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열린책들·각권 1만3800원
책날개에 적혀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에 따르면, 『프라하의 묘지』의 주인공 시모네 시모니니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이다. 1905년 출간된 후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폭발시킨 괴문서,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한 사상 최악의 위조문서인 '시온 의정서'를 써낸 장본인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이 책에서 '시온 의정서'의 제목은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으로 번역되었다).
실제로 '시온 의정서'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 저자를 가상의 인물로 그려내는 이 소설이 성립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음모론, 거짓 문서, 가짜 지식을 수집하며 즐기는 '음모론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만년의 지식과 에너지를 총집결하여 만들어낸 소설이 바로 『프라하의 묘지』인 것이다.
에코가 작품 속에서 지적하는 바, 음모론자는 음모론의 대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음모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내는 음모론에 스스로 현혹되어 증오심을 키워나간다. 작품 속 주인공 시모니니가 겪은 일이 바로 그와 같다. 그는 유대인을 목표로 한 음모론을 써내려가면서 유대인을 혐오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유대인들의 음모를 아주 그럴싸하게 엮어 낸 그 경험은 내 인생의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소년기와 청년기에 내가 유대인에 대해서 품었던 그 혐오감은 (뭐랄까?) 한낱 관념과 같은 것이었고 할아버지가 주입하신 교리문답의 판에 박은 말들처럼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마녀 집회를 닮은 그 심야 회동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나자 비로소 내 관념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았으며, 유대인의 신의 없음에 대한 나의 원한, 나의 앙심은 추상적인 관념에서 억누르길 없는 격렬한 감정으로 변했다."(372쪽)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텍스트를 써낸 인물을 제시하면서 그의 내면을 서술하는 것은, 반유대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혐오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쏟아내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점을 고려한 것인지, 에코는 달라 피콜라 신부라는 또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다. 시모네 시모니니와 달라 피콜라는 일종의 교환 일기를 쓰며 어떤 한 사건의 실체로 다가간다. 소설은 그 두 사람이 남긴 텍스트를 읽고 해석해주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렇게 모든 등장인물에게 거리를 두고 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히 설계된 플롯 속에서, 주세페 가리발디부터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까지 유럽 근현대사의 중요 인물과 사건들이 얽히고 설켜드는 것이다.
'시온 의정서'는 1921년에 위조문서임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반유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돈벌이를 위해, 혹은 재미삼아 음모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런 거짓들이 때로는 진실을 '창조'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다. 음모론은 역겨운 조작이고 조롱당해야 한다. 에코가 "작가 후기 또는 학술적 사족"으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시모네 시모니니는 콜라주 기법의 산물이고, 따라서 소설 속에서 그가 행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일들은 실제로 여러 사람에 의해서 행해진 것들이다. 하지만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시모네 시모니니조차 어떤 점에서는 실제로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내친김에 마저 말하자면, 그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760쪽)
무뇌충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르면서 위서거리고있네 유대인이 왜 미국에서 욕을 처먹는지 생각좀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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