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좋은 친구인 가스파리 박사가 만약 내 어머니를 욕한다면, 그는 주먹질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도발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모욕하거나 희화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발언이다.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신앙심 역시 존중받아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우리는 이와 같은 의견을 숱하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그들이 테러범이 되도록 만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타인의 종교를 모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악의 씨앗을 뿌린 서구 제국주의가 더 나쁘다 등등….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으로 시작하는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 첫 번째이다. 이것을 ‘가치 상대론’이라고 하자.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타인이 소중히 하는 무언가를 침해할 경우, 물론 그래도 테러는 나쁘지만, 이른바 ‘원인 제공자’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 두 번째일 것이다. 이것을 ‘도발론’이라고 불러보자.
대부분의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근거는 함께 작동한다. 앞서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부터가 그렇다. 나의 것이건 타인의 것이건 신앙심은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소중하므로, 그것을 함부로 모욕하는 것은 ‘주먹질’을 불러오는 도발 행위가 된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발생 직후 주요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이 내놓은 성명도 이와 대동소이했다.
이슬람교는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결코 성전으로 부르지 않으며 용납하지 않지만, 종교와 신앙에 대한 도발은 나쁜 행동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결국은 ‘도발론’으로 향하는 셈이 된다.
종교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이 내놓은 발언들도 같은 틀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신앙심 대신 종교의 자유 혹은 서구 사회의 소수자로서 탄압받지 않을 자유가 ‘가치 상대론’의 저울 위에 올라 표현의 자유와 비교 대상이 된다.
‘도발론’의 경우도 그렇다.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부터 시작해, 값싼 이주노동자를 얻기 위해 문화적 차이가 큰 무슬림들에게 취업 비자를 쉽사리 내주었던 서유럽 국가들의 역사,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극우적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극우 정당이 모두 ‘원인 제공자’로 간주되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도, 여타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서 제한될 수 있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사실관계를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일방의 책임으로만 몰아붙이는 것 역시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두고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든가, ‘종교적 심성을 도발하지 말라’ 같은 말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광경을 보면, 섬뜩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명백히 퇴행하고 있다는 징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 어머니를 욕하면 주먹질을 각오하라”고 농담처럼 말할 수 있었지만, 불과 500여년 전의 프랑스인들은 바로 그런 이유를 들먹이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을 벌였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역시 마찬가지다. 테러범들은 명백히 그들이 믿는 신과 그 신의 말씀을 가져다준 예언자의 이름을 외치며 범행을 저질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이들에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한국의 ‘샤를리 에브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학살 앞에서 애써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장막 너머의 신성한 권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만큼의 시민적 권리를 발견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선각자들이 많은 것을 바쳐오지 않았던가.
‘신성불가침의 최고 존엄’과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종교와 신앙과 권위를 조롱하는 자들이,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온 역사다. 그 희생과 헌신을 배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도 샤를리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52105075&code=990100&s_code=ao122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10억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모욕이라 느낄 풍자만화를 게재했다면, 10억 명 중 누군가 과격한 이들이 극단적인 대응을 할 것을 각오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답글삭제우리는 서구언론을 주로 읽지 이 문제에 대해 이슬람권의 시각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적은 정보만 읽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 적은 정보만 보아도, 이들의 테러행위를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두둔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샤를로 엡도의 표현이 이슬람에서는 금기이다, 타종교의 신성불가침 영역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모독하지 말라, 라는 비판은 있었습니다. 서구사회구조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테러행위는 이슬람 종교나 예언자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는 입장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구언론은 이들 테러리스트들이 범행 직전 신의 이름을 외쳤다는 점을 들며, 따라서 모든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모욕받으면 그같은 행위를 정당하다고 하나보다, 라는 전제 하에 많은 논의를 멋대로 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듣는 보도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죽으면 그의 남겨진 가족, 평생 해온 일 등을 읽으며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반면 아프간인의 사망은 숫자로만 나올 뿐이고, 그에 의해 우리의 시각도 많이 좌우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행하는 것을 보고 전체 무슬림들이 동질한 듯 해석하고, 그의 행동에 대해 이슬람권에서 어떤 갑론을박(이 나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이 있고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해 비판하는.목소리가 있는지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매체에 보도가 안되는 반면
크리스천 근본주의자의 행동에 대해서는 바로 그는 극단주의자일뿐 개인의 행동일뿐이라는 반응들을 읽게 되기에,
애초에 우리가 균형잡힌 정보를 얻지 않는 상황인지라, 우리의 시각도 정확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때는 이 문제가 표현의 자유 vs. 타종교에 대한 존중 문제로 보였으나 지금은 그냥 서구언론의 내러티브, 패러다임 내에서만 논쟁이 이루어졌던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드네요.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심성을 근거 삼아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관용'한다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그들만의 종교적 심성을 근거 삼아 동성애자를 차별 혐오하자고 선동하는 것 역시 '관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삭제우길 걸 우기시기 바랍니다.
저는 모든 무슬림이 그 테러를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했는데요.
삭제https://qz.com/323412/what-muslim-scholars-have-to-say-about-the-charlie-hebdo-attack/amp/
"무슬림은 종교를 근거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관용한다", 라는 발언 자체가 과연 이슬람교의 입장을 정당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확신하시나요?
아주아주 부자인 사람이, 정당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이 휘황찬란하게 집을 짓고 비싼 물건을 가득 넣어놓고 이를 모두에게 알렸는데 도둑을 맞으면 당연히 도둑이 잘못한 것이고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도둑맞기 싫기에 한편으로는 법과 경찰에 의지해도 한편으로는 문을 잠그지 않나요. "너희 모두가 절대로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는, 당연히 옳고 선하지만 세상 모든 도둑을 억제하기에 부족한 논리만 주장하는게 아니라요.
삭제표현의 자유가 옳다해도, 순수한 이론으로 밀고나가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될지 싶습니다.
1) 따옴표란,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인용할 때 쓰는 것입니다.
삭제2) 저는 "무슬림은 종교를 근거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관용한다"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Ctrl-F로 검색해보시죠. 저 문장을 말한 사람은 오직 익명의 방문자, 당신 뿐입니다.
3) 저는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심성을 근거 삼아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관용'한다면"이라고 했죠. 여기서 '관용'하다, 라는 술어의 주어는 무슬림이 아니라 한국인, 특히 익명의 방문자 당신같은 한국인입니다.
4) 3)과 같은 간단한 문장도 독해를 못하거나, '의도적 실수'로 잘못 읽는 사람과, 무슨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고 느껴집니다.
중요한 건 2)에 담긴 따옴표 속 문장은 익명의 방문자 댁이 한 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일일이 그걸 적시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누군가 왜곡하여 퍼뜨릴 우려가 있다는 거죠. 누가? 익명의 방문자 당신처럼 독해력이 떨어지면서 악의적인 사람이.
제가 이 리플을 다는 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3자를 위해서이며, 당신은 제 블로그를 더 보지 않아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