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을 보고 왔다. 열두 글자나 되는 이 긴 제목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만주에서 찍은 디워'. 정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놈놈놈'은 그저 '만주 디워'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좀 덜 노골적으로 한국 자본가들과 그 워너비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디워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이 영화의 문제를 쉽사리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놈놈놈'을 보며 우석훈의 최근 저서인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는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을 읽어서 그런 건 아니고, 다만 그 제목이 풍기는 인상이 바로 이 영화를 설명하는 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우석훈의 책은 나중에 읽어볼 계획이다). 김지운을 포함한 이 영화의 제작진은 평야, 대륙에 대한 감각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국제 감각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륙은 곧 자원이며, 우리가 수탈해야 할 무언가라고 보는 19세기 제국주의적인 구태는 물론이거니와, 무국적 공간으로 가정된 만주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일제시대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와 그것을 은폐하는 한국인들의 정신 구조까지 드러나버리고 만다.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놈놈놈'은 그저 문제작일 뿐이다.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이따위 영화를 찍는 현재 한국인들을 놓고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이라는 영화를 확 찍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냥 리뷰를 쓰도록 하자. 이미 논조를 보면 알겠지만 이 글은 '놈놈놈'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니 그 영화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읽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의 진행 내용을 짚어가며 논지를 펼 것이므로, 백지 상태에서 '놈놈놈'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이 글을 피할 것을 권한다. 최근에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를 보았지만, 그것과 이 작품을 대조하는 것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가혹한 일이므로 그렇게 하지도 않겠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일단 기술적인 차원에서, 액션씬의 문제를 먼저 짚고 들어가보자. 만주 평야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추적씬은, 이 영화의 제작진이 정글 밖으로 나온 피그미족같은 그런 인식론적 틀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장총으로 무장한 이들이 평야에서 만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먼저 총을 쏘고, 조준이 맞다면 상대방은 죽는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그 유명한 장면, 지평선 너머로 오마 샤리프가 등장하는 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사막이나 평원이라고 해서 꼭 그렇게 싸워야만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건 서부 개척시대 뿐 아니라 징기즈칸이 말을 타고 유럽을 침략하던 시대부터 이미 보편화된 전투 공식이다. 탁 트인 평원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쏴서 명중시키는 자가 승리한다. 따라서 들키지 않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첫번째 조건이며, 만약 발견되었다면 상대방의 위치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놈놈놈'에는 이런 최소한의 리얼리티에 대한 고려가 없다.
지도 사본은 단 한 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만주군 일본제국군 화적 집단 등이 동시에 한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고 치자. 그래서 만나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치자. 그런데 일본군이 기마 소총부대의 한복판을 가로질러가며 장총으로 아군을 마구 쏘아 죽이는 정우성 같은 놈을 그냥 보고 있을까? 마치 움직이는 과녁처럼, 정우성의 장총 돌리기만을 위해 멍하니 달려가던 일본군의 모습.
장거리 총격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두홍 무술감독팀이 짜넣은 액쎤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우성은 아예 대놓고 일본군 부대 속으로 뛰어들어서 장총을 돌려가며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린다. 이건 '주차장 액션 씬'의 재탕일 뿐이다. 한국 액션 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적들 한가운데에서 단기필마로 깡패들을 쓰러뜨리는 '사나이'의 모습 말이다. 다만 만주니까 발차기 대신 총을 쏘는 것 뿐이고, 그러니 정두홍이 만드는 액션에서 (특히 〈짝패〉, 기본기도 돌려차기 필살기도 돌려차기, 어째 액션이 돌려차기밖에 없던가?) 돌려차기가 죽도록 나왔던 그 연장선상에서 정우성은 죽어라 장총을 돌려댈 수밖에 없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액션씬의 구성 오류는 단지 실력 문제만은 아니다. '놈놈놈'의 제작진, 더 나아가 이 영화에 돈을 대준 사람들, 혹은 400만명이나 보고 있는 관객들이 '대륙'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따위 액션씬을 찍어놓고도 호쾌하네 어쩌네 대륙적 기상이 느껴지고 운운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만주에서 넓은 땅을 이용해 액션을 찍을 거면, 김지운은 대륙 그 자체를 좀 더 사유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제목에 써놓은 바와 같이 국제촌놈들이기 때문에, 혹은 정글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피그미족들이기 때문에, 탁 트인 평원을 마주치면 어찌할 줄 모르고 주춤거리다가 '결국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라며 깊고 편안하고 아늑한 우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대륙'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자원 빈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인식 체계 속에서 '대륙'은 곧 '자원'일 뿐이라는 것을 '놈놈놈'보다 더 잘 보여주는 텍스트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포일러 경고를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보물지도는 결국 일본인들이 파놓은 유전의 지도인데, 만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발상도 우습거니와 기껏 만주에 가서도 생각하는 것이 유전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피식 나오는 설정이다. 사실 난 초반부에 '시추'라는 단어가 들릴 때부터 이따위 설정을 짐작했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구역질이 났다. '자원 외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자원 외교'등을 통해 외국으로부터 안정된 자원 수급을 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요? 이런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에 '자원 외교'를 요청하는 것이다. 한국에 비교적 풍부한(아니, 풍부했던) 금, 무연탄 등의 자원을 일본에 싼 값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그런 외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국내 주요 일간지가 모두 쿵짝쿵짝 떠드는 가운데 일본인 외교관이 '한국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일본의 기술이 만나...'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거다.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자원 외교'를 논하는 것은, '나 식민주의자요'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후지고 못나고 한심한 짓이다. 그런데 그걸 한국 정부는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게 대체 왜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지운의 '놈놈놈'에서 만주를 '석유'로 치환시키는 것을 본 중국인들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할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서 다소 동떨어진, 송강호가 독립군을 사칭하는 사기꾼의 아편굴에서 아편과 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장면에서 그 가소로운 제국주의의 욕망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거기서 독립군을 사칭하는 사기꾼은 '사실 만주는 조선의 땅이다', '그런데 거기에 보물(즉 석유)가 묻혀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 조선의 것이어야 한다'는 삼단논법을 펼친다. 한국인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또한 연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딱 그 모양 그 꼴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한국인들은 전부 '민족뽕'에 취해 해롱거리는 얼간이들로밖에 안 보인다. 뽕 먹은 논리가 뽕 먹은 장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나마 그 석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영화의 주인공인 세 놈들은 알아보지도 못한다. 여기서 더욱 주목할만한 것은 보물을 찾은 후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장면이다. 몇 년이 지나도 연기 못 하는 정우성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대사 치게 하는 대범한 연출이 불러오는 두통과 현기증은 논외로 하자. 그런데 송강호가 말하는 '소원'이라는 것이 결국 '외국에서 돈 벌어서 국내에 땅 사는 것', 다시 말해 해외 펀드로 대박 쳐서 아파트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지적하고 있지 않은 걸까?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어차피 그 소원의 내용이라는 것이 클리셰에 가까운 것이므로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보물의 실체가 밝혀진 다음 그 소원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그 적나라한 욕망 앞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땅은 사사 뭐하냐는 정우성의 되받아치는 대사도 그렇다. 그러면서 정우성은 말한다. 나라가 없으니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땅을 사서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는 언제 망할지 모르니 돈을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최고다. 바로 이 두 가지 생각이 맞물려, 아파트 값을 올려주기만 하면 한국이 망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서울 아빠'들의 표심을 만들어냈고, 그게 바로 이명박을 당선시킨 주범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그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읊어댄 수많은 작품들, 네셔널리즘을 과장되게 포장하여 설파하던 작품들의 존재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우리가 한국인의 '민족혼'이라 일컫던 '한'의 실체가 고작 이런 것이었을까?
아닌게아니라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을 연출하던 중 《판타스틱》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자신은 당시의 만주를 고증 그대로 찍었으며, 그곳은 실로 코스모폴리탄적인 공간이었다고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판타지를 구성하고자 했다면 그 판타지의 내적 논리가 충실하게 성립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에 등장하는 만주는 역사상 존재했던 그곳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망치를 들고 휘두르던 마동석.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에서 만주를 해방구로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그곳이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냐 하는 것이다. 기존 한국 문화계를 짓눌러온, 일제시대에 대한 과도한 네셔널리즘적 반발에 대항하여, 최근에는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포함하여 몇몇 영상 매체에서 '화려하고 재미있는 일제시대'라는 하나의 표상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작품들은, 기존에 그려내지 못한 '일제 시대'라는 무언가를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도리어 한국의 창작자들은 그 시점에서 만주로 나아가, 아니 도망가, 과도한 네셔널리즘의 반대급부로 과도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통해 초라하게 드러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을 배태한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성향은 이 작품이 매끈한 판타지가 될 수 있도록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송강호가 빨려들어간 만주의 아편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그곳에서 송강호는, 놀랍게도, 그 코스모폴리탄적인 만주에서 참으로 놀랍게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세 명의 어린이들을 구출해내 '조선인촌'에 숨겨두고 나온다. 무국적 공간으로 만주를 제시하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민족'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순수한 어린이'의 탈을 쓰고 귀환하는 것이다. 무국적 공간인 만주에, 우리 민족이 있단다.
이 모든 병리적 현상은 결국, '일제시대'를 직시하고 싶지 않은 한국인들의 무의식이 빚어내는 현상이다. 해방 이후 수십년 동안 '사악한 일제'에 맞선 '숭고한 민족'을 제시하다가, 그게 서서히 먹히지 않는 시점이 되자 '일제시대에도 실은 연애도 했다'고 눙치다가, 그건 그림이 잘 안 나오고, 로맨스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리얼리티를 확보하다보면 결국 일제시대를 직시할 수밖에 없으므로, 무국적 퓨전 공간인 만주로 도망간다. 만주에서는 모든 이가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질주하는 무국적 신자유주의 코스모폴리탄 공간이라고 우겨보다가, 아편굴에서 해롱거리는데 그 지하실에는 '조선인' 어린이가 순수한 표정으로 갇혀 있다. 한국인들은, 혹은 한국인들이 만드는 문화적 컨텐츠는, 절대 일제시대를 그 자체로 직시하려 들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을 타고 시선을 돌리며, 끝까지 '순수한 민족'의 맹아를 남겨두고야 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모든 균열은 한국의 자본가들과 그 워너비들의 욕망을 드러내준다. 대륙이 뭔지도 모르고, 국제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면서, 그저 대륙으로 질주해서 석유를 퍼오고 금을 캐오고 수익률 200%를 먹은 다음 다음 국내에서 떵떵거리는 꿈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자'의 모습을 구성하는 일에 우리는 너무도 촌스럽다. 외국인들도 모두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떠는 '유사 한민족'으로 묘사하거나, 그도 아니면 바로 '놈놈놈'처럼 짐짓 코스모폴리탄인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백의민족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박수를 치거나. (알겠지만, 그런 장면도 나온다. 그건 '쿨'한 척하는 김지운 감독의 이중 기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관객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장면을 구상하고 넣음으로써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그런 이중 기만 말이다.)
내가 여기서 비판의 대상을 '자본가'와 그 워너비들로 한정지은 이유는, 이 문제와 맞서기 위해 리얼리즘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말을 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앞서 레오네 영화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잠깐 반칙을 저질러보자. 〈황야의 무법자〉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덤덤함, 〈옛날옛적 서부에서〉에 치열하게 묘사되는 서부 개척시대의 난맥상, 뭐 그런 것들. '좌파'라는 말은 '우울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여서는 안 된다. 우파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둥그렇게 원을 그린 다음 그 밖으로 삐져나가는 이들을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좌파적인 리얼리즘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을 찍고 보고 즐기는 한국인들은, 타자의 시선으로 볼 때 그저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일 뿐이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떼어 먹는 놈, 공항에서 내린지 10분도 안 된 외국인에게 ENG 카메라 들이밀며 한국 좋냐고 물어보는 놈, 그걸 또 TV로 보고 있는 놈, 그 놈 욕하는 놈, 외국 나가서 '자원 외교' 한다는 말 듣고 좋아하는 놈, 알프스 산 올라가서 기껏 신라면 큰사발 먹고 내려온 게 자랑이라고 떠벌이는 놈, 놈, 놈, 놈... 하, 징그러운 놈들.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