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Cow Disease
"메리는 작은 양을 길렀고/ 그 양이 아프다는 것을 봤을 때/ 그것을 패킹타운(Packingtown)으로 보냈고/ 그 위에는 닭고기 라벨이 붙었답니다."
이 짧은 동요는 업튼 싱클래어(Upton Sinclair)가 1906년 미국의 육류 포장업계의 실상을 폭로한 "정글(The Jungle)"의 내용을 탁월하게 요약하고 있다. 싱클래어의 고발은 테오도어 루즈벨트가 청정 음식 및 약물법(Pure Food and Drug Act)과 고기 검사법(Meat Inspection Act)을 통과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리하여 다음 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미국인들은 그들의 식품의 안전을 검사하는 정부를 믿었다.
최근, 그러나, 언제나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식품 안전 문제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상한 시금치, 독성을 띈 땅콩 버터, 그리고, 근래에는 살인 토마토의 공격까지 있었다. 미국 식품 규제의 신뢰도 감소는 심지어 대외 정책의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친 미국적인 수상(NYT의 실수. 6월 20일 내용을 수정하였음)이 2003년 광우병이 발견된 이후 금지했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겠다고 결정하자 그에 대한 대규모의 반발이 일어났다.
대체 어떻게 해서 미국은 "정글"로 돌아가게 되었을까?
그 문제는 이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의 하드 코어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도금시대(Gilded Age)를 오래도록 이상화하면서, 동시에 그 뒤를 이은 모든 시대를, 뉴딜 뿐 아니라 진보시대(Progress Era-대공황 극복기)마저도 진정한 자본주의의 길에서 이탈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여, 세금 반대론자인 그로버 노퀴스트(Grover Norquist)에게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미국이 "테디 루즈벨트, 그 사회주의자가 가져온 소득세, 사망세, 규제, 그 모든 것들"로부터 미국을 되돌려놓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 밀턴 프리드먼(Milton Freidman)은 식품의약청을 없애자는 요청에 동의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불필요하다. 사기업들은 그들의 명성을 위협하는 공공 안전의 위험 유발을 회피할 것이며, 치명적인 집단 소송을 회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다른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프리드먼은 변호사를 자유 시장 경제의 수호자로 보았다.)
이러한 하드 코어 규제 반대론자들은 정치적 극단주의자들 중 일부일 뿐이었지만, 보수주의의 현대적 부흥 운동과 함께 그들은 권력의 통로로 들어왔다. 그들이 FDA를 없애거나 육류 검사 제도를 제거하는데 충분한 표를 얻은 적은 없지만, 그들은 식품 안전 보장을 무력하게 만드는 로비 집단을 만들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다.
그 로비 단체에는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만한 자원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그 작업 중 일부분이었다. 예컨대 과학의 발전과 세계화로 인해 FDA의 업무는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복잡해졌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1994년에 비한다면, 그 로비 집단은 실질적으로 적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고 있는 구조일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었던 2003년, 농림부 장관은 앤 M. 비네만(Ann M. Veneman)이었는데, 그는 전직 식품 산업 로비스트였다. 그리고 위협을 체계적으로 축소하고 추가적인 검사 요청을 거부한 농림부의 대응은, 축산업계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놀라운 결정이 나왔다. 켄사스의 한 축산업자가 자신이 기르는 소를 검사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일본으로의 수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말이다. 부시 정권이 이러한 자율 규제 사례를 쌍수 들어 환영했으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허가는 나지 않았다. 같은 요구를 소비자들이 하게 된다면 그 규제를 따라야 할 다른 육류 생산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압력이 높아지던 그 때, 패거리 자본주의 놀음은 자유 시장에 대한 신앙 고백의 가르침을 훈계하듯 설파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농림부는 검사를 확장했고, 그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금지했던 나라들은 다시 시장을 개방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쇠고기 문제가 덜떨어진 외교관에 의해 상처받은 한국인들의 국가적 자존심과도 연결되어버린 만큼, 그 불신 중 일부는 비이성적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비난하기란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축산업계에 대한 농림부의 엄호사격은 아군을 쏘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잠재적인 외국 구매자들이 우리의 안전 기준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쇠고기 생산자들은 가장 중요한 대외 시장에 수 년간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부시 정부가 효율적인 규제를 위해 벌인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제거해버린 정책이다. 이것은 과잉 대출보다 더 큰 부담을 금융업계에 전가시킴으로써 서브프라임 위기의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렇다. 효율적인 규제에 실패하는 것은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식품의 사례로 돌아와보면,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해외 시장을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테디 루즈벨트, 그 사회주의자 이후에 우리가 걸었던 길을 회복하는 것이다. 미국의 식품이 안전하다는 보증을 업계에 돌려줘야 할 때이다.
(폴 크루그먼, "Bad Cow Disease", The New York Times, 2008년 6월 13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 갔다가 돌아온 지금, 우리가 6월 13일에 올라온 이 칼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자율규제'는 이미 한 번 실패한 바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켄사스의 한 축산업자가 자신이 기르는 소를 검사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일본으로의 수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허가는 나지 않았다. 같은 요구를 소비자들이 하게 된다면 그 규제를 따라야 할 다른 육류 생산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국의 경우에 적용해보자. 한국에 수출되는 쇠고기를 위한 QSM은 모든 축산업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 도장을 찍어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저런 짓을 하면 분명히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특히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음식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미비하므로, 소비자들은 가급적이면 자신이 먹는 식품이 안전하다고 보증되어 있기를 원하지, 그 반대를 바라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QSM같은 새로운 '자율 규제'가 도입되면, 한국에 곱창을 수출하고자하는 축산업자들은 그러한 자율 규제를 따르고자 하겠지만, 위 경우처럼 다른 업자들의 반대와 맞닥뜨릴 공산이 크다. 정부의 추가협상안은 결국, 이미 한 번 실패한 사례를 반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문제는 이 칼럼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부분을 인용하여 정부의 추가협상안을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수많은 한국인들의 관심은 오직 "한국인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라는 한 구절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영어로 된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을 거면 대체 뭐하러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난리를 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이러한 '한 줄 인용'이 대단히 불편하다.
크루그먼의 이 칼럼은 기본적으로 '미국은 시장 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한국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크루그먼, "한국인들 비난하기 어려워""라고 기사 제목을 따는 식의 저널리즘을 대체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 쇠고기 그 자체의 안전성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신뢰도'가 문제라는 논점을 제대로 잡아, 이쪽에서 먼저 의견을 펼쳐나갈 수 있는 그런 저널리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경향신문과 프레시안 정도가 쇠고기 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보도를 펼치고 있지만, '모든 규제는 악이다'라는 주문에 휩싸여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크루그먼과 같은 논지는 진작에 이쪽에서 먼저 나왔어야 한다.
미국 내에서 과도하게 규제를 풀어버림으로써 도리어 수출이 막히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 시장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특히 EU에 수출하고자 하는 미국 업자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마이에미 대학교의 경제학과 조교수인 Bill C의 설명이다. "The EU Is Watching Out for You"(Twenty-Cent Paradigms, 2008년 6월 14일)라는 포스트를 통해 그는 규제와 수출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정부의 효율적인 간섭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잠재적인 위험 수준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완전하게 알고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EU의 소비자들이 뭐가 들어있는지 알 턱이 없는 미국 물건, 특히 화학 생산물을 구입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그 시장을 노리기 위해 미국인들은 '자율적으로' 품질 보증 등의 제도를 택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할 경우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규제에 맞추기 위해 온 산업이 안전 기준을 맞출 때보다 개별 생산자가 감당해야 하는 생산비가 높아진다는 데 있다. 즉, 품질은 똑같고 가격은 더 비싼 물건을 미국은 EU에 수출하게 되는 것이다. 팔릴 턱이 없다.
물론 한국의 쇠고기 가격은, 미국 내에서 생산비가 다소 높아진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하지만 '자율 규제'로 인한 비용은 결국 한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는 그로 인해 '값은 어중간하게 비싸지만 질이 좋은지는 딱히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이 되고 만다. 그럼 대체 왜, 한국의 영세 축산농가를 괴멸로 몰아가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신이 없어서 번역은 엉망이고 글도 횡설수설인데, 그래도 내용을 정리해보자. 첫째,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이미 자율 규제를 시험해봤지만, 시장 논리에 의해 실패했다. 둘째, 이런 중요한 정보를 한국 언론들은 거의 다루지도 않고 있다. 그저 "한국인들은 나쁘지 않아요"라는 말에만 주목하고 있을 따름이다. 셋째, 과도한 규제 완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문제이며 미국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대체 왜 한국 정부가 나서서 미국의 짐을 대신 떠맡아주는 것일까? '이면합의가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이쯤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이 문제는 단지 광우병과 식품 안전만에 대한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시 행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다이 하드 규제 완화가 논점이 되듯, 한국인들은 여기서 고기 타령 외의 논점을 더 끌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수준 문제가 일단 걸린다. 미국 내에서 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전혀 추적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자율 규제'의 실패 사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법이라고 들고 온 협상단에도 문제가 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찾고, 미국산 쇠고기에서 출발한 이 문제의 끈을 다방면으로 이어갔으면 한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를 논점화할 에너지나 여력이 부족한거같아 안타깝네요. 요즘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참으로 다양한 전략을 들고나오는거 같아서요. 오늘 조선일보 내용은 참 가관이더라구요. 우희종 교수를 걸고넘어간다거나 조선일보에서 다음 조중동폐간 카페 폐쇄요구도 그렇구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인데. 답답하네요.
답글삭제당장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문제의식을 확고하게 다져놓는 것이 중요하죠. '조중동 폐간'을 넘어서서 올바른 언론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논의가, 이번 정국에 뒤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답글삭제미국 쇠고기 검역체제의 난맥상에 대해 유용한 링크 하나 소개하지요.
답글삭제http://www.pbs.org/wgbh/pages/frontline/shows/meat/
'Fast Food Nation'의 저자가 참여하여 만든 미국 공영방송의 도큐입니다. 2002년에 방송된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참고할 가치는 있을 것입니다.
광우병 문제는 다루지 않는데 그 대신 공장식 목축의 문제, 이콜라이나 살모넬라 문제, 그리고 특히 부시 집권 후 취약한 검역체제가 더 약화된 것을 지적하고 있지요.
재미있는 내용으로는 미국에서 1 년에 오천 명이 식중독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그 중 삼분의 일 정도가 식육에 관련된 식중독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모넬라 검출을 이유로 폐쇄명령을 받은 햄버거 공장이 소송을 걸어 승리하는 바람에 미국 농무부는 더 이상 쇠고기에서 살모넬라 감염을 규제할 권한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 Grover Norquist라는 사람은 감세정책을 통해 연방정부를 파산시켜 뉴딜을 해체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공언하고 다니는 공화당의 이데올로그이지요.
음, 링크 잘 봤습니다. 말씀대로 참고할 가치가 있군요. 크루그먼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미국 내 식품 검역 체계의 부실과 그로 인한 수출의 난항입니다.
답글삭제규제가 없으면 무조건 자유시장경제가 발전하리라는 환상에 대해 비판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직 한국의 진보진영은 경제적 논리에 경제적으로 맞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큽니다. 좋은 링크 감사합니다.
사회주의자인 싱클레어가 정글을 쓸 때는 시카고 도축장 노동자들의 참상을 조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막상 독자들은 노동자의 삶 보다 쇠고기 더러운 것에 더 관심을 가져 실망했다고 하지요.
답글삭제그리고 사실 PBS가 미국과 관련된 시사문제에 있어서는 자료의 보고입니다. 웬만한 주제는 한 번은 꼭 다뤘다고 보면 되고, 그 논의의 수준도 상당히 높습니다.
앗, 못 본 사이에 글이 잔뜩=ㅂ=
답글삭제내일 모레 날 잡아서 천천히 읽어야겠어요.
한 가지 더. 가디안을 즐겨 읽으시면 나오미 클라인도 잘 아실텐데, 지금 님의 문제의식이 그 사람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신자유주의적인 사적 영역의 확대가 공적 영역을 소멸시키면 더 이상 사적 영역도 존재할 수 없게 되겠지요.
kritiker/ 일부러 그러셔야 할 정도로 잘 쓴 글은 아닙니다. 부끄럽네요.
답글삭제인형사/ 저는 가디언의 comment is free를 즐겨 읽지는 않습니다. 너무 글이 많아서 정신이 없거든요. 나오미 클라인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구체적인 논지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고요. 검색해보니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 것 같군요. 참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