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4

[북리뷰] 우리가 모르고 싶었던 '진짜' 미국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새뮤얼 헌팅턴, 김영사, 1만9900원.

트럼프의 행정명령, 그 이전에 그의 당선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를 포함해, 그런 이들은 대부분 미국을 '이민자들의 국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동시에 미국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핵심적 가치, 즉 '미국적 신조'(American Creed)에 기반한 이념적 국가로 여긴다. 그러나 새뮤얼 헌팅턴의 생각은 다르다. 2004년작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을 펼쳐보자.

이 책의 원제는 Who Are We?이다. 제목이 곧 내용이다. "미국은 거의 모두가 영국제도에서 건너온 17~18세기의 개척자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회"(59쪽)로, "역사적으로 미국인들은 대체로 이민자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미국을 "이민자들의 국가"라고 자랑하지도 않았다"(59쪽)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이민국가 미국'의 신화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형성되고 이후 1965년의 이민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그는 주장한다.

실제로 인구 구성을 보더라도 미국은 '이민자들의 국가'가 아니다. '개척자들과 그 후손들의 나라'라고 보는 편이 옳다. "간단하게 말해서, 20세기 말에 미국의 인구는 절반가량이 초기 개척자들과 노예들의 후손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개척자들이 만든 사회에 합류한 이민자들의 후손이었다."(67쪽) 전적으로 자신을 이방인, 아웃사이더, 디아스포라라고 여길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것은, 영국과 그 외 유럽에서 건너온 신교도 개척자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관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승하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책은 '개척자'와 그 후손들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미국에 거주하고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미국에 동화되려 하지 않는 이민자들, 특히 멕시코와 근접한 지역에서 스페인어를 쓰고 자기들끼리 별개의 사회를 꾸려가고 있는 히스패닉들에 대한 미국 주류의 불만과 불안이 명료한 학술적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뉴멕시코 대학교의 찰스 트루실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즉, 적어도 2080년에는 미국의 남서부 주들과 멕시코의 북부 주들이 한데 합쳐 새로운 나라를 형성할 것이다."(303쪽)

그러한 '바닥 민심'을 철저히 반영한 탓에, 2004년 출간된 이 책에는 트럼프의 당선이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다. 빌 클린턴의 탄핵에 찬성했던 연방의회 하원 의원들은 모두 WASP(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였다. '리버럴' 엘리트에 대한 백인 남성들의 공격은 이미 지난 세기부터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헌팅턴은 "기본적으로 백인 남성이고, 근로계층이고, 중산층인 사람들이 배타주의적인 사회정치적 운동을 전개"(381쪽)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운동은 인종적 및 문화적 특성을 가질 수 있고 반反히스패닉, 반흑인, 그리고 반이민일 수 있다."(381쪽) 그는 그러한 움직임에 '백인 현지인주의white nativism'이라는 완곡한 이름을 붙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ism'임을 알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진보주의자들이 선호하는 '노동계급의 반란'이 아니다. 백인들의 불만이 한 리얼리티 쇼 스타를 통해 분출되고 있을 뿐이다. 20세기의 이념적 도식으로 미국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이 책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2017.02.14ㅣ주간경향 1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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