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1

독서 목록(2016)

  1. 20160103 - 후지타 야스노리 감수, 우메야시키 미타 그림, 무라카미 유이치 스토리 원안, 유주현 옮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만화로 완전 정복』(경기도 파주: 이콘, 2015)
  2. 20160103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손영미 옮김, 『여권의 옹호』(경기도 고양: 연암서가, 2014)
  3. 20160108 -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4. 20160112 - 조너선 패터봄, 이상국 옮김, 『트리니티』(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2013)
  5. 20160117 -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사피엔스』(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5)
  6. 20160119 - 조형근, 김종배, 『섬을 탈출하는 방법』(서울: 반비, 2015)
  7. 20160121 - 문흥호, 주리시, 『한국-타이완 관계사(1949~2012)』(서울: 폴리테이아, 2015)
  8. 20160123 - 페드로 리에라 글, 나초 카사노바 그림, 엄지영 옮김, 『인티사르의 자동차 - 현대 예멘 여성의 초상화』(경기도 파주: 미메시스, 2015)
  9. 20160127 - J. M. 바스콘셀로스, 박동원 옮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경기도 파주: 동녘, 2003), 초판 1982년.
  10. 20160128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최필원 옮김, 『액스』(서울: 그책, 2011)
  11. 20160131 - 윤일구, 『함무라비 법전: 고대법의 기원』(경기도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5)
  12. 20160201 -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김명남 옮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13. 20160203 - 로브 레이블로, 박성실 옮김, 『동물 쇼의 웃음 쇼 동물의 눈물』(서울: 책공장더불어, 2013)
  14. 20160204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김수정 옮김, 『죽어가는 자의 고독』(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2). 개정판.
  15. 20160206 - 앨버트 허쉬먼, 김승현 옮김, 『열정과 이해관계: 고전적 자본주의 옹호론』(서울: 나남, 1994)
  16. 20160210 - 유광수, 『가족 기담: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2)
  17. 20160212 - 이시윤, 『민사소송법입문』(서울: 박영사, 2016)
  18. 20160215 - 에릭 브린올프슨, 앤드루 맥아피, 이한음 옮김, 『제2의 기계 시대』(서울: 청림출판, 2016)
  19. 20160217 - 월터 아이작슨, 이덕환 옮김,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서울: 까치, 2007)
  20. 20160217 - 로버트 F. 케네디, 박수민 옮김, 『13일: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2)
  21. 20160223 - 이종훈, 『사법시험 국제법』(서울: fides, 2015)
  22. 20160223 - 홍중기, 『국제법을 알아야 논쟁할 수 있는 것들』(경기도 파주: 한울, 2013)
  23. 20160302 -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옮김, 『지식인을 위한 변명』(서울: 이학사, 2007)
  24. 20160303 - 하퍼 리, 김욱동 옮김, 『앵무새 죽이기』(서울: 문예출판사, 2002)
  25. 20160313 - 조윤민, 『두 얼굴의 조선사』(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6)
  26. 20160316 - 게르트 기거렌처, 안의정 옮김, 『생각이 직관에 묻다』(서울: 추수밭, 2008)
  27. 20160322 - 마이클 돕스, 김시현 옮김, 『하우스 오브 카드』(경기도 파주: 푸른숲, 2015)
  28. 20160328 - 브뤼노 라튀르,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경기도 일산: 사월의책, 2012)
  29. 20160328 - 계승범,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경기도 일산: 역사의아침, 2011)
  30. 20160329 - 스르자 포포비치, 박찬원 옮김,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6)
  31. 20160403 - 아오야마 모토오, 김정환 옮김, 임옥택 감수, 『자동차 구조교과서』(서울: 보누스, 2015)
  32. 20160407 - 네이트 실버, 이경식 옮김, 『신호와 소음』(서울: 더퀘스트, 2014)
  33. 20160407 - 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사랑의 기술』(서울: 문예출판사, 2006), 제4판
  34. 20160408 - 스탕달, 이규식 옮김, 『적과 흑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9)
  35. 20160409 - 스탕달, 이규식 옮김, 『적과 흑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9)
  36. 20160416 - 토마 피케티·이매뉴얼 사에즈, 박나리 옮김, 이정우 감수, 『세금혁명』(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6)
  37. 20160422 - 기무라 히데아키, 정문주 옮김, 『관저의 100시간』(서울: 후마니타스, 2015)
  38. 20160424 - 조엘 바칸, 이창신 옮김,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서울: 알에이치케이코리아, 2013)
  39. 20160428 - 라종일, 『장성택의 길』(서울: 알마, 2016) 
  40. 20160501 - 게르트 기거렌처, 강수희 옮김, 『지금 생각이 답이다』(경기도 파주: 추수밭, 2014)
  41. 20160502 - 전인권, 『남자의 탄생』(서울: 휴머니스트, 2003)
  42. 20160508 - 엘프리데 옐리네크, 정민영 옮김, 『욕망』(서울: 문학사상사, 2006)
  43. 20160509 -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44. 20160514 - 피터 템플, 나선숙 옮김, 『브로큰 쇼어』(서울: 영림카디널, 2008)
  45. 20160526 - 손정목,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사 100년』(경기도 파주: 한울, 2015)
  46. 20160530 - 바버라 에런라이크, 최희봉 옮김, 『노동의 배신』(서울: 부키, 2012)
  47. 20160603 - 권혁범,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서울: 또 하나의 문화, 2006)
  48. 20160605 - 에멀린 팽크허스트, 김진아·권승혁 옮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서울: 현실문화, 2016)
  49. 20160605 - 하인리히 뵐, 김연수 옮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서울: 민음사, 2008)
  50. 20160605 - 윤보라·임옥희·정희진·시우·루인·나라,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서울: 현실문화, 2015)
  51. 20160606 -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옮김, 『총, 균, 쇠』(서울: 문학사상사, 1998)
  52. 20160610 -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서울: 이매진, 2008)
  53. 20160613 - 레이첼 카슨,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침묵의 봄』(서울: 에코리브르, 2011)
  54. 20160617 -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마담 보바리』(서울: 민음사, 2000)
  55. 20160619 - 막스 베버, 김덕영 옮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울: 길, 2010)
  56. 20160621 -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이상임 옮김, 『이기적 유전자』(서울: 을유문화사, 2010), 전면개정판
  57. 20160625 - 토마 마티외, 맹슬기 옮김, 『악어 프로젝트』(서울: 푸른지식, 2016)
  58. 20160626 - 피터 싱어, 김성한 옮김, 『동물 해방』(경기도 고양: 연암서가, 2012)
  59. 20160702 - 정민구·김상태 사진, 노정태·안인용·이진·정현·함영준·현시원 글, 『Cherry Blossom』(서울: 시청각·G&Press, 2016)
  60. 20160703 - Hayao Miyazaki, trans. Eugene H. Saburi, Laputa The Castle in the Sky(Bellevue, WA: Tokuma Shoten Publishing, 1992)
  61. 20160704 - 이범준,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서울: 궁리, 2009)
  62. 20160709 - 모신 하미드, 안종설 옮김,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경기도 파주: 문학수첩, 2016)
  63. 20160709 - 박성규·오승호, 『뻐근하게 아픈 몸, 참지 말고 셀프 마사지』(서울: 북돋움라이프 X 롤링다이스, 2016)
  64. 20160711 - 정유정, 『종의 기원』(서울: 은행나무, 2016)
  65. 20160711 - 리아드 사투프, 박언주 옮김, 『미래의 아랍인 2』(서울: 휴머니스트, 2016)
  66. 20160714 - 작자 미상, 정창권 옮김, 『박씨전』(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67. 20160801 - 리처드 도킨스, 이용철 옮김, 『눈먼 시계공』(서울: 사이언스북스, 2004)
  68. 20160801 - 강명관,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서울: 휴머니스트, 2016)
  69. 20160807 -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서울: 봄알람, 2016). 2판.
  70. 20160807 - 박정희,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서울: 걷는책, 2011)
  71. 20160809 - 앨버트 O. 허시먼, 강명구 옮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서울: 나무연필, 2016)
  72. 20160810 - 헨리크 입센, 안미란 옮김, 『인형의 집』(서울: 민음사, 2010)
  73. 20160814 - 오미일,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서울: 푸른역사, 2015)
  74. 20160818 - 박경신, 『진실유포죄』(서울: 다산초당, 2012)
  75. 20160822 - 존 스튜어트 밀, 최명관 옮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서울: 도서출판 창, 2010). 개정판.
  76. 20160823 - 우에노 지즈코, 이선이 옮김,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서울: 현실문화, 2014)
  77. 20160829 - 피에르 부르디외, 김용숙 옮김, 『남성 지배』(서울: 동문선, 2000)
  78. 20160903 -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김보화 옮김, 『궁극의 문구』(경기도 파주: 푸른숲, 2016)
  79. 20160907 -  노나카 이쿠지로 , 스기노오 요시오, 데라모토 요시야, 가마타 신이치, 도베 료이치, 무라이 도모히데,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인천: 주영사, 2009)
  80. 20160907 - 문유석, 『판사유감』(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4)
  81. 20160909 - 로버트 해리스, 조영학 옮김,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4)
  82. 20160912 - 스티븐 킹, 이은선 옮김, 『미스터 메르세데스』(서울: 황금가지, 2015)
  83. 20160913 - 토니 포터, 김영진 옮김, 『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서울: 한빛비즈, 2016)
  84. 20160913 - 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서울: 동양북스, 2016)
  85. 20160917 -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송섬별 옮김, 『죽음의 스펙터클』(서울: 반비, 2016)
  86. 20160920 - 막스 베버,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소명으로서의 정치』(서울: 폴리테이아, 2011)
  87. 20160922 - 윤원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도미노 총서 2
  88. 20160923 - 박세진, 『패션 vs. 패션』(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도미노 총서 3
  89. 20160923 - 노정태, 『탄탈로스의 신화』(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도미노 총서 1
  90. 20160923 - 대릴 커닝엄, 권예리 옮김, 함병주 해설, 『정신병동 이야기(증보판)』(서울: 이숲, 2014)
  91. 20160925 - 플로르 바쉐르, 권명희 옮김, 『조직된 한패』(경기도 파주: 밝은세상, 2016)
  92. 20160926 - 에르네스트 만델, 이동연 옮김, 『즐거운 살인』(서울: 이후, 2001)
  93. 20160927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박미애 옮김, 『문명화과정 I』(경기도 파주: 한길사, 1996)
  94. 20160927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박미애 옮김, 『문명화과정 II』(경기도 파주: 한길사, 1999)
  95. 20160930 - 후루이치 노리토시, 한연 옮김,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서울: 민음사, 2016)
  96. 20161001 - 윤세상, 『땅 사서 지을까 집 사서 고칠까』(서울: 한겨레출판, 2016)
  97. 20161002 - 최낙언,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서울: 예문당, 2016)
  98. 20161005 - 앤드류 포터, 노시내 옮김,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서울: 마티, 2016)
  99. 20161009 - 이민경,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서울: 봄알람, 2016)
  100. 20161010 - 찬호께이, 강초아 옮김, 『13·67』(서울: 한스미디어, 2015)
  101. 20161010 - 린 헌트, 전진성 옮김, 『인권의 발명』(경기도 파주: 돌베게, 2009)
  102. 20161017 - 고바야시 히데오, 임성모 옮김, 『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서울: 산처럼, 2004)
  103. 20161022 - 윌리엄 그릴, 박중서 옮김, 『커럼포의 왕 로보』(서울: 찰리북, 2016)
  104. 20161026 - 김시덕, 『일본의 대외 전쟁』(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6)
  105. 20161028 - 댄 포인터, 여인혜 옮김, 『나이든 고양이와 살아가기』(경기도 파주: 포레, 2013)
  106. 20161102 - 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서울: 메디치, 2015)
  107. 20161104 - 임상혁, 『나는 노비로소이다』(서울: 너머북스, 2010)
  108. 20161108 - 전인권, 정선태, 이승원, 『1898, 문명의 전환』(서울: 이학사, 2011)
  109. 20161116 - 박경신, 『진실유포죄』(서울: 다산북스, 2012)
  110. 20161120 - 아메노모리 호슈, 김시덕 옮김, 『한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경기도 파주: 태학사, 2012)
  111. 20161123 - 조엘 바칸, 윤태경 옮김, 『기업의 경제학』(서울: 황금사자, 2010)
  112. 20161129 - 조성주,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서울: 후마니타스, 2015)
  113. 20161130 - 마크 라이너스, 이한중 옮김, 『6도의 멸종』(서울: 세종서적, 2014), 개정판
  114. 20161204 - 베네딕트 캐리, 송정화 옮김, 『공부의 비밀』(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6)
  115. 20161206 - 에릭 브린올프슨, 앤드루 맥아피, 이한음 옮김, 『제2의 기계 시대』(서울: 청림출판, 2016)
  116. 20161214 - 스티븐 핑커, 김명남 옮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서울: 사이언스북스, 2014)
  117. 20161228 - 김한민, 『비수기의 전문가들』(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118. 20161231 - 홍춘욱, 『환율의 미래』(서울: 에이지21, 2016)
  119. 20161231 - John Patrick Shanley, Doubt, A Parable(New York: Dramatists Play Service, Inc., 2007)

2016년 1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 사이, 표1부터 표4까지 통독한 책들의 모음. 중간중간 뒤적거린 책들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총 119권. 2016년은 매우 다사다난했고, 큰 성취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때로 힘겨웠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을 해내야 했는데, 그 중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것도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결의를 다져본다.

2016-12-27

[북리뷰] 그래도 우리는 이성의 힘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사이언스북스, 6만원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470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후, 미국은 큰 병력 손실이 예상되는 일본 본토로의 상륙 작전 대신 원자폭탄을 투하해 일본의 전의를 꺾는 쪽을 택한다. 그 후의 역사도, 강대국끼리의 무력 충돌만 없다 뿐이지, 피로 점철되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중국과 미국의 대리전이기도 했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중간중간 벌어진 온갖 끔찍한 테러까지. 우리가 아는 20세기 이후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과 기술, 사회적 관습과 제도가 인류를 가장 효율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며 살해하는 대량살상기계로 둔갑해 인간을 옥죄어온 시대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바로 그와 같은 비관론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미 핑커는 『빈 서판』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빈 서판과 같으며 올바른 양육, 즉 교육을 통해 모든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진보 진영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었던 전례가 있다. 그런 그가 인류 역사 전체를 무대로 삼아 실증주의적 논박의 포문을 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최악이다'라는 선언적 전제가 왜 문제인가? 그것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방부제일 뿐, 당장 우리들 중 그 누구도 100년 전은 고사하고 1970년대로 돌아가 살라고 해도 거부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러한 비관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명백히 확인되는 과학적 사실을 거부하고, 인류 역사 진보의 원동력이자 결과물인 근대성을 부정하며, 이성에 의한 인간의 폭력적 욕구 통제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개인주의, 세계주의(cosmopolitanism), 이성(reason), 과학의 힘이 가족, 부족, 전통, 종교를 잠식하는 현상으로 규정되는 근대성(modernity)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이런 변화의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곧 오늘날의 세상을 범죄, 테러, 집단 살해, 전쟁의 악몽으로 보느냐 아니면 역사적 기준으로 보아 유례없이 평화적인 공존과 축복의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 참으로 많은 문제가 결정된다."(14쪽)

중앙집권적 궁정사회의 출현이 개인에게 에티켓을 강요하면서 그들에게 현대적 도덕을 내재화하고 중세인들을 순치시켰다고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을 통해 주장했다 핑커는 그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문명화 과정'이 실제로 남의 총이나 칼 혹은 도끼나 망치 등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불러왔음을 숫자와 그래프로 그려낸다. "유럽은 도시화, 세계주의, 상업화, 산업화, 세속화를 겪을수록 점점 더 안전해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현상을 유효하게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 즉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견해를 떠올리게 된다."(137쪽)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를 다른 대형 사건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상대화'하는 등의 작업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암울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대목을 통과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지금, 아주 묵직하고 두툼한 위안이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우리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특히 이성의 힘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복받쳐오르기 때문이다.

2016.12.27ㅣ주간경향 1207호

2016-12-18

20161211 - 20161217: 알레포 함락,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출, 두테르테의 살인 자백

* 현지시각 12월 15일, 시리아의 거점 도시 알레포에서 반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간접적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은, 러시아의 직접적 지원을 받는 아사드의 정부군에게 알레포를 내주게 된 것이다. 이로써 2011년부터 진행된 시리아 내전은 다시 한 차례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리아는 1970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정권을 잡은 후, 그 아들인 바샤르 알아사드가 권력을 이어받은 독재국가였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인해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대대적인 유혈 진압이 뒤를 이었으며, 시위 그 자체는 진압되었지만 시리아는 내전의 구렁텅이로 빨려들어갔다. 러시아의 비호를 받는 아사드는 물러나지 않았고, 독가스 살포 등으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끝내 버텨냈고 알레포를 수복했다.

이것은 이라크 전쟁 이후 해외에 대규모 육상 병력을 파병할 원동력을 상실한 미국, 영국, 그 외 서방세계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시리아 내전이 악화되면서 발생한 대규모의 난민이 유럽의 극우주의를 부추겼고 그러한 국제적 기류 속에서 미국 대선이 치러졌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리버럴'의 정치적 패배였다. 오바마 행정부가 빚어낸 최악의 실패다.


* 12월 16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정우택 의원이 선출됐다. 충북 청주상당을 지역구로 하는 4선 의원인 정우택은, 김종필 전 총리에게 발탁되어 자유민주연합에서 정치 이력을 시작한 충청도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2012년 이후 친박으로 분류되는 여당 의원이라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 119명이 참석한 의원총회에서 친박계 후보인 정우택은 62표, 비박계를 대표해 나온 나경원은 55표를 얻었고 2표는 기권이었다. 과반을 넘긴 탓에 재투표 없이 곧장 원내대표가 결정되었다. 새로운 친박 원내지도부가 구성되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그 외의 여당 지도부와 함께 곧장 사퇴 의사를 밝힘으로써, 새로 선출된 원내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였다.

탄핵안 가결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국민의 정부 이후 최초로 40%대에 진입하는 고공행진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굉장히 단단한 결집력을 과시하면서 비박계의 탈당이 예측된다. 3당 합당 이후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던 TK와 PK의 분화가 본격화될 조짐이다. '우리가 남이가'의 시대가 비로소 끝난 것인가? 참고로 정우택을 찍은 62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에 반대한 56표, 무효표를 낸 7표를 더한 숫자인 63표와 거의 비슷하다.


* 12월 12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사업가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다바오시에서 마약 용의자들을 개인적으로 살해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12월 14일 현지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에 대해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은 '매우 우려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 외에 달리 어떤 반응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이, 이미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의 우방인 필리핀에 북한 전문가인 성김 전 대북특별대표를 파견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한편 비탈리아노 아기레 필리핀 법무장관은 두테르테의 발언을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시키"기 위한 과장법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화법과, 그에 대한 미국 보수 진영의 합리화를 당연히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이미 "시장 재직 초기에 중국인 소녀를 유괴, 성폭행한 남성 3명을 직접 총살한 적이 있다고 지난 대선 때 인정"한 바 있기에, 이러한 살인 고백을 그저 '블러핑'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이 사람을 죽였다고 떠벌여도 탄핵당하지 않는 나라가,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별별시선]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한 장면을 펼쳐보자. 백정인 꺽정이는 양반인 덕순이와 죽이 좀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로 존대와 하대를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임꺽정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존대와 하대에 대해 논쟁이 오가던 중, 머리 깎고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 선생이 꺽정이의 성정을 좀 다스려 보려 한다. “우리말에 층하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어른 아이는 고사하고 양반이니 상사람이니 차별이 있는 바에야 말이 자연 그렇게 될 것 아닌가.”

계급 차별을 없애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꺽정이의 반론에 대해 병해대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응수한다. “벌써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에 차별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임꺽정이 아니다. “못쓸 차별을 없애려면 영을 내릴 사람이 있어야지요.” 설령 영을 내린다 한들 그 차별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겠는가? 그러자 결국 임꺽정은 본인의 명성에 걸맞은 대답을 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면 될 것 아니오.” 병해대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대화는 마무리된다.

이 대화에서 임꺽정과 병해대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 사이에 차별이 없다. 그게 바로 민주공화국의 본질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모두 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다. 차별적 특권 계급의 존재는 용인되지 않고, 모든 이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누리며 동시에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그 법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에서 만들고, 행정부에서 실행에 옮기며, 사법부를 통해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되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은 결국 동일하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결합된 법치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박근혜 게이트는 왜 문제인가? ‘민주적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믿음을 뒤흔들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가정을 깨뜨렸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 박근혜의 뒤에 ‘선출될 생각도 없었던 권력’인 최순실 일당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설령 최순실이 ‘착한 비선 실세’였다고 해도 사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은 박근혜를 뽑았지 최순실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그러므로 최순실이 기밀로 취급되는 대통령 연설을 주무르고, 온갖 인사에 개입한 것은, 그 자체가 민주공화국의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당하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복종’하는 임꺽정 같은 신분사회의 피지배계층이 아니다. 우리는 울화가 터진 꺽정이처럼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는 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헌법, 법률, 조례, 규칙 등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움직이고, 필요하다면 유권자를 대의하는 기관인 의회에서 법규를 바꾸거나 새로 만든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아니라 ‘비선 실세’의 뜻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그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그러므로 혁명이 아니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적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가 온전히 작동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민란’이나 ‘혁명’보다 급진적인 사건이다. 드디어 우리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입력 : 2016.12.18 20:37:01 수정 : 2016.12.18 20:43:39

2016-12-13

[북리뷰] 박근혜를 욕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조성주 지음·후마니타스·9000원

광장에는 논쟁이 피어난다. 11월 26일 제5차 촛불문화제 무대에 오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왕년의 '악동' 힙합 그룹 DJ DOC를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수취인불명"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를 '미스박'이라 칭할 뿐 아니라, '문고리 삼인방'에 대해서는 국민에겐 사과없이 fuck그네만 / 챙겨 양심팔아 돈을 땡겨"라는 식의 원색적인 욕설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미스박'이라는 표현이 여성비하적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해야만 하는가? 놀랍게도 적잖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목청높여 '상대가 대통령이니까 괜찮다'느니, '원래 '미스'라는 말은 존칭의 의미로 쓰인다'느니,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조성주의 책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을 펼쳐들 때다.

조성주는 칼 세이건을 읽고 천문학자의 꿈을 꿨던, 하지만 막상 천문학과에 진학해보니 자신의 관심사는 먼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있음을 깨달은 청년 정치인이다. 그는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3위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가 2015년 정치발전소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어 나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그 시기에 필자의 고민을 많이 정리해준 책이 바로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었다."(9쪽)

조성주의 강의에 귀를 기울여보자. "알린스키가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폭력 사태였다."(38쪽) 노동조합, 이민자 중하층 계층, 지역사회 운동가, 흑인 민권운동가, 반전 운동가 등 한데 묶기 어려운 진보 세력을 규합해낸 로버트 케네디가, 그의 형 존 F. 케네디처럼 암살당하고 난 후 치러진 전당대회였다. 충격과 좌절에 빠진 급진주의자들은 폭력 혁명 노선에 경도되거나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알린스키는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통해, 실망하고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정치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끈질기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자고 설득하고 용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42쪽)

알린스키의 입장은 이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철저한 현실주의라고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마치 저 먼 곳의 수평선같은 이상으로서의 진보를 제시하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근접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룰에 맞춰 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린스키의 투쟁론은 '당위로서의 정치'가 아닌 '윤리로서의 정치'를 제시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 조성주의 설명이다.

알린스키의, 혹은 알린스키를 사숙한 조성주의 현실주의는 그러나 '윤리적 기준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윤리적 기준마저도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인식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켜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조성주는 한탄한다. "알린스키가 50여 년 전에 지적한 미국의 모습은 어쩐지 2015년 한국 진보 진영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닭그네' '쥐새끼' '견찰' '색검' 따위의 단어는 풍자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여성에 대한 비하를 서슴치 않는 경우도 많다."(67쪽) 그리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증오의 표출이 우리 편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단결을 강화해 주는 것도 아니"(67쪽)라는 것을 말이다.

'쥐박이'라고 이명박을 욕했고, 우리는 이기지 못했다. 이제 박근혜를 욕하지 않으면서 이겨내기 위해, 알린스키의 실용주의로 맞서야 한다.

2016.12.13ㅣ주간경향 1205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12061009171&code=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