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시간으로 2월 13일, 마이클 플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사임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트럼프 당선 후 정권 인수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는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해킹을 통해 개입한 정황을 확인하고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다. 그 시점, 트럼프에 의해 발탁되어 백악관 내에서 고위직을 맡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플린은 러시아 대사와 통화를 하며 사태의 변화와 추이에 대해 논의했다. 둘째, 자신이 러시아측과 통화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등 상급자에게 허위로 보고했다. 셋째, 그러한 사유로 인해 정보 당국은 플린이 러시아에게 협박당할 소지가 있으며 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플린이 러시아측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정보기관들이 진작부터 몰랐던 것은 아니다. 2015년 9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한 공화당 인사가 워싱턴에 소재한 Fusion GPS라는 싱크탱크에 거액을 기부하여 트럼프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했다. Fusion GPS는 전직 영국 정보요원 크리스토퍼 스틸(Christopher Steele, 현재 종적을 감춘 상태)을 고용해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를 추적했다. 스틸은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 보고서는 FBI와 <뉴욕타임즈> 등 언론으로 흘러들어갔다. 진작부터 말이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플린을 도청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에 대한 오바마의 제재가 발표되던 그 시점에 플린이 러시아 대사와 통화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트럼프 측에서는 플린의 해임이 법적 책임과 무관하며 단지 그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는 76분에 걸친 기자회견(전문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을 열어서 본인을 향한 온갖 질문과 비판에 맞섰다. "(망하고 있는 @nytimes, @CNN, @NBCNews) 같은 가짜 뉴스들은 나의 적이 아니라 미국 인민의 적이다! 역겨움!"이라는 트윗을 올렸던 그는, 그것을 지우더니 "역겨움!"(SICK!)을 빼고 남는 공간에 "@ABC, @CBS"를 추가하는 파워트위터리언적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미치광이같은 대응을 조롱하는 것만으로 이 사태를 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선거본부와 러시아 정보 당국과의 연계 가능성을 알고 있었던 FBI는 그 사실에 대해 선거 기간 중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FBI 국장 제임스 코미는 투표를 닷새 앞두고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을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해서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대체 왜 FBI 국장은 이미 의회 청문회까지 마친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선거 직전에 들쑤시면서, 공화당 후보 진영에서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루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가? 오바마의 임기 8년동안 미국의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행보나 탄핵 여부 등과 무관하게, 이 또한 별도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The FAKE NEWS media (failing @nytimes, @NBCNews, @ABC, @CBS, @CNN) is not my enemy, it is the enemy of the American People!
— Donald J. Trump (@realDonaldTrump) February 17, 2017
* 2월 18일 새벽,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이미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었던 특검은 절치부심 끝에 재도전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지난달 1차 구속영장 청구시 적용했던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외에 범죄수익은닉, 재산국외도피를 추가해 총 5가지 혐의를 적용해 지난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심식사를 거르면서까지 특검과 변호인단 사이에 구속의 적절성과 필요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한정석 서울지방법원 영장전담 판사는 19시간에 걸친 자료 검토 끝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재용이라는 한 사람이, 아직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구속수사를 받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대단한 뉴스가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한 뉴스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논점이 얽혀 있다. 첫째, 한국의 재벌 총수, 특히 삼성을 향한 한국 사회의 신화화 경향성. 둘째, 실제로 법원에서 유죄와 무죄가 판결되는 것과 무관하게 '구속되면 유죄고 풀려나면 무죄'라고 여기는 한국 사회의 법 인식. 셋째, 대중들의 무지를 용인하고 부추기는 언론의 문제.
물론 이재용이 구속되었다는 것은, 그가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갖는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임을 법원이 인식했다는 것으로, 향후 특검 연장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에서 기술한 세 가지 문제점이 고스란히 남아 작동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집행유예가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형량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제는 그보다 더 크고 확실한 죄목으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할 때다.
* 2월 13일,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두 명의 여성에게 습격당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을 흡입한 그는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도중 사망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이 피살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김정남을 제거하는 것은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후로 지속되고 있는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이며, 따라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런데 사흘 전, <주간경향>의 정용인 기자가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대북 비선은 김정남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던 사실과 맞물려, 박근혜의 대북 접촉 사실을 은폐하려는 국가정보원의 공작이거나 탄핵 국면에서 북풍을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기록해두건대 나 또한 사건 초기에 같은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 사건은 북한의 소행임이 명백해지고 있다. 실제로 김정남에게 약품을 뿌린 두 명의 실행자 외에, 그들과 함께 활동한 용의자들 중 적잖은 이들이 북한 여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북한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시신을 인도하는 대신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중이다. 한편 중국은 사건이 벌어진 주의 마지막 날인 2월 18일, 북한산 석탄의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북한의 최대 후견국이며 석탄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북한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북한 입장에서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의 신변을 보호해주던 중국 측의 반발이라고 해석하는 쪽도 있으나 정확한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