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참전한 이근에게 살인죄를 묻겠다고요? [노정태가 고발한다]
SNS에 우크라이나 도착 소식을 올린 이근. 배경은 러시아군 포격으로 불타는 하르키우시. 그래픽=전유진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외교부는 여권법 위반에 대한 행정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의 규정된 사전허가 없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외교부는 현재 여권법에 따라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여권에 대한 행정제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여권법 위반에 따른 행정 제재는 여권 반납 명령→(불응시) 여권 무효화→새 여권 발급 제한 등 3단계 조치로 이뤄진다.
오웰도 처벌해야 했을까
우크라이나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한 캐나다 코미디언 앤서니 워커. [트위터 캡처]
이쯤에서 조지 오웰을 한번 소환해보자. 1936년 12월, 그는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의용군에 입대했다. 처음엔 저널리스트로 그곳에 갔지만 난생처음 가본 카탈루냐에 발을 딛자마자 의용군에 들어가 버렸다. 당시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은 무정부주의적인 카탈루냐에 매료됐고, 프랑코 정권에 맞서 카탈루냐를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느껴서 기자가 아닌 군인으로서 스페인 내전에 가담했다.
전쟁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전장의 공포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같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 투쟁과 내분이었다. 특히 소련의 지원을 받는 스탈린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공통의 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프랑코 정권의 파시스트들보다 때로는 더 악독했다. 결국 오웰은 몸과 마음의 부상을 끌어안은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원고를 쓰려고 그의 『카탈루냐 찬가』를 다시 읽어봤다. 어디에도 영국 정부가 오웰의 스페인 의용군 입대를 처벌했다는 내용이 없다. 누군가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타국에서 목숨을 거는 일은, 권장할만한 일이 아닐 수는 있어도 금지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상식으로 깔려 있어서일 것이다.
영국·캐나다·미국 등은 여전히 그런 상식이 통한다. 심지어 영국과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참전을 원하면 참여해도 좋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 역시 법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와 국가 차원의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만 침략자 러시아와 싸우고 싶은 국민이 있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외인부대 되는데 '이근'은 안 된다?
지난 8일 화상으로 영국 하원 연설을 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이 비판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이근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2만여 명의 외국인 입대 지원자들은 모두 전쟁을 하려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속성으로 시민권을 발급받은 외국인들은 '국제 군단'(International Legion) 등 별도 편제로 묶여 우크라이나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법적·제도적 절차를 갖추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반론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원래 한국인이라도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고 작전을 수행하면서 러시아군을 사살한다면 그것은 통상적인 교전 행위일 뿐이다.
프랑스에는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외인부대'가 있다. 이들 외인부대는 대개 프랑스 국경 바깥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실제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한국인 중에도 이 외인부대에 자원입대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프랑스군의 일원으로서 다른 어떤 나라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때로는 사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과 제3국의 외교 갈등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전쟁 중 적군을 살상하고 오면 살인죄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군인이 작전 중 수행한 행위는 통상적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할 수 없다.
분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엄혹한 현실이 있는데 이를 내버려 두고 굳이 외국의 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떨까.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에겐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복무를 마친 사람에게까지 그런 논리를 적용하는 건 무리다. 대한민국 남성은 국가의 '병역 자원'이기에 앞서 양심과 의지를 지닌 독립된 인격체다.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참전에 살인죄를 묻겠다니
지난 1일 영국 거주 우크라이나인들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자국민의 참전을 허용하고 있다. [EPA]
그런데 지금도 한국인들은 프랑스 외인부대, 혹은 한국 국적을 가진 채로 미군에 입대하기도 한다. 지금껏 그 누구도 그런 선택을 한다는 이유로 비난받거나, 조롱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척당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국제 군단을 프랑스 외인부대나 미군과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나 근거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한국인의 우크라이나 참전을 찬성하지 않는다.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국내법을 어기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겠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쟁에 뛰어들어 우크라이나를 돕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의지를 국가가 법으로 틀어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책 제목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머나먼 땅,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틈에서 그 나라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 뒹굴다 목숨을 잃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국가가 자국민의 양심적 병역 거부마저 존중하는 시대에, 양심적 병역 수행 역시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나도 안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자유주의자로서 우리 사회에 작은 생각의 균열을 내고 싶다.
이근을 비롯해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한 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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