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경복궁역 1번 출구 패밀리마트 앞. 애초에 경복궁역에 모이는 것부터가 잘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경복궁역을 가로지르는 차도가 시위대를 양쪽으로 분산시켰다. 오후 8시경 도착한 나는, 패밀리마트가 있는 1번 출구에서 친구와 만났고 상황을 주시했다. 정말 좋지 않았다. 전경들은 인도까지 올라와있었다. '불법집회를 당장 해산하라'고 말은 하는데, 해산한 다음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청와대 방면에서 전경 중대 하나가 내려왔다. 스크럼 짤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버텼다. 50여분 정도 그럭저럭 잘 해나간 것 같은데, 뒤쪽에서도 진압이 들어왔다.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사기가 떨어졌고 체력도 많이 소진되었다. 내 왼쪽에서 스크럼이 깨졌고, 전경들이 밀고 들어와 바로 내 옆에 있던 사람까지 연행해갔다. 손을 잡았지만 미끄러졌고, 나는 지하철역으로 돌아와 친구를 다시 만난 후 숨을 골랐다. 광화문으로 옮겨간 후 그날 3시까지 집회에 참여했다.
내가 대책회의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자기들이 '집행부' 노릇하고 싶어서 방송 틀고 노래에 춤에 덩실덩실 노는 것도 다 좋다. 하지만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사람들이 고립되도록 방치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고립으로 인한 공포심이야말로 시위대를 해산하고자 하는 경찰이 노리는 바로 그것이다.
경복궁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는 목소리를, 교묘한 방식으로 묵살했다는 제보가 한 둘이 아니다.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칼라TV 중계를 통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게다가 새벽 무렵, 서대문에서 전경들이 밀려들어오던 순간에도 그렇다. 투썸플레이스 방향으로 차를 몰고 왔으면 계속 거기서 버티거나, 방송을 끄고 조용히 광화문으로 도망갈 것이지, 계속 방송을 하면서 차를 빼니 시위대가 그것을 따라가게 되는 것 아닌가.
분통이 터져서 항의를 하러 동행인이 달려갔다. 그러자 방송차량 주변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던 '일반 시민'들이, 누구에게도 답변을 할 수 없도록 돌려가면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더라. 하나같이 말로는 '나는 대책위는 아니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이는데, 대책위의 입장을 너무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방송차량에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어서 살수에 맞으면 안 된다나? 누가 당신들더러 앞장서서 방송 해달랬나? 후퇴를 하더라도 시끄럽게 하지 말라 이거다. 꺼질거면 닥치고 꺼지라고. '님을 위한 행진곡' 틀면서 도망가면 후퇴가 전진으로 바뀌더냐?
2.
현재 가장 두려운 것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고립되고 있다는 불안감에 잠식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된다. 안전한 곳에 앉아서,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노래 틀면서 지휘부 행세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대책위로부터도, 고립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에 빠져들면 진다. 비단 이 시위만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국민들이 무기력에 빠져들어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으면, 선거에서 거의 다 이기고도 정권 탈환을 못 하는 수도 있다. 짐바브웨가 바로 지금 그렇다.
짐바브웨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뉴스위크 인터넷판이 24일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야당 후보가 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는 짐바브웨의 현지 르포를 실었다. 뉴스위크 기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기이한 ‘평온함’이었다.
로드 노드랜드 기자가 지하 조직을 통해 어렵사리 잠입한 곳은 짐바브웨 제2의 도시 블라와요. 실업률이 85%에 이른다는데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이나 거지가 없었다. 교통체증도 없고 거리도 깨끗했다.
"짐바브웨, 빵 한덩어리 사는데 3시간 ‘줄서기’"(경향신문, 2008년 6월 24일)
1차 투표에서 현직 대통령인 무가베를 앞섰지만 50%를 넘기지 못해 결선투표로 가게 된 짐바브웨에서, 무가베는 무자비하게 야당 지지자 및 지도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야당 후보가 네덜란드 대사관을 통해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민들은 의외로 대단히 평온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노드랜드가 본 짐바브웨 사람들의 주된 활동은 ‘줄서기’였다. 시내 빵집마다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쥐새끼를 때려잡자'는 사람들이,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것을 기대하며 주택청약 줄서기를 하고 있는 한국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나 거기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자기 손으로 벌어서 삶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오직 '줄서기'에 매달려있는 동안 정부는 제멋대로 정책을 펼쳐나간다. 그래놓고서는 다들 '나는 찍지 않았읍니다'라고 항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줄서기'를 그만 둬야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 스스로가 한 사람의 노동자라는 것을 절실하게 자각하는 의식적 전환이 필요하다.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역설적 기반이 되고 있는 셈이다. 노드랜드 기자는 “무가베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6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무가베는 ‘짐바브웨는 붕괴되지 않는다’고 교만하게 말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무가베 말이 옳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5년째 10% 이하"라는 보도가 5년째 이어졌지만, 아무튼 대운하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면, 아프리카 플레이어를 끄고 아고라 띄워놓은 웹브라우저 창을 닫자. 광화문의 시민들은 현재, '일반 시민'들 속에 고립되어 있다.
3.
오늘은 경찰이 매우 이른 시각부터 진압에 나섰다고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지키기 위한 방편일 가능성이 크다. 숫자가 적지 않아서 당장 집단 연행을 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시위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에 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결국 우리는 다시 '연대'라는 해묵은 가치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 금토일 사흘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더 강하게 연대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모두 거리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