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이범준 지음·궁리·2만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인용하는 헌법재판소를 보며, 나는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결정문을 낭독하기 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을 운운할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학부 시절 법학과를 졸업했고, 비록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운 가락이 있다고 생각해왔던 나는, 내가 헌법재판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책이 몇 권 나와 있었는데 일단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를 골랐다. 이범준은 저널리스트답게 헌법재판소의 탄생, 구성, 정치권과의 관계 등을 ‘밖에서부터’ 고찰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 헌법재판소가 탄생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었고, 대법원에서는 제2차 사법파동이 발생했다. 헌법재판소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 같은 해 9월 1일이라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는 그 시작부터 ‘정치적’이었다. 책을 인용해보자. “다양성과 정치성이 1기 재판소의 특징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에 관여한 3명(이성렬·변정수·한병채), 검사 출신 1명(김양균), 교수 출신 1명(이시윤)이다. 나머지도 모두 변호사를 거쳤다. 판사로만 있다 재판관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러한 다양성은 2기부터 주춤한다. 그리고 3기와 4기에서는 정통법관들이 헌재를 장악한다.”(18쪽)
1기 구성원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변정수와 이시윤이다. 이시윤은 형사소송법의 1인자로, “한정합헌, 한정위헌, 위헌불선언 등 다양한 결정양식을 도입”(29쪽)했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출신 변정수는 현실권력은 기본권을 침해하려는 강한 경향을 가진 만큼 그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헌법재판이라는 태도를 보인다.”(29쪽)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여,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게 된 배경과 경과 등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실히 추적한다.
헌법재판소는 역설적이게도 ‘정치색’을 띠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1990년 7월 14일,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야당 의원 72명이 심판 청구를 했지만, 헌재는 심리와 선고를 차일피일 미루었고 사건은 흐지부지되었다. 헌법재판소가 2기를 맞이한 1995년 2월 23일이 되어서야 1990년의 국회 날치기 사건에 대해 전원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자,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민자당 후신인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6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안 등 11개 법안을 또다시 변칙처리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다시 2기 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이 청구된다.”(136쪽)
헌법은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높은 법이다. 그 헌법에 기반하여 기타 모든 법률 및 법률로 인한 행정행위까지 심판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법 체계 속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기관 중 하나다. 그러나 헌재는 지금까지의 전적을 놓고 볼 때, 법관의 양심과 법의 논리에 따라 기꺼이 정치 권력에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노정태 ‘논객 시대’ 저자 / 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229164505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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