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0

[북리뷰]대중문화 ‘돌아온 과거’ 열풍

레트로 마니아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최성민 옮김·작업실유령·1만8000원

복고가 대세다. 영화 <국제시장>이 새해 첫 1000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모습을 마뜩찮게 여기는 젊은이들조차 MBC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90년대 가요 특집, 이른바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보며 어깨춤을 추고 추억에 젖는다.

과거의 전성시대다.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특히 그렇다. 런던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대중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널즈는 그러한 오늘날을 “바야흐로 팝이 레트로에 환장하고 기념행사에 열광하는 시대”(11쪽)라고 말한다. “2000년대는 맹렬한 재활용 시대이기도 했다. 흘러간 장르는 재탕 또는 재해석됐고, 빈티지 음원은 재처리되거나 재조합됐다. 젊은 밴드의 팽팽한 피부와 상기된 볼 뒤에는 그윽하게 늙은 아이디어의 회색 살이 있었다.”(12쪽)

이 책 <레트로 마니아>는 바로 그런 시대의 대중음악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수많은 고유명사들이 문자 그대로 비처럼 쏟아지는데, 나처럼 서구 대중음악에 그다지 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때로는 익숙하지만 많은 경우 낯선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트로 마니아>를 읽는 일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저자 스스로도 직감하고 있다시피 ‘레트로 열풍’은 대중음악에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며, 동시에 영미권에만 해당되는 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길게 인용해보자.

“몇 년 전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아파트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길거리 풍경이 내가 태어난 1963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물론 자동차 디자인은 조금 달라졌지만,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아니라 연소기관으로 달리는 지상 운송수단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믿음직스러운 주차요금 계량기에서부터 튼튼한 청색 우체통과 상징적인 노랑 택시에 이르기까지, 21세기 맨해튼은 우울하리만치 비미래적이었다.”(349쪽)

20세기의 후반, 인류는 달 탐사를 넘어 미지의 우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러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중문화 역시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를 개척하고 있었다. 저자는 20세기의 팝 음악이 “전자 장치를 통해 소리 공간을 탐구”(376쪽)했으며, 그것은 저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던 모험정신과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누구도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화성 너머로 나아갈 것을 꿈꾸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대중문화 역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트로 문화도 결국은 기울어 무너지는 서구의 또 다른 얼굴일 테다.”(376쪽)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90년대의 ‘신세대’들은 당시의 ‘구세대’들을 위한 영화인 <국제시장>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추억을 곱씹는 문화상품 앞에서 여지없이 향수에 젖어든다. 현재 한국 정치는 1930년대에 태어난 노인들이 쥐락펴락하고 있고, 그에 맞서는 것은 이제 은퇴 연령을 향해 달려가는 1960년대생들이다. ‘미래’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청춘’들은 이전처럼 기성세대와 대립하기는커녕, 당장 오늘 내일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돌아온 과거’들이 꽉 채우는 것은 비단 대중문화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국면 속에서 어떻게 ‘현재’를 지켜내고, 최소한의 활기를 잃지 않으며, ‘미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노정태 ‘논객 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112151751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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