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6

[북리뷰]초대형 참사는 작은 사고로부터

 [북리뷰]초대형 참사는 작은 사고로부터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찰스 페로 지음·김태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2만5000원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모든 것이 멈추고 있다.

물론 이 비극 앞에서 예전과 같은 삶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재난이 없었더라면 유지되었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켜야 할 소중한 삶을 모두 포기해버린다면 구태여 안전을 추구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을 딛고, 책을 읽는 것이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를 꺼내들었다. ‘Normal Accidents’라는 원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84년 첫 출간된 이래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고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뒤흔든 오늘날의 고전이다.

원자력발전소, 화학공장, 비행기, 배 등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자. 이것들은 모두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은 대단히 중층적인 하위 체계들을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하위 요소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만약 그 하위 요소들 가운데 몇 개가 동시에 오작동하거나 실수하거나 운이 나쁘게도 고장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엄청난 재앙이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이렇듯 “상호작용성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고 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밝혀진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되짚어 보자. 심지어 인천항에 짙은 안개가 껴 출항이 2시간 늦어진 것마저도, 그래서 항로를 변경하여 평소에는 가지 않는 다도해 해역을 통과한 것마저도, 어떤 의미에서는 ‘정상적’인 행위였다. 세월호에는 다른 것들이 무사하다는 전제 하에 한 발짝씩 ‘유도리’ 있게 허용된 부실 안전 요소들이 넘쳐났다. 컨테이너 박스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실려 있던 자동차 역시 그러하였으며, 20년 된 배를 마구잡이로 증축한 탓에 무게중심은 한껏 높아진 채 균형을 잃은 상태였다.

여객선이라는 기계적 시스템뿐 아니라, 해상 재난 구조라는 제도적 시스템마저도 ‘정상 사고’를 불러오기에 최적화된 상황이었다. 해난 구조 창구는 일원화되어 있지 않았고, 항해하는 선박들은 사고 시 진도 VTS가 아닌 제주 VTS로 무전을 보내는 관행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1차 구조 의무자인 선장 및 고급 선원들은 재난 구조 훈련을 거의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승객을 구조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소한 ‘정상적’ 부실과 관행이 뒤엉켜, 초대형 참사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는 직접적으로 미국의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에서 영향을 받아 태어난 책이다. 스리마일 발전소 사건도 그랬다. 평소에 늘 발생하던 그런 작은 사건들이 몇 개 동시에 발생하고, 그것들이 서로 뒤엉켜 다른 요소들을 마비시키면서, 초대형 참사가 발생할 뻔했다. 이 책은 그 사건에 대한 미국 지성계의 고찰이 낳은 것이다.

세월호가 속절없이 가라앉고 있던 그 시점, 정부는 이미 수명을 넘긴 고리 원전을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정상 사고’의 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막아야 한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 / 자유기고가>

2014.05.06ㅣ주간경향 1074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428174707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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