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2

[북리뷰]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한 성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김명남 옮김·창비·1만4000원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 이미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n과 설명이라는 뜻의 explain을 합친 신조어다. <뉴욕타임스> 선정 2010년 ‘올해의 단어’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우연한 계기로 한국어권에서도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패션지 <그라치아>에 기고한, ‘IS(이슬람국가)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칼럼이 가장 먼저 트위터에서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여성을 공개적으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이슬람국가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말에, 트위터 사용자들은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해쉬태그를 달며 항의했다.

한때 페미니즘은 지성인의 상식으로 여겨졌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어 그 불꽃은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남자들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을 노골적으로 경시하며, 남성 위주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체화한 여성들을 향해 ‘개념녀’라는 훈장을 달았다. 반대로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김치녀’, ‘된장녀’ 같은 딱지를 붙여 비하하기 바빴다.

문제는 그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목청을 높여 맞서는 여성 지식인들의 숫자와 기세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데 있다. 왕년에 자타공인 페미니스트라고 불렸던 이들 중 오늘날까지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하루가 다르게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는 한국 사회와 맞서는 이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페미니즘, 혹은 똑같은 페미니즘이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분위기에 맞게 경신된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에게 가이드라인 노릇을 할 ‘바로 그 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의 저자이며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바로 그런 현실 속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다. 모두 아홉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제작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다. 리베카 솔닛은 한 파티에서 바로 그 자신이 썼던 어떤 책에 대해, 처음 만나는 남자가 달랑 그 책에 대한 서평만을 읽은 채로 함부로 가르치려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바로 그렇게, 남자들이 상대방의 지식 수준을 함부로 얕잡아본 채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행동, 그것이 바로 맨스플레인이다.

맨스플레인 그 자체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적이다. 어떤 남자들은 바로 같은 사고방식에 기반해 여자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며 폭력을 휘두르거나, 심지어 살해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15쪽)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여자의 말을 끊고 잘난 척을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아직도 세상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드러내주는 사회적 현상이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에세이는 오늘날의 젠더 이슈를 골고루 일주한다. 21세기의 페미니즘 교과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526164740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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