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31
뜨거운 머리, 차가운 가슴
세상에는 자신(들)을 제외한 다수의 사람들이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종종 그것을 상실하곤 한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컨대 '차가운 머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차가운 것은 그들의 가슴이며, 본인들이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냉혈한처럼 굴고 있다는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들의 머리는 곧잘 뜨거워지곤 한다.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은 사실 '뜨거운 머리, 차가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인 것이다. 심장이 뛰는 순간 두뇌가 멈춘다고? 현실은
그와 정 반대 아닌가? 심장이 멈추는 순간 두뇌도 멈춘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는 살아 숨쉬는 인간이다.
2010-03-24
계층 이동 없는 한국
한 가지 기본적인 질문. 계급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사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1950년대부터 1990년대 무렵의 대한민국처럼
사회 내 계층 이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사회가 과연 얼마나 될까? 20세기 중반 이후 대한민국이 겪은 급격한 경제 발전은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며(경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바로 그 '비정상적' 상황에 기반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질문. 대학 교수 자식들이 대학 교수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들은 노동자가 되는 나라. 필리핀과 동남아시아만 그럴까? 영국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자의 아들 테리 이글턴이 영문학 교수가 되었을 때 그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와 계층이 전부 파괴된 채 혼돈 속에서 출발한 대한민국같은 나라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계층이 어느 정도 분화되어 있고 그것이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식의 계층 이동과 신분 변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한국도 이제 필리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계층에 따라 주거지가 나누어져 있고 입는 옷이 다르고 생활하는 문화가 다른 것은 필리핀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물론 '현재'의 한국인들은 그런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계급의 차이가 생긴다고 해서 사회가 바로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로 치닫는다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이 글(에서 퍼온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고 있다. 한국이 그런 식으로 망하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묵시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 대답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계층간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결국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출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의 글은 '경제'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치'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 없는 정치' 말이다. 지금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조직적으로 '기존 정치권'이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를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한심스럽게 진행되어오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덧말) 여담인데, '사회를 지배하는 1%'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 않나 싶다. 현재 인구를 5천만으로 잡으면, 그것의 1%는 50만이다. 수능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수능 1%로는 SKY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기도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SKY 나와도 대한민국 1% 안에 못 낀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한 해 SKY 졸업생들의 숫자는 같은 연령대에 속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보다 당연히 더 적다. 사소한 레토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대한민국 1%'라는 헐거운 표현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네티즌과 대중들의 진지하지 못한 시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질문. 대학 교수 자식들이 대학 교수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들은 노동자가 되는 나라. 필리핀과 동남아시아만 그럴까? 영국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자의 아들 테리 이글턴이 영문학 교수가 되었을 때 그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와 계층이 전부 파괴된 채 혼돈 속에서 출발한 대한민국같은 나라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계층이 어느 정도 분화되어 있고 그것이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식의 계층 이동과 신분 변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한국도 이제 필리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계층에 따라 주거지가 나누어져 있고 입는 옷이 다르고 생활하는 문화가 다른 것은 필리핀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물론 '현재'의 한국인들은 그런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계급의 차이가 생긴다고 해서 사회가 바로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로 치닫는다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이 글(에서 퍼온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고 있다. 한국이 그런 식으로 망하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묵시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 대답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계층간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결국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출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의 글은 '경제'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치'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 없는 정치' 말이다. 지금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조직적으로 '기존 정치권'이 노동운동과 노동정치를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한심스럽게 진행되어오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덧말) 여담인데, '사회를 지배하는 1%'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 않나 싶다. 현재 인구를 5천만으로 잡으면, 그것의 1%는 50만이다. 수능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수능 1%로는 SKY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기도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SKY 나와도 대한민국 1% 안에 못 낀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한 해 SKY 졸업생들의 숫자는 같은 연령대에 속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보다 당연히 더 적다. 사소한 레토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대한민국 1%'라는 헐거운 표현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네티즌과 대중들의 진지하지 못한 시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2010-03-21
법정 스님의 유언에 대하여
다음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르다.
① 나는 내 제자들 중 그 누구도 내가 남긴 책의 저작권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② 나는 내 이름을 단 출판물이 더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의 유언은 분명히 ②를 의미하고 있다. 워낙 돈에 미쳐 있는 세상이라 그런지, 저작권자에게는 인세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외에도 '저작물에 대한 인격권'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 책을 절판시켜라'라는 말은 말 그대로, 자신의 책을 더 찍어내지 말고, 어떤 식으로건 공개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저자가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고 싶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제자들이 추가적인 이권을 놓고 큰 다툼을 벌이거나 그에 준하는 추문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은 것도 그중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본인의 이름을 단 책이 더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말 그대로 무(無)와 공(空)으로 사라지고 싶어서 그런 유언을 남겼을 수도 있다.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 등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법정 스님이 애초부터 '완전한 소멸'을 원해서 본인의 저서를 절판시키라는 유언을 남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쪽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에 미쳐있는지, '절판시키라고 유언을 남겼어? 그렇다면 인터넷에 공짜로 뿌리면 되겠네?'라며 눈을 희번덕거릴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책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사상과 인격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내 책을 전부 태워버려라'고 유언을 남기시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추측한다.) 평생 '무소유'를 설파한 한 스님이 자신의 인격을 위해 더 이상의 출간을 멈추라고 유언을 남겼을 때, 그것을 '공짜로 만들어라'고 해석할 만큼 우리 사회가 돈에 미쳐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① 나는 내 제자들 중 그 누구도 내가 남긴 책의 저작권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② 나는 내 이름을 단 출판물이 더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의 유언은 분명히 ②를 의미하고 있다. 워낙 돈에 미쳐 있는 세상이라 그런지, 저작권자에게는 인세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외에도 '저작물에 대한 인격권'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 책을 절판시켜라'라는 말은 말 그대로, 자신의 책을 더 찍어내지 말고, 어떤 식으로건 공개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저자가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고 싶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제자들이 추가적인 이권을 놓고 큰 다툼을 벌이거나 그에 준하는 추문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은 것도 그중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본인의 이름을 단 책이 더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말 그대로 무(無)와 공(空)으로 사라지고 싶어서 그런 유언을 남겼을 수도 있다.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 등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법정 스님이 애초부터 '완전한 소멸'을 원해서 본인의 저서를 절판시키라는 유언을 남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쪽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에 미쳐있는지, '절판시키라고 유언을 남겼어? 그렇다면 인터넷에 공짜로 뿌리면 되겠네?'라며 눈을 희번덕거릴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책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사상과 인격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내 책을 전부 태워버려라'고 유언을 남기시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추측한다.) 평생 '무소유'를 설파한 한 스님이 자신의 인격을 위해 더 이상의 출간을 멈추라고 유언을 남겼을 때, 그것을 '공짜로 만들어라'고 해석할 만큼 우리 사회가 돈에 미쳐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명하신 노알 백작님께
고명하신 노알 백작님께
당신께서 저의 이 책을 갖고 계시고 그것을 기꺼워하시니 당신의 위대하심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가 다른 책들을 써냈을 때 생긴 불행한 일들과 그에 따라 제가 실망하고 좌절을 겪은 일들은 당신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한 일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손으로 쓴 것이나마 어딘가에 남겨서 제가 연구한 것들을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께 제가 쓴 글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존하기에 그보다 더 소중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제게 배풀어주신 호의를 보면 당신께서 저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를 받아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편지를 통해 여러 번 제 존경심을 바쳤습니다. 당신께서 로마에서 돌아오실 때 저는 직접 찾아뵙고 그때 제가 준비하고 있던 이 두 개의 글들을 바쳤습니다. 제가 바친 것들을 당신께서 기꺼이 받아주셨으니 저는 그것들이 잘 보존되리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그것들을 프랑스로 갖고 가셔서 이 분야에 밝은 당신의 친구분들께 보여 주셨으니 제가 이렇게 조용히 지내지만 제가 실제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이것들을 독일, 플랑드르,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엘제빌이 제 책을 찍어 냈으며 저에게 이 책을 누구에게 헌정할 것인가 즉시 응답을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도 뜻밖의 일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당신께서 저의 글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셨는데 그것들이 출판사 사람들 손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전에 제 책을 찍어 낸 적이 있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 그 글들을 책으로 꾸며 낸 것 같습니다. 당신과 같이 고명하시고 저명하시고 존경스러운 분의 비판을 거친 것이기에 이 글은 더욱 값어치가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의 글들을 널리 전하려 하시니 당신의 관대하심과 당신께서 이것을 통해 만민의 복리를 증진하려 하시는 열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건대 저는 당신의 관대하심과 당신께서 저의 이름과 일들을 사방으로 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지역으로 널리 전하여 주신 데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는 제 노력의 결과인 이 책을 기꺼이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꼐서 제게 베푸신 은의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제가 당신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에 적들이 저의 명예를 공격하더라도 당신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당신의 휘하에 있으면서 당신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 당신께서 최고의 행복과 위대한 성취를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당신의 충실한 종
갈릴레오 갈릴레이
9-10쪽,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무현 옮김, 『새로운 두 과학 - 고체의 강도와 낙하 법칙에 관한 대화』(서울: 민음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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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하신 노알 백작님께
성스러운 교회의 고문관,
성신의 기사,
육군 통수권자,
루에르그의 통치사,
폐하의 오베르뉴 총독,
저의 주군이자 존경하는 후원자.
고명하신 백작님께.
성스러운 교회의 고문관,
성신의 기사,
육군 통수권자,
루에르그의 통치사,
폐하의 오베르뉴 총독,
저의 주군이자 존경하는 후원자.
고명하신 백작님께.
당신께서 저의 이 책을 갖고 계시고 그것을 기꺼워하시니 당신의 위대하심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가 다른 책들을 써냈을 때 생긴 불행한 일들과 그에 따라 제가 실망하고 좌절을 겪은 일들은 당신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한 일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손으로 쓴 것이나마 어딘가에 남겨서 제가 연구한 것들을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께 제가 쓴 글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존하기에 그보다 더 소중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제게 배풀어주신 호의를 보면 당신께서 저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를 받아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편지를 통해 여러 번 제 존경심을 바쳤습니다. 당신께서 로마에서 돌아오실 때 저는 직접 찾아뵙고 그때 제가 준비하고 있던 이 두 개의 글들을 바쳤습니다. 제가 바친 것들을 당신께서 기꺼이 받아주셨으니 저는 그것들이 잘 보존되리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그것들을 프랑스로 갖고 가셔서 이 분야에 밝은 당신의 친구분들께 보여 주셨으니 제가 이렇게 조용히 지내지만 제가 실제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이것들을 독일, 플랑드르,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엘제빌이 제 책을 찍어 냈으며 저에게 이 책을 누구에게 헌정할 것인가 즉시 응답을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도 뜻밖의 일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당신께서 저의 글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셨는데 그것들이 출판사 사람들 손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전에 제 책을 찍어 낸 적이 있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 그 글들을 책으로 꾸며 낸 것 같습니다. 당신과 같이 고명하시고 저명하시고 존경스러운 분의 비판을 거친 것이기에 이 글은 더욱 값어치가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의 글들을 널리 전하려 하시니 당신의 관대하심과 당신께서 이것을 통해 만민의 복리를 증진하려 하시는 열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건대 저는 당신의 관대하심과 당신께서 저의 이름과 일들을 사방으로 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지역으로 널리 전하여 주신 데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는 제 노력의 결과인 이 책을 기꺼이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꼐서 제게 베푸신 은의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제가 당신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에 적들이 저의 명예를 공격하더라도 당신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당신의 휘하에 있으면서 당신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 당신께서 최고의 행복과 위대한 성취를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당신의 충실한 종
갈릴레오 갈릴레이
9-10쪽,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무현 옮김, 『새로운 두 과학 - 고체의 강도와 낙하 법칙에 관한 대화』(서울: 민음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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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미디어스] 피의자 김길태와 페이스북 살인사건
미디어스에 올라온 제 칼럼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업데이트되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블로그에 게시하지 못했네요. 전문을 올려둡니다.
[미디어스] 피의자 김길태와 페이스북 살인사건
지난해 10월, 영국. 한 소녀가 실종됐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고 하루종일 채팅하고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17세의 소녀 애쉴리 미쉘 홀(Ashleigh Michelle Hall)은 한창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소년과 데이트 약속을 잡은 차였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고,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1996년 두 명의 성매매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은 피터 채프먼(Peter Chapman)은 2001년 가석방되었다. 그는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접속했고, 어떤 잘생긴 젊은 소년의 사진을 통해 다른 사람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피터 카트라이트(Peter Cartwright)라는 가명으로 접속한 그는 여러 차례 채팅을 통해 홀 양의 환심을 샀고, 결국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33세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이는 자신의 추한 외모를 역으로 이용해, 피터의 아버지 행세를 함으로써 피해자를 안심시켜 차에 타도록 했다. 홀 양은 차에 탄 후 곧바로 습격당하고 성폭행당한 후 살해되었다.
한편 2010년 2월 24일 한국, 밤 9시 무렵.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 주택에서 이모(13)양이 실종되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을 발견한 경찰은 비공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사흘 후 피해자의 집에 남아있던 족적을 토대로 김길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공개 수배에 나섰다. 김길태는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결백을 주장하였고 그 사실은 뒤늦게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다. 3월 3일, 경찰은 김길태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하고 추적하였지만 체포에 실패하였고, 결국 3월 6일 사건 현장 인근 주택의 물탱크에서 이모 양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 10일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부터 사건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비상근무에 돌입했고 피의자로 김길태를 특정했다. 결국 3월 10일, 시신 발견 후 5일만에 김길태는 부산 덕포시장 인근에서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범행 동기, 과정, 이후 도주 경로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3월 11일 새벽 3시 현재까지 김길태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범인을 살해하고 은신하고 검거되기까지, 그의 동선은 현장에서 반경 300미터를 넘어서지 않았다.
전자의 사건은 후자의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국내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사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단순한 형사사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범인 피터 채프먼에 대한 수사가 끝나고 그의 유죄가 확정된 후, 영국 경찰은 성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영국 법정은 범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고, 사건을 담당한 피터 폭스(Peter Fox)판사는 범인이 “젊은 여성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이며, 가석방될 것을 예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앨런 존슨(Alan Johnson) 영국 내무부 장관은 “우리는 이 사건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며 “우리는 성범죄자들이 온라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바로 그 내용이 연합뉴스에 의해 인용(기사보기)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 코너, 『우물 밖 개구리』의 첫 꼭지에서 바로 이 사건을 다루겠다고. 이 인용은 영국에서 사건이 벌어진 맥락과 거의 무관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일종의 ‘사건의 약탈’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 내막을 들춰보도록 하자.
홀 사건의 범인 채프먼은 피해자를 차에 태워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곧장 유기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후 하루도 되지 않아 검거됐다. 피의자의 시신을 버린 후 도주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혔는데, 그 교통경찰은 채프먼이 제대로 면허 등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또한 채프먼의 언행 등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경찰은 곧장 그를 경찰서로 연행하여 심문한 끝에, 바로 당일에 범인의 인도를 받아 피해자 홀 양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은 매우 짧고 간결했다. 경찰은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건을 수사했고 정의의 실현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딸을 잃은 분노에 ‘범인을 죽여야 한다. 사형제를 부활시켜라’고 외치던 홀 양의 어머니도 차츰 평정을 되찾았다. 채프먼에게 종신형이 선고되던 날 그는 ‘저런 사람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피해자의 가족, 가장 마음 아파할 사람도 결국은 사형제가 아닌 종신형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 언론에서 인용된 것처럼, BBC와의 인터뷰에서 앨런 존슨 내무부 장관은 성범죄자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의 쉐도우 캐비넷 중 한 사람인 크리스 헌(Chris Huhne)은 성범죄자 등록•관리에 인터넷 사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우리는 미국에서 일반화된 것처럼 성범죄자들의 IP나 이메일 주소까지 등록할 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정책은 경찰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검열하도록 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혹은 너무도 당연하게도, 한국의 상황은 이와 매우 다르다. 경찰은 사건이 벌어진지 10여 일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이모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이 발견된 위치와 범인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 모두 한 동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국적으로 수배망을 넓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사후적’으로라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용의자 김길태 씨가 진범이라는 것은 법원에 의해 확정된 사실이 아님에도, 경찰과 언론은 이미 그를 진짜 범인으로 가정한 채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정작 그 과정에서 완전히 어긋나버린 경찰의 초동수사 과정에 대한 책임은 사라져버렸다.
정치권과 경찰의 향후 대책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현재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전자발찌의 ‘소급 입법’만이 해답인 양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전자발찌 착용이 시행되기 전에 석방된 성범죄자들에게도 그것을 소급해야 한다는 것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범죄 발생에 대한 사전적 예방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이렇게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았던 것의 상당부분은 경찰의 책임이다. 그 지점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채 전자발찌에만 매몰된, 그것도 여야를 막론하고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차라리 공포스럽다.
에밀 뒤르켐은 범죄를 사회에 발생하는 질병과 같은 것으로 파악했다. 예방할 수는 있으되 온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모 양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와는 별개로, 그 슬픔과 분노를 어떻게 올바른 사회적 에너지로 승화시킬지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전자발찌, 전자발찌, 전자발찌! 이것은 결코 답이 아니다.
[미디어스] 피의자 김길태와 페이스북 살인사건
지난해 10월, 영국. 한 소녀가 실종됐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고 하루종일 채팅하고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17세의 소녀 애쉴리 미쉘 홀(Ashleigh Michelle Hall)은 한창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소년과 데이트 약속을 잡은 차였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고,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1996년 두 명의 성매매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은 피터 채프먼(Peter Chapman)은 2001년 가석방되었다. 그는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접속했고, 어떤 잘생긴 젊은 소년의 사진을 통해 다른 사람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피터 카트라이트(Peter Cartwright)라는 가명으로 접속한 그는 여러 차례 채팅을 통해 홀 양의 환심을 샀고, 결국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33세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이는 자신의 추한 외모를 역으로 이용해, 피터의 아버지 행세를 함으로써 피해자를 안심시켜 차에 타도록 했다. 홀 양은 차에 탄 후 곧바로 습격당하고 성폭행당한 후 살해되었다.
한편 2010년 2월 24일 한국, 밤 9시 무렵.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 주택에서 이모(13)양이 실종되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을 발견한 경찰은 비공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사흘 후 피해자의 집에 남아있던 족적을 토대로 김길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공개 수배에 나섰다. 김길태는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결백을 주장하였고 그 사실은 뒤늦게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다. 3월 3일, 경찰은 김길태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하고 추적하였지만 체포에 실패하였고, 결국 3월 6일 사건 현장 인근 주택의 물탱크에서 이모 양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 10일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부터 사건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비상근무에 돌입했고 피의자로 김길태를 특정했다. 결국 3월 10일, 시신 발견 후 5일만에 김길태는 부산 덕포시장 인근에서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범행 동기, 과정, 이후 도주 경로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3월 11일 새벽 3시 현재까지 김길태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범인을 살해하고 은신하고 검거되기까지, 그의 동선은 현장에서 반경 300미터를 넘어서지 않았다.
전자의 사건은 후자의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국내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사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단순한 형사사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범인 피터 채프먼에 대한 수사가 끝나고 그의 유죄가 확정된 후, 영국 경찰은 성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영국 법정은 범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고, 사건을 담당한 피터 폭스(Peter Fox)판사는 범인이 “젊은 여성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이며, 가석방될 것을 예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앨런 존슨(Alan Johnson) 영국 내무부 장관은 “우리는 이 사건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며 “우리는 성범죄자들이 온라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바로 그 내용이 연합뉴스에 의해 인용(기사보기)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 코너, 『우물 밖 개구리』의 첫 꼭지에서 바로 이 사건을 다루겠다고. 이 인용은 영국에서 사건이 벌어진 맥락과 거의 무관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일종의 ‘사건의 약탈’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 내막을 들춰보도록 하자.
홀 사건의 범인 채프먼은 피해자를 차에 태워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곧장 유기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후 하루도 되지 않아 검거됐다. 피의자의 시신을 버린 후 도주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혔는데, 그 교통경찰은 채프먼이 제대로 면허 등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또한 채프먼의 언행 등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경찰은 곧장 그를 경찰서로 연행하여 심문한 끝에, 바로 당일에 범인의 인도를 받아 피해자 홀 양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은 매우 짧고 간결했다. 경찰은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건을 수사했고 정의의 실현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딸을 잃은 분노에 ‘범인을 죽여야 한다. 사형제를 부활시켜라’고 외치던 홀 양의 어머니도 차츰 평정을 되찾았다. 채프먼에게 종신형이 선고되던 날 그는 ‘저런 사람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피해자의 가족, 가장 마음 아파할 사람도 결국은 사형제가 아닌 종신형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 언론에서 인용된 것처럼, BBC와의 인터뷰에서 앨런 존슨 내무부 장관은 성범죄자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의 쉐도우 캐비넷 중 한 사람인 크리스 헌(Chris Huhne)은 성범죄자 등록•관리에 인터넷 사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우리는 미국에서 일반화된 것처럼 성범죄자들의 IP나 이메일 주소까지 등록할 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정책은 경찰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검열하도록 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혹은 너무도 당연하게도, 한국의 상황은 이와 매우 다르다. 경찰은 사건이 벌어진지 10여 일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이모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이 발견된 위치와 범인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 모두 한 동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국적으로 수배망을 넓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사후적’으로라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용의자 김길태 씨가 진범이라는 것은 법원에 의해 확정된 사실이 아님에도, 경찰과 언론은 이미 그를 진짜 범인으로 가정한 채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정작 그 과정에서 완전히 어긋나버린 경찰의 초동수사 과정에 대한 책임은 사라져버렸다.
정치권과 경찰의 향후 대책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현재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전자발찌의 ‘소급 입법’만이 해답인 양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전자발찌 착용이 시행되기 전에 석방된 성범죄자들에게도 그것을 소급해야 한다는 것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범죄 발생에 대한 사전적 예방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이렇게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았던 것의 상당부분은 경찰의 책임이다. 그 지점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채 전자발찌에만 매몰된, 그것도 여야를 막론하고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차라리 공포스럽다.
에밀 뒤르켐은 범죄를 사회에 발생하는 질병과 같은 것으로 파악했다. 예방할 수는 있으되 온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모 양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와는 별개로, 그 슬픔과 분노를 어떻게 올바른 사회적 에너지로 승화시킬지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전자발찌, 전자발찌, 전자발찌! 이것은 결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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