말이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대해 지금 당장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적' 감정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런 자들의 정치적 기동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된다.

'우리는 같은 편인데 서로 팀킬하지 말자'느니, '순망치한'이라느니, '어차피 중간까지는 가는 길이 비슷하다'느니 하는 어설픈 레토릭으로 정치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세력과 집단 사이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고 보면,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단지 사람들에게는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0-06-16

참여연대 서한 논란

'정부'와 '국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에서 필요한 공적인 업무, 즉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 결성된 여러 집단의 합집합일 뿐이다. 행정부만으로 축소시켜놓고 보자면 더욱 그렇다. 정부의 입장은 한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 나라에서 모든 의견이 정부의 것과 일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의 이익에 반하거나, 정부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국가의 무언가를 침해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고 있다. 극우 신문들이 그런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나름 합리적이고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비슷한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정부가 곧 국가인 것은 왕조나 일당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합법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가 없는가이고, 그 개념은 근본적으로 국가와 정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성립한다.

참여연대의 행동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망신을 당했는지도 미지수이지만(유엔에는 지금도 수많은 NGO들이 자국 정부의 입장과 반대되는 로비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미비한 사건에 '전 세계의 이목' 따위가 쏠리는 일 따위 전혀 없으니 안심하시길),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을 시민사회에서 문제삼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떠들지만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체득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는 국가가 아니다. 오직 국가만이 한 영토국가의 범위 내에서 공공선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가, 라는 문제를 젖혀두고 생각해보자. 설령 저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다 해도, 말 그대로 '비정부단체'인 NGO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견해를 UN에 제출하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익에 해가 된다는 발언이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 이해 수준을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써 한국의 국격을 손상시키고 있다.

2010-06-14

이제 그를 보내드리자

나는 이제 우리 모두가 그를 진정으로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적대시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 보수 진영도 그렇거니와,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동정심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고자 하는 일부 ‘개혁·친노 세력’도 그렇다. 노무현에 대한 추모와는 별개로, 이제 더는 그가 정치적 소재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싶다. 그것은 떠난 사람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예의가 아닐 뿐더러, 정치적으로도 또 정치공학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가장 즉물적인 차원부터 시작해보자.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상징’으로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반노(反盧) 정서를 자극함으로써 한나라당과 그 지지세력을 결집시킨다. 현재 가시화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을 매꿔주는 ‘외부의 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 변화하거나 한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지분을 크게 잃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나라당이 분열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노무현은 그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계속 읽기


* 한겨레의 오피니언 사이트 '훅'에 보낸 원고입니다. 한겨레를 읽는 친노 성향의 '시민'들을 예상 독자로 삼아서 쓴 글입니다. 리플은 한겨레 사이트에 남겨주셔도 되고 여기에 달아주셔도 괜찮습니다.

2010-06-03

진보는 분열로 망했고, 보수도 분열로 망한다

강남3구에서 몰표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한명숙 후보의 패색이 서서히 짙어가고 있다.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선거인 수가 많은 세 구에서 밀집된 표가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좋은 징조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은 서울시장 투표의 결과와 상관 없기 때문에, 나는 지금부터 이번 선거의 갈무리를 시작하려 한다.


한나라당: 친박 없는 친이의 몰락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이변은 지난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 민주당,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 한나라당'의 색이 칠해지는 영역이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전통적인 한나라당 텃밭인 경상북도 구미에서, 이번에는 23명의 시의원 중 한나라당은 9석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14명 중 2명은 진보 의원이며, 그 중 하나는 28세의 초선 무소속 김수민 의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이렇게까지 극적인 변화를 '민주당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석 배분을 살펴보자. 진보 성향 무소속 1석, 민주노동당 1석, 한나라당 9석, 한나라당 공천탈락한 무소속 7석, 친박연합 4석, 민주당 1석이다(이 자료는 김수민 의원의 트위터 @sumin_k 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한나라당 공천탈락한 무소속과 한나라당을 더하면 15석 아니냐는 말을 누군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천에 탈락했으면 선거에 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소속을 다 더하면 8석이고, 그것은 전체 한나라당 9석과 거의 대등하다. 한나라당 깃발 꽂으면 당선되는 시대가, 구미에서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한나라당'이라는 단어에 속아넘어가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은 단일한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그 속에는 적어도 두 개의 커다란 정치 세력이 상호간의 이질성을 억지로 봉합한 채 묶여 있다. 일반적으로 그 세력들은 '친이'와 '친박'이라고 통칭된다.

'친이'는 이명박 쪽에 줄을 선, 서울 특히 강남3구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부동산 소유 계층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정치세력이다. 반면 '친박'은 박근혜에게 줄을 대고 있으며 경남 경북의 각 지역에서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찾는 일종의 토호 세력의 정치적 구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친박과 친이는 원래부터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세력이었지만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아직까지는 하나의 정당을 이루고 뭉쳐 있다. 하지만 친박과 친이가 서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종시 문제이다. 수도권에 기반을 둔 친이와 경상도에 기반을 둔 친박은 세종시 이전을 두고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복당한 박근혜가 천안함 침몰 전까지 이명박을 몰아붙인 레파토리가 무엇인지 떠올려보면 금방 그 싸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가 막 시작될 당시, 이대로 가면 서울 외 지역에서 판세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챈 여당의 선거 지도부는 박근혜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으나, 이미 세종시 문제로 '비 맞으면서 죽은 애인 기다리는 미친 여자' 취급이나 당한 박근혜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려보내겠다는 친이쪽에 힘을 보태줄 리 만무한 것이었다.

그 반대로 생각해보면, 앞서 우리가 예로 든 구미 사람들은, 박근혜가 직접 와서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겠다고 약속해주지 않는 한, 한나라당 따위 찍어야 할 이유가 없다. 구미 사람들이라고 파란 색 보면 헉헉거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다. 구미 사람들도 나름의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지금까지 한나라당을 선택해 왔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박근혜가 없는 한나라당, 세종시 원안 대신 알맹이 빠진 수정안을 내려보내는 한나라당은 더 이상 지방 유권자들에게 한나라당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한나라당의 내분이 어떻게 수습될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이미 한나라당의 내분은 지방선거 하나를 통째로 말아먹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박근혜는 수도권의 지지 없이 어떻게 대선을 치를 것인가, 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동시에 한나라당의 선거를 완전히 주저앉힐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달성군에서 붙박이로 박근혜가 선거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군수후보가 당선되는 파란이 빚어졌지만, 그 패배는 박근혜만의 손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한나라당'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그러한 민심의 흐름은 설령 박근혜라고 해도 거스를 수 없을 만큼 거세다.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논리적 기반을 다져놓은 박근혜라 하더라도 '한나라당', 즉 이명박 정부의 형식 속에 있는 한 예전과 같은 지지를 얻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박근혜의 실패이기 이전에 한나라당의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동시에, 결국 강남3구라는 하나의 괴물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친이계의 빈약한 정치적 생명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서울시장 선거까지는 강남3구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 3시까지만 해도 한명숙이 우세했다는 사실이 드러내 보여주듯이, 이미 서울 내에서도 강남과 비 강남 사이의 갈등은 커져가고 있고, 강남은 점차 포위되고 있는 형국이다. 친이계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오세훈의 당선으로 가까스로 체면치레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두 세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한나라당의 갈등, 친이와 친박이 안고 있는 내재적 문제들, 모두 지금부터 시작이다.


민주당: '국참의 난'은 끝났지만

민주당은 크게 세 가지의 정치 세력이 경합을 벌이는 지역이었다. 우선 외곽에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기존의 정당을 흔드는 일에 익숙한 유시민과 그의 수하들, 즉 국참당. 한편 노무현 정권과 진짜로 명운을 함께했던 직계세력들, 즉 폐족들. 마지막으로 대충 목숨은 부지했지만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게 살아숨쉬고 있었던, 많은 분들이 못마땅해하는 구 민주당파.

심상정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이 이론의 여지 없는 2위로 자리매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유시민이 상주 노릇한다고 언론에 나오고 대선 주자니 뭐니 실컷 재미보고 있을 때 아무 말도 못하던 노무현의 측근들이 화려하게 부활해버리면서,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내부 갈등의 진행에서 한 기점이 되었다.

안희정은 충남에서, 이광재는 강원도에서 도지사가 되었다. 리틀 노무현 김두관은 아예 무소속으로 나와 경남에 회색 깃발을 꽂았다. 반면 유시민은 대구가 아니라 경기도를 택했는데, 본인의 뜻 같아서는 그냥 서울에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튼 경기도에 나와 김문수에게 패배하고 나서 영 모양새가 이생해졌다. 노풍(盧風)이 불긴 불었는데, 그게 유시민에게 유리하게 되지는 않은 것이다.

유시민의 계획은 수도권에서 자신의 전국구적 득표력을 한껏 과시한 다음, 그것을 통해 민주당의 당권을 쟁취하고, 민주당의 깃발과 조직력을 이용하여 대선에 나오는 것이었을 터이다(그게 아니라면 대구에서 나왔거나 정치를 그만뒀겠지). 하지만 본인이 당선되지 않았고, 민망하게도 친노 직계들이 각자 지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해버림으로써, '상주 노릇' 하던 외삼촌은 뻘쭘하게 됐다. 인정받지 못한 양아들과 가장 아끼던 두 동생들이 떡하니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한명숙의 경우는 다소 애매하다. 강남3구의 벽에 가로막혀 대단히 안타까운 패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그는, '노무현의 남자들'과 달리 서울시장에 나왔고 수도권이 아닌 지역을 자신의 기반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한명숙과 그를 지지한 민주당 중앙 세력들이 결집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버린 친노 적자들과 쉽사리 연합하기 어렵다. 앞서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세종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노무현'이라는 기표의 단일성, 그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민주당의 구성 세력들은 서로간의 갈등을 최대한 봉합하고 드러내지 않는 쪽을 택해왔다.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유시민은 나름 선전했지만 결국 도지사가 되지 못했다. 한명숙은 서울시장 후보였고 대권을 노리고 있다면 세종시 원안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의 고너길, 리건, 코딜리아는 각자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종시 원안 찬성 쪽으로 기울어진다. 게다가 그 편이 '노무현의 뜻'을 표방할 때에도 훨씬 유리하다.

강원도의 세종시에 대한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희정과 김두관은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할 수 없고, 민주당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려 한다면 반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한명숙이 뭔가 큰 뜻을 품고 있다면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것은, 그가 이 선거에서 확인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므로, 어렵다. 민주당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승리하고 그 승리의 수혜자가 친노 적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지기반 없는 진보정당의 미래

그리고 진보신당으로 돌아와보면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유시민 지지자들은 심상정이 사퇴까지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무효표가 얼마니 그 중에서 심상정 찍은 표가 얼마니 이러고 있다. 머리로는 노회찬을 찍었지만 가슴으로 한명숙 찍었다는 신앙 간증은 또 왜 이렇게 많은가. 전국 비례대표 3%를 가까스로 넘겼고, 노회찬이 14만 표 이상을 얻었지만, 진보신당의 미래는 암울하다. 과연 어떻게,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난 진보신당의 약점은 확실한 지지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으로서 회복하기 힘든 약점이다. 민주노동당은 인천에서 두 명, 울산에서 한 명의 구청장을 배출했다. 단일화 문제를 염두에 두더라도 훌륭한 성과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일부 기초의원을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그 어떤 당선도 낳지 못했다. 남은 것은 숫자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지지율과 득표 뿐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가 전통적인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을 잃어버린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민주노총, 각 지역 노조, 지역 단체 등 다양한 집단들이 아직 두 정당 사이에서 민주노동당을 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후원금과 득표와 기타 여러 가지 요소들의 실질적 차이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심상정을 비난하지 못하겠다. 심상정이 사퇴를 선언한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총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상정이 사퇴하자 민주노총은 다시 심상정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유시민을 진정 싫어하고 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진보신당의 대표였던 사람이 지지 유세까지 했다는 것이 너무도 짜증스럽지만, 민주노총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진보신당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진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노회찬은 열심히 트위터도 하고 쌍권총도 차고 다니면서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그 자체는 유의미하고 매우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 젊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조직되어 있었다면 그러한 시도는 더욱 큰 결실을 낳았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노회찬이 부딪친 '현실'은 바로 그런 현실이다.

14만 표.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노회찬의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를 감안하면 턱없이 낮다. 왜일까? 뚜렷한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 채 노회찬의 개인적 인기에만 의존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회찬에게는 '누가 되건 말건 노회찬'이라고, '누가 되건 말건 노회찬이 되는 것이 내게 이익'이라고 믿고 있는 그런 극렬한 지지층이 없었다. 그가 노리고 있던 지지층은 '그냥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믿는, 유시민과 한명숙의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범 야권 연대'면 다 좋다고 보는 조직되지 않은 사무직 노동자들이었다.

노회찬의 문제는 한명숙과 단일화를 하지 않은 것 따위가 아니다. 한명숙과 단일화를 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지지층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바로 노회찬의 문제다. 나처럼 떠벌이는 사람들은 선거 국면에서 한 줌도 안 되고, 실제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다. 민주노총처럼 확실하게 돈과 표를 가져다 주는 어떤 조직이 필요하고, 그것을 진보정당의 토대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진보신당은 향후 대선까지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한 지지기반은 반드시 지역 단위일 필요는 없고, 직능별 단체일 수도 있다. 가령 인디밴드 조합이라거나, 출판 노동자 조합이라거나, 자유기고가 연맹 같은 것들.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것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또 저런 집단들이 없고(있어도 도드라지는 활동과 조직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래서 조직되지 않은 지식노동자들은 '반 MB 연대'나 '정권 심판론' 같은 공허한 레토릭에 휩쓸려 비판적 지지론의 피해자가 되거나 도리어 가장 큰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그래서 사실상 '분열'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분열을 통해 진보신당은 지지 기반을 잃어버렸고 민주노동당은 파괴력 있는 대형 정치인을 상실했다. 진보신당의 두 에이스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개별적인 행보는,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갈등: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진보신당의 경우를 논외로 한다면 두 거대 보수정당은 공통적으로 세종시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친박과 친이의 갈등도 그렇고, (앞으로 벌어질 것이라 예상되는) 한명숙 편에 선 구 민주당계와 정통 친노 세력간의 갈등도 그렇다. 결국 그 모든 갈등은 수도권과 비 수도권의 격차로부터 비롯하는 것이며, 세종시 문제는 그 갈등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박이 등을 돌리면서 한나라당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서울 경기 외 지역을 설득할 수 있는 화법과 창구를 상실했다. 그 빈틈을 타고 노무현의 직계 후손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무소속 기초단체의원 및 지자체장이 탄생했다. 그 결과 탄생한 민주당의 부활한 친노들은 역시 같은 갈등을 민주당 내에서 재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예측한다. 그들 모두 각자의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대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 문제로 대변되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문제에서 그들은 단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진보정치는 혼미에 빠져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진보신당은 지지층의 이탈과 지역 기반의 부실함을 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반 MB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신당과 비교하면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반대로, 전통적인 지지 기반 외의 영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로만 한국 사회의 갈등의 축이 집약되면, 결국 어느 지역에 어떤 공사를 하느냐가 선거의 쟁점이 되어버린다. 지방에서 토건질을 하느냐 서울에서 토건질을 하느냐를 놓고 유권자들이 싸우는 꼴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진보정치가 진정 진보정치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그와 다른 제2의 좌표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보 양당의 선거 결과를 놓고 볼 때, 아직 그 가능성은 묘연하기만 하다.

이 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요약해보겠다. 첫째, 한나라당 이겼다고 좋아하지 말자. 한나라당도 하나의 한나라당이 아니고, 민주당 역시 하나의 민주당이 아니다. 둘째, 진보신당의 성적표가 실망스럽다고 울지 말자. 그 정도 나온 것도 현실을 놓고 볼 때 감지덕지하다. 셋째, 경기도에서 졌다고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화 내지 말자. 유시민은 애초에 민주당의 반란자였고, 그래서 조직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노무현의 유지 승계 때문에 경기도민들이 원하는 '세종시 원안 반대'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이지도 못했다. 심상정을 탓하지 말고, 유시민이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포지션을 탓하라는 말이다.

개표 방송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벌써 해가 떴다. 앞으로 불어닥칠 폭풍이 예상되는 가운데, 나는 정말 이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 사회의 주요한 갈등의 축은 이미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으로 바뀌었고, 진보정당은 그것을 넘어서는 제2의 축을 발견해서 그것을 스스로의 지지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허접한 정세 분석 및 예측이 아니라, 바로 저것이며 그게 전부다.

2010-06-01

다시, 용산과 노회찬

영화 <더 리더>의 원작 소설을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옛 번역본으로 읽었다. 새로 나온 판본과 다를 게 없다고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 책의 뒷부분을 보면 역자 소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역사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끊이지 않는 논쟁이 이어지는 역사학과 달리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는 법학에 매력을 느껴 법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의아했다. 독일에서는 그렇단 말인가? 법학에 명쾌한 결론이 있다고?

5월 31일,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1심 판결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의 공소 내용이 화염병으로 인한 발화를 특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발화의 이유를 찾을 수 없으므로, 화염병으로 인해 망루에 불이 났다는 사실오인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in dubio pro reo, 불리할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한다는 형사 재판의 제1원칙은 온데간데없고, 발화 원인을 특정하지도 못한 검찰의 공소장을 따라 아들이 아비를 죽였다는 내용의 유죄가 선고된다. 발화 원인이 다른 것일 수 있다는 피고인측의 주장은 '합리적 의심'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정치 재판이다. 한나라당이건 구 민주당 계열이건, 그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고 있는 건설자본의 입김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오세훈도 아니고 한명숙도 아니다. 건설사들이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무죄를 선고받는 것은 그 건설사들의 돈벌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므로, 법원은 '합리적 의심'을 비합리적으로 줄여버린다. 다시 한 번 묻자. 검찰은 발화 원인이 화염병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피고인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이성의 보편성을 믿는다. 그러나 구체적 상황에서 작용하는 '이성들'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고 지레 가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이성이 정치적,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의 주체임을 자임하는 자들은 정치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이성적 판단의 이름 하에 포장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법학에서 그 어떤 명확한 결론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법정의 논리가 아니다. 정치의 논리로 그들은 용산 참사의 당사자들을 감옥으로 몰아가고 있다.

노회찬을 찍는 한 표는 그래서 사표가 아니다. 죽은 후에도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사람들, 살아서도 죽은 자들에 대한 책임을 법의 폭력 앞에 떠안게 된 사람들을 살리는 생표[生票]다. 용산 참사의 해결은 정치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의 첫걸음은 노회찬의 지지율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오세훈에게 다섯 명의 희생자와 한 명의 경찰 대원의 이름을 묻는 바로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법원에게 또 토건족들에게 보란듯이 과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당신이 최소한의 여유가 된다면, 노회찬 선본에 지금이라도 후원금을 보내주시기를 희망한다. 벌써 오후 5시 30분이지만, 내일 선거가 끝난 이후라도 치루어야 할 여타 잔금이 대단히 많을 것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부끄러움 없는 돈이 모여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링크를 클릭해서 많은 분들이 지금이라도, 작은 쌈짓돈이라도 모아서 보내주시면 좋겠다. 나도 없는 살림에 또 5만원을 보탰다.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여러 악재가 겹쳤고 예상치 못한 충격까지 받았지만, 남은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부디 모두 힘을 모아주시길.

주가가 떨어지니까 전쟁에 반대한다면

맹자 양혜왕 상편의 첫 문답. 먼 길을 온 맹자에게 양혜왕이 묻는다. “어르신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시면 대부大夫[관직자]들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家에 이익이 될까?’하고, 사士와 서민들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게 됩니다.”(맹가, 안외순 옮김, 『맹자』(서울: 책세상, 2002), 15쪽.)

천안함의 침몰 이후 북풍 몰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스페인에서 발생한 은행 국유화 사태와 맞물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크게 치솟았다. 지방선거에서 줄곧 ‘정권 심판론’을 밀어붙이던 ‘범 야권’은 호기를 잡은 듯 바로 그 지점을 문제삼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쟁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세력이며, 심지어 그것은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한명숙 후보는 직접적으로 한나라당을 ‘전쟁’으로, 스스로를 ‘평화’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5월 28일 내걸린 새로운 플래카드에는 “전쟁을 막는 현명한 선택, 한명숙”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것이다.

그럼 전쟁이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한나라당과 정부가 주도한 북풍 몰이가 한반도에 긴장 상태를 유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주가는 급락했고 환율과 금값은 엄청나게 뛰어올랐다가 정부의 강경 태도가 다소 누그러들자 그에 맞추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풍을 통해 보수적인 표심을 결집시킨 것까지는 좋았지만, 경제 지표가 흔들리는 것은 여당의 선거 전략에 전혀 이롭지 않은 현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북풍에 대한 ‘경제적’ 비판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선거용 북풍 장사질 때문에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폭락하는 이 손해를 대체 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냐고 말이다.

주요 경제지표만을 놓고 볼 때 그 말은 크게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전쟁에 대해서는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요구되는 평화는 과연 진정한 평화일까, 아니면 일종의 님비(NIMBY) 현상처럼 ‘피 튀기는 일은 내 앞마당에서 하지 말라’는 집단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계속 읽기(한겨레 훅 링크)



* 한겨레의 오피니언 사이트 '훅'에 보낸 칼럼입니다. 저작권 관계상 전문을 블로그에 올릴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무역을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말한 독일 대통령이 어제 사임했습니다. 관련 기사는 여기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이라크 전쟁 당시 고위직에 있던 정치인이 '사람 하나 죽었다고 파병 안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되묻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이라크 전쟁 참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주가 떨어지고 환율 높아지니까 아이패드를 지를 수가 없잖아!'라는 유치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투정 뿐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