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 지음·유나영 옮김 와이즈베리·1만3000원
2004년 미국에서 출간되고, 2006년 국내에 번역 소개된 후, 지금까지 이 책만큼 오해되고 있는 책을 또 찾기란 쉽지 않다.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조차 이 책의 제목을 모두 알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그리고 다들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이 프레임이고….’ ‘프레임’이라는 단어, 혹은 국내에서 이해되고 통용되는 ‘프레임’의 논리는 지금까지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가령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지난 9일 ‘메르스라는 단어가 낯설고 국민들이 무서워하니 친숙한 우리말로 바꾸자’고 할 때, 그러한 제안에는 국내에 소개된 ‘프레임 이론’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를 ‘중동 독감’이라고 지칭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비교적 친숙한 독감의 일부로 소개함으로써, 메르스를 둘러싼 ‘프레임’을 바꾸려는 시도라고, 짐작컨대 청와대에서는 스스로 자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지 레이코프가 말하는 프레임 이론은 그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프레임 재구성은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아니다. 어떤 마법의 단어를 찾아내는 일도 아니다.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다. 프레임 재구성은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이미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 접근하여 이를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이 일반 대중의 담론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는 일에 가깝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부단한 과정이며, 반복과 집중과 헌신이 필요한 일이다.”(13쪽)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메르스를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은 독감이다’라고 외친다고 해서, 메르스를 둘러싼 프레임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10주년 기념 개정판에 새롭게 추가된 내용에서 저자는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한 가지 오해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일이 ‘사망세’나 ‘부분 출산 낙태’처럼 상당수 대중에게서 반향을 일으키는 영리한 슬로건을 고안하는 문제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슬로건은 세금이나 낙태 같은 쟁점들을 개념적으로 프레임에 넣는 장기간의, 흔히 수십년에 걸친 캠페인이 선행되어, 많은 사람들의 뇌가 이런 문구를 받아들일 준비를 완료했을 때만 먹힌다.”(76쪽)
이미 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격리 처치를 경험한 사람이 1만명을 넘어서게 된 메르스 사태를 두고, 야권 일각에서는 현재의 국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메르스를 세월호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물론 거의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긴 하지만, 메르스의 확산 통제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놓고 정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야권에게 불리한 ‘프레임’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질까?
적어도 조지 레이코프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임은 수많은 이들이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세계관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다. 물론 변하긴 하겠지만, ‘프레임’ 타령만 하는 세력은 결코 기존의 프레임을 이겨낼 수 없다. 모든 위기 상황을 정치적 호재로 바라보는 분들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2015.06.30ㅣ주간경향 1132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506221617041&pt=nv#csidx23225d858145a6f89750f86343c6a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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