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에피소드는 대중성 강박에 빠진 진보신당이 보여 온 무수한 프레임 오류 가운데 한 예일 뿐이다. ①심지어 진보신당은 진중권 씨를 비롯한 진보신당 당적의 자유주의자들이 그나마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간직한 ‘전진’ 같은 그룹을 마치 스탈린주의자들이라도 되는 양 마구잡이로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②그런 자유주의자들이 촛불광장에서 활약한 덕에 당원이 늘었다지만, ③그렇게 입당한 사람들은 지금 진보신당을 아예 자유주의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원문자 강조는 인용자.
굳이 원문자 강조를 해가면서까지 이 문단을 적시하는 이유는, 이 속에 등장하는 논리적 비약을 정확하게 잡아내기 위해서이다. 하나씩 따져보기로 한다.
김규항이 말하는 '자유주의자'의 개념 정의가 '전진'이라는 진보신당 내 정파와 입장을 달리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면, 진보신당은 촛불 이전에도 자유주의 정당이었다. 당내 정치에는 과문하지만, 적어도 전진이 촛불 이전부터 다수파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①에 등장하는 "그나마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간직한 '전진'같은 그룹"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애매했고, 그 약점은 '진보신당연대회의'라는 공식 명칭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①과 같은 이유로 자유주의자로 규정된 진중권은 ②와 같이 촛불 현장에서 활약하여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고, 그 결과 정당의 인지도를 높이고 신규 당원들을 끌어모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유입된 당원들 중 상당수가, 굳이 말하자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실험이 실패한 후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구 여당의 지지층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현재 진보신당의 당내 여론은 당내 과격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놓고 본다면 ③과 같은 비판은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문장만을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진보신당 내에서도 진보신당이 이른바 '빅 텐트'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심상정의 경기도지사 탈퇴를 그러한 차원에서의 사전 포석으로 해석할 여지가 존재하므로, 김규항의 비판은 그 말 자체로서는 충분히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③에 등장하는 '자유주의 정당'이라는 어구의 '자유주의'와, ①과 ②에서 진중권을 지칭할 때 쓰인 '자유주의자'의 '자유주의'가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냐이다. 그 지점에서 이 칼럼이 내재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비약을 관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중권이 자유주의자라고 비판받은 이유는 전진과 생각이 비슷하거나 '전진과 나는 생각이 비슷한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하지 않아서이다. 그러한 수준의 자유주의를 편의상 '자유주의 A'라고 부르기로 하자. 한편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어긋난 정책 및 선거 전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심상정 뿐 아니라 노회찬도 선거 후보 때려치우고 '반 MB 전선'을 위해 투신해야 한다는 그런 소리 말이다. 김규항이 ③에서 비판하는 신규 유입 당원들 중 적잖은 수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자유주의 B'라고 해보자.
자유주의 A와 자유주의 B사이의 간극은 대단히 크다. 전자는 진보신당의 정체성 내에서 그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이견을 놓고 생기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진보신당의 존립 이유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규항은 '자유주의자' 진중권의 활약으로 인해 진보신당이 숫제 '자유주의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두 개념 사이의 차이를 슬쩍 모른채 뒤섞어버린다.
문제는 김규항 식으로 정의된 자유주의 A에 나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다. 전진의 이념적 정체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진보신당에 들어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규항이 자유주의 A를 지칭할 때처럼 말한다면 진보신당 내에 자유주의자가 아닐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당게에서 심상정 자진탈당하라고 목소리 드높이는 그 20여 명? 그나마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간직한 전진? 심상정 노회찬 두 사람 모두 전진 소속이 아니니까 그 둘도 자유주의자일 테고, 흐음….
말하자면 김규항은 '자유주의'라는 테마에 대한 논쟁의 수준을 대단히 유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사회주의 만세, 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자유주의라는 식이다. 그런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김규항과 같은 식의 잣대를 누군가 들이밀 때, 울컥 하는 심정에 '그래, 나 자유주의자다'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에 휩싸이지 않을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그 사회주의, 결국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걸까?
김규항 식 기준을 놓고 볼 때, 심지어 그 비난을 무릅쓰고 선거를 완주한 노회찬조차도 "제 정체성을 지켰다고 하긴 어렵다." 실천이 아니라 선언에서 제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선거와 투표는 후보자와 유권자가 임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체성 시험의 장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실질적 정치적 지향성을 명확하게 판가름해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진보신당 내에 존재하는 '자유주의 B'의 문제점이다. 그런데 김규항이 비판하는 '자유주의자' 진중권 및 "제 정체성을 지켰다고 하긴 어려"운 노회찬만 해도, 그 '자유주의 B'와의 갈등을 뼈가 시리도록 겪어왔고 또 이번 선거에서도 겪지 않았던가.
선언의 대상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아닌 정치적 목표로서의 사회주의를 상정한다면, 그것이 '자유주의 A'가 되어버리는 것은 현실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이며 정치 세력 및 정치인으로서는 그것을 감내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바람직한 정치적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 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존립 이유를 포기하는 결정과 혼동될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김규항의 '자유주의자'라는 비난은, 한 칼럼니스트로서 택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하고 게으른 선택일 뿐 아니라, 진보신당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화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심지어 최장집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한 재평가 흐름과도 무관한, 한낱 사변적 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