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2

[별별시선]우리의 명예를 찾아서

“연대는 설악산 소탕작전을 교대하고 휴식하는 사병들을 위해 이 굴 속에 후방에서 여자를 데려다놓고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케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원하는 병사는 자기 월급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면 되었다. 굴 속은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비닐 우비의 베드시트를 덮은 침대이다. 가마니를 드리운 굴 문 앞에는 언제나 병사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리영희. 한국의 양심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위 문단은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한 책 <역정>의 198쪽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저 문단에서 인용된 ‘시설’은 국군이 운영하던 것이다. 국군은 “후방에서 여자를 데려다” 놓았다. 그 과정에 대해 리영희는 별다른 설명을 붙이고 있지 않다. 그렇게 ‘데려다 놓은’ 여자를 “원하는 병사는 자기 월급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면 되었다”.

“전쟁 중의 이야기인데 적이 있는 전선에 가기 위해서 ‘코코포’라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런 곳에는 반드시 삐야(ピ-屋)가 있다. 삐야라는 것은 위안소를 가리킨다.” <게게게의 기타로> 등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 호러 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의 회고 만화에서 인용한 대사다. ‘삐’는 종군위안부로 동원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작가는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그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 많은 남자를 한 명의 여자가 처리하는 것이다. (중략) 병사들도 지옥에 있었지만 이건 지옥 그 이상이 아닌가, 라고 화장실로 나온 조선삐를 보고 생각했다.”

해방 이후 한국군은 미군의 무기를 손에 들고 북한과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일제가 남겨놓은 수많은 악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리영희가 증언하는 바,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하는 은전”이 대표적이다.

한국군은 일본군이 하던 그대로 위안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본군의 위안소에는 “일본삐” “나와삐(오키나와 출신)” “조선삐” 등이 있었던 반면, 한국군의 위안소에는 같은 한국인밖에 없었다는 것 정도다.

2015년 2월17일. 대한민국의 법원은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관계를 왜곡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청구를 받아들여 “책 내용 가운데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판매·배포·광고 등을 할 수 없다”는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 책의 몇몇 구절이 종군위안부를 성매매 여성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이다.

독자의 양심에 질문을 던져보자. 리영희가 묘사한 한국군 위안소는 과연 정당한가? “후방에서 여자를 데려”올 때, 설령 그 여성들을 강제로 납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병사들이 “자기 월급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고 해서, 여성들이 수많은 남자들의 성욕 해소 대상이 됨으로써 심각한 학대를 당한 사실 자체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소에서 설령 ‘조선삐’를 폭력적으로 납치해오지 않았거나, 그들에게 경제적 대가를 지불했다 한들, 일본군의 위안소 운영이 갑자기 아무런 비난을 받을 수 없는 일이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강제로 납치한 게 아니니 문제 없다, 돈 줬으니 된 것 아니냐’는 것은 일본의 극우들이 일본군 위안소를 부정할 때 동원하는 논리다. 그러한 억지주장에 맞서는 해법은 ‘돈을 받지 않았다,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제로 납치당한 사례가 많건 적건, 금전적 보상이 있었건 없었건, 국가가 여성을 전쟁터에 동원하여 위안소를 운영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인권 침해’라는 입장을 단단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소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오키나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의 여성 인권을 짓밟은 파렴치한 전쟁범죄다.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할 때 우리는 일본의 극우와 맞서면서 동시에 일본 및 전 세계의 양심적 세력들과 손을 잡을 수 있으며, 대한민국이 스스로 저지른 여성 인권 학대에 대해서도 올바른 반성과 재발 방지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방식으로 명예를 되찾길 희망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22034055&code=990100&s_code=ao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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