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

필립 풀먼에게서 배우는 글쓰기 수업

작가 필립 풀먼은 새로운 3부작 <먼지의 책>(The Book of Dust) 가운데 첫 번째 편을 깜짝 발표하면서 리라 벨라쿠아(Lyra Belacqua)의 세계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야수: 먼지의 책 1권>(La Belle Sauvage: The Book Of Dust Volume One)은 풀먼의 71번째 생일에 맞춰 목요일에 출간되었다. 그가 앞서 내놓은 3부작의 후속작으로는 17년만이다.

<황금나침반> 시리즈의 리라는 중요 인물 중 하나로, 이야기는 리라가 생후 6개월이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수녀들 틈에 숨어 있는 리라의 삶에 11살 소년 말콤 폴스테드가 끼어들어, 그의 카누인 아름다운 야수에 리라를 태우고 보호해주게 된다.

풀먼을 이토록 성공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 갓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그가 건낼 조언은 무엇일까?

BBC와 마주 앉아, 풀먼은 그의 행운의 펜에 대해, 그리고 전동드릴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일할 수 있지만 왜 절대 음악은 안 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1. 캐릭터가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라.

그것은 신비로운 과정이다. 물론 나의 일부는 그들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만들어내든 것과는 다른, 발견하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더 나은 단어를 찾아 종이 위에서 펜이 움직일 때까지 책상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이 과정을 신비롭게 포장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느낌은 발명보다는 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마치 이야기가 이미 그곳에 있고, 내가 그것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말하는 최선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과 같달까.

이 희한한 일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확실히 안다고 할 수는 없고, 실은 어떤 식으로 장담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의혹에 빠져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2. 언제나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황금나침반> 시리즈를 끝내고 난 후,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황금나침반> 시리즈에서 말한 리라의 이야기는 결말로 향하고 있었고, 끝났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이 늘 존재한다. <황금나침반> 시리즈가 끝날 때 리라는 고작 12살이었을 뿐이다. 성장하고 어른이 될 것이다.

리라에게는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무언가를 해낼 것이다.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말하자면 내 시각의 바깥에서, 내 눈이 닿는 구석 너머에서, 나는 내 흥미를 끄는 다른 캐릭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점점 내 펜이 그 이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퍽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었지만, 이 새로운 이야기의 설득력과 재미가 너무도 강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캐릭터들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3. 자신에 차 있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음악을 듣지는 마라.

나는 (내 글이)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 이 정도면 되겠네" 정도다.

글을 쓸 때 나는 사실 의미보다는 소리를 더욱 의식한다. 어떤 단어가 문장에 들어갈지에 앞서 문장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갈지를 먼저 알게 되는 편이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방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음악이 틀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글을 쓰지 못한다.

어떤 작가들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나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고요한 상태는? 좋다. 전동 드릴 소리는? 괜찮다. 교통 소음? 문제 없다. 하지만 음악은 절대 불가다. 그러므로 나는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리듬을 들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4. 어조(tone)가 구조보다 더 중요하다.

글이 흘러가는 방향이라면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 그렇다, 나는 그런 식이다. 하지만 나중에 구조가 잡힌다. 종종 구조를 어떤 근본적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

구조는 피상적인 것이다. 책에서 근본적인 요소는 어조, 말하는 어조이며,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모든 문장을 바꾸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구조는 최후의 순간에 바꿀 수 있다. "중간부터 시작하겠다"라던가, 그런 비슷한 말은 가능하다. 구조는 존재하는 것이지만 뒤따라온다고 할 수 있다.


5. 가장 좋아하는 펜을 골라라.

일단, 나는 볼펜과 종이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행운의 펜을 가지고 있다. 몽블랑 볼펜이다. 무게와 크기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리고 잘 작동한다. 그 볼펜으로 여러 책을 썼다. 이제는 그 볼펜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만약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단 글을 쓴다. 그리고 한 챕터나 두 챕터를 쓸 때마다 컴퓨터로 옮긴다. 지금껏 발명된 편집 도구 중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6. 자신을 위해 써라.

글을 쓸 때는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다른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란 누군가에게 읽힐 때까지는 온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그 상호작용에서 독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읽고 싶은 것을 읽어야 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 지금껏 있어온 모든 '나 자신들'을 위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나부터, 처음으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던 나, 50년 전에 옥스포드에 있었던 나, 학교 선생으로 일했던 나, 교실에서 이야기를 해주던 나.

이 모든 나 자신.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넓은 독자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 그 독자들 속에 어른과 아이가 모두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원문: "Philip Pullman: Rules of writing from man behind His Dark Materials", BBC, 2017년 10월 19일.

개인적으로 4번이 가장 인상적이다. 소설 뿐 아니라 기타 분야의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 구절을 갈무리해두려는데, 혼자 보는 자료 모음집에 담아둘까 하다가, 전문을 번역하여 블로그에 올려둔다.

2020-01-01

작년의 영화: <우상>(2019)

<우상>은 <비밀은 없다>의 남매편(자매편x 형제편x) 같다. <우상>에서 성매매가 등장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은 <비밀은 없다>에서 디지털성범죄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되짚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두 작품 모두 결백하지 않은 인간들이 등장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이야기.

<비밀은 없다>를 좋아한 사람이 <우상>을 좋아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자를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후자도 적어도 '이해'는 하면서 볼 수 있다. 양자 모두 평균적인 한국 관객의 영상 리터러시보다 기준점이 훨씬 높기 때문에 애초에 흥행은 불가능한 작품이다.

<비밀은 없다> 이후 한국 영화가 이렇게 '영화답게' 나온 것도, 글쎄, 내 기억에는 중간에 끼워넣을만한 작품이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요 사건 설정, 인물 구도, 기타등등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비밀은 없다>를 본 사람이라면 <우상>은 보고 나서 판단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싫음 말고...

참고로 나는 문제의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렸다. '대한민국 학교 다 좆까라 그래 씨발~' 하더니, 결국에는 강남의 입시학원 다니는 게 결론이었던 그 영화. <우상>도 '대한민국 정의 도덕 다 좆까라 그래 씨발~'을 외치는데, 이쪽은 그따위 얄팍한 자기변명이 아니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애초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게 잘못이었다. 왜 결혼했을까? 그 남자는 '전라도 출신 미녀'가 필요한 정치 지망생이었고, 연홍은 탑 스타가 못 될 것이 거의 확실한 가수(지망생)이다. 물론 사랑도 했겠지. 남자의 야망에 탑승해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싶었고. 근본적인 실수.

<우상>의 중식도 아주 근본적인 실수를 했다. 극중에서 아예 본인의 입으로 말을 해버린 그것일 수도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어떠한 방향으로건 비극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세팅. 두 영화 모두, 두 인물의 근본적인 실수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가 없는 셈 치는 '터진 맹장'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터진 맹장'(참고로 이것은 영화와 완전히 무관한, 내가 방금 떠올린 은유다) 같은 걸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우상>을 안 보는 편이 나을 수 있고, 솔직히 본다 해도 뭐 이해가 될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비밀은 없다>를 따라갈 수 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 영화에서 댓글을 보니까 정말 '그 장면'에 진심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우상>은 어쨌건 '우상 파괴'에 성공한 것이다.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지금 말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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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5일 남겼던 기록. 내가 작년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우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9-12-31

독서 목록(2019)

  1. 20190107 - 시드니 민츠, 김문호 옮김, 『설탕과 권력』(서울: 지호, 1998)
  2. 20190112 - 이바라키 타모츠(Ibaraki Tamotsu), 박형우 옮김, 『만화로 보는 의학의 역사』(서울: 군자출판사, 2012)
  3. 20190120 - 엔리코 모레티, 송철복 옮김, 『직업의 지리학』(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4)
  4. 20190127 - 이안 브레머, 김고영 옮김,『우리 대 그들』(서울: 더퀘스트, 2019)
  5. 20190130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명진 옮김, 『평화의 경제적 결과』(서울: 부글, 2016)
  6. 20190215 - 존 레이티, 에릭 헤이거먼, 이상헌 옮김, 김영보 감수, 『운동화 신은 뇌』(서울: 녹색지팡이, 2009)
  7. 20190219 - 유태우, 『누구나 10kg 뺄 수 있다』(서울: 삼성출판사, 2006)
  8. 20190228 - 스콧 스토셀, 홍한별 옮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서울: 반비, 2015)
  9. 20190302 - 앤드루 산텔라, 김하현 옮김, 『미루기의 천재들』(서울: 어크로스, 2019)
  10. 20190305 - 그레임 맥레이 버넷, 조영학 옮김, 『블러디 프로젝트: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9)
  11. 20190314 - 히라노 게이치로, 김효순 옮김, 『책을 읽는 방법』(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8)
  12. 20190318 - 엘리슨 벡델, 송섬별 옮김, 『당신 엄마 맞아?』(경기도 고양: 움직씨, 2019)
  13. 20190319 - 사사키 아타루, 김경원 옮김, 『이 나날의 돌림노래』(서울: 여문책, 2018)
  14. 20190321 - 베네딕트 캐리, 송정화 옮김, 『공부의 비밀』(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6)
  15. 20190325 - 모리 히로시, 이규원 옮김, 『작가의 수지』(서울: 북스피어, 2017)
  16. 20190330 - 방성수, 『조폭의 계보』(경기도 파주: 살림, 2003)
  17. 20190330 - 어빙 고프먼, 김용환 옮김, 『오점(汚點): 장애의 사회심리학』(강원도 춘천: 9강원대학교출판부, 1995)
  18. 20190401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박민수 옮김, 『자성록』(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2), 전자책, 리디북스.
  19. 20190405 - 마이클 로이젠, 메멧 오즈, 박용우 옮김, 『내몸 다이어트 설명서』(경기도 파주: 김영사, 2008)
  20. 20190406 - Pierre Khawand, The Perfect 15-Minutes Day(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2016), 전자책, 킨들.
  21. 20190407 - The Zapier Team, The Ultimate Guide to Google Sheets(Zapier Inc., 2016), 전자책, 킨들.
  22. 20190410 -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서울: 기파랑, 2018)
  23. 20190411 - 스티븐 호킹, 배지은 옮김,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서울: 까치글방, 2019), 전자책, 리디북스.
  24. 20190414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서울: 민음사, 2018)
  25. 20190416 - 켄 크림슈타인, 최지원 옮김, 김선옥 감수,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서울: 더숲, 2019)
  26. 20190416 - 라종일, 김현진, 『가장 사소한 구원』(서울: 알마, 2015)
  27. 20190416 - 기베 도모유키, 장인주 옮김, 『일이 빠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할까』(서울: 비즈니스북스, 2017)
  28. 20190418 - 노정태, 『탄탈로스의 신화』(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29. 20190419 - 더프 백더프, 강수정 옮김, 『내 친구 다머』(경기도 파주: 미메시스, 2015)
  30. 20190420 - 장강명 엮음, 『한국 소설이 좋아서』(서울: 주식회사 책, 2017), 전자책, 리디북스.
  31. 20190421 - 민영규, 조흥윤 정리 엮음, 『서여 사랑방 작은 인문학』(서울: 민족사, 2015)
  32. 20190423 - 볼테르, 이봉지 옮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1), 전자책, 리디북스.
  33. 20190429 - 스티브 캐버나,『열세 번째 배심원』(서울: 북로드, 2019)
  34. 20190430 - 마키타 젠지, 전선영 옮김, 강재헌 감수, 『식사가 잘못됐습니다』(서울: 더난출판, 2018)
  35. 20190501 - 피어스 스틸, 구계원 옮김, 『결심의 재발견』(서울: 민음사, 2013)
  36. 20190503 - 미야자키 하야오, 송태욱 옮김, 『책으로 가는 문』(서울: 현암사, 2013)
  37. 20190504 - 마이클 샌델, 이수경 옮김, 김선욱 감수, 『완벽에 대한 반론』(서울: 와이즈베리, 2016)
  38. 20190505 - 듀나,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서울: 우리학교, 2019)
  39. 20190511 - 마크 피셔, 박진철 옮김,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서울: 리시올, 2018)
  40. 20190512 - 캘시 티머먼, 문희경 옮김, 『식탁 위의 세상』(서울: 부키, 2016)
  41. 20190514 -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회복하는 인간』(서울: 고즈윈, 2008)
  42. 20190515 - 오에 겐자부로, 송태욱 옮김, 『말의 정의』(서울: 뮤진트리, 2018), 개정판
  43. 20190515 - 마크 핸슨, 한재호 옮김, 『신경 끄기의 기술』(서울: 갤리온, 2017)
  44. 20190518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충분하다』(서울: 문학과지성사, 2016)
  45. 20190519 - 오에 겐자부로, 후루이 요시키치, 『오에 겐자부로의 말: 후루이 요시키치 대담』(서울: 마음산책, 2019)
  46. 20190520 - 라종일, 『세계의 발견』(서울: 경희대학교출판부, 2009)
  47. 20190522 - 하야시 아츠무, 박종민 옮김, 김항규 감수, 『회계학 콘서트 1: 수익과 비용』(서울: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8), 3판
  48. 20190522 - 하야시 아츠무, 박종민 옮김, 반동현 감수, 『회계학 콘서트 2』(서울: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09)
  49. 20190523 - 하야시 야츠무, 박종민 옮김, 홍종팔 감수, 『회계학 콘서트 3: 왜 회사는 연봉부터 깎을까?』(서울: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2)
  50. 20190525 - 하야시 야츠무, 오시연 옮김, 『회계의 신』(서울: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3)
  51. 20190526 - 하야시 야츠무, 오시연 옮김, 『회계학 콘서트 5: 분식회계』(서울: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8)
  52. 20190529 - 신영자, 『갑골문의 비밀: 갑골문과 무정 왕 그리고 부호 왕비』(서울: 문, 2011)
  53. 20190529 - 하지현, 『고민이 고민입니다』(서울: 인플루엔셜, 2019)
  54. 20190602 - 시라카와 시즈카, 심경호 옮김, 『문자강화 1』(서울: 바다출판사, 2008)
  55. 20190613 - 로버트 마우어, 장원철 옮김, 『아주 작은 반복의 힘』(서울: 스몰빅미디어, 2016)
  56. 20190614 - 크리스티나 워드케, 박수성 옮김, 『구글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OKR』(서울: 한경BP, 2018)
  57. 20190615 - 시라카와 시즈카, 심경호 옮김, 『한자: 기원과 그 배경』(서울: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7)
  58. 20190616 - 시라카와 시즈카, 우메하라 다케시 대담, 이경덕 옮김, 『주술의 사상: 시라카와 시즈카, 고대 중국 문명을 이야기하다』(경기도 파주: 사계절, 2008)
  59. 20190617 - 크리스토퍼 맥두걸, 민영진 옮김, 『본 투 런, 신비의 원시부족이 가르쳐준 행복의 비밀』(서울: 페이퍼로드, 2010)
  60.  20190619 - 전상인,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서울: 기파랑, 2019)
  61. 20190620 - 존 도어, 박세연 옮김, 이길상 감수, 『OKR: 전설적인 벤처투자자가 구글에 전해준 성공 방식』(서울: 세종서적, 2019)
  62. 20190627 - 황상규, 『실미도의 증언』(충청북도 청주: 낮은 목소리, 2003)
  63. 2019062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 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64. 20190630 - 루 버니, 박영인 옮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19)
  65. 20190705 - 최영미, 『다시 오지 않는 것들』(서울: 이미출판사, 2019)
  66. 20190707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최익종, 김현구 옮김, 『블랙 스완: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경기도 파주: 동녘사이언스, 2018), 최신 개정증보판
  67. 20190708 - G. W. F. 헤겔, 전대호 옮기고 씀, 『정신현상학 강독 1』(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9)
  68. 20190709 - 노박 조코비치, 김영옥 옮김, 『이기는 식단』(경기도 고양: 어언무미, 2016)
  69. 20190710 - 피터 자이한, 홍지수 옮김,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서울: 김앤김북스, 2019)
  70. 20190715 - 홍춘욱,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서울: 로크미디어, 2019)
  71. 20190717 - Michael Swanson, The War State: The Cold War Origins Of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And The Power Elite(Listen And Think Audio, 2014), Audible 오디오북.
  72. 20190720 -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8)
  73. 20190721 - 니콜라스 카, 최지향 옮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서울: 청림출판, 2011)
  74. 20190725 - 피터 콘래드, 정준호 옮김,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서울: 후마니타스, 2018)
  75. 20190728 - Philip Pullman, The Collectors(Audible Studio, 2014), Audible 오디오북.
  76. 20190801 - 한스 로슬링, 욜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이창신 옮김, 『팩트풀니스』(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9)
  77. 20190803 - 비엣 타인 응우옌, 김희용 옮김, 『동조자 1』(서울: 민음사, 2018)
  78. 20190803 - 비엣 타인 응우옌, 김희용 옮김, 『동조자 2』(서울: 민음사, 2018)
  79. 20190805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명진 옮김, 『설득의 에세이』(서울: 부글북스, 2017)
  80. 20190810 - 마시모 피글리우치, 석기용 옮김,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경기도 파주: 든, 2019)
  81. 20190819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끝과 시작』(서울: 문학과지성사, 2007)
  82. 20190820 - 하이먼 민스키, 신희영 옮김, 『포스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서울: 후마니타스, 2014)
  83. 20190820 - Roger Scruton, How to Be a Conservative(Audible Studios for Bloomsbury, 2014),  Audible 오디오북.
  84. 20190821 -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 김운찬 옮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서울: 이제이북스, 2003)
  85. 20190823 - 미노와 고스케, 구수영 옮김, 『미치지 않고서야』(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9)
  86. 20190823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홍대화 옮김, 『죄와 벌 (상)』(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1), 전자책, 리디북스.
  87. 20190824 - 히가시노 게이고, 양억관 옮김, 『용의자 X의 헌신』(서울: 현대문학, 2006)
  88. 20190825 - 도나 M. 웡, 이현경 옮김, 강규영 감수, 『월스트리트저널 인포그래픽 가이드』(서울: 인사이트, 2014)
  89. 20190828 - 엘러리 퀸, 배지은 옮김, 『중간의 집』(서울: 검은숲, 2019)
  90. 20190829 - 정윤, 최필원 옮김, 『안전한 나의 집』(경기도 파주: 비채, 2019)
  91. 20190901 - 프랭클린 포어, 이승연, 박상현 옮김, 『생각을 빼앗긴 세계: 거대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가』(서울: 반비, 2019)
  92. 20190902 - 칼 뉴포트, 김준수 옮김, 『열정의 배신』(서울: 부키, 2019)
  93. 20190903 - 칼 뉴포트, 김태훈 옮김, 『딥 워크』(서울: 민음사, 2017)
  94. 20190908 - 마이클 R. 캔필드 엮음, 에드워드 O. 윌슨 외 지음, 김병순 옮김, 『과학자의 관찰 노트』(서울: 휴먼사이언스, 2013)
  95. 20190909 - 듀자미, 『디자이너와 유튜버를 위한 프리랜서 세금 가이드』(서울: 렛츠북, 2019)
  96. 20190913 - Francis Fukuyama, Identity(Audible Studios, 2018), Audible 오디오북.
  97. 20190916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형이상학 서설』(경기도 파주: 아카넷, 2012)
  98. 20190917 - 프리모 레비, 조반니 테시오, 이현경 옮김, 『프리모 레비의 말: 아우슈비츠 생존 화학자의 마지막 인터뷰』(서울: 마음산책, 2019)
  99. 20190918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서울: 인물과사상사, 2014), 전자책, 리디북스 TTS.
  100. 20190920 - 이안 부루마, 신보영 옮김, 『0년: 현대의 탄생, 1945년의 세계사』(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6)
  101. 20190921 - 김상환, 『왜 칸트인가』(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9)
  102. 20190922 - 강준만, 『미국사 산책 2: 미국의 건국과 '명백한 운명'』(서울: 인물과사상사, 2014), 전자책, 리디북스 TTS.
  103. 20190923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윤리형이상학 정초』(서울: 아카넷, 2005)
  104. 20190925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홍대화 옮김, 『죄와 벌 (하)』(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1), 전자책, 리디북스.
  105. 20190926 - 강준만, 『미국사 산책 3: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06. 20190929 - 강준만, 『미국사 산책 4: '프런티어'의 재발견』(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07. 20190930 - Cal Newport, Digital Minimalism(New York: Portfolio/Penguin, 2019)
  108. 20191008 - 강준만, 『미국사 산책 5: 혁신주의와 '재즈시대'』(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09. 20191012 -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2』(경기도 파주: 창비, 2018)
  110. 20191014 - 강준만, 『미국사 산책 6: 대공황과 뉴딜혁명』(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11. 20191016 - 딜런 에번스, 나현영 옮김, 『유토피아 실험』(경기도 파주: 쌤앤파커스, 2019)
  112. 20191019 - 마르그리트 뒤라스, 윤진 옮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서울: 민음사, 2018)
  113. 20191019 - 강준만, 『미국사 산책 7: '뜨거운 전쟁'과 '차가운 전쟁'』(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14. 20191024 - 강준만, 『미국사 산책 8: 미국인의 풍요와 고독』(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15. 20191029 - 강준만, 『미국사 산책 9: 뉴 프런티어와 위대한 사회』(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16. 20191031 - 댄 브라운, 안종설 옮김, 『다빈치 코드 1』(경기도 파주: 문학수첩, 2008)
  117. 20191101 - 댄 브라운, 안종설 옮김, 『다빈치 코드 2』(경기도 파주: 문학수첩, 2008)
  118. 20191103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제0호』(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8)  
  119. 20191104 - 이문영, 『유사역사학 비판』(경기도 고양: 역사비평사, 2018)
  120. 20191106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0: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21. 20191110 -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7)
  122. 20191111 - 조던 피터슨, 스티븐 프라이, 마이클 에릭 다이슨, 미셸 골드버그, 조은경 옮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경기도 파주: 프시케의 숲, 2019)
  123. 20191113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1: '성찰하는 미국'에서 '강력한 미국'으로』(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24. 20191117 - 고영 글, 이윤엽 그림, 『장화홍련전』(서울: 북멘토, 2015)
  125. 20191117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용경식 옮김, 『야간비행』(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8)
  126. 20191119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2: 미국 '1극 체제'의 탄생』(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27. 20191127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3: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TTS.
  128. 20191129 - 나이절 워버턴, 정미화 옮김, 『철학의 역사: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서울: 소소의책, 2019)
  129. 20191130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9)
  130. 20191222 - 줄리언 반스, 커트 보니것, 스티븐 킹 외, 존 위너커 엮음, 한유주 옮김,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작가들의 작가에게 듣는 글쓰기 아포리즘』(서울: 도서출판 다른,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131. 20191224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4: 세계화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132. 20191229 - 아루트로 페레스 레베스테, 정청 옮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2)
  133. 20191230 - 차무진, 『인 더 백』(서울: 요다, 2019)
  134. 20191230 - 라이더 캐롤, 최성옥 옮김, 『불릿저널』(서울: 한빛비즈,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35. 20191231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5: '9·11테러 시대'의 미국』(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136. 20191231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6: 제국의 그늘』(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137. 20191231 - 강준만, 『미국사 산책 17: 오바마의 미국』(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전자책, 리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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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많이 걸어다녔다. 팟캐스트로 뉴스 등을 듣다가, 오디오북과 전자책 TTS로 옮겼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고 걸으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팟캐스트보다 전자책을 듣는 것이 마음의 평화에 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매일 뉴스를 따라잡고 쌓이는 피드를 읽어대는 것보다, 해당 주제에 대한 논픽션을 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종이신문을 1면부터 마지막 쪽까지 읽으며 성장한 세대임을 실감한다.

작년에 비해 훨씬 많이 읽었다. 내년에는 읽기보다 쓰기에 비중을 두어야겠다.

2019-12-15

EU가 원자력을 친환경에너지로 인정했다

EU 정상들은 원자력 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해달라는 일부 회원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부 국가에 한해 에너지 믹스(전력 발생원의 구성)에 원자력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헝가리와 체코는 EU가 원자력을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룩셈부르크를 비롯해 단계적인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추진하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여기에 반대해왔다.

김정은, 현혜란, "EU,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 합의…폴란드는 일단 유예(종합)", 연합뉴스, 2019년 12월 13일. 기사 원문 링크.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모두 질 좋은 갈탄이 많이 생산되는 나라다. 뿌리 깊은 석탄 산업의 힘이 정치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자력발전이 늘어나면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독일의 '탈원전'은 석탄화력의 사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석탄화력은 원자력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석탄이라는 연료를 공급하고, 석탄을 태우면서 나오는 재를 치우는 등의 온갖 과정에 사람이 개입해야 하므로 당연히 사고의 위험이 확률적으로 높아진다. 반면 원자력은 거의 모든 과정이 기계로 제어되며 자동화되어 있다. 나는 2017년에 이런 글을 썼다.

반면 화력발전소의 경우에는 특별한 지진이나 지진해일 등의 재난이 없더라도 꾸준히 사망자가 발생한다. 계속해서 연료를 투입하고 폐기물을 제거하는 등 사람이 개입해야 할 작업의 양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가령 2016년 2월 현재, 태안화력발전소의 경우 2011년부터 5년간 각종 사고로 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화력발전소의 환경적 위험 뿐 아니라 작업자들의 위험 역시 모른다. 환경주의의 공포 마케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발전소에서 일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노정태, "스스로 생각하는 환경주의: 가이아 이론과 홀 어스 카탈로그", 노정태의 블로그, 2017년 7월 28일. 원문 링크.

그리고 2018년 12월 10일, 24세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그 역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물론 2인 1조 작업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측의 무리한 경비 절감이 그의 죽음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의 구조 자체가 이와 같은 산업 재해에 취약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나는 원자력이 기후변화의 대응책으로서 유의미하고, 특히 석탄화력발전에 비해 노동자에게도 안전한 에너지원임을 줄곧 역설해왔다. 하지만 소위 '진보'는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입을 다물어버린다. 나는 입을 열었고, 2017년 7월, 약 10여년을 칼럼니스트로서 함께해온 언론사에서 잘려나갔다.

존경하던 사람들을 존경하지 못하게 되었고, 판단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던 이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당신들보다 좀 더 깨어있는 정신으로, 좀 더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진보 '세력'이 한꺼번에 퇴보하고 있을 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진보'는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019-12-14

박하사탕(1999)

나는 이 영화가 개봉 후 한창 화제를 끌 때에도, 이창동이 영화감독을 넘어 문화부장관으로 승승장구할 때에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KBS에서 매주 금요일 방송하는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돌아가고 싶다. 내가 <박하사탕>을 안 봤던 그 시절로.

<박하사탕>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줌의 윤리적 자의식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오프닝 크레딧이 뜰 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시간의 역순이라는 핑계를 대고 서사적 구성이 전혀 맞지 않는 '억울한 나님'들의 현란한 전시로 꽉 채워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남들 때문이고, 여기서 그 '남들'은 대부분의 경우 여자이며, 여자 중에서도 특히 첫사랑인 순임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죽어라고, 정말이지 죽어라고, 여자 탓을 한다. 그가 80년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된 후 트라우마에 빠진 건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여고생 때문이다. 때문인가? 물론 영호의 자기 서사 속에서는 본인은 착하게 여고생을 집에 보내주고 싶었지만 뒤에 다른 군인들이 다가와서 쫓아내기 위해 허공에 총을 쏘다가 잘못 맞았다. 그러므로 영호는 피해자다. 영호가 피해자면 누가 가해자인가? '비극적인 현대사' 탓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 그 자리에 나타났던 그 여자 탓이 없다고도 하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총을 쏘는 그 쉬운 일조차 제대로 못 해놓고서(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사실, 순임이 겹쳐보이는 그 여고생을 영호가 일부러, 혹은 미필적 고의로 쏘아 죽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나?) 세상 모든 고통과 아픔을 짊어진다.

그의 인생에 나타나는 회상과 반추가 모두 이딴 식이다. 1984년, 신참 형사가 된 그가 본격적으로 타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또 어떤가. 고참들이 강요해서 고문을 하다 손에 똥이 묻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사랑 순임이 자신을 찾아와, 영호에게 '착한 손을 가졌다'는 둥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들쑤시는 소리를 한다. 그래서 평소에 본척만척하던 식당 종업원 홍자의 엉덩이를 더듬는다. 순수한 영혼이 상처를 받아 일부러 위악적 행동을 하며 순수한 그녀를 지켜주기 위한 행동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이창동이 만든 영호의 서사란 '나는 울고 싶은데 네가 나타나서 내 뺨을 때려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호가 삐뚤어진 것에는 순임의 탓이 있다.

잘 따지고 보면 영호는 죽을 때까지 순임 탓을 한다. 혹은, 영호가 죽은 것에는 순임의 책임이 없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짜여져 있다. 대체 어떻게, 마치 고르고13처럼 생긴 순임의 남편은 영호가 인생 최악의 위기에 몰려 있는 그 시점에 영호를 찾아낸 것인가? 전날 밤까지 의식이 있었다던 순임은 대체 왜 영호가 자신을 찾아오자 의식을 잃었나?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영호는 이해받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억울억울 열매의 재료일 뿐이다. 그래서 영호는 죽는다. 순임과의 추억이 어린 그곳에서.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100%의 네 탓으로, 100%의 억울함만으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창동은 그걸 해냈고, 특히 남자 관객들은 이 영화를 '크 캬 커' 소리를 내며 보았을뿐더러,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영화라는 둥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2000년대 초에 이런 영화를 보며 엄지척 눈물 주르륵 하던 남자들이 지금 한국 영화계의 어엿한 중견들이다. 한국 영화판에 온통 억울한 남자들이 가득하고, 다들 '씨-발'이나 외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시발점이 바로 <박하사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나는 돌아가고 싶다. 이 영화를 모르던 그 순수의 시대로. 하지만 이미 봐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영호라던가, 영호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1999년 무렵의 이창동과 달리, 나와 이 글을 읽을 당신은 스스로의 행위와 그 행위가 낳은 결과에 대해,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몫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박하사탕>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보고, 읽고, 만들어가며 살아갈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