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은 만세운동이 아니라 실은 고종 장례식이었다'는 말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고등학교 때 한 교사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 맥락은 3.1 운동을 칭송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망국의 백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자주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고혈을 빨아먹은 왕의 죽음을 슬퍼해서라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그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3.1 운동은 고종 장례식이었을 뿐'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렇게 활용되어 왔다. 한국의 모든 것을 비하하며 일본을 칭송하는 이들이 즐겨 입에 담는 소리였다는 말이다. 고양이가 죽었는데 쥐들이 슬퍼하며 거리에 나섰고, 그걸 나중에 독립운동인양 포장했다, 조선인들의 '민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 모양 그 꼴이며 그렇게 선동에 놀아나는 우매한 것들이다, 이따위로 찍찍 내뱉는 소리. 그런 발언의 하나가 바로 '3.1절은 고종 장례식' 타령이었다.
그런데 대관절 어째서, 민족 정기 우뚝 세우기를 그렇게 좋아하고, 친일 잔재 청산에 목숨을 거는 현 정권에서, 고종의 장례 행렬을 재연한다고 나서고 있는 것일까? 한반도 거주민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폄하하고 깎아내릴 때 쓰던 레퍼토리를 왜 대한민국의 정부가 앞장서서 재연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
3.1 운동은 기념할만한, 기념해야 할 사건이다. 죽은 왕의 시체를 밟고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탄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내내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평안도 사람 함석헌이 회고했던, 왕이 아닌 국민이 주권자로 재탄생한 날이 바로 3.1절이다.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함석헌의 이야기를 꺼낸 건 국가나 민족과는 다른 차원에서 만세운동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도 그때 들었어. ‘여러분이 다 나라의 주인이니까 누굴 믿지 말고 다 일어서서 만세를 불러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독립이 됩니다.’ 그런 말 사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들어본 소리거든요. 단군이 계실 땐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국가라고 이름을 걸고 한 이후에 언제 그런 말을, 더구나 평안도 놈들이 들어봐요?” 함석헌은 당시 이승훈의 연설에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을 그렇게 요약했다. 그때 사람들이 처음 들어본 것은 ‘나라의 독립’이 아니라 ‘당신이 주인’이라는 말이었다.
고병권, "함석헌이 겪은 3·1운동", 《경향신문》, 2019년 2월 24일.
3.1절에 고종의 장례 행렬을 복원하겠다는 사람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4.19 기념 행사에서 이승만을 추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19년 3월 1일은 한반도의 거주민들이 왕정을 떨쳐내기 시작한 날이다. 그걸 '죽은 왕을 기억하는 행사'로 바꾸고 싶어하는 자들은, 민주주의자 행세를 하는 왕당파에 불과한 것 아닌가.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왕족과 귀족을 용납할 수 없는 평민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만 '대한독립만세'는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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