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8

친노 장사와 보수 결집

내가 지난번에 쓴 칼럼인 "이제 그를 보내드리자"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정치적 상징'으로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계속 논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내 블로그에 리플을 다는 어떤 분은 계속 그 주장을 "노무현이 지역구도의 버팀목이 되니 이제 노무현은 금칙어"라고 요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노무현 그 자체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무현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세력과 전략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의견을 펴는 '개혁적 네티즌'들의 독해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편협하며,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을 단순한 감정 싸움으로 몰고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정치 세력들이 노무현 타령을 하면 할수록 정치 구도는 노무현이 바라고 있던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가? 이것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 입증의 문제이므로, 6·2 지방선거 이후 여권 혹은 보수층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친박의 좌장 노릇을 하다가 박근혜를 버리고 이명박에게 붙어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및 원내대표 자리를 꿰찼지만, 정작 선거가 망해버려서 난감한 처지에 이르게 된 김무성의 말을 들어보자.


패인은 뭐라고 보시나요.

“제일 큰 건 야권은 후보 단일화를 했고 여권은 정체성을 같이하고 당을 같이하면서도 분열됐다는 겁니다. 공천 잘못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요. 친이·친박의 당내 갈등 양상에 대해 국민이 큰 실망도 했고….”

6·2 이후 정치를 말한다 ② 김무성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중앙일보, 2010년 6월 14일)


한나라당과 범 보수진영의 내부 분열이 지방 선거 패인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결을 회복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가령 '범 보수'에 속하지만 한나라당에 투항하지 않고 독자 세력을 견지하고 있는 이회창 같은 경우, 이런 '분열에 따른 패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회창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며 앞으로 어떤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


져선 안 될 선거에서 졌다고 하셨는데요.

“저나 당이 ‘지지는 않겠지’란 안이한 태도를 가졌던 게 제일 잘못이죠. 근본적으론 현 정권에 대한 응징 심리가 친노 세력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중략)…

수도권에선 보수도 진보 진영처럼 선거 연대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보수 쪽은 그런 필요를 덜 느꼈죠. (진보 진영의) 정당 간 연합이나 연대가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좀 예상 밖이었다고 인정합니다.”

6·2 이후 정치를 말한다 ③ 당무 복귀하는 이회창 선진당 대표(중앙일보, 2010년 6월 17일)


이회창의 선거 이해는 간단하다. 이쪽도 저쪽도 분열되어 있으므로 선거 연합이 안 될 줄 알았고, 그래서 더 힘이 강한 쪽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쪽은 뭉쳤고 이쪽은 안 뭉쳐서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회창은 그 키워드로 '친노'를 꼽고 있다.

정치세력이 표상하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권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순수한 이익 연합의 결성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18로군이 각자 노리는 이익은 달랐어도 '동탁을 잡고 한나라를 지키자'라는 대의명분을 세워서 모일 수 있었듯, 각기 다른 이익집단을 포괄시킬 수 있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패배 원인을 '친노의 결집'으로 보고 있는 이회창 같은 보수세력에게, 자신의 진영도 결집해야 한다는 당위가 주어질 때, 그가 택할 수 있는 레토릭은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친노'의 깃발을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세력은 사실 많지 않다. 유시민과 국참당의 선거 전략이 그것이었고, 다른 '범 개혁 진영'에서는 그런 대립구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교조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으로 교육감 선거를 치르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친노'가 한나라당과 범 보수가 아닌 다른 모든 세력을 포괄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딱지를 붙여서 상대방을 하나의 괴물로 등장시키고 아군의 결집을 도모할 수 있다면 이회창이나 다른 파란색 진영에게는 그러한 사실 관계가 문제될 리 없다. 따라서 '친노'라는 레토릭은 현재로서는 정치적 이익을 전혀 가져다주지 못하며, 다만 갈라진 범 여권에 필요한 접착제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나는 '정치에 저도 관심 많고요, 그러니까 한나라당은 없어져야 하는 거고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노동의 정치까지 포함하는 '넓은 정치'에 대해 무지한 것은 넘어가더라도, 의회에 진출한 보수정치 세력들 사이에서의 움직임과 갈등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친노 세력'이라는 말은 당연히 '반노 세력'에게 결집해야 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왜 이것을 설명까지 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정치에 관심은 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인터넷 세상에서 말이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대해 지금 당장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적' 감정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런 자들의 정치적 기동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된다.

'우리는 같은 편인데 서로 팀킬하지 말자'느니, '순망치한'이라느니, '어차피 중간까지는 가는 길이 비슷하다'느니 하는 어설픈 레토릭으로 정치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세력과 집단 사이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고 보면,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단지 사람들에게는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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