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3

외출복을 입고 엘리베이터 옆에서 자는 예술가

그래서 그는 승강기 옆에서 다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도시 전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체포되는 모습만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똑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마다 그는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잠든 딸에게 키스하고, 잠 못 이루는 아내에게 키스했다. 아내의 손에서 작은 가방을 받아 들고 대문을 닫는다. 마치 야간 근무를 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그랬다. 그런 다음 과거를 생각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며, 짧은 현재의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거기 서서 기다렸다. 종아리에 기대어놓은 가방은 그를 안심시켜주고,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려는 것이었다. 실용적인 조치였다. 가방 덕분에 그는 상황의 희생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도자로 보였다. 전통적으[78쪽]로 손에 가방을 들고 떠난 사람들은 되돌아왔다. 잠옷 바람으로 잠자리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

이것이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 중 하나였다. 거기 서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용감한 행동일까 비겁한 행동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닌--그저 합리적인 행동인가? 그는 답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79쪽]

줄리언 반스, 송은주 옮김, 『시대의 소음』(경기도 파주: 다산북스, 2017)
 

쇼스타코비치. 혁명. 소련. 숙청. 예술.

댓글 2개:

  1.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막스? 왜 그들은 그런 요구를 할까? 왜 자네에게 금지령을 내리는 거지?"
    화가는 망설였다. (…) "색깔 때문이지. 색깔도 항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네. 때로 심지어는 어떤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지. 하지만 그러한 색깔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될라고?"
    (…) "그들은 독소를 좋아하지 않지. 하지만 약간의 독소는 필요한 거야―보다 밝아지기 위해서는."
    (…) 아버지는 아무래도 막스 루드비히 난젠에게 무언가 죄를 지은 것만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네, 막스. 이 금지 조치는 나와 전혀 무관한 거야. 난 그저 전달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
    "알고 있네." 화가는 말을 이었다. "이 미치광이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야. 창작 금지라니! 저들은 아마 방해를 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겠지. 해보라지. 그러나 이 한 가지, 그림 그리는 것을 막진 못할걸. 이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써먹었던 방법이야, 벌써 오래 전에. 하지만 저들은 이걸 알아야 될 거야. 원치 않는 그림에 대해 금지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국외로 추방을 한다거나, 또는 눈을 후벼 파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손이 잘리면 그들은 입으로 그림을 그렸으니까. 이 바보들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단 말이야."

    『독일어 시간』(지그프리트 렌츠 著, 정서웅 譯,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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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그러나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당신은 비관주의적입니다. 음악은 불멸이에요. 음악은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고 언제나 필요할 것입니다. 음악은...... 그런 거라고요. 그는 그들이 그의 예술이 지닌 성격을 설명해줄 동안 듣지 않는다. 그들의 이상주의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 음악은 불멸일지 모르지만 슬프게도 작곡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쉽게 침묵당하며, 죽이기는 훨씬 더 쉽다. 비관주의라는 비난으로 말하자면-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항의한다. 아니, 아니, 이해를 못 하는군요. 우리는 도와주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음번에 자기네의 안전하고 부유한 나라에서 올 때는 그에게 인쇄된 악보 뭉치를 뭉텅이로 가져다준다.[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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