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치러질 제19대 대선에서 기호 3번 안철수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이다. 세상 만사에 의견 밝히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지 10년도 넘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누구를 찍겠다고 선언해본 적이 없다. 시인 김수영이 "엔카운터識"에서 했던 표현을 빌자면, "야한 선언은 안해도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의 구절처럼, "어제하고는 틀려졌"고, "틀려졌다는 것을 알았"으며, "틀려져야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것을 당신한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나는 '야한 선언'을 한다. 안철수를 찍겠다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그 이유는 세 사람의 이름과 이어진다. 신해철, 김영란, 안철수.
1. 신해철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뜰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그 신해철이 그렇게 열심히 지지했던 민주당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약칭 의료분쟁조정법), 일명 '신해철법'의 통과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법안이 표류하게 되리라는 것 또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발의되었다. 전자는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 후자는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골자는 같다. 사망이나 중장애 등 중대한 피해 발생시,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인의 동의 없이도 조정 절차가 개시될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수술의 경우 마취된 상태로 본인의 몸을 맡겨야 하고,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없으며, 상대방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워 의료사고 발생시에도 재판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던 의료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조정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주는 법이다. 반대로 의사들은 그러한 조정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15일 내에 이의를 제기하면 된다. 법으로 강제되는 것은 조정절차의 '개시'일 뿐 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고, 더불어민주당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법안 발의를 해놓고는 상임위 법안소위에 안건을 상정하지도 않았다. 결국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였는데 그때 고인의 유족 및 친지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상황에서, 안철수는 이름만 걸고 엉덩이를 빼는 대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틀만에 신해철법이 법사위에서 통과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안철수는 전국의사총연합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바로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새누리당도 더불어민주당도 신해철법을 발의만 하고 내버려뒀던 것이다.
2016년 2월 12일, 4월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다. 의사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철수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기로 하고 옳은 일을 했다. 그러자 스포트라이트가 안철수에게만 쏠리는 것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었던 거대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의석을 지켰고 국민의당은 모든 정치평론가들의 예상과 여론조사를 뒤엎고 40석에 가까운 제3당이 되었다. 그리고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여 신해철법이 통과된 것이다. 2016년 5월 19일의 일이었다.
이 사례는 대단히 중요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필요할 때마다 신해철의 음악과 발언 등을 많이도 이용해왔다. 하지만 정작 그의 유족들을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한 사람은 안철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떤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왜 신해철의 유족이 문재인이 아니라 안철수에게 "그대에게"와 "민물장어의 꿈"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는지 의아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꼭 필요할 때, 예상되는 불이익을 무릅쓰고, 어려운 이들을 도왔기 때문이다.
신해철법의 통과 과정이 증명하고 있다. 안철수는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손해를 봐야 한다. 그 손해를 뛰어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좋지만, 얻지 못하더라도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해야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지만, 큰 책임을 지고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도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나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정치적 손해를 무릅쓸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말로만, 선량한 이미지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와 같은 선택을 했다는 정치적 이력서를 가진 사람 말이다.
2. 김영란
일단 그 법의 이름을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 점부터 확실히 해두고 싶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약칭은 "청탁금지법"이지 '김영란법'이 아니다. 청탁금지법의 역사는 안철수의 정치 이력과도 거의 포개진다. 이 대목은 이미 잘 정리된 기사를 인용해보자.
안 전 대표는 지난 2013년 8월 김영란법과 관련한 정부안이 제출됐을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회정의'를 강조하며 "원안 통과"를 주장했다.
당시 안 전 대표는 같은해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뒤 독자세력 구축에 나서고 있던 터라 혁신 경쟁을 벌였던 김한길 대표 체제의 옛 민주당이 2014년 김영란법을 정치혁신 과제로 선정‧발표하는 데 자극을 줬다.
안 전 대표의 김영란법 소신은 옛 민주당과 통합해 새정치연합으로 거듭난 이후 의원총회 등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3월31일 새정치연합 창당 후 처음으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영란법을 이번 4월 국회에서 통과해야 한다"며 "원래 취지대로, 많은 국민이 바라는 대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해 4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도 김영란법 처리를 요구하며 "이 법안의 통과야말로 정치권의 자기정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드리는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는 7·30 재보궐 선거 참패로 대표직에서 물러나 5개월여간 자숙기간을 가진 뒤 내놓은 첫 일성도 '김영란법 처리'였다.
당시 김영란법이 소관 국회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처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안 전 대표는 성명을 내고 "'김영란법'은 가히 '부패공화국'이라고 할 대한민국의 공직자 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강력한 반부패 법안으로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링크)
그런데 부정청탁법은 '신해철법', 즉 의료분쟁조정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의사들의 반발만 이겨내면 그만이었던 의료분쟁조정법과 달리, 교수, 기자, 공무원, 정치인 등 너무도 많은 이들이 부정청탁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의료분쟁조정법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대단히 많고 힘도 세다.
안철수가 한 일은 여당과 야당의 책임자들을 만나 그들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2015년 2월 26일, 안철수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차례로 만나, 부정청탁법을 다음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설득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한 것이다. 당시는 국민의당을 창당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대립 구도를 넘어, 양자를 오가며 합의점을 찾아내고 옳은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부정청탁법을 좌초시키면서 생색내는 건 너무도 쉽다.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이 서로를 탓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그러면 국민들은 속이 터지겠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저놈들 때문에 그랬다'면서 남탓만 하면 우리쪽 지지층은 고스란히 유지될 수 있을텐데. 그것이 바로 적대적 공존의 매커니즘이다.
애초에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미 '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래도 대화를 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정치인은 군인이 아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합의점을 도출해내야 한다. 안철수는 날치기 통과도 필리버스터도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가장 많은 고양이, 아니 호랑이들의 목에 방울을 달아야 했던, 부정청탁법을 두고서 말이다.
안철수를 찍고 싶지만 문재인이나 심상정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진보적인, 혁신적인, 개혁적인 의제 가운데 많은 것들은 어쩌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때 더욱 잘 실현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부정청탁법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안철수의 정치 스타일은 '말이 되고 좋은 법이면 누가 발의했건 통과시킨다'이기 때문이다. 좋은 법이지만 새누리당에서 발의했으니까 안 되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더민주가 빛을 볼까봐 일부러 망쳐버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정책에 대해 제대로 토의하고 협상하여 빠르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권을 원한다면 현재로서는 안철수를 찍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이기건 여소야대 대통령이 된다. 우리에게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치를 할 줄 아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던져놓고 원외투쟁을 일삼거나, 국회법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날치기 통과를 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할까. 안철수는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법의 통과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입증한 바 있는, 당선 가능한 대통령 후보다.
3. 안철수
안철수가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의 출현을 반기지 않았다. '국회의원 의석수 200석으로 줄이겠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국회를 불신하지만, 그 국회에게 탄핵당한 박근혜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행정부보다는 입법부에게 더 많은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에 부합한다. 안철수는 정치 혐오에 기대어 급성장한 포퓰리스트라고 나는 판단했고, 절대 그에게 표를 줄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사실 그런 면에서, 2012년에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큰 혼란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고 그 중에서 최선을, 차선을, 차차선을, 차악을 택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때로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끌어내야 하지만 때로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의사로 교육받은 후 프로그래머로, 또 사업가로 살아왔다. 의학은 과학이다. 생명 그 자체의 신비로움과는 별도로,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고, 명백한 오답이 존재한다. 프로그래밍은 그보다 훨씬 더 확실한 논리의 세계다. 사업은 1인1표가 아니라 1주1표의 원리로 돌아가는, 민주주의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일이다. 정치에 뛰어들자마자 대통령이 되었으면 안철수가 대한민국에 큰 혼란을 초래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는 금방 배웠다. 앞서 살펴본 두 사례만 봐도 확실히 그렇다. 20대부터, 30대부터 국회의원이 되어 지금껏 기세등등한 구386들보다 안철수가 훨씬 '정치'를 '정치답게' 잘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용기, 정치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 상대방과 마주앉아 대화하고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지혜를, 이미 실천적으로 입증했다. 대통령직에 요구되는 새로운 도전 과제에도 역시 잘 적응하고 대처해낼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현재 당선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후보자는 총 세 명이다. 그런데 그 중 대통령이 된 후에도 뭔가를 배워나갈 것이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안철수 뿐이다.
대한민국은 외교, 안보, 정치, 경제, 기타등등 전방위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지자들에게 종교적인 숭배를 받고 있지만 국회 활동 실적부터가 바닥에 놓여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스스로를 '스트롱맨'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발언과 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젊은 시절 약물을 이용한 강간을 시도했다는 사실까지 자서전에 써놓은 사람을 두고 대통령의 자격을 논해야 하는 걸까. 소거법으로 생각해봐도 당선권 내에서 '찍을만한 사람'은 안철수 뿐이다. 이렇게 다시 한 번 검산을 해본 후, 나는 안철수를 찍기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이번 대선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붕괴했기 때문에 치러지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보궐선거다. 그런데 그 빈 자리에 무능한 운동권 세력이 들어선다면, 그들과 적대적 공존 관계인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홍준표가 지지율을 높이면서 벌어지고 있는, 5월 2일 현재 상황이 바로 그렇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무능한 운동권 세력의 적대적 공존, 그것은 '절대적 공존'이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그 구도가 깨진다. 국민이 새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정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수십년에 한 번 돌아올까 말까 한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결과를 보고 싶다.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내 힘을 보태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안철수를 찍을 것이다. 내 결정을 알리고, 이 생각의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설득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양자택일 속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하는 말을 인용해보자.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에게는 좀 더 대담하고, 과감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하지만 잘 살펴보면 안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 나는 10년 전의 여당도 두 달 전의 여당도 아닌, 미래의 여당에 한 표를 던진다.
보론
이른바 '진보 논객'이면서 왜 심상정을 찍지 않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들어올 것이다. 맞다. 나는 '진보 논객'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하지만 한국 진보 진영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논의 중 많은 것들에 나는 동의할 수 없고, 애석하게도 그 논의들은 심상정의 공약에 반영되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싸드다. 나는 싸드를 한반도에 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꿔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확고한 싸드 배치 찬성론자다. 당연히 싸드 비용은 미국이 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미군이 소유하고 운용하는 미군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땅에 미국의 무기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진보 진영의 기본적인 세계관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안전과 번영의 토대다.
이것은 진보 진영의 세계관 전체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2008년 이후, 진보는 정부가 추진하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온갖 종류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제시하며 반대하는 관성에 젖어 있다. 그래서 싸드에서는 중국 영토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전자파가 나오고 그것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 그 전자파는 '죽음의 전자파'여서 레이더보다 해발 고도가 낮은 곳에 위치한 참외밭의 농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드 배치를 반대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을 향해 무력 충돌을 운운하는 것은 이쪽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지만, 미 대통령 트럼프가 말도 안 되는 10억 달러를 운운하는 것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는 주권 침해가 된다.
요컨대 반미주의, 반과학주의, 음모론주의가 오늘날의 진보 진영을 지배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세계에 대해, 국제 정세에 대해, 대단히 부정확한 정보 하에 분기탱천할 뿐인 오늘날의 대한민국 진보의 모습이 나온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래도 사회적 당위의 실현을 위해 진보 정당을 지지해왔으나, 모든 대선 공약이 '복지 확대'로 수렴되고 있는 지금, 나는 진보 진영과 나의 세계관 차이를 더는 없는 척 할 수가 없다.
앞서 부정청탁법을 논의할 때 기술했다시피, 안철수가 지금까지 해온 정치적 스타일을 놓고 볼 때,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심상정의 공약 중 좋은 것들은 현실화될 수 있다. 심상정이 대통령이 된다면 안철수의 공약들을 가져다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심상정 본인과 그의 정당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이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는 심상정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진보 진영의 세계관과 나의 그것이 갖는 차이에 대해, 그리고 내가 왜 동의할 수 없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머지않아 (어쩌면 여러 편의)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그렇게 내 입장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의견의 차이가 조금씩 좁혀질 그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