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6

시어머니만 둘…교육 정치판 만든 '교육감 직선제' 없애라 [노정태가 고발한다]

시어머니만 둘…교육 정치판 만든 '교육감 직선제' 없애라 [노정태가 고발한다]

그래픽=김현서

지난달 30일 '서울시 교육감 중도·보수 진영 단일화 기구' 주관 행사가 열렸다. 행사 내용이 곧 단체 이름이었다. 3선에 도전하는 진보 진영 조희연 현 서울시 교육감에 맞설 중도·보수 진영의 단일 후보를 뽑는 경선이 치러졌다. 지난 18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지낸 조전혁 혁신공정교육위원장이 이날 단일 후보가 됐다. 그런데도 보수 지지자들은 불안해한다. 보수 진영 조영달 서울대 사범대 교수가 단일화에 불참한 탓이다. 만약 조 교수가 출마하면 보수표가 나뉘어 조 교육감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오는 6월 1일 치러질 교육감 선거 풍경이다. 늘 해왔으니 그러려니 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들 교육에 이런 진영 대결 선거가 도움이 될까? 교육감 직선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렇다'고 대답할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육감 직선제 10년은 '교육의 정치화'라는 폐해만 낳았다. 일각에서 직선제 폐지 주장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직선제 유지론자들은 헌법 제31조 4항을 언급한다.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했으니 교육감은 직접 뽑아야지, 시·도지사가 임명하거나 간선제로 뽑으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지난 교육감 선거를 되짚어보자.
교육의 자주성? 교육감의 등장으로 자주성이 생기기보단 시어머니만 둘(교육부와 교육감)로 늘어났다.
교육의 전문성? 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그리고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전직을 떠올려보자. 초중고 교육 현장과 무관하게 연구하던 대학교수였다. 대학 교육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감 업무와는 괴리가 있다.

교육을 정치판 만든 직선제
2017년 9월 청와대 앞에서 함께 시위중인 곽노현·조희연 전·현직 서울시교육감. 두 사람 모두 진보 성향 교수 출신이다. [연합뉴스]
정치적 중립성은 어떨까? 특히 이 부분에서 헛웃음이 난다. 조희연 교육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참여연대를 만든 장본인이고, 조전혁 후보는 18대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다른 지자체에서 출마하는 교육감 후보들 역시 정치색이 뚜렷하다. 현재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치적 중립성' 보장 운운하는 건 얄팍한 자기기만이다.
물론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교육감 직선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 오히려 직선제 탓에 교육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걸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전체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피해를 봤다.

모든 선거는 기본적으로 고비용 저효율이다. 후보들은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관리를 위해선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투표 행위만도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든다. 모든 자리와 정책을 투표로 결정하는 게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또 민주적이지도 않다.

사실 전국의 교육감을 한날한시에 동시에 선거로 뽑는 나라는 흔치 않다. 미국은 연방 국가답게 교육 정책 관련 권한은 각 주가 지니고 있다. 25개 주(州)는 주 교육위원회가, 11개 주는 주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한다. 직선으로 뽑는 주는 14개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각 주 교육장(교육감)은 주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다. 영국·프랑스·일본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가 중심의 교육 전통이 강한 프랑스는 총 30개의 학구장(교육감) 모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근시안적 교육 정책 쏟아내는 폐해
선진국들은 왜 교육감을 직선제로 뽑지 않을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은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단기적으로는 학생과 학부모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차이를 불러온다. 교육감 선거 결과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라지는 현 체제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이며, 가장 철저하게 지방자치제를 운용하는 미국에서도 교육 정책만큼은 '국가 대계'로 인식해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2007~2010년 미국 워싱턴 D.C. 교육감을 지낸 재미교포 미셸 리(이양희). 교사 출신으로 공교육 개혁에 앞장서 화제가 됐다. 애드리언 펜티(Adrian M. Fenty) 당시 워싱턴 D.C. 시장이 그를 임명했다. [중앙포토]
우리는 정반대다. 교육감의 교육 철학,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방향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강요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다른 교육을 받는다. 이게 '다양성'이 늘어난 걸까? 아니다. 교육감 선거가 만든 불필요한 교육 편차의 폐해를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감당한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세계 교육의 화두는 정보교육(computing)이다. 컴퓨터 사용법이 아니라 그 원리를 가르친다. 우리도 그 추세에 발맞춰 2018년부터 정보 과목을 초중고 정규 교과목으로 지정했다. 수업 일수는 교육감의 판단과 자율에 맡겼다. 그 결과,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편차가 벌어졌다. 대구·세종처럼 정보 과목을 충실히 가르치는 도시도 있었지만 그 외 지역은 등한시한다. 교육감 취향에 정보교육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이렇게 손해를 본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교육감이 선출되었다고 선뜻 이사할 수도 없으니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교육감 선거로 교육 선택권이 늘어난 건 전혀 없다. 다만 정치적으로 줄 잘 서고, 단일화 잘하고, 선거 잘 치러서 교육감이 된 누군가가 애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실험'을 할 자유만 얻었을 뿐이다.

학생 볼모로 한 교육 실험 옳은가
이는 루터의 종교 개혁 초창기를 연상케 한다. 당시 루터가 말한 '종교의 자유'란 평민들이 알아서 교회를 택할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각 지역의 영주들이 가톨릭에서 벗어나 원하는 교회를 택할 자유를 의미했다. 평민들은 꼼짝없이 자기 영주가 고른 교회에 다녀야 했다. 평민 입장에서 보자면 루터 이전이나 이후나 종교의 자유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독일과 유럽이 30년 전쟁에 빠져든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도 10년째 교육 전쟁에 휩싸여 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지난 10년간 사교육은 줄지 않았고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증거도 없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20세기 내내 유지해왔던 국가 중심의 일률적 교육 체제가 지니고 있던 폐단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감 직선제만 정답인 것처럼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교육감은 투표로 뽑을 자리가 아니다. 광역지자체장이 선발하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담지할 수 있는 교육위원회가 임명하는 등 더 나은 해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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