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세력을 확장하던 당시, 사민당은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었고 당내 소수파들을 '급진주의자'들로 몰아붙이며 급격한 중도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많은 경우 대중의 정서를 거스르지 않기를 원했고,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집권을 한 다음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식의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지적 및 정확한 기술을 환영합니다). 나치 뿐 아니라 사민당도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대중 일반의 편견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그에 동참하는 일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인 다수가 인정한 대표적인 나치 테러가 동성애자라는 소수에 대한 테러였다. 나치 지도부 몇 명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두고, [339쪽] 동성애에 대한 나치의 원칙적인 적대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돌격대 대장 에른스트 룀이 동성애자라며 치욕적인 공격을 가한 것은 하필 사민당 신문이었다. 그때 사민당은 선거를 위해 "인민의 건강한 정서"에 호소한답시고 독일 사회주의의 자유주의적인 전통을 더럽힌 것이었는데, 1934년 소위 룀 쿠데타 이후 나치는 그 문제를 재론하면서 그때의 학살을 정당화했다.(338-339쪽)
이런 식으로 테러는 정치의 "일탈"적 수단이 되어갔다. 나치는 특유의 선동으로 '일반 대중'들이 '싫어하는' 자들을 하나씩 공격해 들어갔다. 가령 동성애자를 싫어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았던 일반 대중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나는 동성애가 싫다, 하지만 그들이 저렇게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라는 식의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치가 직접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자 대중들은 스스로의 입장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나치의 테러에 동조하거나, 그들의 테러에 공포를 느끼며 입을 다물거나.
나치는 '일반 시민'들이 고깝게 여기는 자들을 순차적으로 대상으로 삼았다. 테러의 화살이 돌고 돌아 사회주의자들에게까지 돌아왔을 때, 나치의 테러를 우려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직접적·조직적으로 항거하지는 못했다. 왜일까? 데틀레프 포이게르트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놀라운 것은, 적어도 1933년에는 신문들이 공산주의자, 사민당원, 노조 조합원에 대한 억압 조치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는 나치의 정치적 테러에 대한 의사 표명이 드물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좌파에 대한 테러에 침묵한 것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과거에 중도 정당이나 우파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나치가 "빨갱이"를 해치운 것을 환영했고, 따라서 테러로의 "일탈"을 기꺼이 감수했다. 둘째, 좌파 정당에 대한 테러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그 자체의 정치성으로 인해 생필품 공급의 부족에 대해 불평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행위였다. 따라서 좌파에 대한 테러에 동의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박해가 두려워 침묵했다. (79쪽)
'나는 공산주의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나치의 폭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그 폭력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올까봐 두려워서 반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내의 불만 세력, 특히 조직적으로 산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고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분쇄해버린 히틀러는 급격하게 군국주의로 향하는 가속 패달을 밟는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회라면, 누군가가 동성애자들에게 테러를 가할 때, 어떤 이들은 후련해하고 어떤 이들은 그 폭력에 내가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움추려든다. 결국 남는 것은 피묻은 몽둥이를 든 깡패 집단이다. 당신들의 고상한 혐오가 반드시 고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사민당 신문은 에른스트 룀을 아웃팅하면서 히틀러에게 그들을 학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죽어갔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동성애에 대한 대중적 혐오를 부추긴 자들이, 바로 그 혐오를 타고 폭력을 휘두르며 정권을 잡은 집단에 의해 숙청당하게 된 것이다. 그 노란 카나리아를 죽인 것은 결국 '선량한 시민들'의 '평범한 혐오감'이었다. 그 모든 폭력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 그대로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참고문헌
나치 시대의 일상사 -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개마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