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3

[별별시선]박근혜 vs 알파고

가상 대결을 펼쳐보자. 인공지능 알파고와 박근혜 대통령이 바둑 대결을 한다면? 당연히 알파고가 승리를 거둘 것이다. 이세돌 9단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는 알파고인 만큼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판을 키운다.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바둑판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 전체를 무대로 삼아보는 것이다. 박근혜 대신 알파고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릇을 한다면 과연 누가 이 나라를 더 잘 이끌어 나갈 것인가.

알파고가 화제라고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만의 망상이 아니다. 이세돌 9단이 첫 고배를 마셨던 그 날부터 인터넷을 후끈 달군 주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 이제 컴퓨터의 지배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나빠질 것인가?

여기서 잠시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논문의 해설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알파고는 기존의 게임용 AI와 마찬가지로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에 의존한다. 혁신적인 자기학습 프로세스를 통해 기존의 바둑 기보를 연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선례를 놓고 볼 때 좋은 수’를 추려낸다. 그리고 남은 선택지를 두고 계산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바둑을 두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와 직관을 뛰어넘은 게 아니다. 반대로, 우리의 ‘인간적’인 창의와 직관이 어떠한 종류의 계산 과정이다. 다만 사람은 그 계산을 “승부수, 감, 두터움” 같은 식으로 표현할 따름이다. 그에 대해 서봉수 9단은 이렇게 말한다. “수 자체를 모르니까 그냥 감각에 의존해서 이런 정도면 무난하지 않으냐, 이런 식의 표현을 하죠.”

이번 대국에서 확인된 것은 바둑 역시 하나의 게임이라는 당연한 사실이다. 포커, 화투, 체커, 체스, 오델로, 지뢰 찾기까지, 모든 게임은 규칙을 지닌 계산 과정에 의해 진행되므로, 컴퓨터에 의해 수행될 수 있다. 알파고는 바둑이라는 게임의 룰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컴퓨터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년층과 ‘여론 주도 세력’인 중장년층의 반응이 갈라진다. 컴퓨터가 인간의 고유 영역인 창의와 직관을 뛰어넘었다고 주류 언론은 연일 호들갑이다. ‘알파고 쇼크’에 우울증에 빠졌다는 시민의 목소리, 앞으로 인공지능이 수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우려 등이 이어진다.

반면 청년들은 비교적 덤덤하다. 바둑은 게임이고, 언젠가는 컴퓨터가 최고의 프로 기사를 이길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호들갑스러운 우려에 대해서도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뭐가 어때서? 오히려 ‘천연지능’보다는 우리를 합리적으로 대하지 않을까? 우리 사장도 알파고로 바뀌면 좋겠는데?

자, 그러므로 가상 대결을 펼쳐보자. 박근혜 대 알파고. 과연 누가 더 대한민국을 잘 다스릴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이세돌과의 대국을 통해 확인한바, 알파고는 기존의 선례를 충실히 검토하고, 그중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던 사례를 따른다. 그 속에서 최선의 미시적 판단을 내린다. 그렇다. 이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훌륭한 의사결정권자의 모습이다.

인공지능이 합리적이지만 비인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과, 사람이 ‘인간적’인 횡포를 부리는 것, 둘 중에 뭐가 더 무서운가? 만약 당신이 의사결정권자에 가깝다면 인공지능이 두려울 것이다. 반대로 남의 의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기계’가 나을지도 모른다.

충분한 시간과 데이터가 제공된다면, 알파고가 박근혜보다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가 심각하다며 기업들이 신입사원 초임을 삭감하도록 한다거나, ‘증세 없는 복지’를 운운하는 것 등은, 알파고의 눈으로 볼 때 바둑판에서 알까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난센스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춘 국정 운영을 기대한다.


입력 : 2016.03.13 21:01:11 수정 : 2016.03.13 21:12: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132101115&code=990100#csidxb0730909049cf82913583dcda5ddb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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