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4

고종석의 안철수와 최장집 생각

[고종석 칼럼] 안철수 생각, 한겨레, 2012년 9월 2일.

[최장집칼럼]책임정치를 위하여, 경향신문, 2012년 8월 27일.

누군가 늘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현상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양자 모두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한 문필가가, 현재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학자의 주장을 오해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한 마디 덧붙인다.

“안철수 생각”이라는 제목 하의 고종석 칼럼에서 주목해 읽어볼만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대의제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정치학자들도 안철수를 꺼린다. 이 정치학자 집단을 대표한다 할 최장집은 지난주 ‘책임정치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에서 “필자는 대선 후보 가운데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의제 정당정치에 대한 그의 오랜 신념을 생각하면 조금도 놀랍지 않은 발언이다. 그런데 최장집의 지지 조건을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후보는 박근혜일 수밖에 없다. (강조는 인용자)
나는 고종석이 저러한 단언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하다. 최장집의 칼럼을 검토해보자.

최장집은 한국의 대통령제가 ‘책임정치’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은 정당이 아니라 캠프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고, 임기 말년 지지율이 떨어지면 자신의 정당과 거리를 둔다.
임기 전반에 대통령은 “집권당 없는 대통령”이고자 여러 형태로 당의 영향력을 제어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에 이르러 그의 권력이 현저하게 약화될 때의 당정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어 당이 오히려 멀어지고자 한다. 대통령은 대선에 가까워오면서 오히려 당에 부담이 되고, 이제 당이 나서서 “대통령 없는 집권당”이 되기를 원하게 된다. 이러한 청와대-집권당 관계는 대통령을 유능하고 좋게 만드는 데 있어서나, 정당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나 실패하게 된 원천임이 분명하다.
그 결과 ‘이명박 심판론’을 들고 총선에 나선 야권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갈아치우고 ‘나도 이명박을 심판하겠다’고 나선 박근혜와 대립각을 세우기가 매우 곤란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이명박의 실정을 비판하기 위해 같은 당(이지만 다른 계파)인 박근혜를 찍겠다고 나서면, 사실상 유의미한 정치적 선택은 불가피하다.

즉, 최장집의 이 칼럼은 ‘나는 박근혜를 찍겠다’는 내용으로 이해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고종석은 그렇게 읽고 있다. 왜일까? 잘 모르겠다. 최장집 칼럼은 전체적으로 현재 ‘캠프’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선 국면이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현상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쪽은 같은 당의 대통령을 심판하겠다는 대선후보인 박근혜 아닌가.

고종석은 “대선 후보 가운데 정당을 바로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최장집의 말에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박근혜가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면,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편승하지 않고, 그 공과 과를 모두 이어받겠다는 태도를 내밀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어쩌면 아버지의 독재를 사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현재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종석이 안철수를 ‘지지’ 혹은 ‘응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그는 박근혜와 안철수가 낳을 수 있는 1mm의 차이를 위해,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는 정치학자의 원론적인 주장마저도 히스테리컬하게 ‘그것은 박근혜 지지가 아니냐’라고 묻는다. 대체 어쩌다가 한국의 정치 토론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심히 안타깝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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