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조성주 지음·후마니타스·9000원
광장에는 논쟁이 피어난다. 11월 26일 제5차 촛불문화제 무대에 오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왕년의 '악동' 힙합 그룹 DJ DOC를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수취인불명"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를 '미스박'이라 칭할 뿐 아니라, '문고리 삼인방'에 대해서는 국민에겐 사과없이 fuck그네만 / 챙겨 양심팔아 돈을 땡겨"라는 식의 원색적인 욕설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미스박'이라는 표현이 여성비하적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해야만 하는가? 놀랍게도 적잖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목청높여 '상대가 대통령이니까 괜찮다'느니, '원래 '미스'라는 말은 존칭의 의미로 쓰인다'느니,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조성주의 책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을 펼쳐들 때다.
조성주는 칼 세이건을 읽고 천문학자의 꿈을 꿨던, 하지만 막상 천문학과에 진학해보니 자신의 관심사는 먼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있음을 깨달은 청년 정치인이다. 그는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3위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가 2015년 정치발전소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어 나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그 시기에 필자의 고민을 많이 정리해준 책이 바로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었다."(9쪽)
조성주의 강의에 귀를 기울여보자. "알린스키가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폭력 사태였다."(38쪽) 노동조합, 이민자 중하층 계층, 지역사회 운동가, 흑인 민권운동가, 반전 운동가 등 한데 묶기 어려운 진보 세력을 규합해낸 로버트 케네디가, 그의 형 존 F. 케네디처럼 암살당하고 난 후 치러진 전당대회였다. 충격과 좌절에 빠진 급진주의자들은 폭력 혁명 노선에 경도되거나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알린스키는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통해, 실망하고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정치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끈질기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자고 설득하고 용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42쪽)
알린스키의 입장은 이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철저한 현실주의라고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마치 저 먼 곳의 수평선같은 이상으로서의 진보를 제시하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근접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룰에 맞춰 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린스키의 투쟁론은 '당위로서의 정치'가 아닌 '윤리로서의 정치'를 제시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 조성주의 설명이다.
알린스키의, 혹은 알린스키를 사숙한 조성주의 현실주의는 그러나 '윤리적 기준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윤리적 기준마저도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인식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켜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조성주는 한탄한다. "알린스키가 50여 년 전에 지적한 미국의 모습은 어쩐지 2015년 한국 진보 진영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닭그네' '쥐새끼' '견찰' '색검' 따위의 단어는 풍자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여성에 대한 비하를 서슴치 않는 경우도 많다."(67쪽) 그리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증오의 표출이 우리 편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단결을 강화해 주는 것도 아니"(67쪽)라는 것을 말이다.
'쥐박이'라고 이명박을 욕했고, 우리는 이기지 못했다. 이제 박근혜를 욕하지 않으면서 이겨내기 위해, 알린스키의 실용주의로 맞서야 한다.
2016.12.13ㅣ주간경향 1205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1206100917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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