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외로운 청년들은 추운 겨울이 오면 더 힘들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번듯한 신축 원룸 따위에 살지 않는 한, 집에 있을 때보다 정말 더 춥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자취방은 가정집보다 난방 효율이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불을 때도 때는 것 같지 않고, 방에 앉아있으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에 손가락이 얼기 시작한다.
적지 않은 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내용의 하소연을 접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집이라는 것이 본디 사람이 따뜻하게 살자고 짓는 거지, 그 반대는 아닌 까닭이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도 겨울에 가정 내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독거청년들이 유독 심하게 느끼는 '집 안에서의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제시하는 것에서 만족하고자 한다.
1. 문풍지를 바르자.
난방 효율성 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외풍 단속'이다. 지금 앉아있는 방이 너무 춥게 느껴진다면, 당장 라이터를 들고 창가로 가볼 것을 권한다. 창문 틈새에 대고 라이터를 켜라. 불꽃이 춤을 춘다면 바람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좁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추워지고 있다. 가까운 철물점, 슈퍼, 잡화점 등으로 달려가 문풍지를 구입해 바르도록 하자.
외풍이 새느냐 안 새느냐의 차이는 실로 막대하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 경험을 말해볼까 한다. 재작년 겨울 무렵 무척 추웠다. 나는 당시 드라마틱 객원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내 주된 업무는 드라마를 시청한 후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방송사 사이트에서 다시보기 결제를 했다. 그렇게 몰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집인데,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다. 당시 내 방의 데스크탑 컴퓨터는 창문과 바로 붙어 있었고, 그 창문에서 바람이 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문의 틈 사이를 전부 노란색 문풍지로 처바르고, 인터넷선을 연결하느라 드릴로 구멍을 뚫은 창틀에 고무찰흙을 이겨넣으니 한결 나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지독한 외풍이었다. 신형 샷시로 된 창문이었지만 애초에 건물 자체가 약간 삐뚤어져 있어서 창틀이 찌그러져 있었고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문풍지를 이중 삼중으로 발라서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방이 남산 끄트머리에 있어서 바람이 세게 부는 것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좋았는데 겨울이 되자 단점으로 돌변했다. 고무찰흙으로 창틀의 구멍을 다 막아놨더니,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나갈 구멍도 없어졌고, 그 물이 고여서 얼어붙은 결과 아침에 창문이 안 열린 날도 적지 않았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와 얼음을 우선 조심스럽게 녹인 후, 고무찰흙을 제거하고 물을 빼서 해결했다.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되니 이쯤 하도록 하자.
아무튼 요점은, 방 안에서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고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일단 외풍이 드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터 등을 이용해 외풍을 확인하면, 악의 세력을 섬멸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틀어막아야 한다. 그 작업만 완료해도 한결 낫다.
2. 커튼을 쳐라.
문풍지를 다 발라도 창가에 가면 추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딴게 아니라, 창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틀이 플라스틱 샤시가 아니라 철제로 되어 있을 경우, 지금 내 방 창문이 그런데, 쉽사리 물방울이 맺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벽을 이루는 벽돌보다 창문을 이루는 유리와 철의 열 전도율이 높기 때문인데, 길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짧게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이므로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미묘한 찬바람은 창가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감기를 유발할 수 있을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다. 독거노인과 마찬가지로 독거청년 또한 질병에 취약한 존재들이다. 아프면 서럽고, 서러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풍지를 바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창가에는 커텐을 쳐야 한다.
알량한 한 장의 헝겊이 창문과 당신 사이에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불러온다. 미처 잡지 못한 외풍이 불어닥치는 속도를 낮춰줄 뿐만 아니라, 창문 자체의 서늘함도 어느 정도 감소시켜주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두꺼운 커튼은 햇빛을 전부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지만, 적어도 저녁에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커튼을 쳐놓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이다.
3. 보일러를 확인하라.
이태원으로 이사오기 전 살던 약수동 방에 처음 들어갔던 날. 삭풍이 몰아치던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기 괜찮을 거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지도 못한 방에서 박스들을 한 켠으로 밀어두고, 가을이와 함께 잠을 청했다. 가스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보일러를 높게 틀어 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붙이고 있어도 방이 하나도 안 따뜻해지는 것 아닌가. 보일러는 폐병 걸린 미소년이 밭은기침을 하듯 쿨럭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십분이 지났는데도 방바닥에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희망온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20도.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춥나, 내가 뭘 잘못했길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덜덜 떨면서 억지로 눈을 붙였다.
자고 일어나서 보일러를 확인해보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희망온도'와 '난방온수온도'가 별도로 조작 가능하게 되어 있었고, '난방온수온도'가 40도였나, 아무튼 가장 낮은 수치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내 방의 바닥에는 내 체온보다 고작 3~4도 정도 높은 알량한 온수, 그 미적지근한 물이 왔다갔다하면서 난방을 하겠답시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내 기억에 그 보일러는 귀뚜라미 제품이었다. 난방온수온도의 비밀을 안 이후로는 단 한 번의 고장도 없이 잘 썼다는 점을 괜히 적어본다).
옛날에 했던 바보짓을 굳이 공개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보일러 조작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우선 따져봐야지, '전기담요가 얼마쯤 할까' 같은 다음 단계의 고민을 먼저 하면서 괜히 세입자의 서러움 같은 것을 느끼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특히 실내가 실외보다 춥다면, 집이 완전히 잘못 지어지지 않은 바에야, 보일러가 안 돌아가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보일러를 확인해야 한다. 계기판을 꼼꼼히 살펴보고, 본체에 써있는 주의사항도 읽어보도록 하자.
내가 방금 말한 세 가지 사항은, 사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기본적이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그런 것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를 경우 그로 인해 한없는 고통을 겪으며 괜한 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괜히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같은 시를 읊으며 타향살이의 설움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거나, 이성친구도 없으면서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따위 싯귀를 웅얼거리거나, '청계천 8가' 같은 노래를 부르거나, 뭐 이런 짓을 하고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감상에 빠지기 전에 실질적인 요소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특히 요즘 독거청년들은 집에서 너무 곱게 자란 탓에, 가정 설비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한채 험난한 겨울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가사노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막상 나와 살고 보니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겪으면서 겨우 배웠다.
혹시라도 이런 단편적인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말 새벽에 일하다가 잠시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